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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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네가 잠입한 셰하킴과 가올드 일행이 있는 라키아를 제외한 모든 하늘에서는 포연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통합 반군 사령부는 천국의 군대를 뚫고 조금씩 아라보트로 진격하고 있었고, 거리가 줄어들수록 희생자의 숫자는 늘어났다.
거대 타이탄이 천국의 벽을 허물면 구로이 부대가 진격하여 눈에 보이는 모든 것에 탄환을 퍼부어 댔다.
일화의 술 7단계 이상의 거인들이 달려들어 타이탄을 쓰러뜨렸고, 요정들은 갖가지 마법으로 구로이를 파괴했다.
희생자가 가장 많은 쪽은 단연 보병이었다.
오직 파이퍼와 마법에만 의존하는 그들은 병력 비율로도 가장 높은 수치였지만 그에 못지않게 사망할 확률도 높았다.
“진격! 진격하라! 절대로 물러서지 마!”
동료의 죽음에 분노한 그들의 기세는 쉬이 꺾이지 않았다.
카냐와 레나도 물러설 곳이 없는 사람처럼 오직 전진만을 반복할 뿐이었다.
수만 명이 죽었다. 그 죽음이, 머리로도 계산되지 않는 횟수의 소멸이 모두를 미치게 만들었다.
광기는 전의가 되어 적들에게 토해졌고, 적들의 시체는 다시금 반군에게 전의되어 더욱더 강력한 분노를 촉진시키는 것이었다.
대천사, 천사들의 마라들이 등장할 때마다 그곳에 주둔하고 있던 부대가 궤멸했다.
백병전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바벨 정도였으나 그녀가 돌아다니는 데에도 한계가 있었고, 급기야는 반군 병력의 절반이 사망하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다.
“진격! 진격하라!”
모든 병사들이 한목소리를 내어 전진했다.
과연 정말로 싸우고 싶은 것인지, 이대로 나아가면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인지, 이미 그런 생각조차 휘발되어 버린 채 그저 기계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이었다.
그것은 실로 기계적이었지만, 넓은 의미에서는 지극히 생물적인 현상이었다.
마치 개미처럼 각자의 개성은 휘발되고 하나의 목적을 상정한 통합적 정신 체계를 느끼면서 그들 모두가 하나의 유기체가 되어 가고 있는 과정이었다.
“진격! 진격하라!”
천국의 군대는 처음으로 전율을 느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대체 무엇이 저들을 뭉치게 만드는 것인가?
객관적인 수치로만 봤을 때는 결코 밀리지 않아야 할 저지선이 조금씩 후퇴하고 있었다.
‘강하다. 저들은 강해.’
천국을 지휘하는 자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들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레나나 카냐, 크루드가 아니었다.
완벽하게 통합된 유기체, 인간과 싸우고 있었다.
인人의 태동 (3)
왼쪽 위팔뼈가 골절된 플루는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만약 이 상황에서 도킨스 알고리즘이 발동된다면 부러진 팔은 마음대로 흔들릴 것이고, 통증은 고스란히 전투력의 손실로 치닫게 될 것이다.
모두가 가올드처럼 극기를 가질 수는 없다.
“크윽!”
라운이 다가올 때마다 거리를 벌려야 하는 플루의 자존심은 상할 대로 상했다.
특히나 그의 눈매에 비치는 탁한 욕망의 감정이 그녀를 더욱 불쾌하게 만들었다.
“후후, 역시 내 생각대로야.”
라운은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칭! 칭!
또다시 파이퍼의 척추 부근에서 전기가 발생해 두 주먹에 모였다.
그녀가 어떤 수작을 부리든 두 번의 일렉트릭 쇼크웨이브를 피할 수는 없을 터였다.
“여태까지 누구에게도 굽실거린 적이 없겠지. 패배하느니 차라리 부러지겠다, 그런 각오로 수없이 자신을 단련하고 정신을 연마했을 거야.”
플루는 대답 없이 라운을 노려보았다.
도킨스 알고리즘이 봉인당한 이상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었다.
“그런 호승심이 지금의 널 만들었다는 것도 알아. 하지만 알고 있나, 세상에는 차원이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을? 나는 영생을 얻었고, 앞으로도 영원히 지금의 삶을 영유하겠지.”
파이퍼의 통역 장치에서 들리는 기계음이 플루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의 턱을 으스러뜨릴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요지는, 그런 여자는 싫지 않다는 거야.”
라운이 움켜쥔 두 주먹을 좌우로 벌렸다.
“선택권을 주지. 내 여자가 돼라. 너를 버릴 거라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네가 늙어 죽을 때까지 아껴 주지. 물론 내 식대로 말이야.”
거칠 것 없이 다가오는 라운의 걸음걸이에 플루는 다친 팔을 부여잡고 물러섰다.
하지만 눈빛은 전과 달리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영생을 얻은 자에게 후회나 회한은 존재할 수가 없다.
그들은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어떤 실수도 만회할 수 있는 영원한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제 알겠어.”
플루는 윗입술을 들어 송곳니를 드러냈다.
“너는 영생을 사는 인간이 아니야.”
“흥, 필멸자의 질투심은…….”
“이미 죽었어.”
라운은 말을 멈추고 눈꺼풀을 내렸다.
“너는 이미 죽은 인간이야. 너에게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결핍되어 있어.”
“결핍? 내가? 대체 무엇이 부족하다는 거지?”
“마음.”
플루는 오른팔로 피닉스를 휘돌리며 전투 자세를 취했다.
“너에게는 마음이 없어. 아무것도 던질 것이 없기에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지. 나무토막 같은 육체에 흐르는 약간의 자극만이 전부인 거잖아?”
파지직!
라운의 두 주먹에서 전기가 피어올랐다.
비로소 깨달았다, 필멸자의 광기는 받아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죽여 주마. 진짜 죽음이 뭔지 가르쳐 주지.”
라운은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튀어 나갔다.
‘도킨스 알고리즘.’
플루는 부상을 무릅쓰고 다시 스피릿 존을 펼쳤다.
라운의 공격은 전보다 훨씬 난폭했고 집요했으나, 플루의 동작 또한 이제는 거칠 것이 없었다.
부러진 팔이 마음대로 휘둘려도, 설령 척추가 부러진다고 해도 그녀는 상관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의 삶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모든 걸 걸고 싸울 수 있다.
기계와 동화된 라운의 공격은 여전히 절묘했으나 플루는 생명을 걸고 돌진했다.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라운의 얼굴은 굳어져 갔다.
아무리 공격을 해도 플루의 기세는 더욱 거대해졌고 급기야는 생명이 위험할 지경까지 치달았다.
각오의 높이. 그 임계치를 넘어선 순간 라운은 비로소 깨달았다.
자신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 이……!”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감정이 라운의 가슴에 사무쳤다.
공포. 그리고 패배감.
어느 하나도 그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다.
“으아아아아!”
두 주먹에 맺힌 전기를 모조리 바닥으로 토해 내자 강력한 전력이 사방으로 퍼졌다.
플루는 상관없다는 듯 몸을 날렸고, 열에 약한 신민의 옷이 와글와글 타들어 가면서 맨살이 드러났다.
‘아, 진짜……! 또야?’
플루는 이를 악물었다.
1도 화상에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랐으나 그보다 심한 건 근육을 뒤흔드는 전류였다.
‘크으으윽!’
육체가 말을 듣지 않는 상황에서도 오직 정신력만으로 마법을 시전하여 라운에게 접근한 그녀는 마침내 피닉스를 휘둘렀다.
‘봉황격!’
키오오오오!
용암처럼 이글거리는 불사조가 튀어 나가자 라운은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두 팔을 들었다.
머릿속이 창백해지면서,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어마어마한 불길이 치솟자 라운의 눈이 똥그랗게 커졌다.
고통보다 두려운 것은 죽음.
무려 1천 년을 살았고 앞으로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생이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자신의 삶이 이 순간에 끝나고 만다는 공포는 세상의 어떤 것보다도 무시무시했다.
“아, 안 돼에에에에에!”
라운은 절규했다.
그가 내지르는 비명은 인간이 낼 수 있는 가장 처참한 단말마였다.
플루는 일말의 동정의 여지도 없다는 듯 차분하게 내려앉은 눈으로 라운을 바라보았다.
타고 있다.
살이 타들어 가고, 남은 건 금속성의 파이퍼 뼈대뿐이었다.
결국은 다른 물질로 변해 다른 생명에게 흡수되는 것.
그것이 생명이었다.
투둑. 툭.
검게 타들어 간 라운의 시체를 바라보던 플루는 몸을 돌렸다.
하지만 라운에게 당한 상처는 치명적이었고, 결국 헐벗은 몸으로 건물을 나서자마자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영생자는 강하지만 그에 준하는 약점이 있었다. 그리고 시로네라면 그 약점을 제대로 간파하고 있을 터였다.
‘할 수 없지. 도와주러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플루는 화상을 입은 허벅다리를 내려다보며 아랫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전투 중의 일이니 어쩔 수 없다지만, 선배로서 체면이 이만저만 상한 게 아니었다.
***
“히이이익!”
데이나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연신 물러섰다.
목덜미를 노리고 날아드는 촉수의 칼날이 선명하게 보이는 만큼이나 그녀의 심장은 쪼그라들고 있었다.
죽는다.
영원한 미래가 보장되어 있던 그녀의 삶이 이곳에서 허무하게 끝나고 마는 것이다.
시로네는 더 이상 위축되지 않았다.
제아무리 화신술의 달인일지라도 그들은 사망으로 잃어야 할 것이 필멸자보다 무한대로 많이 있었다.
그렇기에 돌진할 수 있다.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포톤 캐논에 무르카와 데이나는 오직 후퇴만을 되풀이했다.
죽음의 공포는 더욱 강하게 그들을 덮쳤고, 급기야는 케르고 최고의 전사였던 무르카의 입에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으아아아아!”
시로네는 여세를 몰아 아카마이를 발동시켰다.
안티테제가 느껴지자 무르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타락천사마저 구속시킨 힘을 신적초월로 이겨 냈던 강인한 모습은 이미 사라진 상태였다.
화신이란 그 인간의 온전한 모든 것이기에 이미 꺾여 버린 정신으로는 안티테제의 구속력을 풀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사, 살려 줘! 제발!”
무르카는 고개조차 돌리지 못한 채 아무도 없는 허공을 향해 소리쳤다.
겁에 질린 눈동자가 물컹한 액체처럼 풀어지고 검은자와 흰자가 뒤섞인 듯 초점이 사라졌다.
시로네는 머뭇거리지 않고 뛰어들어 촉수를 휘둘렀고, 날카로운 쇠가 그의 목을 베고 지나갔다.
“살려……!”
텅. 텅텅텅.
목이 떨어지면서 바닥을 굴러 데이나의 앞에까지 도달했다.
“히익!”
죽음을 보았다.
데이나는 더 이상 싸울 의지를 잃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르망은 무르카의 몸을 섭식하여 시로네의 체력을 회복하고 있었다.
완전히 빨려 들어간다.
생물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데이나에게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 뇌리를 강타했다.
아주 오래전, 그녀도 먹고 먹히는 삶의 나선에 서 있던 적이 있었다.
다만 이번에는 포식자가 아닌 섭취당하는 입장에 놓이게 되었을 뿐이다.
“살려 주세요…….”
시로네가 다가오자 데이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정했다.
그러다가 시로네의 차가운 눈빛을 보고는 황급히 무릎을 꿇으며 두 손을 싹싹 빌었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할게요. 바닥에 기라면 기고, 다리 사이로 지나가라면 지나갈게요.”
시로네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다만 그의 감정을 따라 4개의 촉수가 높게 하늘로 치솟을 뿐이었다.
영생을 얻었다는 이유로 얼마나 많은 필멸자들을 재미 삼아 죽였을까?
그에 대한 분노였고, 멈출 생각은 없었다.
“죽고 싶지 않아요. 살려 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천 년을 산 데이나는 마치 이제 갓 태어난 아이처럼 손바닥을 비비며 울었다.
죽음은 어느 생물에게나 똑같은 충격으로 다가오겠지만, 그 생의 사슬에서 벗어난 자이기에 생에 대한 욕망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클 터였다.
시로네의 촉수가 허공으로 치솟더니 갈고리처럼 데이나를 덮쳤다.
“꺄아아아악!”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들리고, 촉수의 칼날이 그녀의 좌우 바닥에 2개씩 박혔다.
“그렇게 자신의 목숨이 소중한 걸 알면서…….”
시로네는 입술을 짓깨물고 말했다.
“어째서 다른 사람의 목숨은 함부로 대하는 거지?”
“어엉, 어어어엉.”
데이나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꺾여 버린 그녀의 의지는 화신에 적용되었다.
죽음을 이겨 내고 도달한 시로네와 달리 단지 영생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깨달아 가면서 얻은 화신술이기에 유리처럼 위태로운 자아였다.
“잘못했어요. 살려 주세요, 주인님. 평생 주인님만 따를게요.”
화신이 파괴되면서 자존감마저 붕괴되었다.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비굴한 경지까지 추락한 것이다.
시로네는 그제야 촉수를 거두고 말했다.
“일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