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finite Wizard RAW novel - chapter 951
세인이 말했다.
“지금 보면 없는 것 같군. 심지어 배경조차 신경 쓰지 않아. 우리가 치열하게 살아가는 세계가, 이미르에게는 이토록 단순한 것일까?”
“신들의 무덤이라고 했죠.”
시로네가 말했다.
“적어도 그들은 이미르가 인정을 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인상에 남은 존재가 하나도 없는 건 아니죠. 최소한 리안이라도 있어야 해요.”
미로가 지나가는 주민을 붙잡고 소리쳤다.
“야! 이미르 어디 있어?”
정신세계에서 자아의 이름을 키워드로 삼는 건 금기지만 주민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시로네……!”
미로의 주먹이 주민의 얼굴을 뚫고 들어갔다.
세인이 한숨을 내쉬었으나, 어차피 정신체일 뿐이었고 솔직히 속은 후련했다.
미로가 주먹을 거두자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주민이 휘청하더니 아래로 쓰러졌다.
“진짜 짜증 나는 게 뭔지 알아? 지금 박살 낸 이놈을 우리가 3천 번 만났다는 거야.”
사실 누구도 증명할 수 없는 문제지만, 그렇기에 미로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다 없애 버리자. 일단 숫자라도 줄여야 새로운 주민들을 만날 확률이 높아지지.”
시로네가 말했다.
“이미 도시 하나는 끝장냈잖아요, 가올드 씨가.”
그들은 심층 5단계의 세계에서 해 볼 수 있는 것은 전부 해 본 상태였다.
아리우스가 말했다.
“여기서 핵심은 이미르에 대한 키워드에 어떤 주민도 반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여기는 이미르가 아닌 다른 존재가 지배하는 세계일지도 몰라요.”
“이미르가 여태까지 싸웠던 신들의 이름도 전부 사용했잖아? 시로네의 오메가로 말이야. 심지어 이 세계의 최고 유행어인 ‘안녕하세요, 시로네 씨.’의 시로네도 써 봤어.”
아리우스의 걸음이 우뚝 멈췄다.
“안녕하세요, 시로네 씨?”
미로가 눈을 부릅떴다.
“너 맞을래?”
“아뇨, 이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어째서 이 세계의 주민들은 시로네 씨에게 인사를 하는 걸까요? 악몽을 뚫은 가올드 씨에게도 반응하지 않으면서요.”
시로네가 말했다.
“울티마 시스템하고 연관이 있을 것 같다고 했었죠. 하지만 이것저것 시도를 해 봐도 허사였잖아요.”
“물론 그렇습니다. 말씀드리고 싶은 건, 의식처럼 구성되어 있을 뿐 엄연히 이곳은 무의식이라는 겁니다. 표층에서처럼 특정 키워드를 찾아서 발동하는 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게 바로 패착입니다.”
미로가 말했다.
“결국 네가 착각했다는 거네?”
“실패는 인정합니다만…… 착각이라는 말은 전문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이죠. 모르는 것을 착각할 수는 없습니다. 저도 이런 종류의 심층은 처음이에요.”
“알았어. 계속 말해 봐.”
“만약 이곳이 표층이었다면, 주민들에게 개성이 없는 이유는 이미르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라고 해석할 수 있죠. 하지만 무의식에는 많은 것들이 중첩되어 있어요.”
“아하.”
아리우스가 두 팔을 펼쳤다.
“결국 전부인 겁니다. 저들 모두가, 즉 이 세계 자체가 키워드라는 거예요.”
이해가 되었다.
“하지만 그걸 안다고 달라질 게 있나? 결국 모든 걸 다 시도해 본 건 똑같잖아.”
“어쩌면…….”
잠시 말을 멈춘 아리우스가 장고 끝에 입을 열었다.
“시도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시로네가 물었다.
“그게 뭐죠?”
“역통합.”
아리우스가 검지를 들었다.
“주민들은 이미르의 관점이기도 하지만, 또한 가이아인이기도 한 겁니다. 악몽에서 말했던 단일화. 즉, 이들은 이미르가 생각하는 울티마 시스템의 가장 단순한 도식인 거예요. 그리고 그것을 시로네 씨가 깨지 못한 거죠.”
“음.”
거리마다 바쁘게 움직이는 주민들을 지켜보던 시로네가 순순히 인정했다.
“저 혼자로는 무리죠.”
“그래요. 그래서 반응이 없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만약 시로네 씨가 저들에게 통합되면 어떨까요?”
의미도, 목적도 찾을 수 없이 그저 거리를 배회하는 자들에게 섞이는 것.
마음의 기술을 극한까지 단련한 시로네는 무심의 상태에서 움직일 수 있다.
“아마도. 이곳의 주민들은 통합되어 있지만, 실제로 마음이 없는 껍데기에 불과하니까.”
단지 통합이라는 개념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알았어요.”
시로네가 곧바로 마음을 지우자 곁에 있던 세인은 섬뜩한 기분이었다.
‘완벽한 무심. 지금의 시로네는 정신과 육체의 작용만으로 존재할 뿐이다.’
시로네가 말했다.
“그럼 시작할게요.”
분명 입으로 내뱉은 말이지만 마치 기계처럼 감정이 결핍되어 있는 어조였다.
주민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자 주민들이 시로네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시로네 씨.”
그들의 말을 무심히 듣고 있던 시로네가 어느 순간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시로네 씨.”
세계의 모든 주민들이 우뚝 멈췄다.
시로네 일행은 시간이 멈춘 듯 완벽한 정적에 사로잡힌 세계를 초조하게 지켜보았다.
아리우스가 말했다.
“이미르의 무의식이 반응했습니다. 여기서 뭔가…….”
그 순간 주민들의 몸에서 발한 황금빛 광채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이데아?”
이미르를 이루는 100억 명의 가이아인이 만들어 내는 거대한 헥사였다.
하늘에서 거대한 음성이 들렸다.
-우리에게 속하지 않는 자여, 너의 존재를 부정한다. 이 세계에서 나가라.
현실이었다면 천지가 진동했겠지만, 이곳에서 괴로운 건 시로네 일행뿐이었다.
“크윽!”
-부정! 부정! 부정!
세계 전체가 파동을 일으키며 밀려들자 시로네 일행의 몸이 끝없이 밀렸다.
빠르게 정신을 되찾았지만 이미 수 킬로미터를 밀려 나간 상태였고, 미로가 화신술을 전개했다.
‘천수관세음.’
한계를 모르고 거대해지는 천수관세음의 화신이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엄청난 파공음이 터졌으나, 이 세계의 전체가 정의하는 힘을 막아 내지는 못했다.
“시로네! 울티마를 깨!”
시로네는 기계적으로 반응했고, 주민들에게 섞여 있던 곳에서 마음을 되찾았다.
‘부정을 부정한다.’
순간적으로 울티마 시스템이 둘로 분리되었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은.
“……!”
가히 세계가 초토화될 지경이었다.
풍경이 가시처럼 방사되자, 모든 구조물이 먼지처럼 부서지고 주민들이 비명을 질렀다.
“키에에에! 키에에에!”
인간과 더미의 중간에 위치한 형태들이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하자 오금이 저릴 정도로 무서웠다.
“깼어요! 이제 어떡해요?”
어느새 시로네가 미로 일행을 따라잡았으나, 그곳에도 주민들은 포화 상태였다.
“싸워!”
가장 약한 아리우스가 중앙에 위치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를 둘러싸고 방어진을 펼쳤다.
그리고 그들을 향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주민들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나가라! 나가!”
하얀 얼굴을 들이밀며 돌진한 주민이 투박한 구체의 주먹을 쳐들었다.
‘얼마나 강하지?’
이미르의 정신이기에, 그가 가이아인에 대해 느끼는 만큼의 위력일 터였다.
콰아아아앙!
주민의 일격을 정통으로 막아 낸 가올드의 형체가 충격파에 흩날렸다.
“가올드!”
강난이 접근하려는 그때, 구체의 주먹을 붙잡고 있는 가올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아. 이 정도면 버틸 만해.”
“신들의 무덤.”
아리우스가 말했다.
“이 세계는 울티마의 껍데기일 뿐이에요. 결국 이미르의 정신 속에서 이미르보다 강한 존재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는 전투의 연속이었다.
에어 프레스가 찍어 누르고 핸드 오브 갓이 손등으로 주민들을 후려쳤다.
‘너무 많아. 이래서는 끝이 안 나겠어.’
일행의 얼굴에 피로감이 떠오를 때까지도 행동에 나서지 않던 루버가 말했다.
“제가 하죠.”
하늘로 날아오른 그가 두 팔을 좌우로 벌리자 양쪽 손바닥 앞에 빛의 고리가 탄생했다.
“드림 머신.”
정신세계 안이라는 조건이 붙지만, 몽인은 모든 꿈을 오브제로 변환시킬 수 있다.
다만 렘 영역에서 멀어질수록 소환할 수 있는 오브제의 등급은 떨어진다.
‘심층 5단계라면 가능하다.’
렘 영역의 바로 밑 단계에서 루버가 소환한 오브제는 작은 목각 상자였다.
“.”
외형은 볼품없지만, 현실로 추출되었다면 등급조차 매길 수 없는 위험한 물건이었다.
“꿈에서 깨어나라.”
상자를 열자 이 세계에 머무는 모든 가이아인이 빛의 입자로 풀어지기 시작했다.
“뭐, 뭐야?”
는 드리모의 관청에서 특별 취급하는 세 가지 꿈 중의 하나다.
일종의 깨달음.
만약 현실로 나온다면 그 효과는 ‘순간적으로 광자계를 이탈한다.’가 될 것이다.
“크으윽!”
소환의 충격으로 드리모가 흔들리자 그 여파가 화신인 루버를 직격했다.
그럼에도 그는 상자를 닫지 않았다.
‘아직 부족해. 조금만 더!’
가 실제로 공격하는 것은 주민들이 아닌 이미르의 정신.
다만 무의식이라고 해도 심층 5단계였기에 막대한 충격을 주기란 무리였다.
“루버 씨! 더 이상은 위험해요!”
시로네가 소리쳤으나 루버는 이미 작정한 듯 상자를 연 채로 버틸 뿐이었다.
“시로네! 저기!”
미로가 하늘을 가리키자 모두가 돌아보았다.
들뜬 빛의 입자들이 어지럽게 움직이더니 하늘에서 하나의 점으로 뭉치기 시작했다.
거대한 음성이 들렸다.
-부정한다.
모두가 몸을 웅크리며 귀를 틀어막는 그때, 루버가 악을 지르며 추락했다.
“으아아아!”
상자가 악력을 무시하며 저절로 닫히고, 빛의 기둥이 송곳처럼 지상을 강타했다.
쿠우우우우웅!
심층 5단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느껴 보는 진동에 시로네가 전방을 살폈다.
“어?”
강철 같은 머리카락에 야수처럼 강렬한 인상, 맥클라인 거핀이 서 있었다.
“거핀…….”
시로네가 중얼거리자 일행이 돌아보았다.
“뭐?”
“맥클라인 거핀이에요.”
미로는 거핀의 얼굴을 빤히 살폈다.
기억은 나지 않지만 무서울 정도로 심장이 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마음이 기억하는 건가.’
“집중해.”
가올드가 말을 끊었다.
“놈이 움직인다.”
거핀이 천천히 다가오는 동안, 미라클 스트림이 피어올라 하늘로 솟구쳤다.
“핸드 오브 갓.”
시로네가 전개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손이 하늘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
무한이란(1)
맥클라인 거핀은 시로네가 태어나기 직전까지 세상에 실존했던 인물이다.
비록 말소되었지만, 그런 자를 눈앞에서 보는 시로네 일행의 충격은 상당했다.
“아니, 어째서…….”
아리우스의 표정은 심각했다.
시로네에게 들은 바에 의하면 이미르는 탄생 초기에 거핀과 충돌한 적이 있다.
‘당연히 마지막 관문일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도 막연하게나마 거핀이 마지막 관문일 거라고 생각했던 게 사실.
“이미르의 무의식이 감각의 크기를 기준으로 층위가 나뉘어 있다면…….”
시로네는 지금의 상황을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