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196
“하지만 만약 미로 씨가……!”
“네가 안다고 해서 무엇이 바뀌지?”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안다고 해서 자신이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지금도 이 세계는 오직 1명의 힘에 의해 유지되고 있었다.
“교장 선생님, 만약 천국의 군대가 미로의 시공을 돌파한다면…….”
알페아스는 고개를 저었다.
“미로가 천국의 군대를 막은 뒤로 각국의 싱크탱크도 오래 전부터 대비를 하고 있다. 알겠느냐, 시로네? 달라질 것은 없다. 너에게는 꿈이 있어. 손댈 수 없는 진실에 얽매어서 네 인생을 망치지 말거라.”
갈리앙트 섬에 가기 전과 똑같은 말이었지만 이제는 시로네도 그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발을 담근 것만으로 자신의 인생뿐만이 아니라 친구들의 인생까지 망칠 뻔했다.
“네,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뼈저리게 느꼈으니까요.”
알페아스는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아타락시아는 나조차 감탄스럽구나. 고대에는 천사의 능력을 멸룡의 마법이라고 불렀단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용족의 역사를 찾아보렴. 용족은 인간보다 훨씬 긴 역사를 갖고 있으니 천사에 대해 더 많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시로네는 뜻하지 않게 좋은 정보를 얻게 되었다. 여태까지 천국과 인간의 관계만을 생각했지만 따지고 보면 이 세계 전체와 얽힌 사안이었다.
‘나중에 다른 종족의 역사도 공부해야겠다.’
그렇게 생각을 마친 시로네가 물었다.
“제가 이 힘에 책임을 져야 할까요?”
“허허, 시로네, 그런 건 없단다. 너의 선택이 어떤 결과로 나타나게 될 것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해야 한다.”
“몇 번이나 망설이게 돼요.”
“하하하! 그런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지. 아타락시아가 개방된 순간만큼은 나보다 강하다고 해도 좋다.”
알페아스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시로네의 얘기에 과장이 없다면 아타락시아 마법진이 열린 순간만큼은 공인 4급 마법사도 막을 수 없는 위력일 터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기쁘지 않았다.
알페아스가 내건 ‘아타락시아가 개방된 순간만큼은’이라는 전제 조건이 무엇을 뜻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론과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이모탈 펑션을 개방한 채로 1분의 시간 동안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은 실전에서 목을 내놓고 베어 가기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하시고 싶은 말씀이 뭔지 알겠어요. 아직은 감당하기 벅찬 능력인 건 사실이에요. 지금부터 열심히 수련해서 제 것으로 만들어 보겠어요.”
“그래. 좋은 인연을 얻었구나. 네 것이다. 네가 껴안고 수없이 고민해 보거라.”
“네, 감사합니다.”
알페아스에게 털어놓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어른에게 책임을 떠넘긴 것일 수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것이 순리였다.
시로네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루빨리 어른이 되어 그들의 책임을 분담하는 것이었다.
시로네가 학교로 돌아가자 알페아스는 문을 걸어 잠그고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1년 만에 들어온 천국에 대한 새로운 정보였다.
미로가 천국에서 돌아왔을 때, 그녀는 자신의 희생으로 모두를 구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달랐다. 그는 천국과 싸웠다.
투쟁은 적을 만들지만 그렇기에 아군 또한 만든다.
시로네는 천국에서 투쟁한 대가로 동료를 얻었다. 미로하고는 다른 의미의 성과에 세계가 주목하게 될 것이다.
“여보, 솔직히 두렵구려. 이제는 나도 잘 모르겠소.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아타락시아. 네가 껴안고 네가 감당하라고, 무책임한 말을 해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앞에 두고 훈수를 두는 건 체질이 아니었다.
“오랜만에 피가 끓는구려. 이런 말을 하면 서운하겠지만, 당신을 떠나보낸 실수는 훗날 이 소년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었는가 싶소.”
오로지 자신만이 시로네를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젊은 날의 실패는 분명 시로네를 발전시킬 밑거름이 되어 줄 터였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소? 내가 조금 더 욕심을 부려도 되겠지?”
그림 속의 에리나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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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린은 가을꽃들이 만개한 고급반 뒤편의 화단을 기분 좋게 거닐었다. 공터가 좁아서 아무도 찾지 않는 곳이지만 그래서 더욱 마음에 들었다.
수업이야 대부분 아는 것들이라도 태어나서 처음 다녀 보는 학교는 예상보다 훨씬 적응하기가 힘들었다.
“아린, 기다렸지?”
카니스가 주먹밥을 품에 넣고 달려왔다. 알페아스가 등록금을 지불했기에 숙식은 무료지만 학교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 숙소는 사용하면서 식사는 거부하는 것은 유치한 고집일 수도 있지만 알페아스는 말리지 않았다.
아케인을 죽인 학교다. 굳이 어린 나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스승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는 마음이 기특했다.
“먹자. 이번에는 간이 맞나 모르겠네.”
아린은 화단에 앉아 주먹밥을 들었다. 처음에는 너무 짜서 도저히 못 먹을 지경이었으나 점차 맛이 깊어지고 있었다.
카니스가 밥을 우물거리며 말했다.
“밤에 일이라도 해야 할까 봐.”
“카니스, 교장 선생님이 용돈도 주고 있잖아. 고집을 부리는 건 바보 같기도 해.”
“알아. 하지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장인 거야. 어쩔 수 없이 받을 건 받겠지만 차근차근 거절해야지. 스승님의 적이었는데 비굴하게 백기를 들 수는 없어.”
카니스는 한마디를 보탰다.
“정 급하다면 쓰겠지만. 그래도 기대고 싶지는 않아.”
카니스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은 아직 식당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는 게 익숙하지 않았다.
“쳇, 여기도 없네. 대체 어디 간 거야?”
단테 일행이 화단으로 들어왔다. 카니스는 저들이 누구인지는 소문으로 들었다. 하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왕국의 스타인지 뭔지는 몰라도 유치할 따름이었다.
“물어볼까?”
단테 또한 카니스를 발견하고 다가왔다. 막상 두 사람을 가까이서 살피자 불쌍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데이트라도 하고 있는 줄 알았더니 쪼그려 앉아서 궁상맞게 주먹밥을 먹고 있었다. 따돌림을 당하는 게 분명했다. 어떤 조직이든 소외당하는 부류는 있는 법이니까.
“어이, 너희 클래스 포지?”
단테가 물었으나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분명 들을 수 있도록 크게 말했는데도 그들의 눈에는 주먹밥밖에 보이지 않는 보양이었다.
클로저가 말했다.
“밥 사 먹을 돈도 없는 거냐? 시골 학교라서 영세민도 받아 주는 건가? 수준 떨어져서 못 봐 주겠네.”
아린은 클로저를 흘끔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마치 빼앗기기라도 할 것처럼 다람쥐처럼 턱을 움직였다.
음식을 하찮게 여기는 사람이 가장 먼저 포크를 집어 든다는 사실을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클로저는 질려버리고 말았다. 몸은 호리호리한 여자애가 식성이 엄청났다.
“걸신들렸냐? 천천히 먹어라. 안 뺏어 먹을 테니까.”
여전히 두 사람에게서는 대꾸가 없었다. 단테는 갑갑해졌다. 시골이라서 그런지 도시에서는 구경조차 못 하는 진풍경들이 계속 보이고 있었다.
“애들이 괴롭혀서 숨어서 먹는 거냐? 너희도 참 한심하게 산다. 그냥 미친 척 맞서 싸워. 당하지 말고.”
“그래서 뭐어?”
카니스가 참지 못하고 고개를 쳐들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게 밥 먹는 중에 누가 건드리는 것이었다.
카니스의 눈동자를 바라본 단테는 착각을 깨달았다. 실전주의? 아니, 그보다는 더 깊은 곳에서 맴도는 적의. 이 녀석은 금기를 넘었다.
비로소 반응이 오자 클로저가 주먹을 어루만졌다.
“어쭈? 제법 세게 나오는데? 너도 주먹맛을 봐야 정신 차리겠냐?”
“그만둬라, 클로저.”
단테가 말렸다. 건드려봤자 같이 더러운 꼴을 볼 것 같은 촉이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아린에게서는 긴장한 기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자신이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시체로 둘러싸인 전장에서 살기라도 했던 것일까?
“어이, 네가 클래스 포의 최고냐?”
“최고? 최고는 시로네잖아?”
‘이 녀석도 시로네인가?’
단테는 생각에 잠겼다. 이루키에 이어서 카니스까지 시로네를 지목했다. 비로소 실마리가 풀리는 기분이었다. 올리비아 스승님은 정확히 짚어 냈다.
3. 시로네 어디 있어? (6)
“시로네 어디 있어?”
“내가 어떻게 알아? 식당에 없어?”
“없으니까 묻는 거 아냐.”
카니스는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천국의 일을 보고하러 알페아스에게 갔을 것이다.
귀찮은 놈들을 떼어 낼 수 있다면 알려 줘도 상관없지만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시로네는 찾아서 어쩌게?”
“밟아 버려야지. 최고는 시로네라고 했으니 내가 그놈을 꺾으면 너도 내 밑으로 들어오게 되겠지.”
“하하하하!”
카니스는 어처구니가 없어 웃어 버렸다. 그러자 클로저가 눈을 부라리며 다가왔다.
“이게 웃어? 너 우리가 누군지 몰라?”
“그러는 너희는 시로네가 누군지 모르냐?”
단테가 말했다.
“알고 있어. 이모탈 펑션의 경지에 오른 놈이지. 하지만 그게 어쨌다는 거냐? 마법사가 도나 닦는 직업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마법은 엄연히 살인 기술이라고.”
카니스도 거기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었다. 현자 같은 시로네랑 어울리다가 오랜만에 옳은 소리를 들으니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로 시로네가 착해 빠진 순둥이에 불과했다면 이미 오래전에 자신에게 밟혔을 터였다.
시로네는 다르다. 그게 핵심이었다.
“정말 걱정돼서 하는 말인데, 웬만하면 그 녀석은 건들지 마라. 너 보니까 꼭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서 그래.”
“하하하! 그러니까 뭐야, 네가 졌다고 나도 진다는 거냐? 이제 보니 그냥 패배자였군.”
카니스는 담담했다. 싸구려 도발에 감정을 소모할 만큼 살아온 세월이 아름답지 않았다.
“이기고 지고가 중요한 게 아니지. 너, 어디까지 떨어져 봤냐?”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어. 너랑 다르게 말이야.”
“그렇다면 도전해 봐. 네가 상상할 수 있는 밑바닥의 끝까지 밟히는 기분을 느끼게 될 테니까. 큭큭큭.”
단테의 얼굴이 붉어졌다. 수도 바슈카에서도 자신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곳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무지하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이런 촌놈들을 상대하는 게 아니었다.
“재미있군. 내가 꺾어 주지. 그때가 되면 너도 나한테 무릎을 꿇어야 될 거야.”
단테가 일행을 이끌고 사라지자 카니스는 밥맛이 뚝 떨어졌다. 귀족들 중에는 왜 이렇게 제멋대로 사는 놈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아린이 음식을 씹으면서 말했다.
“의외네, 카니스. 순순히 시로네가 최고라고 해 주고.”
“귀찮은 일은 질색이니까. 이딴 곳에서 주목받고 싶지도 않고.”
“하긴, 시로네라면 알아서 잘하겠지 뭐.”
카니스는 입을 삐죽 내밀었다. 자신은 몰라도 아린은 천국파의 멤버로서 조금이라도 걱정할 줄 알았던 것이다.
“그렇긴 한데…… 어째 너무 무책임한 말 같다?”
“으응, 아니야. 정말로 시로네라면 괜찮을 거 같아서 그래.”
손가락을 쪽쪽 빨며 말한 아린은 카니스의 손에 남아 있는 주먹밥을 바라보았다.
“혹시 다 먹은 거야?”
“아니, 이건…….”
카니스는 방어적으로 주먹밥을 끌어당겼다. 이래서 빨리 해치웠어야 하는데. 괜한 놈들하고 시비가 붙는 바람에 한 끼 식사를 빼앗기게 생겼다.
“어, 다 먹었어. 너 먹어.”
“헤헤, 고마워.”
허기가 제법 가셨는지 아린이 여유를 되찾고 물었다.
“그러고 보니 시로네는 적이 되게 많네.”
“하지만 그만큼 아군도 많지. 외롭지는 않겠어.”
카니스는 화창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비스트는 지금 이 순간에도 천국에서 가져온 빛과 어둠의 서를 분석하는 중이었다.
아케인의 유산을 물려받은 이상 조급함은 없었다. 가끔씩은 이런 여유도 괜찮지 않을까? 여태까지 정신없이 달렸으니까.
“천천히, 천천히 하면 되는 거야.”
“응, 그러자.”
카니스는 미소를 지으며 아린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좀 천천히 먹어.”
4. 전투 시뮬레이션 (1)
점심시간이 끝나고 고급반 통합 수업 시간이 돌아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담당 교사는 에텔라였고 장소는 이미지 존이 있는 훈련장이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시로네가 헐레벌떡 뛰어왔다.
방학 중에 순간 이동으로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져서인지 구보로 오는 게 이토록 힘들 줄은 몰랐다.
“아, 에텔라 선생님. 죄송합니다. 시간에 맞추려고 했는데.”
“그래요. 네이드에게 얘기는 들었어요. 들어가서 수업 준비하세요.”
단테 일행은 점심시간에 시로네를 만나기란 처음부터 불가능했다는 사실을 알고 똥 씹은 얼굴이 되었다.
그랬으면 말을 해 줄 것이지 사람을 똥개 훈련시키는 건 뭐란 말인가?
“자, 여러분. 모두 반가워요. 이번 학기에는 새로운 얼굴들이 보이네요. 단테, 클로저, 사비나, 알페아스 마법학교에 전학 온 것을 환영합니다. 모두 박수 한번 쳐 주세요.”
단테는 황당한 듯이 입꼬리를 올렸다. 왕립 마법학교에서도 소문이 자자했던 로미 에텔라가 담당하는 과목이라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예상을 깨는 인상이었다.
순해 빠진 얼굴에 커다란 안경을 썼고 머리는 대충 묶었다. 수도사라고 들었으니 거기까지는 이해해도 수업하는 방식이 일곱 살 적에 자신을 가르쳤던 보모를 보는 듯했다.
더욱 황당한 것은 이런 유치한 지시에도 아이들이 진지하게 박수를 치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럼 수업을 시작하겠어요. 하위 클래스는 사방식 변환과 수열식을 집중적으로 연습하고, 상위 클래스는 정신 박동, 타기팅, 수열식 순으로 진행하세요.”
사비나가 클로저에게 귓속말을 했다.
“여기는 졸업반하고 고급반 수업이 아예 다른가 봐.”
“그러게. 실습 시간이라 기대했는데 지루하기는 마찬가지잖아.”
사비나가 전학을 오면서 유일하게 기대했던 것이 트리플의 호칭을 얻은 에텔라의 수업이었다.
세 가지 분야에서 6급 이상을 취득하게 되면 트리플이라는 칭호가 주어지는데 에텔라는 마법, 무술, 구도(스피릿 존)에서 6급을 취득한 교육계의 신성이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들어 보니 말투만 유아스러운 게 아니라 교과마저도 지루하기 짝이 없는 기본기 훈련이었다.
사비나가 손을 들고 물었다.
“선생님, 다른 훈련은 안 하나요? 저는 스나이퍼 모드를 배우고 싶은데요.”
“그건 전공 수업에 들어가는 과목이라 고급반에서는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에텔라 선생님이면 충분히 가르쳐 주실 수 있잖아요. 솔직히 이 수업 하나 들으려고 전학 온 거거든요.”
“자신의 적성을 찾는 과정이 고급반이에요. 스나이퍼 모드라고 해도 결국 사방식의 변환. 응용 기술은 기본을 충실히 닦은 후에 접해도 결코 늦지 않을 거예요.”
“우웅, 그럼 개인적으로라도 어떻게 안 될까요? 에텔라 선생님에게 배웠다고 하면 친구들한테 자랑도 할 수 있거든요.”
수도권의 학생들은 어떤 스승에게 배웠는지도 주요한 자랑거리인 모양이었다.
바슈카의 풍토가 그렇다면 나설 일은 아니지만 어쨌거나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교칙으로는 담당 과제가 아닌 이상 가르칠 수 없었다.
“선생님도 그러고 싶지만 형평성의 문제가 있어요. 정말로 스나이퍼 모드를 배우고 싶다면 하루빨리 실력을 향상시켜 졸업반으로 들어가세요.”
훈련장 입구에서 낭랑한 목소리가 들렸다.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너무 정석만 고집하는 것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입니다.”
올리비아가 걸어왔다. 그녀의 뒤로 고급반의 모든 교사들이 시종처럼 따라붙었다.
에텔라와 더불어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3대 기둥이라 불리는 사드와 시이나도 보였다.
에텔라와 눈을 마주친 두 사람이 이게 말이 되냐는 듯 어깨를 치켜들었다.
올리비아의 시선 밖에 있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장 선생님.”
에텔라가 수도사의 예의를 갖추어 인사했다. 올리비아는 목례로 인사를 받고 학생들을 돌아보았다.
“입구에서 지켜보니 한 학생이 응용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던데, 학생의 열정이 배움에 있다면 교사로서 충분히 가르쳐 줄 수 있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교칙에 의하면…….”
“아아, 그건 알고 있어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교칙도 변하는 법이에요. 왕국에서 이름을 날린 조너를 교사로 데리고 있으면서 주구장창 기본만 가르치게 하다니. 이 또한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에텔라가 대단한 조너이기에 알페아스는 일부러 고급반에서 아이들에게 기본기를 가르쳐 달라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생각이 달랐다. 기본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으로 학교를 끌어올리려면 눈에 보이는 성과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이 아이들의 개성은 저마다 달라요. 애초부터 그걸 클래스라는 이름으로 통합시키려는 건 허사예요. 발전할 여지가 보인다면 적극적으로 밀어주어야 합니다.”
논쟁에서 빠지는 법이 없는 사드나 시이나지만 지금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공인 2급의 대마법사란 그런 위치였다.
마법사의 등급을 분류하는 기준은 범세계적으로 통합되어 있다. 그것을 라인이라고 부르는데, 모든 마법사를 관리하는 거대한 인력망 네트워크 시스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