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554
모두가 끔찍한 사고를 직감한 그때, 시로네의 시간기가 수천 개의 회오리를 일으키며 풍경을 일그러뜨렸다.
‘시불상폭매!’
화염과 대낫, 빙결의 숨결과 낙뢰가 뒤섞인 아수라장을 한 줄기의 섬광이 유유히 빠져나왔다.
“흐으윽!”
동시에 각국의 분석관들이 머리를 부여잡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무슨 일이야?”
엘리자베스가 미간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이천번 시스템의 시간이 오작동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시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어요. 오차율은 대략 플러스마이너스 1.14초입니다!”
“그게 어떤 의미지?”
“시간을 역행하고 있다고요!”
바이칼은 그제야 시로네를 살펴보았다.
별다른 위화감은 없지만 시스템에 오류가 쌓이자 크리처의 움직임이 끊어지는 사태가 발생하고 있었다.
“화신술……?”
최고 경지의 반야들만이 구사할 수 있는 능력이 졸업 시험의 콜로세움에서 펼쳐지고 있는 것이었다.
“레이나 아가씨, 이런 질문은 좀 이상하지만…….”
마신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는 시로네를 멍하니 바라보며 빈센트가 물었다.
“저기에 있는 학생이 정말로 제 아들 맞습니까?”
레이나 또한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시로네가 맞아요, 아버님.”
빈센트의 어깨를 짚은 리안이 상기된 얼굴로 시로네를 돌아보며 말했다.
“제 검에 대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지금이다! 모두 공격해!”
시로네에게 또다시 기선을 빼앗긴 참가자들이 뒤늦게 전투에 뛰어들었다.
‘뉴클리어 퓨전!’
장시간의 계산을 끝낸 이루키가 필살의 마법을 발동하자 콜로세움 중앙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52,437킬로버스터! 폭발력이 50메가버스터를 넘었습니다!”
졸업 시험에서는 처음 나오는 수치였다.
짓밟힌 자존심을 만회라도 하듯 각자의 장기가 폭발하듯 드러나고, 스카우트들은 평가와 분석, 기록을 동시에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조금만 더 버티면 돼!’
콜로세움에서 발생하는 데이터의 총량은 졸업 시험을 위해 특별히 만든 이천번 시스템의 성능을 위협할 수준이었으나 그럼에도 마신을 전멸시킬 수는 없었다.
-극기 생존 10단계에 돌입합니다.
“결국 보게 되는 건가?”
레드 라인 역사를 통틀어 손에 꼽히는 사건에 스카우트들이 감격하는 그때, 경고등이 깜박거렸다.
-이천번 메인 시스템 접근 허용. 제1급 보안 프로그램을 가동합니다. 프로그램 드래곤, 화룡 인페르커스 소환.
비상 안내 음성을 들은 관객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드래곤이라고?”
같은 1티어라도 중급에 속하는 리치하고는 차원이 다른 최상급 크리처였다.
키에에에에에에!
찢어질 듯한 괴성이 먼저 터지고, 콜로세움 중앙에 머리가 천장을 뚫을 듯한 화룡 인페르커스가 등장했다.
“저게 도대체 뭐야?”
필사의 각오로 시험에 임하는 참가자들마저 드래곤의 포악한 자태에 겁을 먹었다.
크르르르…….
앙다문 이빨 사이로 화르륵 화염을 뿜어낸 인페르커스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자 불의 구름이 천장을 뒤덮었다!
“용언이다.”
드래곤은 언어가 아닌 2진수로 세상을 인지하고 심지어는 지배한다.
최첨단 이천번 시스템조차 드래곤의 뇌에 비하면 고철에 불과했고, 그 강력한 연산에서 창출되는 마법은 인간의 어떤 것과도 궤를 달리했다.
크아아아앙!
지상을 향해 토해 낸 화염의 형태는 마치 내다 꽂아 버리는 듯했고, 전달되는 열만으로 정신적 대미지가 들어왔다.
“크으윽!”
물리계인 현실이었다면 이미 몸이 타 버렸을 터였다.
“피해!”
“어디로 피해?”
유일한 안전지대는 콜로세움 바깥이었고, 이는 곧 시험 탈락을 뜻했다.
‘이건 못 이겨! 대체 어쩌라는 거야?’
심지어 마지막 단계이기에 제한 시간조차도 없는 상황이었다.
‘완전 변태 아냐!’
대지를 용암으로 만들어 버리는 브레스를 피하면서, 참가자들은 얼굴 모르는 시험 출제자를 저주했다.
마치 ‘너희 따위가 감히 내가 만든 문제를 풀겠다고?’라고 말하는 듯했다.
“카린터 씨가 변태인 건 사실이지.”
바이칼은 극기 생존 평가를 설계한 책임자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엄연히 레드 라인의 승인을 받은 프로그램이다. 반드시 사각은 있어.”
사각은 있으나, 너무나 좁았다.
크아아아! 크아아아!
인페르커스가 브레스를 뿜어낼 때마다 참가자들은 피하는 데에 급급했다.
“제길! 하늘로 올라가! 흩어지자!”
참가자들을 쫓아 고개를 치켜든 인페르커스가 관객석을 향해 굉음의 백색소음을 토해 냈다.
“으아아악! 뭐야!”
드래곤의 브레스를 정면으로 마주한 관객들이 체면조차 잊고 물러섰으나, 화염은 장막이 쳐진 듯 관객석 앞에서 소멸했다.
“해치워! 안 그러면 전부 탈락이야!”
시간을 끌수록 불리해진다는 생각에 참가자 전원이 공격 마법을 시전했으나 인페르커스는 기별조차 안 오는 듯 정해진 패턴을 따라 계속해서 화염을 토하고 있을 뿐이었다.
“파라미터 분석해 봐. 인페르커스의 마력 수치가 3억 6천만 매지클이었던가?”
엘리자베스가 100분율 파라미터를 열었다.
“현재 98.7퍼센트입니다.”
30명에 가까운 마법사의 공격을 맞고도 고작 1.3퍼센트가 깎인 수치였다.
“아, 98.8퍼센트로 올라갔습니다.”
참가자와 마찬가지로 크리처도 마력을 회복한다.
“현재 수치를 토대로 예상 클리어 시간 197시간 44분 15초입니다.”
“……내년에나 끝나겠군.”
“인페르커스에게 설정된 마력 회복량은 분당 14퍼센트에 달해요.”
무상심의 시로네보다 빠른 속도였다.
“순간적으로 마력 수치를 압도하는 화력을 내지 못하면 결국 설계자가 승리할 겁니다.”
“학생들 이겨서 뭐하겠다고.”
짜증이 난 바이칼이 인상을 찡그렸다.
“평가관님! 저기!”
그때 라라가 콜로세움을 가리켰다.
시로네가 레이저를 사출시켜 인페르커스의 육체에 대미지를 누적시키고 있었다.
여전히 브레스는 무섭게 공간을 휩쓸었지만 시불상폭매를 발동한 시로네를 태울 수는 없었다.
“지금이다! 전부 공격해!”
레이저의 기능을 이미 알고 있는 참가자들이 저마다 필살의 마법을 시전하기 시작했다.
“파라미터.”
엘리자베스가 즉각 답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88.7퍼센트. 86.4퍼센트.”
참가자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여기서 끝을 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67.6퍼센트. 64.2퍼센트. 예상 클리어 시간이 24분 43초까지 줄었습니다.”
“엄청나군. 하지만 그때까지 이 화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아무래도 힘들겠죠. 실제로 레이저의 대미지가 전체 대미지의 40퍼센트에 달하고 있어요.”
“크아아아아!”
인페르커스가 처음으로 고통의 포효를 터뜨렸다.
“그래, 시로네.”
후드의 여자가 다리를 꼬면서 옆 좌석에 팔을 걸치자 중년의 남자가 불쾌한 듯 흘끔거렸다.
“밀어 버려, 세상 따위.”
시로네의 레이저가 소멸하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시로네! 뭐 하는 거야!”
화력이 약간만 떨어져도 인페르커스의 정신력은 금세 회복되어 버릴 터였다.
‘이대로는 안 돼!’
사력을 다해 쥐어짜 낸 것은 시불상폭매를 결합한 4차원 아타락시아였다.
“52퍼센트! 53퍼센트! 계속 회복됩니다!”
한마음으로 응원하던 관객들이 안타까운 탄성을 터뜨렸고, 중년 남성도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화를 냈다.
“에이! 저, 저런! 빨리 공격해야지!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면 어떡해?”
오색찬란한 빛을 방출하는 구체의 마법진을 내려다보며 후드의 여자가 중얼거렸다.
“아타락시아.”
중년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
“지금, 나에게 한 말이오?”
여자는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아주 오래전, 천사의 존재는 인간에게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지. 너무나 위대하고 강력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굴종뿐.”
‘뭐지? 미친 사람인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모습에 중년 남성은 외면하듯 고개를 돌렸다.
“사실 천사가 싸워야 했던 대상은 인간보다 먼저 이 행성을 지배하고 있던 드래곤이었어.”
“…….”
하지만 묘하게도 끌리는 이야기였다.
“그때부터 인간의 신은 둘로 나뉜다. 저 먼 우주의 신은 종교가 되고, 이곳의 신은 인간을 지배하는 왕의 이름이 되어 내려오고 있지.”
“당신 도대체 무슨 소리를…….”
중년 남성이 참지 못하고 묻는 그때 후드의 여자가 고개를 홱 틀며 물었다.
“신들의 전쟁을 지켜본 인간이 천사의 마법을 뭐라고 불렀는지 아십니까?”
“그, 글쎄요. 나는 잘…….”
알 수 없는 박력에 말을 더듬자 여자가 살며시 입꼬리를 올리며 전장으로 고개를 돌렸다.
“멸룡 마법.”
포톤 캐논.
4차원 아타락시아를 통과한 섬광이 콜로세움의 외곽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숫자로 분산되어 인페르커스에게 집중되었다.
크아아아아앙!
“다시 떨어집니다! 44퍼센트! 38퍼센트! 27퍼센트!”
엄청난 속도로 응집되는 별들의 질주를 지켜보는 관객들은 태곳적부터 유전자에 각인되어 있는 어떤 신성함을 느꼈다.
‘여기가 끝이다!’
시로네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페르커스를 노려보며 팔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었다.
소멸 마법, 퀘이사.
반야의 마법 (2)
거대한 빛에 휩싸인 인페르커스를 중심으로 끝없이 섬광이 밀려들었다.
크아아아아!
최강의 생물체였기에, 드래곤이 절규하는 모습은 오히려 알 수 없는 공포를 느끼게 했다.
“14퍼센트! 11퍼센트!”
분석관들이 외치는 소리에 관객들도 눈꺼풀조차 깜박이지 않고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정말로 가능하단 말인가?’
역사는 물론 신화 속에서도 손에 꼽는 사건이 눈앞에서 재현되고 있었다.
크르르르!
그때 인페르커스가 막대한 질량의 폭풍 속에서 사악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마력이 회복되고 있습니다! 13퍼센트! 15퍼센트!”
“괴짜 영감 같으니라고. 마력 집중까지 설정해 놓으면 어쩌라는 거야?”
현실감에 목을 맨다는 것은 애초부터 클리어를 상정하고 설계한 프로그램이 아니라는 증거였다.
“17퍼센트! 19퍼센트! 계속 올라갑니다!”
인페르커스의 고개가 점점 지상을 향해 구부러지자 참가자들이 질린 표정으로 마법을 장착했다.
“제길! 버티고 있어! 화력을 집중해!”
모두가 드래곤에게 정신이 팔려 있는 가운데 유일하게 시로네만이 몸을 돌려 구석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니.”
후드의 여자가 말했다.
“저건 못 버텨.”
키에에에에!
마력을 집중시켜 퀘이사를 벗어나려던 인페르커스의 등이 척추가 휠 정도로 젖혀졌다.
“응축된다. 임계점을 넘어섰군.”
바이칼의 말대로 퀘이사의 크기가 줄어들면서 오히려 충격량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9퍼센트! 7퍼센트!”
그 시점에서 드래곤의 육체가 뒤틀렸다.
“4퍼센트! 2퍼센트! 1퍼센……!”
고조되는 엘리자베스의 목소리가 뚝 하고 끊어지고 눈동자가 충격에 흔들렸다.
크아아아아!
3억 6천만 매지클의 드래곤이 점으로 소멸하는 퀘이사를 따라 빨려 들고 있었다.
키에에에…….
괴성이 과거의 기억처럼 아련하게 멀어지고, 콜로세움의 모두가 넋을 잃은 표정으로 움직이지 못했다.
“진짜로 해치웠어. 드래곤을…….”
-극기 생존 평가를 종료합니다. 최종 생존자 28명. 잠시 후 2차 평가가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