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891
‘방랑의 6시. 히든 코드는…….’
성취를 위해 필요한 모든 행동을 했다고 가정한 결과를 얻는다.
‘장난해?’
파동을 들은 모두가 울컥했다.
특히나 쿠안은 눈에 혐오감까지 드러냈으나, 방랑의 6시는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나도 인간이지만, 너희들이 사는 세상을 지켜보면 정말 웃겨. 코미디가 따로 없다니까. 뭐라도 해 보려고 미친 듯이 노력하고, 경쟁에서 지면 질질 짜기나 하고. 푸하하하! 그냥…….”
방랑의 6시가 몸을 돌리고 팔에 힘을 주자, 펑 하고 로브가 터졌다.
통나무처럼 두꺼운 오른쪽 팔뚝이 드러났다.
“이렇게 하면 되잖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하자 세인 일행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훈련을 할 필요가 없다.’
그냥 했다고 가정하면 그만이니까.
“지식도 마찬가지야. 날마다 책을 파고, 암기하고, 이해하려고 몇 날 며칠 밤을 새우고.”
방랑의 6시에게서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하지만 세인 일행은 청년의 눈빛에서 전과 다른 미묘한 느낌을 분명 읽을 수 있었다.
“음, 그러니까 한 20년 정도?”
지성의 느낌으로 충만한 그가 사악하게 웃었다.
“열심히 공부했다고 치지 뭐.”
삶의 목적에 대한 근원적인 불쾌감을 느낀 건 세인만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 조롱할 생각이냐?’
0.1초를 앞당기기 위해, 1킬로그램을 더 들기 위해, 1점을 더 획득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것이 인간이란 말이다.’
삶이 부정당하는 느낌 속에서도, 시옥의 파동은 계속해서 밀려들고 있었다.
‘부정의 7시.’
어린아이였다.
우울해 보이는 무표정이었고, 숨길 수 없는 악독함이 눈에 담겨 있었다.
‘그래, 히든 코드는 뭐냐?’
책임지지 않는다.
“흐흐.”
이제는 세인 일행도 히든 코드에 담긴 정확한 내용을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남을 이간질해서 죽여도, 사람을 절벽에서 떠밀어도, 하천에 독극물을 방류시켜도!’
누구도 그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 어디까지 미쳐 가나 보자.’
이어지는 마음의 파동을 기다리는 그때, 금발의 여성이 손을 내밀었다.
“히든 피스.”
세인 일행이 있는 풍경이 퍼즐처럼 쪼개지더니, 메이레이의 공간이 통째로 이탈했다.
“귀 내놔!”
금발의 여자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치켜들자 화염이 붙었다.
불붙은 손가락이 메이레이의 귀를 붙잡으려는 그때, 세인이 공간의 정보를 조절했다.
‘일월광륜!’
금발 여자의 손이 메이레이의 귀를 스치고, 퍼즐처럼 엉킨 공간이 되돌아왔다.
‘이건 규정외식?’
성전으로 들어오는 수많은 보고서에서 읽은 적이 있는 능력이었다.
‘모르타싱어의 능력.’
십로회의 서열 10위.
시로네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지옥으로 끌려갔다고 했다.
“너, 모르타싱어인가?”
금발의 여자가 입을 가리고 웃었다.
“호호호! 불쾌하네. 고작해야 거름밖에 되지 않는 애를 나로 착각하다니.”
“거름?”
어차피 마음을 읽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시옥은 비밀이 없었다.
“히든 코드를 발동하려면 재료가 필요하거든. 극한의 감정이라는 거야. 재밌는 부분이라 말해 주는데, 극한의 감정이라는 건 현실에서 잘 느낄 수 없는 수준이야. 100명의 인간이 있다면 0.1명 정도가 평생 한 번 겪을까 말까?”
대충 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이면 세계에서는 비일비재하지. 모르타싱어는 지금도 지옥에서 절규하고 있어. 이럴 거면 차라리 정화시켜 달라고 빌면서 말이야. 깔깔깔! 하지만 정화라는 건 다른 말로 고통이거든. 그게 무슨 뜻이겠어? 자신을 더 괴롭혀 달라는 거 아니겠어?”
금발 여자에 대한 마음의 파동이 수집되었다.
‘질투의 8시. 히든 코드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질 수 있다…… 그렇군.’
돈이나 애인, 직위는 빼앗을 수 있다.
‘반면에 재능이나 외모, 행복 같은 것은 양도가 불가능한 성질이지. 하지만 질투의 8시는 가능하다.’
조건은 파괴.
만약 누군가의 얼굴에 질투가 난다면, 그 사람의 얼굴에 염산을 부어 버리면 된다.
‘그래서 메이레이의 귀를…….’
일행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질투의 8시는 자신의 말을 하느라 바빴다.
“아, 그리고 고마워, 진성음이라는 애를 보내 줘서. 심령권은 닫혔지만 히든 코드는 강화됐거든. 걔는 사고를 좀 많이 쳐서, 우리 마족들이 아주 귀여워해 주고 있지. 아마 당분간 재료가 떨어질 일은 없을 거야.”
“재료라고.”
세인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히든 코드를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극한의 감정이 필요하다고 그랬지. 그렇다면 어째서 쿠안은…….”
쿠안을 돌아본 세인이 말을 멈췄다.
“아.”
담담한 표정으로 서 있는 쿠안의 외팔과, 바람에 펄럭이는 반대쪽 소매가 보였다.
‘비대칭의 극의. 발목 인대가 잘린 상태에서 한쪽 팔까지 제거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코드는…….’
쿠안 본인의 감정을 재료로 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충은 이해가 되는군. 극한의 감정이 히든 코드에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살아 있는 증거가 앞에 있지 않은가.
시옥이 한 걸음을 내딛자 세인이 똑같은 거리를 물러서며 지시를 내렸다.
“간격을 유지해.”
“호호. 왜 그래? 우리의 마음을 읽을 수 있잖아? 이보다 더 유리한 전투가 어디 있어?”
세인은 모멸감을 느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시옥의 히든 코드가, 안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망상의 9시도 까다롭다.’
마음의 파동을 들은 세인의 시선이 순박한 인상의 노총각에게 돌아갔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 가히 끔찍한 히든 코드. 의 완성판 같은 거로군.’
망상의 9시가 세인의 반지를 가리켰다.
“익숙한 냄새가 나는군. 혹시 인가?”
세인의 가설이 맞았다.
‘결국 이런 것이다.’
인간이 꿈을 꾸듯, 마족들의 감정도 드리모에 흘러들어 부유하고 있다.
‘가끔은 보기도 하지.’
가위에 눌렸을 때 뭔가를 본 적이 있다면, 일시적으로 박지가 열린 셈이다.
‘그러다가 정신 마법사에게 도굴되어 인간 세상으로 빠져나오는 것.’
수많은 오브제가 있지만, 인간의 삶을 끔찍하게 만들었던 물건들은 대부분 이면 세계 쪽일 것이다.
“세인.”
고개를 돌린 세인의 눈이 크게 뜨였다.
“미로?”
순식간에 풍경이 변하면서 오래전의 알페아스 마법학교의 정경이 펼쳐졌다.
“뭘 그렇게 멍하니 서 있냐? 오늘 내 연구 도와준다고 했잖아. 까먹었어?”
“아…….”
세인은 망상의 9시가 히든 코드를 발동했다는 생각에 도달하지 못했다.
상상이 현실이 된다.
“아, 미안. 다른 생각을 좀 하느라.”
여전히 시옥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지만, 치트는 현실과 상상의 감각을 뒤집어 버린다.
“젠장! 나는 도와준다는 말도 안 했는데!”
유약했던 시절의 가올드가 서류가 담긴 3개의 박스를 들고 따라오고 있었다.
‘가올드…….’
20인의 심판이 있었던 날, 유일하게 미로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던졌던 남자.
‘그랬지.’
모든 기억이 선명하고 왜 그런지도 알고 있지만, 위화감은 전혀 없다.
여기가 현실이다.
“미로야.”
미래를 알면서도 현실을 살고 있는 모순 속에서, 세인은 강렬한 충동에 사로잡혔다.
“응?”
좋아한다.
단 한 번만이라도, 그녀에게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싶었다.
초열지옥에서 가올드가 그랬듯이.
“뭐야? 불러 놓고 왜 말을 안 해?”
용기가 없어서는 아니었다.
다만 미로를 차지할 수 있는 남자는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었을 뿐이다.
‘하지만 내가 틀렸지.’
모든 것의 시작은…….
시간이 빠르게 흐르면서 20인의 심판의 날에 있었던 광경이 펼쳐졌다.
이스타스를 향해 걷고 있는 미로가 보였다.
‘가올드가 오겠지.’
자기상환적 돌연변이라는 저주에 걸리면서까지 미로를 외쳐 댔던 목소리는, 완전무결했던 그녀의 정신에 작은 균열을 일으켰었다.
‘평생을, 아니, 지금도 후회하고 있다. 어째서 나는 가올드처럼 용기를 내지 못했을까?’
미로가 곁을 지나가자, 당시에는 없었던 철륜안의 한쪽에 눈물이 차올랐다.
잘 가라, 미로.
마지막 인사로 선택한 말은 고작 그 정도였다.
‘제길!’
교만의 1시가 내는 목소리가 세인의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코드를 심었다.
-선택해. 미래는 바꿀 수 있어.
‘미로야.’
-가올드가 올 거야. 그 전에 네가 미로를 지켜. 세상에 외쳐! 미로는 내 여자라고!
‘미로야!’
-과정 따위는 전부 생략하자. 너도 솔직히 알고 있잖아? 여기서 선택하면 미로는 네 여자가 된다고.
“미로야!”
멀리서 들리는 가올드의 목소리에 세인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지금 해야 한다! 바꿀 수 있어! 후회하지 않을 수 있어! 평생을, 평생을 담고 살았잖아!’
하지만 세인의 이성이 영문조차 모른 채 목소리를 막아 내고 있었다.
‘흐으으으!’
양쪽 동공의 톱니바퀴가 뭔가에 걸린 듯 1도 사이를 미친 듯이 움직였다.
‘안 돼! 이러면 안 되는 거야!’
편견의 5시가 세인에게 히든 코드를 걸었다.
-사실은, 미로도 너를 좋아해. 그것도 아주 많이.
“으아아아아!”
이성과 감성의 충돌에 눈동자가 불에 타는 듯 뜨거워지자, 세인이 악을 질렀다.
-그녀는 지금도 네 생각밖에 안 한다니까?
“제발! 제……!”
세인이 소리치는 그때, 머릿속의 무언가가 끊어지는 느낌이 들면서 풍경에 거대한 금이 갔다.
“뭐……!”
상상과 현실의 위치가 역전되면서 세인의 등골을 타고 섬뜩한 전율이 치솟았다.
“제길! 멍청한 자식!”
망상의 9시에서 탈출한 모두가 세인과 같은 눈빛으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가운데.
“쿠안…….”
오직 쿠안만이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검을 휘두른 자세로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히든 코드 (3)
***
시로네는 거핀이 4만 년 동안 연꽃에게 이야기를 했던 기록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오메가의 끝이 가까울수록 초조했으나, 이보다 빠르게 전지를 구축할 방법은 없었다.
‘우주의 모든 역사니까.’
관심은 거핀에게 있지만, 실제로 들어오는 데이터는 세계 전체에서 일어난 모든 사건.
심지어 외딴 행성 3,241번째 토끼가 8,790번째 토끼와 교미하여 17,653번째 토끼를 낳았다는 로그까지 전부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
“결정했다.”
시로네의 의식이 집중되어 있는 곳에서 거핀의 목소리가 11감으로 전해졌다.
그의 외모는 처음 왔을 때와 변함이 없었고, 보금자리가 되어 준 연꽃도 시들지 않았다.
“떠나야겠구나.”
‘이렇게 갑자기요? 어디로 떠나시려고요?’
거핀이 연꽃을 쓰다듬었다.
“그동안 고마웠다, 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들어 주느라. 미안하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이야기 말이군요. 인간은 신기해요. 참으로 놀라워요. 사실…… 저도 인간이 되고 싶어요.’
“아내와 자식을 잃었다.”
거핀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신이 된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지. 영원히 살아 봤자, 또 누군가를 잃는다면. 그때는 견딜 수 없을지도 몰라.”
‘많이 힘들어하셨죠. 제가 알아요.’
“차라리 처음부터 아무것도 없었더라면. 이 세상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