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21
무명은 무엇이든 빨아들이는 구멍처럼 쿠안의 30년 검술을 그대로 끌어들였고, 더 높은 경지로 승화시켰다.
그 경지가 검술에 그대로 묻어나는 공격 앞에서 쿠안은 고작해야 방어에 급급했다.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는 거야!’
이를 악물고 필사적으로 버텨 보지만 무명의 검술은 더욱 집요하게 발상의 한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우리가 도와야겠어!”
아르민과 시이나가 무명에게 마법을 시전하려는 순간, 쿠안이 갖은 머리를 쥐어짜 내 얻은 찰나의 여유로 소리쳤다.
“안 돼! 도망쳐!”
직접 싸워 본 자만이 무명의 무서움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미 아르민과 시이나는 행동을 시작한 뒤였다.
아르민이 플리커 마법을 시전하여 무명의 시선을 교란시키고 시이나가 아이스 스피어 일곱 자루를 동시에 쏘았다.
덕분에 쿠안은 죽음의 벼랑 끝에서 탈출할 수 있었으나, 그 대가는 몇 배나 크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얼음의 창을 피해 거리를 벌린 무명은 곧바로 마법사들의 기술에 관심을 드러냈다.
“저건 뭐지?”
인간의 상상을 까마득히 초월한 고도의 향상심이 무명의 뇌리를 강타했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 하고 싶다!’
그 거대한 욕망은 무명의 모든 기능을 한계치 이상으로 끌어올렸고, 곧바로 스피릿 존이 열렸다.
무명의 스피릿 존을 공감각으로 느낀 아르민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단순히 정신의 집중점을 찾아낸 것이 아니다.
‘이모탈 펑션을 열어 버렸어.’
플리커 마법을 시전한 무명이 아르민의 뒤로 돌아가 검을 휘둘렀다.
스피릿 존과 스키마를 동시에 구사하는 그의 능력 앞에서 아르민은 털끝이 곤두서는 기분으로 허리를 젖혔다.
일 검이 빗나가자 무명은 곧바로 마법을 시전하여 시이나를 향해 아이스 스피어를 쏘아 댔다.
그제야 아르민은 쿠안이 손조차 쓰지 못하고 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제길! 어떻게 이런 생물이!’
반칙이다.
어떤 천재라도 공인 5급의 마법사가 구사하는 빙결의 마법을 한순간에 카피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감정적인 울분에 불과할 뿐, 사실은 아르민도 알고 있었다.
이 세상에 반칙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이미 그렇게 태어나 버렸다면, 어떤 기괴함을 담고 있든 그저 그것이 현실일 뿐이다.
‘플리커 마법을 터득한 이상 도망칠 수도 없다.’
생천 처음 겪는 생물체 앞에서 아르민의 냉철한 두뇌는 판단의 기준을 잡지 못했다.
유일한 가능성은 당장 전력을 총동원하여 무명을 제거하는 것.
하지만 무명의 성장 속도가 자신의 예상을 상회한다면 오히려 먹히는 건 그들이었다.
그럼에도 전자를 선택해야 마땅할 것이나, 높은 확률로 시이나의 위험이 담보되는 상황이라면 판단은 달라진다.
‘시이나를 살려야 돼.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녀만큼은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야 돼.’
그것이 평생을 사모했던 여동생에게 목숨을 걸고서 줄 수 있는 유일한 선물.
아르민은 무명의 카오스적인 무브먼트 앞에서 손조차 쓰지 못하고 있는 시이나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더, 더 재밌는 거 없어?”
무명이 광기의 눈을 치켜뜨며 달려드는 순간 아르민은 자신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미안합니다, 쿠안.’
무명의 검이 엑스 자로 그어지는 것과 동시에 아르민은 시이나와 자신의 주변에 스톱 마법의 장벽을 둘러쳤다.
“흐읍!”
무명은 스톱에 걸리기 직전 급하게 검을 멈추었다.
보통의 관성으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무명의 알 수 없는 깨달음으로만 가능한 동작이었다.
‘뭐지, 이건?’
무명의 스피릿 존은 스톱 마법의 이상성을 즉시 분석해 뇌로 전달했다.
조금만 더 전진했어도 꼼짝없이 시간이 멈춘 곳에서 묶이고 말았을 터였다.
시이나를 끌어안은 아르민은 긴장한 표정으로 장벽 너머의 무명을 바라보았다.
역장의 내부를 비웠기 때문에 두 사람은 시간선에서 자유롭고, 무명에게서 조금의 빈틈이라도 보이면 바로 시이나를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다.
‘만약 스톱까지 섭렵한다면…….’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어쩌면 차라리 이 자리에서 죽었어야 했을까?
하지만 오직 시이나가 전부인 아르민에게는 처음부터 택할 필요조차 없는 선택지였다.
“흐음, 그렇다 이거지?”
무명은 스톱의 역장을 잠시 음미하더니 눈을 부릅뜨고 마법을 시전했다.
아르민과 시이나가 긴장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가운데 무명의 고개가 살며시 옆으로 기울어졌다.
“어라? 안 되네?”
미친 듯이 뛰고 있던 아르민의 심장이 안도의 한숨 속에서 잠시나마 안정을 되찾았다.
***
“이, 이것으로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라께서는 너의 존재를 결코 용납지…… 크윽!”
펑 소리를 내며 또 1명의 평천사가 사탄의 손에 목이 붙들린 채로 폭발했다.
사탄의 개념을 장착한 프랭크와인은 숨바꼭질을 하듯 숨어 있는 천사들을 하나하나 찾아내어 처리했고, 그들의 숫자가 줄어들수록 율법의 시소는 빠르게 기울어 갔다.
“싱겁군. 평천사 가지고는 기별도 안 가.”
말 그대로 율법 너머에 있는 율법.
천사들이 제아무리 대단한 개념으로 무장했어도 사탄에게만큼은 어떠한 영향도 미칠 수가 없는 것이다.
쿵! 쿵!
두 번의 울림이 제불의 천장을 뚫고 프랭크와인이 있는 복도에 내리꽂혔다.
“호오? 이번에는 제법?”
거물의 등장에 프랭크와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결합과 분해의 대천사, 각각 강력과 약력의 원천 개념을 지닌 메티엘과 사티엘이 도착했다.
“율법의 반대편에 숨어 있던 하찮은 쥐새끼가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날뛰는구나.”
메티엘이 차가운 시선을 쏘며 걸어갔다.
굽어보기를 이용해 메타트론이 소멸한 사실을 깨달은 두 대천사는 곧바로 제불로 날아왔다.
율법의 시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라면 그녀들 또한 피해 있는 편이 가장 좋은 일이나 현재 제불에서는 모든 평천사들이 라의 명에 따라 은신해 있는 상태.
평천사들의 숫자가 여기에서 더 줄어들게 되면 대천사들이 전부 모여도 승부를 장담할 수 없기에 최대한 빨리 결착을 내기를 선택한 것이었다.
“진실로 그렇게 생각하는가, 대천사여? 두려워하는 건 내가 아니라 율법의 라가 아니던가?”
“개념조차 불분명한 잡종 따위가 고상한 척 말하지 말라. 심히 기분이 불쾌하니라.”
메티엘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리자 옆에 나란히 서 있던 사티엘도 질세라 광륜을 펼쳤다.
메타트론의 중력강은 원천 개념의 순수한 발현.
따라서 강력하지만, 율법에 무적인 사탄에게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메티엘과 사티엘은 다르다.
두 대천사가 합치면 이 세상의 모든 입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만큼 2차적 응용의 여지가 충분했다.
“크크크, 예쁜이들의 애교를 보는 것도 재밌지.”
사탄의 도발에 메티엘과 사티엘이 동시에 날아들었다.
강력과 약력의 힘이 결합되면서 사물이 물감처럼 녹아내리더니 제불의 풍경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어떤 것으로 변했다.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은 기괴한 물질들이 기상천외한 특성으로 발현되고, 지성으로는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기괴한 현상들이 사탄의 주위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광인이 그린 추상화 같은 풍경 속에서, 2명의 대천사는 사탄에게 어마무시한 공격을 퍼부었다.
방사선이 뿜어져 나와 사탄의 세포를 괴롭히고, 닿기만 해도 초고열을 내는 대기가 사탄의 전신을 지져 댔다.
“크으으으으!”
시간을 왜곡하는 입자로 사탄의 손과 발을 구속하고 공간을 일그러뜨리는 금속으로 육체를 찰흙처럼 짓이겼다.
“이것으로 끝내자.”
메티엘의 말에 사티엘이 고개를 끄덕이며 돌진했다.
평소에는 앙숙과도 같은 두 천사지만 전투에서만큼은 천국을 통틀어 이토록 궁합이 잘 맞는 파트너는 없을 터였다.
그날의 오후 (4)
“크하하하하하!”
붕괴된 형태로 찌그러져 눈․코․입과 손발이 한데 엉켜 버린 사탄의 덩어리에서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강력한 충격파가 대기를 물결치게 만들며 퍼지더니 순식간에 사탄의 육체가 원상태로 되돌아왔다.
“이런……!”
사탄의 거대한 두 손아귀가 천사들의 목을 움켜쥐었다.
당장이라도 목이 부러질 것 같은 위력에, 흡사하게 아름다운 두 천사의 얼굴이 똑같이 일그러졌다.
‘이렇게까지 기울었단 말인가?’
천사의 신체 내구력은 어떤 생물이라도 함부로 파괴할 수 있을 만큼 약한 게 아니다.
또한 그녀들이 구사한 율법의 2차적 응용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평천사를 소멸시키고 대천사 메타트론까지 지워 버린 사탄의 율법은 메티엘과 사티엘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해져 있었다.
아카식 레코드가 우주의 전부라면, 사탄의 율법은 그것과 대칭되는 또 하나의 전부.
즉 율법의 시소가 어느 정도 밸런스를 맞춘 상태라면, 개념을 떠나서 물리적 충격조차도 온전히 전달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대천사 두 마리라.”
사탄은 괴로워하는 2명의 대천사를 번갈아 바라보고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끝나려나?”
목이 졸린 메티엘과 사티엘의 성광체가 폭발할 듯이 흔들리는 순간 사탄의 등 뒤에서 누군가가 달려와 일격을 날렸다.
움찔한 사탄의 몸에서 급격히 힘이 빠져나가며 메티엘과 사티엘이 빠져나왔다.
하지만 이미 꺾여 버린 천사들 따위는 사탄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누가……?”
충격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사탄의 율법을 잠시나마 무력화시킬 정도의 무언가가 느껴졌었다.
뒤를 돌아본 사탄은 비로소 이유를 깨달았다.
완벽한 선의 율법을 지닌 자, 카르시스 수도회의 비숍 에텔라가 불타는 눈으로 사탄을 노려보고 있었다.
***
‘조금만 더 가면…….’
플루의 시야에 아라보트의 성벽이 얼핏 스쳤다.
하지만 그것은 마치 이상향처럼 금세 자취를 감추었고, 그 자리를 거인들이 가득 채웠다.
“흑! 흐으윽!”
서러운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프로 마법사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천국에 왔으나 그녀가 무언가를 하기에는 너무나 벅차고 힘든 곳이었다.
마테이의 거인 근위병들은 그녀의 마법으로는 간에 기별조차 보낼 수 없을 만큼 거대했다.
이런 곳에서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달리는 이유는, 여기에서 멈춰 버리면 앞으로 영원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한평생 지켜 온 마법사의 자존감마저 무너질 것 같아서.
‘아직, 아직 더 싸울 수 있어!’
쿵! 쿵! 쿵! 쿵!
거인들이 발밑을 달리는 플루를 발견하고 연거푸 발을 내리찍었다.
땅바닥을 뒹구는 플루는 마치 벌레가 되어 버린 듯 비참한 심정에 입술을 짓깨물었다.
하늘에서 웅장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래서 인간은 짜증 나. 약한 데다 작기까지 하거든.”
악착같이 피해 다니는 플루의 모습에 짜증이 난 거인이 온 힘을 다해 대검을 내리찍었다.
콰아아아아앙!
플루의 입장에서는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집채만 한 파편들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충격파가 플루의 몸을 수십 미터나 밀어냈다.
종유석처럼 융기한 땅에 등이 처박힌 플루가 찰나 동안 집중력을 잃은 사이 사람의 머리통만 한 바위가 날아와 어깨를 강타했다.
“아아아아악!”
몸을 타고 전해지는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에 플루는 모든 것이 끝났음을 직감했다.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쓰러졌지만 오른쪽 어깨가 완전히 박살이 난 탓에 구를 수조차 없었다.
거인의 손바닥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본 플루는 전기에 감전된 듯 몸을 떨었다.
어린아이가 개미를 괴롭히는 수백 가지의 방법을 떠올릴 수 있는 것처럼, 어떤 식으로 거인에게 죽음을 당할지 감조차 오지 않았다.
“플루!”
목소리가 들리는 곳을 돌아볼 겨를도 없이 누군가가 달려와 플루의 몸을 끌어안고 몸을 날렸다.
“아아아아아악!”
아픈 어깨를 붙잡고 비명을 지른 플루는 자신을 구한 남자의 얼굴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어떻게 여기에?”
전장 한복판에서 반군들을 지휘하고 있어야 할 크루드가 어째서 단신으로 이곳에 와 있단 말인가?
게다가 타이탄도, 구로이도 아닌 고작 메카 1단계 무기인 파이퍼만을 장착한 상태로.
“왜 온 거예요? 반군은요?”
“전쟁은 끝났어. 우리는 패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설령 패했다고 하더라도 사령관이라면 마지막까지 싸워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플루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아라보트에 신의 징벌이 꽂힌다고 통보한 그녀에게 크루드를 지적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원망하고 있겠지.’
크루드가 마지막까지 반군들에게 사실을 말하지 못한 것은 알고 있다.
자신이 알 바가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는 플루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가 아닐 터였다.
그렇기에 크루드는 왔다.
‘차라리 잘됐어. 내 죽음으로 기분이 풀린다면…….’
“하지만.”
아라보트의 높은 성벽 위를 어림잡아 계측한 크루드가 말을 이었다.
“이렇게 된 이상 천국이 멸망하는 꼴이라도 봐야 직성이 풀리지 않겠나?”
예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말에 플루가 말문이 막힌 사이 크루드는 그녀를 들고 성벽을 향해 달렸다.
파이퍼의 기능을 십분 살려 지그재그로 몸을 날리자 거인들이 발바닥으로 땅을 내리찍으며 벌레 사냥을 시작했다.
거인의 발이 떨어질 때마다 땅이 고무판처럼 흔들렸고 굉음만으로 고막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나라면 할 수 있어.’
현세의 감정이 아닌 것 같은 아득한 공포 속에서도 크루드는 필사적으로 이성을 부여잡았다.
파이퍼를 장착한 상태에서 구로이에 탑승한 다음, 거대 장비인 타이탄을 밀리미터 오차까지 정밀 조작했던 실력자가 바로 그였다.
거인의 힘에 비빌 수는 없더라도 천재 파일럿이라 불렸던 장비에 대한 이해도는 영생자에 비할 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