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95
“뭐, 1층에?”
“아니. 이 행성 어딘가에.”
그 말을 남겨두고 이루키는 네이드와 함께 강의실을 나가 버렸다. 단테는 귀까지 빨개질 정도로 화가 났다.
“저 자식이…….”
3. 시로네 어디 있어? (4)
다른 학생들에게도 시로네의 위치를 물었으나 모른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기다리면 오겠지만 학교를 둘러보는 것도 괜찮다 싶어 직접 찾아 나서기로 했다.
막상 돌아다녀 보니 예상과 다르게 시설이 괜찮았다. 부지면적은 왕립 마법학교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넓었다. 하지만 그래도 정이 안 가는 곳이었다.
어디를 가도 시로네를 찾을 수 없자 사비나가 투덜거렸다.
“나 참, 알려 주는 게 무슨 어려운 일이라고 직접 찾아가게 만들어. 꽤나 신뢰받고 있나 봐?”
클로저가 폭소를 터뜨렸다.
“푸하하하! 원래 시골 놈들이 의리 하나는 끝내주잖아. 실력은 없으면서 그런 걸로 무게나 잡고 다니는 거지.”
“하지만 이루키도 여기에 있다.”
단테의 말에 클로저의 웃음이 그쳤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루키가 여기에 있는 건 이상한 일이었다.
“이해가 안 가네. 메르코다인 가문이 이런 시골에는 왜 처박혀 있는 거야?”
“예전에는 우리랑 같은 학교였지. 퇴학인지 자퇴인지, 사고를 치고 잠적했다고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단테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한 번은 부딪쳐야 할 상대였다.
“상관없어. 스승님이 찍은 사람은 시로네야. 그 자식부터 밟은 다음에 생각하자고.”
식당에 도착한 단테는 선후배끼리 만나서 인사를 주고받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클래스 제도의 흔한 풍경이었으나 왕립 마법학교에서 밑바닥부터 올라온 그는 헛웃음이 나왔다.
“나 참, 시대가 어느 땐데 클래스 제도야? 알페아스란 사람도 아주 구식이네.”
“그러게. 잡지에서 보니까 서열 제도는 졸업반에서만 하고 있나 봐.”
“크크, 그러니까 애들이 패기가 없지. 아까 그 순두부 같은 자식 내 주먹 한 방에 나가떨어지는 거 봤어?”
단테는 대화를 뒤로하고 학생들에게 걸어갔다. 어쨌거나 시스템이 그렇다니 특권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단테의 등장에 학생들이 일제히 돌아보았다. 마법학교 학생치고 단테를 동경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최고의 스타가 같은 학교에 다닌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단테는 주머니에 손을 꽂고 한참이나 기다렸다. 그래도 반응이 오지 않자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뭐 하냐? 선배가 왔는데 인사 안 해?”
넋을 놓고 쳐다보던 후배들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허리를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애들 장난이기는 해도 인사를 받으니 괜찮은 기분이었다.
후배들의 면면을 살펴보던 단테는 자신보다 최소 두 살은 많아 보이는 여성을 발견했다.
정상적이라면 클래스 포 정도가 되어야 했건만 코흘리개들과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야, 너.”
“저, 저요, 선배님?”
클래스 식스의 마리아가 자신을 가리켰다.
“그래. 너 몇 살이냐?”
“열아홉 살인데요.”
단테는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렇게 순해 빠졌으니 나잇살이나 먹어 가지고 애들이랑 어울리는 것이다.
“시로네라고 알지?”
“시로네 선배님요? 네, 알아요.”
“지금 어디 있어?”
“그, 그건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저런 여자에게는 처음부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식당으로 들어가 봐야겠다는 생각에 걸음을 옮기는데 클로저가 바통을 터치하듯 나섰다.
왕립 마법학교에서 수많은 여성 편력을 자랑했던 클로저에게 마리아는 딱 맞는 먹잇감이었다.
“호오, 귀여운데? 우리 예쁜 누나, 이름이 뭐야?”
“에를랑 마리아인데요.”
마리아의 얼굴에 불쾌한 감정이 떠올랐다. 어릴 때부터 마법학교에 다녔으니 클래스 제도에 불만은 없지만 이런 식으로 나이 차를 강조하면 기분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인상 쓸 줄도 아네? 이거 선배 대접이 영 엉망이잖아.”
“아, 죄송합니다.”
클로저는 만족스러웠다. 이 학교의 학생들은 왜 이렇게 순진할까? 더욱 자신감을 얻은 그는 마리아의 손목을 끌어당기고 얼굴을 내밀었다.
“죄송할 것까지야. 그러지 말고 나랑 놀자. 저런 풋내 나는 애들하고 있으니 얼마나 욕구불만이 심하겠어? 내가 이래 봬도 단단한 걸로는 끝내주거든.”
마리아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참고 넘길 수가 없어서 손을 뿌리쳐 보려고 하지만 클로저의 완력이 너무 강했다.
그 순간 마크가 다가와 클로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만하시죠, 선배님.”
클로저의 인상이 구겨졌다. 전해지는 힘이 제법이었다. 마법사치고 몸을 단련하는 사람은 흔치 않기에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과연 자신과 맞먹는 덩치였다.
“선배의 손목을 잡는 후배도 있나? 이거 학교가 아주 엉망진창이구만?”
“그러는 선배님은 무슨 짓입니까? 여자 후배를 희롱하는 것도 교칙에 어긋날 텐데요.”
“희롱? 이건 희롱이 아니라 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밀당이야.”
“마리아가 기분 나빠하고 있습니다.”
“너 같은 어린애가 여자를 다룰 줄 알아? 저 나이대의 여자란 말이야, 강하게 끌어당기면 못 이기는 척 안기는 거야. 그게 아니면 뭐야? 설마 네가 어떻게 해 볼 생각이었냐?”
마크는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고 말았다.
“이 자식이 보자 보자 하니까…….”
“푸하하하! 이 꼬맹이 완전 열 받았는데! 설마 너 진짜로 좋아하는 거냐? 그래서 뺏길까 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거였어?”
마크는 그렇다고 솔직하게 외치고 싶었지만 목까지 차오르는 말을 도로 밀어 넣었다. 아직은 시로네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는…….
“마리아는 내 친구다. 그리고 나는 친구를 모욕하는 놈은 가만두지 않아. 선배든 교사든 상관없어. 존경받고 싶으면 존경받을 짓을 해.”
클로저의 표정이 변했다. 웃음기가 사라진 그의 얼굴은 영락없는 냉혈한이었다.
“그래? 그럼 존경하도록 만들어 주지. 땅바닥을 뒹굴게 될 거다.”
두 사람은 합의 없이 멀어졌다. 교내에서 마법을 사용하는 건 금기기에 지켜보는 학생들은 절로 긴장되었다. 하지만 클로저도 마크도 스피릿 존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역시 남자라면 주먹이지. 안 그러냐?”
“당신 같은 사람의 입에서 남자라는 말이 나오다니, 웃기는군.”
“크크, 아주 죽으려고 용을 쓰는구먼. 들어와, 애송아.”
클로저가 권투 자세를 취하고 손을 까닥거렸다.
약이 오른 마크가 뛰어들었다. 마리아를 희롱한 자를 상대로 뒷감당 따위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 순간 클로저가 스텝을 밟으며 물러섰다.
마크는 부아가 치밀었다. 당장이라도 붙을 것처럼 굴더니 백스텝은 뭐란 말인가?
마크는 안면을 공격하는 척하다가 클로저가 상체를 숙이자 곧바로 반대쪽 주먹으로 복부를 쳐올렸다.
‘들어갔다!’
80킬로그램의 거구가 전심력으로 휘둘렀으니 일어서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크윽!”
하지만 인상이 구겨진 쪽은 마크였다.
마치 바위를 때린 것처럼 주먹이 얼얼했다. 인간의 몸이 아니다. 필시 배 속에 무언가를 감추고…….
그 순간 클로저의 카운터가 안면에 작렬했다.
마크의 동공이 급격히 흔들렸다.
‘뭐지, 이건?’
일격에 머리와 몸을 연결하는 신경이 마비되고 말았다.
격투기에 관심이 많은 그였기에 힘깨나 쓴다는 무술가랑 대련도 해 봤지만 그것과는 다른 기질의 위력이었다.
“푸하하하! 완전 약골이잖아? 어때? 이제 존경할 마음이 들지? 앙?”
클로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바닥에 웅크린 채로 발길질에 얻어맞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때? 재밌지? 선배한테 개처럼 밟히니까 재밌냐?”
고통이 치미는 와중에도 마크는 분해서 견딜 수 없었다.
마음은 일어나서 반격을 하고 있지만 몸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마리아가 달려와 마크를 끌어안았다.
“제발 그만하세요! 이러다 죽겠어요!”
“흐흐, 무슨 소리야? 누구에게 덮어씌우려고? 분명 이 자식이 날 먼저 쳤는데?”
마리아는 클로저가 첫 공격을 양보한 이유를 깨달았다.
이대로 두다가는 얻어터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마크가 징계를 당할 수도 있었다.
“죄송해요. 제가 사과드릴게요. 무릎이라도 꿇고 빌 테니까 그만하세요.”
단테가 나서서 상황을 정리했다. 첫 날부터 일을 크게 키우면 앞으로가 귀찮아 진다.
“잘 들어라, 후배들. 앞으로 우리를 보면 꼬박꼬박 90도 경례를 하도록. 선배를 우습게 여기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이 녀석을 보고 똑똑히 기억해 두라고.”
단테 일행이 떠나자 학생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왕국 최고의 스타는 공포심을 조장하는 것도 최고인 듯했다.
마리아가 눈물을 글썽거리며 마크를 살폈다.
“마크, 괜찮아? 바보야, 대체 왜 그런 거야?”
마크는 이미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 마리아의 품에 안겨 있는 상황이 꿈만 같아서 생각을 놓고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걱정시키고 싶지는 않았기에 얼른 상체를 세웠다.
“괜찮아. 이 정도야 뭐.”
마리아가 부러진 곳이 없나 살피는 동안 마크는 멀어져 가는 단테 일행을 노려보았다.
“저것들 진짜 위험한 놈들이네. 저렇게 막나가서 어쩌자는 거야?”
“몰라. 올리비아 교장 선생님의 제자라던데, 그거 믿고 설치나 보지. 왕국 최고의 스타는 개뿔. 완전히 망나니잖아.”
교장이 바뀌자 모든 게 변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오늘의 일을 해프닝으로 여기고 있지만 한때 저들과 같았던 마크는 직감했다. 자신이 당한 일은 앞으로 터질 대형 사고의 전초전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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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와 나란히 고급반의 건물 복도를 걷고 있는 사드는 죽을 맛이었다.
알페아스에게 새로운 교장이 적응할 수 있도록 도우라는 특명을 받은 터라 꼼짝없이 비서 노릇을 하고 있었다.
“저기, 교장 선생님. 순방은 이따가 하시고 식사부터 하시죠. 저희 학교의 음식은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올리비아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서류를 살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리 빨리 걸을 수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었다.
“학교에 8급 교사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요즘 시대가 어느 땐데 8급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겠어요? 왕국에서 이름이 알려진 학생들은 비공인 9급까지도 쳐주는 실정이에요. 졸업 예정자라면 공인 수준까지 올라가고요.”
사드는 마법사도 아닌 마법 지망생이 왕국에 이름을 알려서 어쩌자는 건지 따져 묻고 싶었다.
하지만 수도하는 기분으로 임하라던 스승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좋은 말로 설득했다.
“8급 교사는 대부분 마법 외에 한 분야의 전문가들입니다. 학생들의 인성 교육을 위해 철학자, 예술가, 기술자 등 전문적인 특기가 있는 교사진으로 꾸렸습니다.”
“여기는 특수 목적 학교예요. 잡다한 교육은 가문에 맡기고 마법을 최우선으로 해야죠. 현재 알페아스에 스타가 누가 있죠? 왕립의 에어하인 단테, 오리스의 미코 라이나, 심지어는 5대 명문도 아닌 플로랑 시립에도 엑시온 카바엘이라는 학생들이 열광하는 스타가 있어요.”
“하지만 교장 선생님, 그런 애들이 대체 왕국에 몇 명이나 있을까요?”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어쨌든 있다는 게 중요하죠. 다른 학교에는 있는데 여기에는 없다는 게 중요한 거라고요. 사고방식이 이러니까 이 학교가 근 10년간 말석에만 있는 거예요. 여기 교사들 너무 관성적인 거 아닌가요?”
올리비아는 물어 놓고 대답할 틈을 주지 않았다.
“교사진도 긴장감이 필요해요. 5대 명문에 들어가는 학교라면 천재적이고 젊은 교사들이 두루 포진해 줘야죠. 올리페르 시이나 양도 왕립 마법학교 기준으로는 최상위권이 되지 않아요. 솔직히 왕국 전체에서 먹어 준다 싶은 교사로는 로미 에텔라 양밖에 없지 않나요?”
사드는 올리비아의 주둥이를 꿰매 버리고 싶었다. 학생을 진심으로 가르치는 게 훌륭한 교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녀는 교사마저 실력 순으로 줄을 세우려 하고 있었다.
“조금 더 많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혹은 성장시키거나. 아, 세미나를 정기적으로 여는 것도 괜찮겠네요.”
올리비아의 오른쪽에 떠다니는 노트에 글자가 새겨지기 시작했다. 언령 마법의 일종인 도트 필기라는 것으로, 음성을 문자로 찍어 내는 능력이었다.
그녀의 말은 너무 빨라서 초음술(초고속으로 발음하는 언령 마법사의 기술)을 쓰는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는데 그럼에도 필기 속도가 밀리지 않았다.
3. 시로네 어디 있어? (5)
올리비아가 문득 떠올랐다는 듯 걸음을 멈췄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요. 오후 수업은 내가 직접 참관하겠습니다. 클래스 텐부터 전부 돌아볼 테니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드는 최면에 걸린 듯 대답했다. 학교의 명성을 높여 보려고 노력하는 것이니 미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올리비아가 다시 걸음을 재촉하는데 복도 건너편에서 시로네가 다가왔다. 밥을 먹고 돌아오기에는 이른 시간인지라 사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시로네? 무슨 일이냐?”
“엇, 안녕하세요.”
올리비아는 다가오는 시로네를 살폈다. 알페아스가 자신을 닮았다고 말했던 소년. 하지만 그녀가 알고 있는 알페아스는 이런 사람이 아니었다.
하긴, 그가 30대 초반일 때 만났으니 아내를 잃고 폐인이 되었을 무렵이다. 그렇다면 이 소년이 결혼하기 전의 알페아스, 미르히 가문의 빛이라고 불리던 모습일까?
“네가 시로네로구나.”
“네, 처음 뵙겠습니다.”
“그래. 지금은 점심시간일 텐데?”
“교장 선생님을 만나려고요. 교장실에 가 봤는데 안 계셔서.”
“당연하지. 오늘부터 내가 교장이니까.”
“아, 죄송합니다.”
시로네가 말실수를 깨닫고 당황하자 사드가 얼른 끼어들어 사태를 무마시켰다.
“스승님은 개인 서고에 계실 거야. 중앙 건물에서 우측으로 가면 별채가 하나 있단다. 그쪽으로 가 보렴.”
사드가 빨리 가라고 눈짓을 보냈다. 어떤 상황인지 깨달은 시로네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후아! 숨 막혀 죽을 뻔했네.”
건물을 벗어난 시로네는 크게 심호흡을 했다.
제2급의 대마법사가 내뿜는 기운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종류였다.
아케인에게서도 압박감을 느꼈지만 올리비아는 그것을 뛰어넘어 압박감을 느끼는지도 몰랐다. 영역을 벗어나고 나서야 숨을 쉬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음을 진정시킨 시로네는 사드가 알려 준 대로 별채를 찾아갔다. 문고리를 잡고 문을 두드리자 편한 복장의 알페아스가 시로네를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단다. 어서 들어오렴.”
시로네는 소박한 별채의 정경을 두리번거리다가 벽에 걸린 초상화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알페아스가 그녀를 가리키며 소개해주었다.
“내 아내, 에리나란다. 너도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지?”
“네. 안녕하세요.”
시로네는 초상화에 꾸벅 인사를 올렸다.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엉뚱한 행동에 알페아스가 눈썹을 들었지만 그만두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다.
“그래,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겠구나.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기 전에…… 혹시 배고프니?”
“사실 조금요.”
“양송이 수프를 끓였단다. 같이 먹자꾸나.”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앉아 식사를 했다. 궁금하기는 알페아스도 마찬가지였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렸다. 어떤 이야기든 시작이 가장 어려운 법이었다.
“교장 선생님, 천국에 다녀왔어요.”
땡그랑, 식기가 떨어졌다. 입술 아래로 수프를 흘린 알페아스가 후루룩 삼키고는 수염을 닦았다.
믿을 수가 없었지만 시로네의 얼굴을 보면 사실이었다. 신기한 곳을 다녀온 여행자의 표정도, 굉장한 것을 발견한 탐험가의 표정도 아니었다.
“천국이라 하면…….”
“죄송해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카니스가…….”
자초지종을 들은 알페아스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특히나 아케인이 천국에 갔다는 사실은 처음 듣는 얘기였다.
하긴, 돌이켜 보면 비밀이 많은 사람이었다. 선과 악 중에 악을 택했지만 허무주의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교장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 미로 씨는 어떻게 그 일을 맡게 되었죠?”
알페아스는 시로네의 짐작을 깨달았다. 하지만 생각은 변하지 않았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돌이킬 수도 없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 한 사람이면 충분했다.
‘가올드…….’
미케아 가올드. 지금은 왕국에서 손에 꼽히는 제1급 대마법사지만 알페아스에게는 여전히 자신의 제자로, 순수했던 청년으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시로네. 아무것도 알려고 하지 마라. 초국가적인 사안이다. 거기에 발을 내딛는 순간 네 인생까지 꼬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