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2
72장. 천궁(3)
“옥토끼가 달나라로 떠나기 전에 떡메랑 안반을 되찾아야 한다고?”
이야기를 들은 호구별성이 어처구니없어 했다.
“갑자기 뭔 달나라야?”
“그러게요, 왜 갑자기 달나라 토끼 설화가 튀어나왔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말꼬리를 흐리며 껑충껑충 뛰어다니는 토끼들을 허망하게 바라보았다.
워낙 수가 많아서 털뭉치들에게 점령당한 마을은 언뜻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겉보기에는 다들 똑같은 토끼인지라 저 중에서 달나라 옥토끼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아 보였다.
“아마 천궁의 주방을 열 때 열쇠를 여럿 사용해서 그럴 겁니다.”
단군이 조금 난감하게 턱을 만지며 말했다.
“열쇠에 담겨 있던 설화가 합쳐진 것이지요.”
“뭐야, 그럼 세 개 썼으니까 세 개가 섞이는 거야?”
“혹시 모르니 일단은 최소 세 개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염병할 우주 공노비들, 신화도 하나만 남기겠다더니 이제는 아주 설화까지 통합하고 있어.”
호구별성이 짜증스럽게 인상을 쓰며 마을을 뒤덮은 토끼 떼를 살폈다.
달나라를 그리워하는 옥토끼들을 숨겨주기 위해 단결했다는 토끼들이었다.
토끼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는 와중에도 우리를 놀리듯이 코를 벌름거리거나 귀를 쫑긋거렸다.
“그새 날이 어두워졌네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바리가 하늘을 가리켰다.
“달도 떴어요.”
“그러네? 혹시 달이 떠서 토끼들이 달나라로 떠나는 건가?”
안 그래도 제한 시간이 있는데 주변까지 어스름해지니 마음이 급해졌다.
빨리 달나라 토끼를 잡아야겠다 싶은데 강림 형이 서늘한 눈으로 토끼들을 가로 막고 섰다.
“일단은 손에 잡히는 대로 심문할 수밖에.”
“오…….”
토끼 사냥에 나서는 형을 지켜보며 호구별성이 작게 탄식했다.
“딱 봐도 저 커다란 놈이 귀여운 토끼를 괴롭히려는 불한당 같은데.”
크고 강한 강림 형이 작은 토끼들을 형형하게 노려보는 상황이 어째 좀 신경이 쓰이는 모양이었다.
허리를 쭉 펴도 형의 무릎에나 겨우 닿을 것 같은 토끼들은 형의 사나운 기세에도 아랑곳 않고 솜털로 만들어진 강물처럼 형의 주변을 휘젓고 다녔다.
파아앙!
검푸른 신성을 빛내며 형이 토끼에게 손을 뻗었다.
반장갑을 낀 형의 큼직한 손이 어느 토끼의 귀를 잡는 순간.
[ (!) 챔피언 토끼가 강림차사의 도전을 받습니다. ]뜻밖에도 팝업창이 뜨더니.
파아아앙!
형에게 귀를 잡힌 토끼의 앞발에 불쑥 빨간 권투 장갑이 둘러졌다.
“……챔피언 토끼?”
알 수 없는 팝업창에 형과 토끼를 주목할 때였다.
권투 장갑을 낀 토끼가 형에게 귀를 잡힌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용맹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쇄애애애액!
챔피언 토끼의 이름에 걸맞은 훅이었다.
작고 두툼한 주먹이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선명했다.
토끼의 기개에 놀란 강림 형이 눈을 가늘게 떴다.
“허.”
가볍게 뒤로 몸을 젖히는 것으로 훅을 피한 형이 토끼의 귀를 놓아주며 절도 있게 자세를 잡았다.
“권사였나?”
형이 낮은 목소리로 묻자 챔피언 토끼가 대답 대신 다시금 훅을 날렸다.
“다리는 쓰지 않는군.”
공격을 받아낸 형이 차분히 발설지옥의 신성을 발했다.
물론 토끼는 권투장갑을 낀 쪽도 다리라고 불러야겠지만, 형은 뒷다리로 곧게 선 챔피언 토끼를 주먹을 쓰는 권사로 인정한 듯했다.
탄탄하게 쭉 뻗은 다리 대신 오직 주먹으로만 승부하겠다는 챔피언 토끼였다.
그의 방식을 존중해주겠다는 듯이 형도 진중한 얼굴로 길고 단단한 팔을 뻗었다.
퍼어어억!
발설지옥의 일등권사와 토끼 챔피언의 주먹이 서로 맞부딪치며 검푸른 불꽃을 튕겼다.
[ (!) 챔피언 토끼가 강자와의 승부에 흥분합니다. ]형의 권이 마음에 들었는지 챔피언 토끼가 빠르게 잽을 날렸다.
쇄액!
쇄애애액!
쇄애액!
두 권사의 주먹이 서로를 노리며 쉴 새 없이 쇄도했다.
“와…….”
나는 형과 챔피언 토끼의 승부를 지켜보며 작게 탄성을 질렀다.
나 또한 발설지옥의 세례를 받은 몸이었으니 두 권사의 권이 얼마나 높은 경지에 이르렀는지 알 수 있었다.
“근데 형…… 챔피언 토끼면 애초에 달나라 토끼가 아닌 거잖아…….”
넋을 놓고 지켜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형은 오랜만에 수준 높은 권사를 만난 것이 기뻤는지 챔피언 토끼와의 승부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퍼어어어억!
마침내 로켓처럼 솟아오른 형의 주먹이 어퍼컷을 날리는 순간이었다.
[ (!) 챔피언 토끼가 강림차사의 강함에 탄복합니다. ]새로운 팝업창이 뜨더니 챔피언 토끼의 권투 장갑이 벗겨졌다.
[ (!) 챔피언 토끼가 강림차사를 새로운 챔피언으로 인정합니다. ]그러더니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챔피언 벨트를 남기고 사라졌다.
“…….”
형은 챔피언 토끼가 남기고 사라진 벨트를 내려다보더니 서늘한 얼굴로 그것을 주웠다.
발설지옥의 긍지가 깃든 두 눈이 마치 좋은 승부였다고 말하는 듯했다.
“네임드 토끼를 잡으면 서브 아이템을 얻을 수 있군요.”
지켜보던 단군이 설명했다.
“핵심은 떡메를 훔쳐 간 달나라 토끼를 잡는 것이지만 네임드 토끼를 잡는 것도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어쨌든 최대한 토끼를 잡아야겠군.”
사라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흩어져서 잡는 게 좋겠다, 대왕.”
“아…… 네, 그렇게 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형과 챔피언 토끼의 승부는 2분 남짓.
그리 오랜 시간을 지체한 것은 아니었으나 마을에 가득한 토끼들을 살피려면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우리는 제한 시간이 끝나기 전에 다시 초가집에 모이기로 말을 나누고는 각자 흩어졌다.
그렇게 달나라 옥토끼를 찾아 나선 지 10여 분.
나는 수많은 일반 토끼들과 세 마리의 네임드 토끼를 잡는 데 성공하였으나, 여전히 떡메는 하나도 구하지 못한 채였다.
네임드 토끼 중 하나는 불타는 고구마 토끼라는 이름의 빨간 토끼였다.
대체 왜 그런 토끼가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위기의 순간 멍군이 나와서 토끼가 던지는 고구마 폭탄을 먹어치워 준 덕에 다치지 않고 잡을 수 있었다.
다만 고구마 토끼가 남긴 보상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군고구마였다.
멍군이 내 가슴 속으로 돌아가지 않고 삽살개 특유의 깊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터에 그냥 멍군에게 주고 말았다.
그래도 고구마를 먹고 식욕이 돋은 멍군이 더욱 의욕적으로 불을 삼킬 것이라는 팝업창이 떴으니까.
아마도 불을 먹는 해태에게 무언가 영구적인 효과를 남긴 것 같기는 했다.
……물론 멍군은 불이라면 썩은 맛이라도 일단 삼키고는 했으니, 그것만으로는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졌는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다른 네임드 토끼는 날아다니는 흰 토끼라는 이름의 날개 달린 토끼였다.
이 또한 공군이 적절하게 나를 도와준 덕에 쉽게 잡을 수 있었다.
날아다니는 흰 토끼가 남긴 것은 작은 날개 모양 브로치였는데 이동 속도와 공격 속도를 높여준다고 하여 곧바로 사용했다.
세 번째 네임드 토끼는 몹시 빠른 발도술을 선보이던 검객 토끼였다.
브로치로 공격 속도를 높인 덕에 그리 어렵지 않게 잡을 수 있었다.
강림 형과 챔피언 토끼처럼 멋진 승부를 겨루지 못한 것은 좀 아쉬웠지만.
아무튼 그렇게 브로치를 단 이후 더욱 빠르게 마을을 수색할 수는 있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여전히 달나라 옥토끼의 행방은 오리무중인 상태였다.
“……그런데 정말 이렇게 하나하나 토끼를 찾을 수밖에 없는 건가.”
한참 마을을 뛰어다니다가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복불복이라도 이건 너무 심한데.”
이전의 여우골 던전도 운이 중요하긴 했다.
그래도 특별한 소를 잡지 못한다고 아예 던전을 클리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는데…… 여기도 무언가 좀 더 힌트가 있지 않을까.
“힌트라…….”
[ (!) 달이 그리운 옥토끼들이 달나라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제한 시간 : 5분 23초
생각을 가다듬으며 팝업창을 다시 확인했다.
“달이 그리운 옥토끼들…….”
그러고 보니 토끼들이 떡메를 훔칠 때부터 유독 달이 그립다는 게 강조되었는데…… 그냥 달나라 토끼들이라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그런 수식어를 붙인 이유가 있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쑥 알고 있는 정보를 규합해서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내리는 업경의 통찰이 머릿속을 스쳤다.
“여기서 달이 제일 잘 보이는 곳이 어딜까.”
달이 그리운 토끼들이라면 어딘가에서 달을 보고 있을 것이라는 숨겨진 힌트를.
“일차적으로는 지붕이겠지만…… 지붕에 올라간 토끼들은 못 봤고.”
그리 생각하자 쌀을 찌기 전에 조왕신에게 치성을 드리기 위한 물을 떠야 했던 것까지 새롭게 곱씹혔다.
“우물……?”
토끼를 잡는 미션이 시작되자마자 달이 뜬 것도, 사실은 우물에 달이 비치는 때를 의미했다는 것까지.
물론 그렇다 한들 역시 너무 추상적인 힌트였다.
업경의 통찰이 아니었다면 나도 그것들을 연관 짓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서둘러 마을 중앙의 우물로 향했다.
“여기 있었구나, 이 도둑 토끼들!”
[ (!) 달이 그리운 토끼가 당신의 추적에 경악합니다. ]다행히 통찰이 틀리지 않아서 우물에 모여 있던 토끼들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늘에 뜬 달보다도 우물에 비친 달이 조금이나마 더 가까이 느껴져서 하염없이 달만 바라보고 있던 듯했다.
[ (!) 달이 그리운 토끼가 달나라에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 [ (!) 달이 그리운 토끼가 달에서 떡을 먹고 싶어 합니다. ] [ (!) 달이 그리운 토끼가 달에서 가족들과 떡을 나누어 먹고 싶어 합니다. ]한데 이어지는 팝업창에는 어째 마음이 안 좋아졌다.
멀리 두고 온 가족들이 그립다는 토끼들의 외침이…… 그저 던전의 설정일 뿐일지라도 괜히 신경이 쓰였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 떡메가 필요해요.”
나는 토끼들과 눈을 맞추며 말했다.
“떡메로 떡을 만든 후에 다시 떡메를 빌려줄게요.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달에 돌아가면 안 될까요?”
신경 쓰이는 마음에 우선은 토끼들을 잡지 않고 말을 건넸다.
[ (!) 달이 그리운 토끼들이 당신의 뜻을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생각지 못한 팝업창이 이어졌다.
[ (!) 달이 그리운 토끼들이 당신에게 달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합니다. ]“달에 데려다 달라고?”
영문을 몰라서 눈을 끔뻑이는데 세 토끼들이 불쑥 하얀 빛을 발했다.
파아앙!
빛을 발한 토끼들은 훔쳐 갔던 떡메와 안반을 두고 세 개의 작은 옥토끼로 변했다.
흰 옥처럼 하얘서 옥토끼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진짜 옥으로 만들어진 옥토끼였다.
[ 달이 그리운 옥토끼(D) ]– 달에 데려다주면 떡을 얻어먹을 수 있을지도?
“……진짜로 달까지 가는 거야?”
나는 새로 나온 옥토끼 아이템을 인벤토리에 챙겨 넣으며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많은 생각이 들었으나 당장은 떡을 마저 만드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일단은 초가집으로 돌아갔다.
***
떡메와 안반을 찾고 잠시 뒤.
“그래도 시간 내로 떡메를 찾아서 다행이다.”
강림 형이 떡메로 열심히 친 떡에 먹음직스럽게 콩고물을 뿌린 호구별성이 말했다.
“전하, 용케 찾았어.”
그녀가 수고했다는 듯이 한입 크기로 자른 인절미를 내 입에 넣어주며 나를 칭찬했다.
“나름 힌트가 있긴 있더라고요.”
나는 그녀가 먹여준 인절미를 우물우물 씹으며 대답했다.
미션에 쓰일 아이템인데 이걸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맛이 좋아서 그대로 삼켜버렸다.
호구별성은 다른 일행들에게도 인절미를 하나씩 챙겨주고는 자기도 하나 쏙 입에 넣고 떡판을 챙겼다.
“자, 그럼 이대로 떡을 팔러 가 보자구.”
강림 형이 떡메를 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새 하늘에는 해가 떠 있었다.
이제 시장에 나가서 떡을 팔아야 하니 적당히 시간대가 맞춰진 모양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한 달 내내 떡을 파는 건 아닐 텐데 또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던전의 미션이 또 어떤 설화로 튈지 생각하며 대문을 나섰다.
“사실 떡이 나오는 설화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있기는 한데…….”
하필 달에 데려다 달라고 했던 옥토끼들을 떠올리며 찜찜하게 말꼬리를 흐리는 때였다.
-어흐으응!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정말로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아마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는다고 되도 않는 공갈을 부릴 호랑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