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30
용병단 1조장의 눈이 번뜩 빛났다.
리안의 동선과 엄폐물의 거리, 자신이 기습할 수 있는 빈틈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진 순간이었다.
“전원 돌격!”
리안을 중심으로 조원 3명이 동시에 쳐들어갔다.
하지만 그들은 미끼일 뿐이었고, 실제로 치명타를 날리는 사람은 조징이 될 터였다.
“큭!”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리안이 몸을 반대로 틀며 대직도를 휘둘렀으나 중간에 나무가 가로막고 있었다.
“푸하하하! 멍청이!”
1조장이 리안의 심장을 찌르려는 순간.
“이야아아아!”
기합을 내지른 리안의 대직도가 나무둥치를 그대로 터트리며 목덜미 쪽으로 밀려들었다.
‘어?’
놀란 1조장이 찌르던 검을 황급히 거두고 목덜미를 방어하자 대직도가 부딪쳐 왔다.
쇳소리가 터졌다.
“…….”
딱히 큰 충격은 없었으나, 어디까지나 나무둥치가 충격을 상쇄시켰기 때문이다.
‘죽을 뻔했어.’
설령 스키마의 고수라고 해도 이 좁은 공간에서 나무둥치를 베고 들어오는 건 어려운 일이다.
의문하던 1조장은 황급히 정신을 차렸다.
전쟁에서 상대를 궁금해하는 것은 금물. 생각은 일단 적의 목을 베고 나서 하는 것이 좋았다.
“이 자식이……!”
방어 자세 그대로 칼날을 긁으며 전진한 1조장이 리안의 복부를 베려는 그때.
“컥!”
그의 벌린 입에서 레이피어가 튀어나왔다.
중추신경이 한 번에 끊긴 1조장의 눈이 위로 올라가더니 곧바로 힘을 잃고 바닥에 쓰러졌다.
그 너머에 테스가 있었다.
“리안, 괜찮아?”
여전히 차분한 표정이었으나 리안의 시선은 잠시 아래로 내려가 시체를 살폈다.
아마도 처음일 것이라고, 테스는 생각했다.
‘죽어 있는 자를 보는 것과, 마침내 죽어 가서 시체가 되는 것을 보는 건 다르다.’
일종의 종교적인 느낌과 흡사하다.
조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며 온갖 감정을 쏟아 내던 자가 모든 의지를 박탈당한 채 싸늘하게 식어 버렸을 때, 인간은 처음으로 생명의 실체를 보게 되는 것이다.
“리안, 괜찮아?”
테스의 목소리에 리안이 반응했다. 그리고 늘 그렇듯 대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문제없어. 다른 쪽은?”
리안이 주위를 살폈을 때, 앵무 용병단은 시로네의 화력에 완전히 밀린 상태였다.
앵무 용병단도 마법사를 상대한 경험이 많지만, 포톤 캐논은 여타의 마법과 차원이 다를 정도의 속도를 자랑했고 파괴력 또한 발군이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섬광이 나무며 바위를 전부 짓이기자 용병단은 나올 타이밍을 찾지 못했다.
“빌어먹을! 대체 저게 무슨 마법이야?”
살짝 전방을 살핀 2조장이 황급히 고개를 되돌리는 순간 땅이 펑 하고 폭발했다.
‘저 자식은 지치지도 않나.’
이 정도로 강력한 위력이라면 횟수의 제한이라도 있어야 하건만 그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흥! 그래 봤자…….’
그가 반대편을 살피자 바위에 엄폐해 있는 부하가 수신호로 작전을 설명했다.
궁수의 위치였고, 시로네를 사각에서 빼내기만 하면 미간을 관통할 터였다.
“후우, 후우, 후우!”
빠르게 숨을 세 번 내쉰 2조장이 곧바로 몸을 날리자 섬광이 뒤를 쫓았다.
펑! 펑! 펑!
폭음이 들릴 때마다 심장이 내려앉았으나 이를 악물고 작전 위치까지 주파했다.
‘됐어!’
언덕 뒤로 몸을 날리며 돌아본 시로네의 위치는 저격수에게 완벽하게 노출되어 있었다.
“흐흐, 넌 이제 끝…….”
그 순간 궁수가 숨어 있는 곳을 향해 한 발의 불꽃이 가속하며 쏘아졌다.
잠시 후, 아련한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아아아!”
눈에 힘이 바짝 들어간 2조장이 고개를 돌린 곳에 어느새 에이미가 서 있었다.
‘저쪽에도 저격수가 있다. 그것도 마법사.’
2조장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회심의 기습 공격이 허무하게 끝나 버린 것이다.
“전원 후퇴!”
지시가 떨어지는 순간 사방의 풍경에서 앵무 용병단이 동시에 튀어나와 산을 탔다.
워낙에 은폐가 뛰어났기에 시로네 일행은 순간적으로 풍경이 흔들린 기분이었다.
“어딜 도망가려고!”
테스를 필두로 모두가 추격했으나 앵무 용병단은 쉽사리 거리를 좁혀 주지 않았다.
‘쳇! 그래도 자기 집이라 이거지?’
5년간 지형을 외우다시피 훈련한 앵무 용병단에 비해 시로네 일행의 동선 낭비가 큰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할게.”
오른손에 불꽃을 피운 에이미가 투척하듯이 팔을 휘두르자 폭발성 불덩어리가 포물선을 그리며 추락했다.
2조장이 소리쳤다.
“지금이다!”
말이 끝나는 순간 용병단 전원의 몸이 빛나더니 섬광으로 변해 하늘로 솟구쳤다.
시로네가 멍하니 고개를 쳐들었다.
“……공간 이동?”
이어서 에이미의 파이어볼이 추락하자 불꽃이 폭발하며 공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제길! 뭐야?”
잠시 열기가 가실 때까지 기다린 시로네 일행은 포격 지점으로 달려갔다.
어디에도 적들은 없었다.
“조금 전에,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에이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공간 이동이야.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상태부터 확인하자. 부상당한 사람은?”
상황이 끝나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하는 게 부상 여부였다.
동네 싸움이라면 코피만 흘려도 알아차리겠지만 생명이 걸린 전투에서는 아드레날린의 과다 분비로 인해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서로의 몸 상태를 꼼꼼히 체크한 뒤에야 시로네 일행은 조금 전 상황을 복기했다.
테스가 먼저 말을 꺼냈다.
“확실히 쉽지 않네. 개인의 실력은 크게 평가할 만한 게 아니지만, 조직적이고 경험이 많아. 그들의 영역이라는 것도 무시할 수준이 아니고. 무엇보다…….”
잠시 고민하던 그녀가 물었다.
“검사인데 어떻게 공간 이동을 한 거지? 고등 마법이잖아. 전투 중에 지켜봤지만 마법사는 없었어.”
“내가 확인해 볼게. 찍어 뒀어.”
에이미의 홍안이 켜졌다. 자기상 기억을 이용해 적들이 공간 이동을 한 시점을 저장한 것이었다.
“……마도 무구야.”
장소를 이탈하기 직전 그들의 소매 안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빛이 켜진 장면이 포착되었다.
“아마도 팔찌 형태인 것 같아.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전원의 팔에서 빛이 났거든.”
강행 돌파(4)
시로네는 회의적이었다.
“그게 가능한 일이야? 마정탄처럼 액티브 마법을 집적시키는 것과는 다르잖아. 스피릿 존으로 들어갈 수 없으면 목적지를 설정할 수 없을 텐데.”
에이미도 그 부분이 의심스러웠으나 엄밀히 따졌을 때 불가능한 건 아니었다.
“아마도 마법진과 연동했을 거야.”
공간에 마법적 도식을 새겨서 자체적으로 마력을 발산시키는 것을 마법진이라 한다.
“시로네의 말대로 마법 무구만으로는 목적지를 설정할 수 없어. 하지만 특정 공간에 새겨진 마법진의 좌표를 이용하면 이론상으로 가능한 일이야.”
테스가 말했다.
“그렇다고 해도 그 정도 규모를 갖추는 게 몰락한 용병단에서 가능한 일일까? 내가 알기로 인력은 물론이고 자금도 엄청나게 들어간다고 하던데.”
“정말로 앵무 용병단이라면 이곳을 요새화시켜서 은신한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지. 그래도 상당히 고강도 작업량이야. 중급 마법진은 하나만 새기려고 해도 최소 5명의 마법사가 하루 종일 작업을 해야 하니까. 자금 조달은 팔코아가 했을 거야. 유적지에서 만난 용병들이 그랬잖아, 루프의 마진이 엄청나다고.”
테스는 황당하게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체 얼마나 남긴 거야? 산 전체가 요새라면 마법진 하나 가지고는 턱도 없잖아.”
“제대로 전투를 운용할 정도의 규모가 되려면 최소 수백 개의 마법진이 새겨져 있겠지.”
“수백 개라…….”
시로네가 말했다.
“북쪽 숲 전체를 네트워크화시킨 거야. 한마디로 적에게는 도망칠 수 있는 도주로가 있는 셈이지. 이런 식으로 싸우다가는 수적으로 열세인 우리가 먼저 지치게 돼. 정상까지 가지도 못하고 쓰러질 거야.”
리안이 물었다.
“그럼 이제 어떡하지? 차라리 마법진을 파괴하면서 전진하는 건 어때? 어떤 장소에서 싸워도 적들이 도망친다면, 급하게 덤빈다고 될 일이 아니잖아.”
에이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건 꽤나 어려운 일이야. 마법진은 사물에 새기는 도식이라, 내구력에서 인간의 정신력과 비교가 안 돼. 애초에 그렇게 설계를 하기도 하고. 몇 개의 회로를 파괴한다고 작동이 중단되지는 않을 거야. 효과를 없애려면 공간 전체를 초토화시켜야 하는데, 그런 식이라면 며칠이 걸릴지 몰라.”
“흐음.”
테스는 상황을 파악했다.
상대적으로 소수인 그들이 용병단을 상대하려면 국지전이 벌어질 때마다 숫자를 줄여 나가는 수밖에 없지만, 적들은 마법진 네트워크를 이용해 얼마든지 전력을 보존할 수 있었다.
시로네가 예상을 깨고 리안의 의견에 동의했다.
“하지만 시도해 볼 가치는 있겠어. 적어도 마법진 하나 정도는 파괴해 보자.”
“하자고? 수백 개 중의 하나를 없앤다고 해 봤자 달라지는 게 뭔데?”
“우리의 입장은 그렇지만 적들의 생각은 다를 수도 있잖아. 그토록 막대한 시간을 투자해서 네트워크를 구축했다면 하나의 손실도 아깝게 생각하지 않을까? 어쩌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해 놈들이 몰려들 수도 있어.”
“일단 찔러보고 적의 반응을 확인하자는 거로군.”
에이미도 거기까지는 반대하지 않았다.
흔히 전쟁을 머니 게임이라고 표현하지만 자금력이 우월한 쪽이 언제나 이기는 것은 아니다.
지킬 것이 많을수록 멘탈은 약해지는 법.
앵무 용병단의 입장에서 시로네 일행은 그저 수많은 침략자 중의 한 부류일 뿐이다.
그런 상황에서 값비싼 마법진이 파괴된다면 그들 또한 전략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결정이 나자 에이미가 덧붙였다.
“효율을 따져야 하는 상황이야. 사실 마법진 파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말을 안 했는데, 마법진의 효과를 무력화시키는 건 너희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까다로워.”
리안이 대직도를 힘껏 땅에 박았다.
“내가 검으로 땅을 갈아엎으면 되는 거 아닌가? 마법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그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 우리가 눈으로 보는 마법진은 단순히 개념을 구현한 표식에 지나지 않으니까. 실제로 현상을 일으키는 것은 그 공간에 새겨진 마력이야. 그리고 이건…… 꽤나 복잡한 문제지.”
시로네가 말했다.
“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갈아엎어야 한다는 거지? 그게 어느 지점인지는 누구도 모르고.”
“바로 그거야. 마법진을 파괴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 정보 마법으로 개념 자체를 해킹하거나, 효과가 사라질 때까지 박살 내거나. 전자는 우리가 불가능하고, 후자는 시간과 노동력의 문제지.”
테스가 말했다.
“결국 이런 거네. 하나의 마법진을 파괴하는 데 필요한 노동력이 막무가내로 싸우면서 전진하는 것보다 효율이 떨어지는 것 같다는 거지?”
“맞아. 최소한 10분 내로 파괴하지 않으면 그냥 이 상태로 목적지까지 가는 게 좋다고 봐. 급하면 안 되지만, 시간이 많은 상황도 아니잖아? 물론 적들의 심리를 이용하는 의도는 나도 찬성이지만.”
정보가 모두 공유되자 말수가 줄었다.
각자의 생각이 깊어진다면 1명의 의견을 따르는 게 가장 시간 낭비가 적을 터였다.
리안이 시로네를 돌아보았다.
“어떡할래?”
“…….”
이번에도 시로네가 결정권을 얻었으나 상황이 상황인 만큼 판단은 극히 신중했다.
‘에이미의 말이 옳아. 괜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어. 아니, 이 판단에도 벌써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뭐가 됐든 지금 결정을 내려야 해.’
관건은 10분 안에 마법진을 파괴하는 것.
‘할 수 있을까? 검사가 땅을 헤집는 것만으로는 안 돼. 에이미의 화염 마법은 무생물에게는 크게 효과가 없고. 결국 포톤 캐논이라는 건데…….’
미친 듯이 포격을 퍼부으면 시간에는 맞출 수 있겠지만 정신 소모가 너무 심했다.
‘그렇다고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어. 포톤 캐논에 담긴 신의 입자가 아니고서야…….’
그 순간 시로네의 눈이 반짝 빛났다.
‘질량.’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시도한 적이 없을 뿐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마법진을 파괴하자. 내가 해 볼게.”
에이미는 의외였다.
통찰력이 강점인 시로네는 수학적 확률에 얽매이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녀가 생각하기에 너무 낭비적인 판단이었다.
“괜찮겠어? 포톤 캐논이라면 가능하겠지만, 한 발 한 발이 소중하잖아. 적을 제압해야 하는 공격을 땅에 대고 쏘아 대는 것은 내키지 않는데.”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포톤 캐논이 아니야.”
“그럼?”
“그게…… 일단 해 볼게. 나도 머리로만 생각한 거라서. 하지만 괜찮을 거야.”
결정권은 시로네에게 있었기에 에이미도 더 이상의 분석은 하지 않았다.
경험상 시로네의 통찰이 틀리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 그럼 나랑 테스가 한 팀, 시로네와 리안이 한 팀으로 이동하자. 발로 뛰기에는 너무 넓으니 순간 이동으로 주변을 뒤져서 마법진을 찾는 거야. 팀 간의 간격은 50미터로 고정하는 게 좋겠어.”
시로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히 속도를 조절하자. 간격만 신경 쓰다가 엄폐물에 부딪히면 큰일이니까.”
건널 수 없는 다리의 최고 난이도를 통과한 시로네에게도 숲은 위험한 곳이었다.
에이미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지금 누구를 걱정하는 거야? 설마 나를 초자연 어쩌고 하는 애들하고 똑같이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하긴…….’
시로네를 안심시키려고 한 말일 테지만 그렇다고 과장한 것도 아니었다.
에이미 또한 건널 수 없는 다리를 마스터한 졸업반이었고 홍안의 능력까지 있으니, 우발적인 충돌이 일어날 경우는 없다고 봐야 했다.
“좋아, 그럼 이제…….”
본격적으로 작전을 시작하려는 그때 무언가를 생각하던 테스가 손을 내밀었다.
“잠깐만. 그 전에 확인할 게 있어.”
“응? 확인이라니?”
“이번 작전이 성공한다면 적들과 전면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잖아. 그래서 리안에게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 조금 전 전투 상황에서 말이야.”
“뭔데? 나한테 무슨 문제라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