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662
‘미쳐 버릴 것 같았거든.’
그런 이미르에게 리안의 주먹은 고통조차도 쾌감이었다.
“간다아아아아!”
심타가 발동될 여지도 없이 서로를 두드리는 괴물들의 공방전에 문경이 치를 떨었다.
‘빌어먹을! 끼어들 수조차 없다니.’
심지어 하찮은 고블린조차 이미르의 행동을 제어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했다.
“더! 더 퍼부어 봐!”
한껏 신이 나서 내지른 이미르의 주먹이 갑자기 사라지더니 자신의 얼굴을 강타했다.
“…….”
충격은 가히 어마어마했으나 그의 육체 또한 생물의 한계를 초월한 내구력이었다.
“이런 같잖은…….”
이미르의 시선이 돌아간 곳에 에테르 파동을 전개하는 성음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통하지 않아. 어떻게 돼먹은 육체인가?’
리안의 명치를 후려친 이미르가 성음에게 몸을 돌려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래서 먼저 처리해야 한다니까.”
이런 식의 전투는 재미가 없었다.
“시로네, 내가 이미르의 발을 묶을 테니 공격해라. 우리 둘이 힘을 합치면 승산이 있어.”
대답 대신 털썩 무릎을 꿇는 소리가 들렸다.
“흐으으으!”
성음이 돌아보자 시로네가 이를 악문 채로 두 손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왜 그래? 공격에 당한 것도…….”
성음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폭발한다.’
시로네의 얼굴이 창백함을 넘어 투명하게 빛나는 순간, 1만 9천 세계의 입구가 동시에 진동하기 시작했다.
‘온다. 너무나 거대한…….’
통찰.
공겁의 수레바퀴가 끝나 가고 있었다.
두 개의 시선 (2)
***
창문을 열었을 때 겨울의 한파에 따스한 봄바람이 묻어 있자 에이미는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이제 꽃이 피겠구나.’
공인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불철주야 수련에 매진한 그녀였으나 오늘만큼은 마음이 설렜다.
‘간만에 도시에 나가 볼까?’
딱히 누군가에게 보여 주겠다는 생각도 없이 예쁜 옷을 고르고 거울 앞에서 화장을 했다.
“흐음…….”
빼어나게 예쁜 얼굴을 바라보던 그녀가 볼을 부풀리며 귀여운 동작을 취하는데 문이 열렸다.
“에이미, 아침 먹어야지.”
평소에 볼 수 없던 깜찍한 딸의 모습에 에이미의 어머니 이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뭐 하니?”
“……아니, 그게…….”
언제 그랬냐는 듯 자세를 고친 에이미가 화장을 마저 이어 가며 말했다.
“아침은 밖에서 먹을 거야. 잠깐 바람 좀 쐬고 오려고.”
졸업 시험이 끝난 뒤에도 에이미의 열정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으나, 어디까지나 마법에 한해서였다.
“그러지 말고 밖에서 남자라도 좀 만나렴. 너 요즘 계속 멍할 때가 많아. 지금은 이상한 짓도 하고.”
“이상한 짓이라니. 그게 딸에게 할 소리야?”
“걱정이 돼서 그러지.”
에이미를 빤히 살피던 이시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엄마 친구에게 아들이 있는데, 너를 좀 소개시켜 달라고 하던데……. 마음에 드는 눈치더라.”
에이미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터뜨렸다.
“무슨 소리야, 엄마답지 않게? 예전에는 알아서 칼같이 잘라 주더니.”
“그거야 네가 학생 때고, 지금은…….”
“나 만나는 사람 있는 거 알잖아. 나중에 얼굴 어떻게 보려고 그런 소리를 해?”
그래서 문제였다.
“하지만 시로네는 연락도 없는 데다…… 게다가 너무…….”
시로네와 정식으로 사귄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백방으로 수소문해서 상아탑에 대해 알아본 이시스였다.
‘위험하다던데. 가정은 포기하는 게 좋다고.’
왕국 최고의 마법사와 연을 맺은 이시스에 대한 질투 어린 조언이었지만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집에 안 들어오면 백 가지 권력이 무슨 소용이람.’
이시스의 걱정 어린 눈빛을 견디지 못한 에이미가 손으로 허리를 짚으며 화를 냈다.
“도대체 무슨 생각 하는 거야? 나 아직 공인 시험도 못 치렀고 취직도 못 했거든!”
에이미의 말대로 이제 갓 스무 살이지만, 보통 인연으로 끝날 것 같지가 않은 게 문제였다.
‘저러다 정말 시집도 못 가는 거 아냐?’
이시스가 한숨을 내쉬며 방을 나섰다.
“아무튼 조심히 다녀오렴. 기분 전환도 좀 하고.”
“하여튼 걱정은…….”
콧김을 내뿜으며 어머니를 배웅한 에이미는 다시 거울 앞에서 눈 화장을 시작했다.
‘시로네.’
퍼뜩 복잡한 생각이 들려고 했으나 황급히 고개를 저어 상념을 지워 버렸다.
“잘하고 있겠지?”
천하의 아리안 시로네가 아니던가.
***
미궁 안드레-제9999번 세계.
영생 프로젝트, 유토피아의 전성기에서 시로네는 아르고에게 두 가지의 선택지를 받았다.
‘공겁과 무한.’
공겁을 선택하면 영원히 살 수 있고, 무한을 선택하면 이 순간 그는 소멸하고 말 터였다.
-영생을 사는 게 좋아요.
아르고가 제안했다.
-영원히 존재하는 것의 이점은 너무나 많아요. 반면에 인간은 매번 정보의 단절을 겪죠. 공포는 심각합니다. 이 방법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어요.
죽음을 앞에 두고 영생을 제안하는 상황에서 거절할 인간이 얼마나 될까?
시로네는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르고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주가 아무리 거대하다고 해도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마음보다 클 수 있을까?”
-글쎄요. 분석해 볼까요?
“나는 영생을 선택하지 않을 거야.”
에이미가 없기 때문이다.
“영원히 사는 것의 가치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찰나의 순간보다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아르고의 드론이 부르르 떨리더니 에이미의 홀로그램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감정의 집중도가 굉장하군요.
에이미의 홀로그램은 끝없이 커져 갔고 마침내 센터의 천장까지 치솟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로네는 두 팔을 벌리고 눈물을 흘렸다.
“우주가 아무리 크다고 해도…….”
이모탈 펑션의 정신이 무한의 영역으로 퍼지면서 육체가 창백한 섬광을 뿜어냈다.
***
“간다아아아아!”
리안과 이미르의 초인적인 전투는 이제 마지막 종착지를 앞두고 있었다.
철벽처럼 단단했던 육체는 그만큼 단단한 주먹에 의해 마침내 균열을 일으키고.
“크하하하! 좋아! 더! 더 거칠게 들어와 봐!”
이미르의 권격이 질풍을 일으키면서 안드레의 벽을 거침없이 무너뜨렸다.
쿠르르르르릉!
“위험해!”
동굴의 천장이 무너지면서 시로네가 웅크리고 있는 자리에 커다란 바위가 떨어졌다.
“이런……!”
에테르 파동으로 공간을 왜곡시켜 낙뢰를 밀어냈으나 미봉책일 뿐이었다.
“빨리 일어나라! 위험하단 말이야!”
“흐으으으……!”
시로네는 성음의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온다! 계속 오고 있어……!’
어떤 개념인지도 모른 채 머릿속이 특유의 깨달음으로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무릇 통찰은 무지에서 지성에 도달하는 다리를 놓아 주는 역할이지만, 지금은 1만 9천 개의 통찰이었다.
어느 방향으로 뻗어도 하나의 진리에 도달할 것 같은 기분이었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도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도, 도망쳐. 나는 더 이상……!”
성음이 어금니를 깨물고 끙 하는 소리를 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남들이 보기에는 그저 창백한 얼굴이지만 성음의 눈에는 세상을 폭파시킬 듯한 섬광이 언뜻 스쳤다.
“황녀님! 빨리 피하셔야 합니다!”
이미르와 리안의 전투는 가히 천상계에서 싸우는 무신들이 지상에 강림한 것과 같아서, 조만간 안드레의 미궁 전체가 아래로 쏟아져 내릴 터였다.
“더! 더! 더!”
이미르는 승리를 직감했다.
‘미치겠다! 화가 나서!’
그게 너무나 억울하고 분했다.
“더! 더 해봐! 할 수 있잖아! 이게 끝이란 말이냐!”
육체와 육체가 충돌하면서 터지는 반발력과 고통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이렇게 끝난다고?’
신에 근접한 앙케 라조차 그 생물적 강함을 통제하지 못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얼음에 봉인해 버린 존재.
‘얼마 만에 느껴 보는 충격인데……!’
이미르는 분노를 주체할 수 없었다.
“으아아아아!”
주먹과 주먹이 충돌하고 리안의 심줄이 손목에서부터 뒤틀리듯 터져 나가며 급기야 오른팔이 날아갔다.
“크으으으!”
그럼에도 리안의 육체는 여전히 전진하고 있었고.
“이 나약해 빠진 자식아!”
이미르의 주먹이 그의 복부를 후려치자 육체가 수직으로 솟구치며 천장에 음각의 판화를 찍었다.
“커억!”
천장에 처박힌 채로 굳어 있던 몸이 아래로 뚝 떨어지자 키도가 황급히 달려왔다.
“리안, 괜찮아?”
이미르가 씩씩대며 소리쳤다.
“고작 그 정도로 나를 깨웠단 말인가!”
“정신 차려, 리안! 리……!”
리안의 몸을 만진 키도가 흠칫 몸을 떨었다.
‘뼈가 전부 으스러졌어.’
아마 내장은 충격파에 죽처럼 녹아 버렸을 것이다.
“고작 내 어금니에 씹혀 버리는 주제에…… 절대로 부러지지 않는 검을 휘두른다고?”
세상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기능을 가진 수많은 오브제들이 있지만, 이미르는 알고 있다.
부서지지 않는 게 가장 강한 것이다.
‘최강의 무기를 가지고도 제대로 휘두르지도 못하는 놈이…….’
땅바닥에 퍼져 버린 리안을 쳐다보던 이미르의 머릿속에 조금 전의 기억과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맞물렸다.
“그러고 보니…….”
이미르의 시선이 시로네를 겨누었다.
“그나마도 버틴 건, 저 녀석 때문인가?”
시로네에게 살기를 드러냈을 때, 리안의 육체는 환골탈태를 거쳐 지금에 도달했다.
“크크크,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는구먼.”
이미르가 시로네에게 완전히 돌아서자 성음이 흠칫 놀라며 소리쳤다.
“빨리 일어나라! 싸우든 도망치든 해야 할 거 아냐!”
“가. 나는 리안을…… 키도를…….”
문경이 성음에게 소리쳤다.
“황녀님! 일단 피하시죠! 전세가 좋지 않습니다!”
시로네 덕분에 이미르에게 일 보가 뚫리는 것은 막았지만 두 번의 기회가 있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래, 새로운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결정을 내린 성음이 에테르 파동을 시전했다.
“나는 무조건 너를 구할 것이다! 이렇게 빚을 진 채로 끝낼 수는 없어! 내가 데려간다!”
시로네의 공간을 왜곡시킨 성음은 여전히 투지를 담은 시로네의 눈빛을 보았다.
“크윽!”
이런 식으로 데려가서는 안 된다.
“일어나.”
에테르 파동을 해제한 성음이 시로네에게 달려가 그의 어깨를 붙잡아 끌었다.
“일어나라니까! 싸우지도 못하지 않느냐!”
“황, 황녀님…….”
성음이 스스로의 거리를 없애고 시로네를 잡아끄는 모습에 문경은 넋을 잃었다.
“도망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시간을 두고 방법을 강구한 다음에 다시…….”
“나는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