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787
“상아탑 마법사입니다. 타시안 도시에서 공간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려고 하는데요.”
가장 빠른 길이었다.
우오린이 직접 자필로 작성한 문서를 확인한 치안대장이 곧바로 경례를 올렸다.
“아, 죄송합니다. 경황이 없어서.”
“괜찮아요. 피해 규모는 어떤가요?”
치안대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이미 모든 도시가 파괴되었습니다. 아마도 마법사님은 공간 이동 마법진을 이용할 수 없을 겁니다.”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군요.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지 못해 죄송합니다.”
치안대의 피곤한 얼굴을 살펴보던 시로네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충분히 시간을 아낄 수 있었어요. 그럼…….”
을 가동하자 살수가 전과 달리 무서운 속도로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
“저게 상아탑의 별이군요.”
수도의 몰락을 상아탑에서 막아 냈다는 보고를 들었던 치안대원들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래. 우리하고는 다르지.”
짧은 만남이지만 광채를 뿜어내는 듯한 눈빛에서 의지를 읽어 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왜 싸우는 걸까요?”
이미 자신들의 고향이 파괴된 시점에서 대원들은 세상의 멸망을 직감하고 있었다.
“만약 저라면 가족들을 데리고 도망쳤을 겁니다. 충분한 힘이 있으니까요.”
“모르지.”
치안대장도 마찬가지 심정이었다.
“우리가 어찌 알겠어?”
살수의 등에 누워 생각에 잠겨 있던 리안이 고개를 들고 시로네에게 물었다.
“상아탑으로 가는 거지?”
“응. 세계정세를 확인해야지. 아르간티스 같은 재앙이 또 어딘가에 나타난다면…….”
“지옥의 군대가 중부 대륙으로 가고 있어.”
말에 담긴 의미는 명확했다.
“그곳에 에이미도 있다.”
“…….”
“아몬은 우리가 해치웠지만, 4천만 군대도 충분히 위협적이야. 가능하면 우리가 가는 게 어때?”
“가고 싶어.”
솔직한 심정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에이미를 만나고 싶어.”
“그럼 가서 만나.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지킬 테니까. 에이미도, 너희 가족들도.”
“만약 나약한 1명의 병사라면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겠지. 그들이 싸우는 이유는 그저 살기 위해서야. 더 나아가서는 가족들을 지키기 위해.”
“너도 그렇게 할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전쟁은 이길 수 없어.”
그런 문제였다.
“지휘관이 개인의 감정으로 군대를 이끌면 전멸이야. 하물며 지금은 인류의 목숨이 달린 싸움이지. 우리가 감정대로 행동하는 순간, 모두가 죽는 거라고.”
분명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지만…….
“난 네가 후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시로네가 미소를 지었다.
“우오린의 말이 신경 쓰이는 거야?”
리안이 쳇 하고 혀를 찼다.
“나네를 이길 수 없다는 거? 그딴 소리는 잊어버려. 이번에 나타나면 내가 직접 둘로 쪼개 주겠어.”
“쉽지 않을 거야.”
예상과 다른 대답에 리안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내 생각은…….”
시로네는 우오린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내가, 나네를 이길 수 없다고?”
“그래. 알고 있을 텐데, 시로네.”
우오린이 말했다.
“나네는 거의 옳고, 악은 거의 대부분이야. 질과 양에서 선이나 애는 애초에 상대가 되지 않아.”
불가능한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다.
“선과 애가 해낸 일은 세상이 끝장나는 상황을 겨우 막아 낸 정도지. 하지만 나네가 다시 돌아온다면…….”
진정한 부처의 탄생.
“그때는 완벽한 진리, 유일한 옳음일 거야.”
“설령 그렇다고 해도 내가 너를 사랑하게 되는 이유는 되지 않아.”
우오린은 자신의 두 눈을 가리켰다.
“테라제의 혈통 중에서도 독특한 미래시. 내가 하비츠에게 무릎을 꿇은 이유는 그에게서 죽음을 느꼈기 때문이야.”
마법 같은 것은 아니다.
“파란 구슬과 빨간 구슬이 뒤섞인 통에서, 무엇이 나올지 대충 짐작하는 거지. 내가 보았을 때 하비츠는 끝없이 파란색 구슬만이 나오는 삶이다.”
확률의 극치.
“하지만 순간 뭔가 느낌이 달랐어. 내가 느낀 감정은 분명 빨간 구슬이었다. 아마도 너 때문이겠지. 만약 내가 하비츠에게 죽었다면, 하비츠도 너에게 죽었을 거야.”
전쟁이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살기를 택했어. 같은 맥락으로 내 미래시가 말하고 있으니까. 너는 나에게 올 수밖에 없다고.”
“그게 대체…….”
“피해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을 말해 줄까?”
시로네는 입을 다물었다.
“에이미를 만나. 인류고 세상이고 다 버려두고,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행복을 찾아. 나네가 세상을 닫을 때까지.”
“포기하라고?”
놀랍게도, 우오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길 수 없으니까. 나네가 다시 돌아오면 그때는 어떤 것도 되돌릴 수 없어.”
회상에서 벗어난 시로네가 말했다.
“이길 수 없을 거야. 그 누구도 이기지 못해.”
리안의 인상이 구겨졌다.
“너답지 않게 왜 그래? 전에 나네랑 붙었을 때도 막아 냈잖아. 이번에도 할 수 있어.”
“아니. 내가 우오린의 말을 거절한 이유는 나네를 막아 낼 수 있기 때문이 아니야.”
“그렇다면?”
“돌아올 수 없다고 믿기 때문이지.”
“흐음.”
“나네가 부처가 되면, 무조건 진다. 하지만 될 수 없어. 그는 공의 세계를 동정하지만 절대로 마음을 심지 않아.”
“만약 심는다면?”
시로네는 잠시 생각해 보았다.
“그것을 파괴할 수 없게 되겠지.”
“……오묘하군, 율법이라는 것은.”
“맞아. 나네가 돌아온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돼. 우리가 할 일은 악을 없애는 거야.”
지옥의 10대 군단장이 또다시 마계를 열게 되는 상황은 막아야 했다.
‘중부 대륙으로 진격하는 지옥의 군대는 군단장을 잃었어. 더 치열한 전장으로 가야 하는 것은 맞다.’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시로네일 것이기에, 리안은 더 이상 부추기지 않았다.
“응?”
순간 시로네가 고개를 돌리고, 감각적으로 이상함을 느낀 리안이 벌떡 일어섰다.
순식간에 대직도를 뽑아 들고 살수의 머리 위에 올라선 리안의 눈에 공간이 일그러지는 게 보였다.
“뭐지?”
한 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처럼 구겨지는 공간 속에서 1명의 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로네.”
“어라?”
시로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음?”
상아탑 후보로 함께 경쟁했던 진천 제국의 황녀 진성음이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족과의 전쟁으로 전보다 얼굴이 초췌했으나 강인한 기백만큼은 여전했다.
리안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며 인사한 그녀가 시로네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갑자기 찾아와서 미안하다. 상아탑에 다녀오는 길이야. 이곳에 네가 있을 거라고 해서.”
“상아탑은 왜?”
입술을 말아 문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하지만 이내 강인한 표정을 드러내며 시로네의 앞에 납작 절을 했다.
“우리를 도와 다오! 진천을 구해 줘!”
시로네와 리안이 서로를 돌아보았다.
***
“전군 대기!”
사령관의 지시에 따라 기수들의 복창이 메아리쳤다.
예상보다 빨리 삼국 국경선에 도달한 지옥의 군대가 2킬로미터 밖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드드드드드드!
땅이 흔들리고, 지평선 너머로부터 까만 점들이 무중력상태처럼 떠올라 하늘을 뒤덮었다.
“후우! 후우! 후우!”
선두의 보병들이 심호흡을 하는 소리가 수백 미터 떨어진 에이미에게도 들렸다.
‘오는구나.’
설령 4천만이라도 국경선 전체를 장악할 수는 없기에 전략적으로 상대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런 생각조차 날아가 버릴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크하하하! 인간! 인간이다!”
신장도, 형태도, 특징도 제각각인 마족들이 대지를 장악하며 괴성을 터뜨렸다.
“전군!”
지휘관의 명령이 떨어졌다.
“진격!”
만 단위의 인파가 밀물처럼 앞으로 튀어 나가자 에이미의 대대도 움직였다.
“보병들을 지원한다!”
3개 대대의 200명이 군사식 순간 이동을 시전하자 칼 같은 섬광이 쭉 하고 뻗어 나갔다.
‘화력으로 기선을 제압해야 돼.’
특수부대가 아닌 일반 마법부대의 마법 공격의 핵심은 위력이 아니다.
일정 화력을 정확한 범위에 얼마나 오래 퍼부을 수 있느냐가 부대의 능력을 좌우하는 것이다.
“섹터32! 화력 레벨 10으로!”
여단장의 지시에 맞춰 마법사들의 양손에 화염 마법이 이글거렸다.
오른손을 치켜올린 에이미가 대대에 마법 시전 명령을 내리려는 그때.
“으아아아아아!”
전방의 보병부대가 순식간에 짓이겨지며 거대한 덩치의 마족들이 밀고 들어왔다.
‘벌써 뚫렸다고?’
충돌과 동시에 사망한 숫자를 짐작한 그녀가 이를 악물며 손을 휘둘렀다.
“발사!”
수백 발의 화염 마법이 지상에 떨어지자 순간적으로 거대한 불길이 치솟았다.
“크아아아아!”
마족들이 역겨운 형태로 녹아내렸으나, 적들은 끝도 없이 밀고 들어오고 있었다.
“퇴각! 퇴각하라!”
전쟁을 개시하고 불과 몇 분도 되지 않은 시간에 들어온 비보에 에이미는 아찔했다.
“젠장! 끝났어! 우린 죽을 거야!”
사방에서 절규가 터져 나왔다.
“침착해! 우리 쪽으로 병력이 집중되었을 뿐이야! 그냥 재수가 없었던 거야!”
따라서 어떤 부대는 여기보다 나을 것이다.
“곧 지원부대가 온다! 힘의 균형은 맞춰지게 되어 있어! 조금만 더 버티는 거야!”
마법부대의 장점이라면, 일반 보병보다 정신적 내구력이 높다는 것이다.
에이미의 대대는 전황에 휘둘리지 않고 침착하게 마법을 쏘아 내며 물러섰다.
그렇게 300미터를 밀려나자 비로소 아군의 깃발이 사방에서 펄럭거렸다.
“여기다! 여기서 고정! 섹터14! 그물형 포진을……!”
“대대장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황소의 뿔을 가진 마족이 거대한 도끼를 들고 달려오고 있었다.
“꾸하하하! 역시 전쟁은 재밌어!”
무시무시한 보랏빛 마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사단장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제길! 그랬구나!’
속절없이 뚫린 이유를 알았다.
“대대장님! 피하십시오!”
어차피 제비뽑기에서 최악의 패를 뽑은 것이라면, 당장 후퇴한다고 해도 전멸이었다.
‘그게 전쟁이지.’
말에서 내린 에이미가 자세를 낮추며 정신을 집중했다.
‘화인!’
그녀의 몸에서 피어오른 불길이 하늘로 솟구치더니 불의 거인 이프리트로 변했다.
“저, 저게 뭐야?”
부하들조차 처음 접하는 마법이었다.
허리를 잔뜩 웅크린 이프리트가 두꺼운 두 팔을 에이미의 좌우에 내리며 전방을 노려보았다.
“덤벼라.”
커다란 두 눈동자에 붉은 빛이 깜박이고 있었다.
가속화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