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05
“입 다물어.”
미로는 답답했다.
정말로 모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렇기에 가올드는 지금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이 멍청아, 그 아이는 너를…….”
가올드의 눈에 전기가 튀더니 턱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입을 크게 벌리고 고함을 질렀다.
“닥쳐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
일행의 걸음이 멈췄다.
혼란스럽게 눈동자를 굴리던 가올드는 미로를 거칠게 바닥에 던져두고 돌아섰다.
“빌어먹을!”
나무둥치를 주먹으로 후려치자 팍 하고 껍질이 튀면서 어마어마한 통증이 밀려들었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강난. 강난이 붙잡혔다.
무엇보다 그를 괴롭게 만드는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그녀가 살아 있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었다.
일행에게 강난은 이번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시킬 짧은 인연에 불과했지만 가올드는 달랐다.
처음으로 곁에 없게 된 순간 깨달은 것은, 언제나 강난은 자신의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늑대 일족의 전사다. 신념에 따라 행동한 거야. 그녀가 선택했고, 우린 그걸 존중해야 돼.”
“헛소리하지 마.”
미로는 쓰러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가올드의 멱살을 쥐었다.
“정신 차려! 지금이라면 구할 수 있어! 이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가올드를 제외한 일행의 심정은 미로와 같았다.
구할 수 있다면 구해야 한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했다.
20년 동안 지옥 속에서 살아왔던 가올드이기에, 그의 고통을 10분의 1이라도 나누지 못하는 이상 가올드의 판단이 최우선이었다.
세인은 처음으로 친구를 위해 거짓말을 했다.
“이곳에 오면서 결의했던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프로젝트가 우선이라는 점이다. 미로, 너를 구하기 위해서 우리 모두 죽음을 불사했어. 이제 와 그 규율을 깨라고 한들, 쉽지 않은 일이야.”
미로는 세인을 노려보고는 다시 가올드에게 고개를 돌렸다.
“네 생각도 그래? 이게 정말로 네가 원하는 일이야? 날 갖고 싶어서, 그 아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게 너의 선택이야?”
가올드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마치 세상에 갓 태어난 아이처럼 어디로도 사고가 뻗어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 모습을 한심하게 쳐다보던 미로가 가올드의 턱을 돌려세우고 소리쳤다.
“날 봐! 내 눈을 보라고!”
가올드의 시선이 천천히 그녀에게로 움직였다.
무언가가 통째로 빠져나가 버린 듯한 감정이 동공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게 두려워? 20년 동안 해낸 일이 물거품이 될까 봐, 그 아이를 버리겠다는 거냐고!”
“나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로는 가올드의 목을 끌어당기며 입을 맞추었다.
충격에 흔들리는 눈으로 가올드는 반사적으로 미로의 몸을 떠밀었다.
“뭐 하는 거야! 지금 장난할 상황으로 보여?”
미로는 포기하지 않고 다시 다가가 가올드의 손목을 붙잡더니 자신의 가슴에 가져다 댔다.
“그냥 여기서 해 버려. 날 가지라고! 그런 다음에 그녀를 구하러 가란 말이야, 이 바보야!”
가올드는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모두 자신을 바보로 만들고 있었다.
“너 지금 날……!”
그때, 하늘에서 여러 목소리가 혼효되는 아름다운 음성이 퍼졌다.
천사들이 단체로 퍼트리는 가스펠이라는 능력이었다.
-미로를 데리고 있는 인간에게 고한다. 우리는 너희의 일족을 붙잡고 있다. 내일 정오까지 미로를 데려오지 않으면 죽일 것이다. 빠를수록 그녀가 당할 고통이 줄어든다는 것을 명심하라. 마지막으로 전달한다. 우리는…….
가스펠은 같은 말을 반복하고 소멸했다.
거대한 소리였지만 메아리조차 없는 깔끔한 마무리였다.
비틀거리며 바위에 주저앉은 가올드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생각에 잠겼다.
내일 정오.
‘시간이 촉박하다.’
타락천사들은 금기를 깬 자들이고 그들이 거느리는 마라는 흉폭하기 그지없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난이 무슨 짓을 당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으득. 으드득.
손톱을 순식간에 뜯어 먹은 가올드의 이빨은 살점을 넘어 엄지의 뼈를 갉아 내기 시작했다.
으득. 으드득.
기본 통각 1천 배의 인간이 행하는 괴기스러운 자해에, 어느 누구도 말을 건네지 못하고 있었다.
직지直指 (1)
플루는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시로네의 앞에 섰다.
요정 72계급 중에서 2계급에 해당하는 미르카의 자태는 천사와는 또 다른 미적 위력을 내뿜고 있었다.
천사의 아름다움이 거대하고 경건하다면 미르카의 아름다움은 아기자기한 동화 같은 색채에서 나온다.
물론 플루에게 그런 사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헐벗었고 화상의 고통은 실시간으로 신경을 타고 뇌를 할퀴고 있지만, 프로 마법사의 정신력은 여지없이 스피릿 존을 만들어 냈다.
“쳇, 이럴 줄 알았어. 어쩐지 불안하더라니.”
플루의 시선이 미르카의 옆을 보좌하고 있는 페오페에게 향했다.
양심의 가책이라도 느끼는 것일까?
페오페는 시종 고개를 숙이고 있었으나 플루에게는 그것이 더욱 화가 났다.
경외의 요정 미르카가 근엄한 얼굴로 다가왔다.
“하찮은 인간의 무리가 천국을 어지럽히고 수많은 신민들을 괴롭히다니. 지금이라도 오라를 받고 사죄를 구해라. 그리고 깔끔하게 세상을 떠나라.”
“페오페.”
미르카를 무시하고 시로네가 이름을 부르자 어깨를 움찔한 페오페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커다란 눈망울에 깊은 공포가 담겨 있었다.
시로네가 받을 상처를 두려워하는 감정 앞에서, 시로네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페오페를 의심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의심조차 머리에서 지워 버렸을 뿐.
왜냐하면 그녀는…….
‘나를 위해 죽으려고 했으니까.’
시로네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제불에서 그녀가 자신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던진 장면이 남아 있었다.
‘아니, 그런 게 아니야.’
시로네는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마음속 한편에서는 이것을 바랐던 게 아닌가 하고.
천국과의 전투는 피할 수 없는 일이고 결국 두 사람은 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으로 각자에게 던졌던 마음은 회수되었다.
“페오페.”
페오페는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그저 두려운 감정으로, 혹은 일말의 기대감을 담아 시로네의 말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금강무장의 기능 중 하나인 마력 증폭이 일어나면서 시로네의 로브가 무섭게 펄럭거렸다.
“널 죽일 거야.”
마치 스스로의 진심을 확고하게 뿌리내리게 하듯 시로네가 말하자, 차가운 살기가 요정들의 정신에 침투했다.
시로네의 살기에 오한을 느낀 것은 페오페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 또한 이내 차가워졌고, 그렇게 서로의 마음이 닫혔다.
“할 수 있으면 해봐. 예전의 내가 아니야.”
확실히 페오페는 강해졌다.
시로네가 처음 천국에 왔을 당시만 해도 그녀는 요정 중의 막내였으나 현재는 72계급 중에서도 중진에 해당하는 직위였다.
초고속 신분 상승을 할 수 있었던 이유에는 시로네와의 관계가 주요하게 작용했다.
샤마인에서 시작된 폭동이 가속화되면서 내정부는 페오페를 중용했고, 높은 정신 단계의 요정들에게 다양한 정신을 사사하면서 급격히 실력을 키우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내정부를 외면할 수 없다.
시로네가 천국에 다시 왔을 때 누구보다 가슴이 뛰었던 그녀지만 결국 택한 것은 자신을 받아 준 천국의 요정들이었다.
“시로네를 체포하라.”
미르카가 손을 내밀자 뒤편에서 수십 명의 요정이 날아왔다.
시로네와 플루는 뒤로 물러서며 주위의 상황을 살폈다.
최대한 빨리 아라보트로 가는 게 상책이지만 주위에 포진해 있는 요정들의 실력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눈빛을 교환하지 않아도 플루의 기운이 전해져 왔다.
이곳을 벗어날 타이밍과 그 타이밍을 예측할 어떤 계기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잠깐만요!”
그때 시로네에게 화신이 꺾여 제정신이 아닌 데이나가 미르카에게 무릎을 꿇었다.
“저는 위대한 영생자입니다. 부디 저를 살려 주세요! 저들이 나를 죽이려고 했어요!”
미르카는 한심한 듯 데이나를 쳐다보았다.
앙케 라가 인간을 경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적극적으로 죽음을 도모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죽음을 도모하기 시작할 때 인간은 인간 이상의 것을 발휘하게 된다.
하지만 데이나는 영생을 얻은 후로 인간의 가장 큰 강점을 잃어버렸다.
물론 모든 영생자가 그녀처럼 나약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1만 년 이상의 나이를 지닌 십로회의 인물들은 생사의 굴레마저 벗어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어리석은 것. 너 따위 생물에게 무슨 위대함이 있단 말이냐? 라의 은총을 능멸한 죄로 너 또한 사형이다.”
사형.
데이나에게 있어서는 결코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 뇌리에 침투하자 또다시 그녀의 화신이 비명을 질렀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천 년 동안 해 본 적이 없기에 느껴지는 공포감은 반쯤 미쳐 버린 그녀의 정신을 완벽하게 파괴시켰다.
“싫어어어어어어!”
데이나는 사력을 다해 마력을 끌어 올렸다.
미친 자의 마력은 정신과 공명하여 끝없이 치솟았지만 이성이 없기에 목적성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주위를 아우르는 강력한 대기의 흐름이 감지되었다.
“싫어! 너희가 죽어!”
데이나가 두 손을 내밀며 고대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그녀의 목이 우드득 돌아갔다.
나선의 요정 페오페가 강력한 나선의 힘으로 그녀의 목을 빠르게 회전시켜 완전히 몸에서 뜯어내 버린 것이다.
데이나의 충격에 잠긴 얼굴이 허공을 치솟는 순간 시로네와 플루는 동시에 깨달았다.
‘지금이다!’
두 사람의 몸이 빛으로 변해 허공으로 치솟자 미르카가 소리쳤다.
“쫓아라! 셰하킴에서 잡아야 한다!”
아라보트는 앙케 라가 거주하는 천국 최고의 신성 지대.
요정들의 입장에서 인간이 침투한다는 것은 내정부 역사상 이례적인 수치였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임에도 요정들의 움직임에는 거리낌이 없었다.
수십 마리의 요정이 시로네를 쫓아 따라붙는 것과 동시에 셰하킴의 사방에서 새 떼처럼 요정들이 날아올랐다.
이로써 내정부의 핵심 인사들이 셰하킴을 주시하고 있었음이 확실시되었다.
“페오페…….”
그 사건의 주요 인물이 페오페라는 건 두말할 여지가 없었다.
이미 정체는 발각되었고 요정들이 모조리 뒤를 쫓는 상황에서 남은 선택지는 최단거리로 아라보트에 침투하는 것뿐이었다.
“시로네, 먼저 가!”
부상을 당한 플루는 시로네의 비행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이라도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녀는 비행을 멈추고 돌아섰다.
수많은 요정들이 그녀를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도킨스 알고리즘을 가동한 그녀는 요정들의 마법을 피해 가며 화염의 불꽃을 피웠다.
수직으로 날아오른 시로네는 멀리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플루를 발견하고 사방에 포톤 캐논을 띄웠다.
하지만 그에게도 족히 100에 달하는 숫자의 요정들이 날아들고 있었다.
천사의 능력처럼 이치를 몇 단계나 응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고유의 정이 담긴 요정들의 마법은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아르망의 신체 강화 능력으로도 모든 공격을 회피하기란 무리였고, 링거의 스킨이 발동하면서 로브가 묵직한 초강성의 금속으로 변해 갔다.
“흐읍!”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시로네는 인공두뇌 외를 통해 광익을 펼쳤다.
빛의 날개가 펑 하고 공기를 후려치자 그의 몸이 순식간에 수십 미터를 뻗어 나갔다.
공중은 각양각색의 마법으로 무지갯빛으로 번쩍거렸고, 요정들은 집합과 이산을 반복하며 치밀하게 시로네를 한곳으로 몰아갔다.
얼마나 멀리 날아왔는지, 현재 이곳이 어디인지도 모른 채 시로네는 사력을 다해 요정들의 공격을 방어했다.
그 순간 플루가 있던 곳에서 펑 하는 소리가 터지더니 그녀의 몸이 지상으로 추락하는 게 보였다.
“선배님!”
시로네가 튀어 나가려는 순간 오른팔 쪽의 소매가 빠르게 회전하더니 팔을 부러뜨릴 듯 꼬여 갔다.
“크으으윽!”
로브가 찢어질 정도로 조여들자 링거의 스킨이 발동하면서 초강성의 금속으로 변했다.
회전이 멈춘 뒤에야 시로네는 전방을 바라보았다.
매섭게 눈을 치켜뜬 페오페가 자신을 향해 능력을 발동하고 있었다.
“이이이익!”
페오페는 사력을 다해 나선의 힘을 불어 넣었다.
확실히 엄청나게 강해진 마력이었으나 그럼에도 링거의 스킨은 꿈쩍하지 않았다.
‘플루 선배님.’
이미 플루는 허공의 풍경에서 사라져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그녀가 목숨을 건졌기를 바랄 뿐이었다.
“페오페!”
시로네는 이를 악물고 아르망의 촉수를 뻗어 냈다.
2개의 촉수가 등장과 동시에 나선의 힘에 말려 폭발했으나 켄서의 절대 수복 능력은 빠르게 새로운 촉수를 만들어 냈다.
채찍처럼 휘어지는 잔상이 날아들자 결국 버티지 못한 페오페가 물러섰다.
동시에 플루를 추락시킨 요정들이 모조리 달려들어 시로네를 덮치기 시작했다.
플루의 원수.
시로네의 가슴에서 불길이 치솟았으나 마법사의 냉철한 이성은 순식간에 불씨를 죽였다.
하지만 그것이 분노마저 망각했다는 뜻은 아니었다.
“잡아! 죽여도 좋다!”
요정들이 시로네를 완전히 둘러싼 채로 마법을 시전하는 순간 시로네의 눈이 번쩍 뜨였다.
‘산탄 무브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