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254
키도는 고개를 저었다.
“살아가면서 평생을 바치고 싶은 무언가가 생긴다는 건 정말 행복한 거야. 그렇지?”
섭식과 번식이 전부였을 때도 있었다.
“많이 받았어.”
그것이 설령 끝없는 갈증일지라도.
“고마워.”
멋진 삶을 살았다.
“키…….”
울음이 터질 것 같아, 시로네는 말을 멈추고 작은 고블린을 와락 끌어안았다.
키도가 웃으며 말했다.
“우린 친구지?”
시로네가 고개를 주억거리고, 살며시 그를 밀어낸 키도가 길을 열어 주었다.
우오린이 기다리고 있었다.
“잘 다녀와.”
약간은 허무한 눈빛이었으나 예전의 독기 대신 상냥함이 어려 있었다.
“응.”
많은 빚을 졌다고, 생각이 들었다.
‘상호작용.’
결국 인간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존재.
“다녀올게.”
하지만 신에게 의지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타키온.’
시로네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이 우주에 하나의 생각을 심은 것이었다.
‘반드시 바꾼다.’
미래를.
허수의 입자로 풀어진 의식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무한무의 영역으로 사라졌다.
저항군 (1)
무한무의 공간.
‘모든 것은 착각이다.’
하지만 마음이 향하고 있기에 단순히 착각이라고 부를 수 없는 현상.
‘이곳이 나의 시작이야.’
시로네가 가장 먼저 선택한 착각은 이 세계에 철극이 심긴 시점이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될 테지만 긴 여정에서 만전을 기하고 싶었다.
“…….”
상아탑의 대지성전.
눈을 떴을 때 발밑에 보이는 것은 푸르도록 아름다운 자신의 행성이었다.
‘그리고…….’
이제 막 철극을 심은 베론이 나네의 설법을 지상에서 받아 내는 중이었다.
나네의 검은 끝없이 거대해졌고, 행성을 스치듯 대지에 일자의 상처를 냈다.
태성이 물었다.
“어떤가요? 직접 상대해 봤으니 알겠지요. 만약 시로네라면 지금의 설법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말이 증거였다.
‘돌아왔다.’
태성이 미간을 찌푸렸다.
“……시로네?”
대답이 없는 것보다도,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한 시로네의 눈빛이 문제였다.
“태성님.”
“아, 나는…….”
마치 시스템 충돌이 생긴 것처럼 그녀는 전에 없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사실을 말하면 역사가 바뀌겠지.’
물론 12사도와 우오린, 리차드의 삼위가 기존의 역사를 고수하겠지만.
“다녀올게요.”
어차피 의미 없는 일이었다.
육체가 미라클 스트림의 빛으로 풀어지고 순식간에 지상의 제단에 도착했다.
죽음을 앞둔 베론이 슈라에게 말했다.
“헥사에게 가라. 내가 이 세계에 남긴 의미를 허무하게 만들지 마라.”
“싫습니다! 제가 그 꼬맹이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아시잖아요! 십로회는 어떡하고요?”
약간은 뒤틀린 역사에서, 시로네는 그들의 대화를 처음으로 들을 수 있었다.
‘알고 있었을까?’
결국 슈라는 자신에게 왔고, 그가 남긴 철극은 인류의 유일한 희망이 되었다.
시로네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나네.’
무심하게 세상을 관조하는 그의 얼굴을 본 순간 다시 속에서 불이 끓었다.
‘부처를 제압하면…….’
불행한 미래는 오지 않아.
마음의 능력을 한껏 끌어 올린 시로네는 빠른 속도로 나네에게 향했다.
‘핸드 오브 갓.’
당시에도 우주의 진리를 두고 충돌했지만, 돌이켜 보면 얼마나 미숙했는가.
‘그런 게 아니야. 진리란…….’
한낱 이치로 정의할 수 없는, 온 인류의 마음과 그에 준하는 고통이었다.
“나네!”
거대한 빛의 손바닥 위에 포톤 캐논이 탄생하자 나네의 눈이 크게 뜨였다.
“저건…….”
대체 어떤 깨달음이지?
하지만 놀라는 것도 잠시, 나네의 몸이 전율하더니 눈빛이 공허해졌다.
“시로네.”
약간은 화난 말투.
엄청난 속도로 대기를 뚫는 포톤 캐논을 향해 나네가 손바닥을 내밀었다.
대일여래.
야훼에 준하는 부처의 경지가 나네의 육체를 태양처럼 밝게 만들었다.
펑!
포톤 캐논이 허무하게 파괴되고, 나네가 슬픈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야훼여, 정말로 포기할 수 없는 것이냐?”
‘타키온.’
나네 또한 허수의 신호로 시공간을 초월하여 이 지점에 도착한 것이다.
‘역시, 쉽지 않구나.’
시로네가 말했다.
“너야말로 포기해.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인류의 간절함을 헤아리란 말이야.”
“그 마음도 깨어나면 착각일 뿐이니.”
나네의 두 팔이 움직였다.
“번뇌를 벗을 수 없다면 사바세계의 윤회를 끝없이 반복하는 수밖에.”
쿠쿠쿠쿠쿠!
지평선 위로 떠오른 대일여래의 화신이 세상을 담듯 합장하기 시작했다.
아픈 기억이 떠올랐다.
‘안 돼.’
“나무.”
나네가 읊조리는 구결마저 트라우마처럼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관세…….”
시로네가 몸을 돌리고.
“에이미!”
대일여래의 두 손바닥이 세상을 부드럽게 뒤덮으며 완전히 맞닿았다.
“음音.”
하나의 생명이 소멸했다.
눈으로 직접 보지는 않았지만, 마치 본 것처럼 머릿속에 생생했다.
“……어?”
굳은 채로 목을 돌린 시로네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는 나네의 얼굴이 보였다.
“진실을 외면하지 마라, 야훼.”
“……어어?”
다음 순간 엄청난 살기를 머금은 시로네가 나네에게 화살처럼 쏘아졌다.
“나네에에에에!”
그리고.
“설법.”
세상이 번쩍 타오르고, 시로네의 의식이 끊어졌다.
“허억!”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무한무의 영역에서 시로네는 의식의 눈을 떴다.
‘착각.’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미안해, 에이미.’
그렇게 최초의 여정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보지도 못한 채 끝나고 말았다.
‘하지만 이제 알았어.’
시로네가 나네의 삶을 바꾸려는 순간, 나네 또한 자신을 추적해 온다는 것을.
‘방법이 있을 거야. 에이미만 살아 있으면 야훼의 경지로 싸울 수 있어. 나네만 꺾으면…….’
생각보다 일은 쉽게 풀릴 터.
“간다.”
두 번째 착각을 하자 무한무의 영역에 또다시 우주가 탄생하기 시작했다.
철극이 있는 한,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우오린의 미간이 구겨졌다.
“흐윽!”
시로네의 타키온이 철극에 작용하면서 시간파에 그대로 노출된 것이다.
“벌써 1회 차가 끝난 거야?”
키도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정상적인 시간보다 빠른 파동에 당하는 것은 생명 자체가 소진되는 느낌이었다.
“얼마나 빠르지?”
우오린이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 진동의 형태라 고정값은 없지만 1초에 대략 8시간 정도 지났어.”
“…….”
엄청난 배속이었다.
쿠르르르르릉!
바깥에서 밀려드는 진동에 고개를 들자 후아마가 입구 쪽을 살폈다.
멀리 마족의 인파가 보였다.
“시작이군.”
선악의 전쟁에서 승리한 자들이 마지막 전리품을 챙기기 위해 오고 있었다.
“개표를 시작합니다.”
인류의 멸망이 초읽기에 들어간 시점에서 세계 지도국 투표는 빠르게 끝났다.
개표까지 대략 10분 정도가 걸릴 테지만 사실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다.
람파와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패를 돌리는 가운데 아르민은 생각에 잠겼다.
‘시이나.’
생존자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그 전에도 신원 확인이 되지 않았기에.
‘제발 살아 있기를.’
두 손을 맞잡은 아르민에게 케이라가 다가왔다.
“마셔.”
차를 건네받은 아르민이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애써 태연한 척할 필요 없어. 하여튼 당신, 동생 사랑은 알아줘야 해.”
“…….”
아르민은 다시 말했다.
“고마워.”
피식 웃음을 터트린 케이라가 아르민의 옆에 앉아 천장을 보며 물었다.
“뭐 할 거야, 전쟁이 끝나면?”
상황에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으나 어쩌면 그런 생각도 괜찮을 터였다.
“그림을 그릴 거야.”
“하하! 첩보 활동 시절의 그거 말이지? 하긴, 제법 쓸 만하긴 했지. 하지만 괜찮겠어? 나 먹여 살리려면 마법사가 더 나을 텐데.”
“화폭에 담고 싶은 게 있거든.”
“뭔데?”
“나도 몰라.”
“뭐어?”
“아직은 정할 수 없어. 기다릴 거야. 모든 인류에게 보여 주고 싶은 광경을, 순간을, 상황을. 그걸 그리기 위해 나는 기다리고 있는 거야.”
“그렇구나.”
케이라의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당신답네.”
문이 열렸다.
“개표가 끝났습니다. 세계 지도국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