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58
“이럴 수가…….”
회색의 구체에 크기보다 수십 배는 긴 꼬리가 달리더니 가이아인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거부한다!”
울티마 시스템이 발동하면서 거대한 돔의 방어벽이 안티셀을 막아 냈다.
충격이 가해지는 순간 구체가 둘로 분화되면서, 숫자는 물론 질량이 2배로 증가했다.
“막아! 뚫리면 안 돼!”
태성이 이카엘의 옆으로 다가왔다.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방어벽에 충돌할 때마다 안티셀은 계속 증가했고, 급기야 돔 전체를 뒤덮었다.
“생물 신호의 특징이죠.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다면 안티셀은 계속 증식해서 우주를 가득 채울 거예요.”
“우주를 가득?”
이카엘의 얼굴이 굳었다.
“우주계에서 태어난 당신은 생물계가 하찮게 보이겠지만, 생물의 진정한 힘은 적응에 있습니다.”
태성의 시선이 조금씩 돔을 파고들어 가는 올챙이 같은 구체들을 향했다.
“이론상 아르고네스는 어떤 우주계에도 생물 신호를 퍼트릴 수 있어요. 천사 또한 예외는 아닙니다.”
이카엘이 이빨을 드러냈다.
“천사가 생물을 낳는다고? 그런 수치를 당할 바에는 차라리 스스로 소멸하겠어.”
“특수한 상황을 말하는 거예요. 당신이 생물 신호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인간의 몸에 천사의 후손을 심는 것도 가능한 일이죠.”
“그런 것에는 관심 없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가이아인의 방어벽은 점점 갈라지고 있었다.
“가이아인의 역사가 이대로 끝나는 건가?”
“한 가지 방법은 있습니다.”
태성이 말했다.
“라, 가이아, 아르고네스는 우주, 자연, 생물계를 독립적으로 담당합니다. 앙케 라라고 해도 직접 셀 버스터를 발동시킬 수는 없어요.”
“특수한 상황이라는 뜻이군.”
“아마도 우주계에 대한 파계 행위. 그것을 억제하기 위한 특별 조치일 거예요. 가이아인이 파계의 의지를 포기한다면, 제가 나설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은…….”
이카엘은 가능하다고 보지 않았다.
“가이아인이 가지고 있는 전부잖아?”
“…….”
태성도 알고 있다.
그렇기에 침묵을 지킨 채 거핀의 결단을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끝이 없군.”
돔의 외곽을 날아다니며 포톤 캐논을 난사하는 거핀의 얼굴에 땀이 흘렀다.
어떤 공격을 가해도 2배로 증식하는 안티셀을 막아 낼 방법은 없는 듯했다.
‘가장 강력한 공격으로……!’
이를 악문 거핀이 두 팔을 하늘로 쳐들자 질량을 가진 빛이 태양처럼 모여들었다.
“이야아아아!”
세상을 집어삼킬 듯한 섬광이 돔이 있는 곳을 긁으면서 지나갔다.
“됐……!”
회심의 미소를 짓던 거핀의 얼굴이 굳었다.
질량의 폭풍이 안티셀의 군체를 지나갈 때마다 암세포처럼 커지고 있었다.
‘막을 수 없는 건가?’
군체의 크기는 수십 킬로미터 반경을 장악할 정도였고, 개체 수는 족히 경 단위에 이를 듯했다.
천문학적인 숫자의 안티셀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아르고네스의 얼굴 형태로 변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거핀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린 그가 다시 분산되며 방어벽으로 쏟아져 내렸다.
돔에 균열이 생기고,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안티셀이 가이아인을 강타했다.
“으아아아!”
거핀은 똑똑히 보았다.
마치 역진화를 하듯 세포가 스스로를 집어삼키며 소멸하는 과정을.
‘저항할 수 없어.’
울티마에 도달한 최강의 인류라 하더라도 그들의 원천은 결국 생물.
정신을 담는 그릇, 육체를 소멸시키는 코드 앞에서는 가이아인도 속수무책이었다.
‘빨리 판단을 내려야 해.’
거핀은 수많은 안티셀들이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진심으로 인간을 멸종시킬 생각이었다.
“포기하지 마라!”
가이아인의 장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무한을 넘어! 진정한 우리를 찾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
거핀은 입술을 짓깨물었다.
통합적 정신 체계를 이룩했기에 가이아인들이 포기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알았다.
‘멈춰야 해.’
하지만 거핀은 그러지 못했다.
‘내가 자초한 일이야.’
루시퍼와의 약속으로부터 시작된 사소한 균열이, 사태를 이 지경으로 몰고 간 것이다.
가이아인들이 소리쳤다.
“자유를! 자아를!”
울티마의 방어벽을 비집고 시커먼 안티셀들이 가이아인을 습격하는 순간.
“항복하겠다.”
거핀이 통합적 정신 체계에 극단적으로 반대되는 의견을 머리에 심었다.
콰아아아아앙!
한순간 울티마가 붕괴되면서 방어벽이 사라졌다.
“뭐……!”
가이아인들은 눈앞의 소멸보다도 통합적 정신 체계가 깨졌다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헉! 헉!”
가이아인 장로는 눈앞에서 안티셀이 얼어붙은 듯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지켜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아르고네스의 눈앞에, 태성이 양팔을 벌린 채로 눈을 치켜뜨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세요. 파계를 포기했잖아요. 정말로 저 아이들을 소멸시킬 거예요?”
“라의 지시다. 종속되지 않는다고 해도 우주적 규모의 문제야. 그의 판단이 우선이다.”
“당신의 판단은요?”
“다를 건 없어. 우주를 파계하면 어떤 생명체도 존재하지 못해. 당신이야 가이아에서 태어난 모든 생명이 소중하겠지만…….”
아르고네스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나는 생물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명이 있다. 그 사명에 비하면 종족 하나는 사소한 문제야.”
“종족 하나?”
태성이 서럽게 내뱉었다.
“당신이 지어 준 이름이잖아요. 가이아.”
“……감상적인 결론이야.”
“아뇨. 이것이 사명일지도 몰라요. 당신과 나는 저들을 만들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요.”
“그럼 우리는?”
태성은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인간을 만들기 위해 존재했나? 아니, 우리야말로 신이야. 적어도 이 우주에서는. 그것을 부정해서 당신이 얻는 게 뭐야?”
“진실을 알기 위해…….”
아르고네스가 말을 끊었다.
“진실? 도대체 뭐가 진실인데? 뚜껑을 여는 게 진실이야? 그게 정말로 진짜라고 생각해? 그것조차 또 다른 뚜껑에 덮여 있는 거짓이라면?”
아마도 그럴 것이다.
“가이아인도 생물일 뿐이야. 우리가 만든 수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이라고. 내가 왜 신경을 써야 하지?”
“결국 저 아이들이 진실을 밝혀낼 테니까.”
“…….”
“당신도 알잖아요. 어리석고, 오만하고, 악의 성향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지만…….”
태성의 입가에 슬픈 미소가 번졌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깨닫고, 결국 옳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을.”
인간은.
“우리가 만든 최고의 걸작이에요.”
태성의 말에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그도 가이아의 역사를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어째서 예상을 벗어나는가?
어째서 다른 생물과 다르게 안정을 시킬 수 없는가?
“그래서 싫은 거라고.”
아르고네스의 자식 중에 인간만이 다르다.
태성이 답했다.
“한편으로는…… 자랑스럽고요.”
“흥.”
등을 보이면서 멀어지던 아르고네스의 육체가 땅속으로 스며들었다.
“마지막 기회야. 앞으로 시작될 전쟁이 누구의 승리로 끝나든, 내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셀 버스터에서 자유로워진 것만으로도 가이아인에게는 축복이었다.
“후우.”
아르고네스를 떠나보낸 태성이 한숨을 내쉬더니 저편 하늘을 바라보았다.
“일단 고비는 넘겼지만.”
신과 인간의 전쟁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사라진다.”
시야를 가득 메우고 있던 안티셀들이 역으로 수렴하며 빠르게 줄어들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중얼거리던 가이아의 장로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거핀을 찾아냈다.
“이게 무슨 일이야!”
거핀이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그 순간 셀 버스터에서 생존한 모든 가이아인들이 비통한 신음성을 냈다.
‘틀렸다.’
거핀의 모습은 명백히 전체의 사고에서 이탈한 독자적인 행동이었다.
“울티마가 깨졌다고?”
장로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럴 수는 없어! 우리가 어떤 희생을 치르며 도달한 경지인데! 그걸 거핀, 네가……!”
장로가 입을 다무는 순간, 주위에 있던 가이아인이 이해한다는 듯 말했다.
“분노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갈라지면 예전의 인류로 돌아가고 말아요.”
수많은 의견이 충돌하는 갈등의 사회.
“제가 책임지겠습니다.”
거핀이 선언했다.
“당분간 궁감을 열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울티마 시스템도 다시 완벽해지겠지요.”
“어쩔 생각이냐?”
하늘을 올려다본 거핀은 차갑게 지상을 살피고 있는 이카엘과 시선을 교환했다.
“……싸울 겁니다.”
신과 인간이 공존하는 시대.
오메가의 정보를 받아들인 시로네는 이 지점이 특이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거핀이 가이아 종족을 이탈했다.’
바벨에서 읽은 기록만으로는 정확히 어떤 사건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는 확실해.’
인류의 곁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가이아인이 거핀이라는 사실이었다.
신의 뇌 (3)
***
오메가 201년.
수백 명의 천사들과 수천 명의 마라들이 하늘을 점령한 상태였다.
사법 광륜이 번쩍일 때마다 율법은 요동쳤고, 마라의 폭력이 지상에 가해졌다.
“오오오오오오오오!”
동시에 가이아인의 눈에 황금빛 광채가 켜졌다.
‘울티마 시스템.’
3억에 달하는 자들의 양자 신호가 하나로 통합되면서 세계의 장막이 벗겨졌다.
“이런……!”
은하수처럼 거대한 빛의 기류가 크게 우회하면서 천사의 진영으로 쇄도했다.
“공격하라!”
빛의 날개를 펄럭이며 비행하는 천사들이 온 힘을 다해 신호에 처박혔다.
퍼어어어어엉!
행성보다 큰 충격파의 파문이 우주로 퍼져 나가고, 대천사들의 회의실 백경이 흔들렸다.
“빌어먹을 인간!”
결합의 대천사, 메티엘이 하얀 이를 드러냈다.
“언제까지 기다리기만 할 거야? 차라리 우리가 나서서 부숴 버리는 건 어때?”
금발을 허리까지 넘긴 순수한 얼굴과 다르게 눈빛은 살의로 가득했다.
탄생의 대천사 카리엘이 거들었다.
“내 생각도 마찬가지야. 이대로 있다가는 리셋을 시도하기도 전에 전복된다.”
거핀이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는 동안 가이아인들도 울티마의 체계를 강화시켰다.
또다시 우주적 파계가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해 앙케 라가 내린 결론은, 초기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