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478
들여다보려 하지 않을 뿐이다.
“바람에 구르는 낙엽에도, 거리 밖으로 치워진 쓰레기 더미에도 모두 존재한 시간만큼의 이야기가 담겨 있지. 인간도 마찬가지야. 네가 살아온 세월이 너에게 거대하듯, 세상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시간 속에서 거대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살아가고 있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모르지. 들여다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야.”
“……그렇군요.”
미로의 말이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앞으로 너는 세상의 모든 부분을 들여다보아야 해. 물처럼 유연한 사고만이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 매일 이곳에서 자연을 바라보아라.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머리를 식혀라. 아마 지루하지는 않을 거야.”
‘해 보자. 하루의 힘을 믿자.’
73일 후에 변화되어 있을 자신의 화신을 상상하며 시로네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 * *
카르미스 본가의 수련장에서는 하루도 쉬지 않고 폭음성이 터졌다.
1천 평의 대수련장은 주로 혈족 회의에 참석한 병력을 대기시킬 때만 개방하는 장소였으나 현재 이곳에는 오직 에이미만이 남아 사투에 가까운 수련을 하고 있었다.
‘이걸로는 안 돼!’
길이 2킬로미터에 달하는 스나이퍼 모드의 스피릿 존이 나침반처럼 방위를 바꾸며 회전하고 있었다.
마법사가 중심에 오는 십자형과 달리 스나이퍼 모드는 일자형의 끝에 마법사가 서 있기에 회전의 강도는 정신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가시거리 바깥에서 날아다니는 타깃들이 폭발음을 전해 왔으나 고작해야 6할의 확률이었다.
‘이게 무슨 스나이퍼야!’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타깃을 맞추려면 공간 좌표에 시간의 좌표를 더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해진 패턴을 가진 타깃으로도 6할의 확률이라면, 자유의지를 가진 생물체를 2킬로미터 밖에서 저격하기란 거의 불가능.
‘내 장기를 극대화시킨다!’
에이미는 포기하지 않았다.
관건은 스나이퍼 모드의 회전속도와 파이어 스트라이크가 타깃에 도달하는 시간을 단축시키는 것.
‘일도一道!’
바늘처럼 첨예하게 가늘어진 집중의 중심에 다시 한 번 집중을 찔러 넣자 정신력이 제곱의 위력으로 강화되었다.
“흐으으으!”
2킬로미터의 일자선이 크게 한 바퀴를 휘돌았다.
그 과정에서 잡힌 타깃의 개수는 32개.
타깃의 패턴을 전부 예측하여 사방으로 파이어 스트라이크를 시전하자 잠시 후 열여섯 번의 폭음성이 밀려들었다.
5할의 정확도라는 전보다 떨어진 확률 앞에서, 에이미는 스피릿 존을 거두고 무릎을 꿇었다.
“하아! 하아!”
정신력의 한계치에 도달한 탓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속에서는 불이 끓어올랐다.
팔방미인 따위는 없다.
스나이퍼 모드로 해내지 못하면 졸업해 봤자 그저 그런 마법사로 남을 뿐이었다.
“한 번의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 두 번의 실패는 가문의 수치.”
가훈을 되새기며 몸을 일으킨 에이미의 눈동자가 붉게 타올랐다.
조금 전의 실패가 홍안의 자기상 기억에 정확히 백업되어 있었다.
카르미스 가문에 스승이 없는 이유였다.
* * *
D-69일.
수도 메르코다인의 대저택에서 지하로 300미터 들어간 곳에는 맵 병기로 분류되는 고대 병기 및 그에 준하는 도시 파괴급 마법에 대비한 벙커가 설치되어 있다.
100명 이상이 3년간 생존할 물품이 저장되어 있는 이곳에 당돌하게 기폭 마법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가주의 아들 이루키였다.
‘지금이다!’
자신의 방에 앉아 눈을 감고 있던 이루키가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동공에서 전기가 튀었다.
동시에 지하에 있는 벙커의 중앙에서 무언가 일어날 듯 공기가 꾸물거렸다.
“기폭!”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으나 기대하던 지진은 일어나지 않았고, 이루키는 힘없이 침대에 주저앉았다.
“막상 해 보니까 쉽지 않군.”
현재 그가 시도하는 마법은 아직 이름조차 지어지지 않은 필살기, 2개의 스피릿 존을 가지고 있는 그였기에 가능한 핵융합 기폭 마법이었다.
“오늘도 여기에 있는 거냐?”
가주 알비노가 문을 열고 들어왔으나 이루키는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생각에만 심취해 있었다.
“그래, 조상의 숨결이 어린 메르코다인 저택을 폭파시키는 계획은 잘되고 있냐?”
“아직은 성과가 없어요. 그래서 짜증이 나려고 하네요.”
“…….”
잠시 아들을 쳐다보던 알비노가 피식 웃었다.
“오버드라이브는 너무 많이 하지 마라. 뇌의 내구력은 네 머리 회로의 속도를 감당하지 못해. 수명이 줄어들 거다.”
“상관없어요. 이걸 성공시키기만 한다면.”
“내 말이 그거야. 딱 보니까 성공하기 전에 네 수명이 먼저 다 될 것 같은데. 그건 좀 멍청한 거 같아서.”
이루키가 벌떡 일어났다.
“왜 왔어요? 안 바빠요?”
알비노는 씩 웃었다.
“아무리 바빠도 아들 만날 시간은 있지.”
“저는 아빠 만날 시간 없어요. 나가세요. 이론부터 다시 정립해야 하니까.”
손을 휘저은 이루키는 벌써 수백 번이나 지웠다가 다시 쓴 흔적이 남은 칠판으로 걸어갔다.
분필로 미친 듯이 수식을 적어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알비노가 말했다.
“인간의 뇌는 너무나 잘 만들어진 기관이지.”
분필의 움직임이 멈췄다.
“네? 뭐라고요?”
“얼마나 잘 만들어졌냐 하면, 회로가 너무 뛰어나서 직접 경험한 것과 상상한 것을 구별하지 못해. 네가 밥을 먹든, 밥을 먹는 상상을 하든, 뇌의 전기적 패턴은 똑같이 나온다는 얘기야.”
이루키는 그제야 돌아섰다.
“재밌는 현상이지? 하지만 이건 과학이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지. 성공하려면 성공한 순간을 상상해라. 그러면 뇌가 알아서 거기에 맞춰질 테니까.”
이루키의 눈이 빠르게 깜박거렸다.
“뭐…… 그냥 그렇다는 얘기야.”
알비노가 손을 들어 주고 방을 나서자 이루키는 칠판 쪽으로 몸을 틀었다.
그리고 미친 듯이 수식들을 지우기 시작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오늘부터 다시 시작이야.’
* * *
D-65일.
시로네의 머릿속에 미친 듯이 숫자가 질주했다.
‘안 돼! 너무 커!’
생각을 읽는 게 아니라 생각 자체를 빠르게 질주시키는 것이 관건이지만 그것도 1천억을 돌파하자 뇌에 경련이 일어나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해. 아직 시간은 많아.”
미로의 말이 마음에 와 닿지 않았다.
벌써 며칠이 지났건만 고작 1천억이었다.
이런 식으로 조를 넘어 경의 단위에 들어간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크윽!”
1,200억쯤에서 시로네의 정신이 튕겼다.
‘벌써 8시간째 숫자만 세고 있잖아…….’
미로가 위로했다.
“그래도 어제보다 많이 갔어. 다시 해 보자.”
“오늘은 안 되겠어요. 머리가 터질 것 같고…….”
“해.”
이럴 때면 미로의 목소리는 여지없이 차가워졌다.
“아직 멀었어. 하루는 24시간이고, 아직 15시간밖에 안 지났어. 4시간 휴식을 빼면 11시간이지.”
산전수전 다 겪은 시로네지만 실시간으로 자신의 한계를 깨 나가는 것은 감당이 안 되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저에게도 피로도라는 게 있잖아요.”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시로네의 눈에 힘이 들어갔으나 미로는 여전히 냉랭했다.
“착각하지 마라, 시로네. 네가 강해지기 위해서 하는 수련이야. 누구도 너에게 강해지라고 강요하지 않아. 포기하고 싶다면 지금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가 버리면 되잖아?”
“돌아갈 생각 없어요.”
“그렇다면 해. 그게 현실이야. 불합리하니? 이렇게까지 힘들게 살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내가 이유를 말해 줄까?”
미로가 단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누군가는 그걸 하고 있기 때문이야.”
시로네의 눈에서 독기가 사라졌다.
“네가 견디고 싶어 하지 않은 것을 지금도 누군가는 견디고 있어. 그것이 경쟁이야. 나도 그랬고 가올드도 그랬어. 세인, 줄루, 플루, 모두가 그 고통을 견디고 올라온 자들이야.”
시로네는 이를 까득 깨물었다.
“너보다 위에 있는 자들이 무언가를 우연히 얻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 모두 너만큼은 고통스러웠어. 그러니 한계니 어쩌니 하는 어리광은 부리지 마. 하기 싫으면 그냥 관둬.”
눈빛이 다시 살아난 시로네는 뱃속의 울분을 모조리 입 밖으로 토해냈다.
“푸우우우우!”
죽을 만큼 힘들지만 포기하고 싶지도 않기에, 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버티자! 조금만 더 버티자!’
그렇게 또 하나의 하루가 쌓여 가고 있었다.
하루의 힘 (2)
* * *
D-63일.
경쟁의 칼바람은 졸업반 모두에게 불어닥쳤고, 도로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늘 흐리멍덩한 표정으로 다니는 터라 4차원 소녀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지만 깡통 인형을 분해하고 있는 큼지막한 안경 안에 비친 눈빛은 전에 없이 또렷했다.
그녀가 손보고 있는 깡통 인형의 이름은 히커리.
조작계 조너인 그녀에게는 생명만큼이나 소중한 물건이었고 그녀가 구사하는 마법의 핵심이기도 했다.
‘알고리즘을 진화시켜야 돼.’
전반기 졸업 일정을 마치고 클래스 투의 상위권에 오르기는 했지만 여전히 클래스 원의 문턱은 높았다.
클래스 스리의 신입생 중 몇 명이 이미 클래스 원으로 진급한 상황을 생각하면 밤에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스피릿 존을 통해 연결되어 있는 히커리가 철컹철컹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알고리즘을 다룬다는 것은 결과 이전의 과정을 통제하는 것이기에, 굳이 전투적인 실험을 하지 않아도 작동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었다.
어디를 봐도 고물처럼 생긴 히커리가 묵직한 몸체를 허공에 띄우더니 동그란 눈에 불을 켰다.
‘도로시 알고리즘 적용. 버전 4.3.’
요란한 사이렌 소리를 내며 히커리의 목이 빠르게 회전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진동과 함께 땅바닥에 추락했다.
목이 부러진 히커리를 지켜보던 도로시의 표정이 다시 아무 생각 없는 듯 무미건조하게 변했다.
“…….”
다시 일으켜 세울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로 짜증이 난 그녀는 침대로 들어가 얼굴 위로 이불을 덮었다.
묘한 신음 소리가 이불 밖으로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D- 61일.
“더! 더 빨리! 너무 느려!”
“으아아아!”
스크리머가 혼신의 힘을 다해 연타를 퍼붓자 두꺼운 철심이 들어 있는 샌드백이 묵직하게 흔들렸다.
모래를 담은 가죽에는 동그라미로 타격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고, 연타의 순서를 나타내는 숫자가 새겨져 있었다.
“고작 그거냐! 이래 가지고 어떻게 챔피언이 될 거야!”
코치를 자청한 스크리머의 아버지 파이로커가 아들의 귀에 대고 고함을 내질렀다.
토르미아 왕국 중장보병대의 요직을 맡고 있는 파이로커는 콜로세움 프로 라이선스까지 취득한 격투기광으로, 23전 21승 2패의 전적을 가진 실력자였다.
하지만 왕국에서 주최한 이벤트 매치에서 마법사에게 패한 쇼크로 잠시 격투기계를 떠나 있는 상태이며, 당시의 경기를 한심하게 지켜본 스크리머가 마법학교에 입학하겠다고 한 일화는 가문 내에서 유명했다.
“제길!”
파이로커가 만든 철권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스크리머의 얼굴에는 고통의 흔적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찰나의 시간에 담아야 하는 7회의 연타가 수천 사이클을 돌아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으아아아!”
연타의 충격음이 경쾌하게 터졌으나 파이로커는 오히려 성질을 냈다.
“정확도가 떨어졌잖아! 더 정확하게, 더 빠르게, 더 강하게!”
팔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상황에서 무리한 요구였다.
“멈추지 마! 때려! 일단 걸리면 누구라도 쓰러질 정도의 연타를 본능에 장착하는 거다!”
같은 동작을 끝없이 반복하자 몸의 특정 부위가 찢어지는 듯 아팠다.
‘여기서 어떻게 더 빠르게 치라는 거야!’
고통의 한계를 넘어 짜증이 치솟을 지경임에도 파이로커는 흔들림이 없었다.
“괴롭냐? 그런데 어떡하지? 나는 하나도 안 괴로운데?”
‘진짜 한판 붙어 버릴까!’
“내가 엄청난 사실을 말해 줄까? 너의 고통 따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사람들은 네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관심조차 없다고. 결과를 내지 못하는 격투가는 그냥 샌드백이야!”
“으아아아아!”
이성을 잃은 스크리머가 강하게 정권을 내지르며 훈련을 멈췄으나 묵직한 샌드백은 미동조차 없었다.
“허억! 허억!”
숨이 차오르다 못해 역류할 지경이었다.
“누가 쉬라고 했지? 빨리 쳐!”
“……1분만. 1분만 쉴게요.”
표정이 풀어진 파이로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강해지고 싶지? 내가 강해지는 방법을 알려 줄까?”
스크리머가 쳐다보자 아버지의 얼굴이 다시 악귀로 변했다.
“그딴 건 없어, 멍청아! 방법을 기웃거린다는 것 자체가 핑계를 대고 있는 거다! 왜인지 알아? 강해지는 방법은 세 살짜리 애도 알 만큼 쉬우니까! 쳐! 강해진다! 쳐! 더 강해진다!”
‘팔이 안 움직여…….’
1분의 휴식이 오히려 근육에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못 하겠냐? 그럼 깔끔하게 인정해! 챔피언이 지나갈 때 옆에서 박수나 쳐 주고 있으란 말이야!”
“이런 빌어먹을!”
속이 부글거린 스크리머는 샌드백을 밀어내며 거리를 벌리더니 곧바로 달려들어 연타를 퍼부었다.
“똑바로 안 해! 정확도! 정확도!”
D-59일.
개울가가 보이는 바위에 가부좌를 튼 시로네의 몰골은 며칠 사이에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
먹은 건 미로가 만든 풀죽뿐이고 얻은 영양분은 뇌에서 모조리 소비해 버리는 바람에 안 그래도 가벼운 몸이 3킬로그램이나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