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41
“싫어.”
사탄의 눈이 기괴하게 뜨였다.
“죽어도 좋단 말인가?”
“그건 생각해 본 적이 없고, 내가 싫은 이유는 아직 내 친구들과 더 놀고 싶기 때문이야.”
아벨라와 조금 더 놀고 싶었다.
“그래 봤자 1초도 되지 않아 너는 죽는다.”
“그 1초가 재밌는 거야, 1초가.”
지루한 일은 0.1초도 견딜 수 없는 하비츠였다.
“……사랑 따위에 연연하다니.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인가? 내 은총을 받을 인간으로 적합하다 생각했거늘.”
사탄이 다시 용암 속으로 들어갔다.
“후회하게 될 것이다.”
웅장하게 울려 퍼지는 장송곡을 들으며 하비츠는 행복한 눈으로 아내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자, 아벨라.”
영원한 자유의 세계로.
그 초의 0.666초가 풀리면서 이 관성 그대로 하비츠에게 날아들었다.
0.777초부터, 하비츠의 머릿속에서는 수많은 생각이 동시에 밀려들었다.
‘사탄하고 손을 잡고 세상을 정복한다고?’
놀이터에 부모를 데려오는 아이는 질색이었다.
‘헛소리하고 있어. 아직 우리끼리 놀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0.888초.
‘아벨라와 아이도 낳아야 하고, 스모도랑은 세계 모든 여자를 정복하기로 했다고.’
0.999초.
‘이 얼마나…….’
기괴한 미소를 지으면서 이빨을 드러낸 하비츠가 빠르게 몸을 돌렸다.
‘재밌는 세상이냔 말이야!’
1초.
“커억!”
퍽 하고 이 박히는 소리가 들리면서 달리던 모두의 동작이 정지했다.
“여, 여보.”
아벨라가 등 뒤에 있는 하비츠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째서……?”
하지만 목은 돌아가지 않았고, 역류한 핏물이 그녀의 입술을 비집고 새어 나왔다.
“전하.”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벨라의 심장에 박힌 을 발견한 모든 자들은.
혼돈의 시대 (1)
아벨라는 이를 악물었으나 심장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어쩔 수 없이 신음했다.
“흐으으으.”
그녀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들, 심지어는 하비츠를 이해한다고 자부하는 구스타프 4기예조차도…….
“왜? 어째서?”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하.”
그들은 사탄의 0.666초를 경험하지 못했으나 설령 깨달았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을 터였다.
“후하후하.”
아벨라의 육체를 방패 삼아 뒤에 숨어 있는 하비츠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후하후하.”
콧구멍이 붙었다가 떨어질 정도로 숨이 거칠고, 핏물이 차오르는 눈은 슬픔에 가득 차 있었다.
“여……보…….”
챙 하는 소리를 내며 법살이 깨지는 것과 동시에 아벨라의 눈이 위로 말려 올라갔다.
“깨졌다.”
바닥에 쓰러진 아벨라의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쳐다보던 발칸이 천천히 시선을 들었다.
‘하비츠, 네가 을 깼어.’
여전히 거친 숨을 내쉬고 있는 하비츠는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을 뿐이었다.
엑스마키나의 문이 열리자 증기에서 피 냄새가 진하게 피어올랐다.
“빨리! 빨리 옮겨!”
바깥에서 대기하고 있던 의무진이 의식을 잃은 이루키를 들것에 실었다.
아가야가 엑스마키나를 돌아보았다.
“푸우, 이제 못 쓰겠군.”
이루키가 강제적으로 율법을 뒤트는 것으로 연산장치들이 열에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보다 더 강력한 뇌를 얻었다.’
들것에 실려 멀어지는 이루키를 바라보며 아가야는 마음속으로 빌었다.
‘깨어날 수 있다면 말이야.’
소란이 진정되자 담배를 뻑뻑 피워 대던 구디오가 땅을 세게 밟았다.
“빌어먹을!”
“어떻게 된 겁니까? 성공하지 못했나요?”
카샨의 특무대장이 물었으나 카드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굳게 입을 다물었다.
한참이 지난 후에 네스가 말했다.
“이 예측을 하지 못한 거야.”
현재의 결과를 놓고 추론할 수 있는 것은 이 사실만이 유일했다.
“사랑하는 여자를 죽였다.”
만약 하비츠가 단순히 죽고 싶지 않아서 아벨라를 방패로 삼은 것이라면, 법살은 그 율법마저 뒤틀고 하비츠의 심장을 관통했을 것이다.
“살기 위해 죽인 게 아니야.”
여전히 믿을 수 없다는 듯 마이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내뱉었다.
“재밌어서 죽였다.”
그저 이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를 절체절명의 순간에 배신하는 것만큼 혼돈에 가까운 게 있을까?”
다시 정적이 찾아들었다.
“그,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특무대장의 물음에 답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머릿속에서는 똑같은 생각이 떠올랐다.
‘부처를 꺾은 것은 가올드. 하지만 인간의 시대는 짧은 역사 속으로 저문다.’
바야흐로 혼돈의 시대였다.
“흐으으으.”
하비츠는 울고 있었다.
“아벨라, 아벨라.”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였기 때문에 마지막 선택의 순간, 생애 처음으로 의문이 들었다.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아벨라를 대신해 죽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해야만 했냐고?’
존속살해는 세상에서 흔한 일이지만, 그 행위의 기반은 어디까지나 증오.
‘정말로 사랑했으니까.’
온 마음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내팽개치는 것은 아무도 할 수 없는 일.
‘아무도 하지 못하는 일.’
그런 일을 했을 때, 과연 나는 어떤 감정을 받을 것인지, 그 기분은 대체 무엇인지.
“크크. 크크크크.”
그게 너무 궁금해서 미칠 지경인데.
“크하하하! 그래, 맞아! 바로 이거야! 이 기분! 어떤 마약으로도 얻을 수 없는 이 쾌락!”
사탄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는 오직 하나.
“이거 진짜 재밌잖아!”
이미 사탄이기 때문이다.
‘각성한다.’
발칸은 하비츠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보랏빛 아지랑이를 보고 깨달았다.
“우오오오오오!”
하비츠의 눈이 부릅떠지면서 거대한 사탄의 형상이 하늘을 뚫고 치솟았다.
사랑하는 사람을 단호히 죽일 수 있는 개념이 있다면 그것은 오직 혼돈.
그리고 인간은 그것을 극악이라 부른다.
“뭐지?”
거의 앉은 자세로 하체를 구부리고 있던 가이가 황급히 내성 쪽을 돌아보았다.
시로네와 미네르바도 같은 것을 보고 있었다.
“세상에…….”
오직 마魔의 기운으로 이루어진 극악의 형태가 바슈켄을 집어삼킬 듯이 아래를 굽어보고 있었다.
광인인 가이조차 지금의 상태가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검을 집어넣었다.
“만약 다시 전장에서 보게 된다면, 그때는 가차 없이 너를 죽일 것이다.”
시로네는 답하지 않았고,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가이는 성문을 통과해 하비츠에게 달려갔다.
“어떡할 거야?”
미네르바가 물었다.
“실패했군요.”
율법 바깥의 제왕인 사탄의 등장만으로도 이 깨졌음을 알 수 있었다.
“제 책임이에요.”
앞으로 세상은 박애도, 극선도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악으로 물들 것이다.
“아니, 우리들의 책임이지.”
“어설픈 선이 악을 부추긴다고 했죠.”
부처가 없었기에 실행할 수 있었던 선의 반격.
‘자극하지 말았어야 했을까?’
마호로 아만타가 걱정했던 상황은 선을 깨부수고 등장하는 최강의 극악이었다.
‘정말 어렵다. 도대체 이 세상은…….’
어떻게 해야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일까?
“시로네, 돌아가자. 대책을 세워야 해.”
1년을 노력해서 조금은 넓힐 수 있었던 선의 영역이 급속도로 줄어들게 될 것이다.
“지금 하비츠를 치는 건?”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 성전도 막아 내는 게 고작이었어. 네가 무언가를 시도하면, 저쪽도 무언가로 대응한다.”
나만 사람이고 모두 인형에 불과하다면 세상은 마음먹은 대로 돌아가겠지만…….
“너 혼자서 바꿀 수 있는 세계가 아니야. 선의 힘이 하나로 집중되지 않으면 극악은 파괴할 수 없어.”
이렇게 세상은 고통 속으로.
“오늘부로 코트리아 공화국은 사라지게 될 거야. 하지만 아직도 지켜야 할 수십 개국이 남았어.”
시로네는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문 채 미네르바를 따라 하늘로 날아올랐다.
***
“인간의 욕망. 가히 끝이 없도다.”
육신을 가진 채로 극악이 되어 버린 하비츠의 화신이 천공의 끝에서 선포했다.
“이제부터 네가 이 시대의 사탄이다. 내 지옥의 군대를 이끌어라. 72군단이 너를 따를 것이다.”
코트리아 왕국 전체를 뒤흔드는 목소리에 누군가는 희열을, 누군가는 절망을 느꼈다.
보랏빛 아지랑이가 하비츠에게 스며들자 눈동자가 번질거리는 기름처럼 빛을 스캔했다.
“어떻게 된 겁니까?”
발칸이 다가왔다.
“몰라. 뭐라고 중얼중얼.”
하비츠는 신경 쓰지 않았지만, 72군단의 마족을 부리는 것은 재밌는 일일 듯했다.
“아벨라는 돌아갔어.”
죽음이란 밥 먹으러 들어오라는 엄마의 목소리.
“밤이 오고 있다.”
그렇기에 놀이터의 장난도 언젠가는 끝나겠지만.
“어차피 우리는 내놓은 자식들이니까.”
부모가 찾지 않는 아이들은 어스름 저녁이 찾아온 뒤에도 뛰어다니는 것을 그칠 줄 모른다.
“마지막으로…….”
하비츠가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세계 정복 한 번만 하고 가자.”
발칸의 눈에 장난기가 가득 차오르고, 나타샤가 신이 난 표정으로 입가를 찢었다.
“좋았어! 먼저 집에 가는 사람 없기!”
***
코트리아 공화국을 멸망시킨 구스타프 제국은 본격적으로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접경국인 카샨이 영토의 10분의 1을 잃으면서 중동의 파라스 왕국도 치명상을 입었다.
“아카드 사막을 뚫어야 돼. 그렇게 되면 중부 대륙 수십 개의 왕국을 먹을 수 있지.”
바다 건너 동방 쪽에서는 진천 제국과의 해상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바다 쪽은 쉽지 않군. 회 왕국과 중 왕국을 먼저 점령하게. 7왕국의 지원 루트를 차단시켜.”
동방 대륙의 허리를 차지하는 왕국이 회와 중이었다.
“점령 국가의 처우는 어떻게 할까요?”
관리의 말에 발칸은 하비츠를 돌아보았다.
“어떻게 할까요?”
“대충 가지고 놀다가 전부 죽여. 구스타프 제국 외에는 이 세계에 어떤 인간도 발을 못 붙이게 해.”
우리들의 놀이터였고, 또한 마가 지향하는 궁극적인 목표이기도 했다.
“그나저나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습니다.”
발칸은 세계지도를 내려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