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1
72장. 천궁(2)
아버지의 재산을 물려받아라.
해금된 클리어 조건을 확인한 호구별성이 인상을 썼다.
“뭐야, 그럼 내가 지금 저놈 자식이야?”
그녀가 하얀 무명치마를 짜증스럽게 펄럭였다.
특별한 무늬 없이 낡고 해진 옷은 우리들의 아버지라는 배불뚝이 양반이 차려입은 비단옷과 대조되었다.
“염병! 자식들은 거적때기만 입히고 저는 번쩍번쩍하게 잘도 처입었네.”
“뭐, 그런 캐릭터라서 재산도 치사하게 조건 따져서 나눠주는 게 아닐까요.”
나는 멋쩍게 그녀를 달래며 이번 설화는 무엇일지 생각했다.
자식들을 시험하고 재산을 물려주려는 아버지라니, 아직은 무슨 이야기일지 감이 오지 않았다.
-흠흠!
우리를 둘러보던 양반이 헛기침을 하곤 하인에게 손짓했다.
-자, 여기 쌀 한 되가 있다.
우리와 똑같이 무명옷을 입은 여섯 명의 하인이 각각 손에 쌀을 한 되씩 들고 섰다.
-이 쌀을 가지고 별채에서 한 달을 버티면 재산을 나누어주마!
“아, 이 얘기였구나.”
나는 그의 말을 듣고 우리가 무슨 설화 속에 들어왔는지 알아챘다.
“이거 원래는 며느리 시험하는 얘기였을 텐데.”
어느 부잣집 외아들이 장성했을 때였다.
부자 아버지는 현명한 며느리를 얻겠다며 동네방네 방을 붙였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은 별채를 마련해주고 쌀 한 되와 보리 한 되를 줄 테니, 그곳에서 한 달을 버텨내면 며느리로 삼겠다는 조건이었다.
마을에서 제일가는 부잣집이 신붓감을 찾으니 많은 이들이 시험을 받았다.
어떤 이는 쌀과 보리를 아끼겠다고 며칠씩 굶어봤지만 결국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섰고.
어떤 이는 또 쌀과 보리를 90등분으로 나누어 버텨보려고 했지만 이 또한 한 끼 양이 너무 적어 오래가지 못했다.
또 어떤 이는 소문을 듣고 찾아와서 공짜 쌀과 보리를 홀라당 까먹어버리고 나가기도 했다.
이리되니 결국 한동안은 지원자가 없게 되었는데.
어느 날 옆 마을에 살던 가난한 집 외동딸이 시험을 받겠다고 나섰다.
그녀는 다른 이들과 달리 비범한 구석이 있어서.
별채에 들어오자마자 초를 켜고 맑은 물을 떠 부엌의 조왕신을 모시고는.
조왕신을 모신 아궁이에 보리 한 되로 밥을 지어 맛있게 먹었다.
그리한 뒤에 남은 쌀 한 되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떡을 빚어내니.
조왕신의 가호를 받은 떡은 아주 맛이 좋아서 시장에 내다 팔자 금방 동이 났다.
그녀는 떡을 판 돈으로 다시 쌀을 사서 떡 장사를 시작했는데.
약속한 한 달이 지나자 텅 비었던 별채의 곳간에 쌀이며 곡식이 가득하였다.
이에 부자는 귀인을 모셨다며 그녀를 당장 며느리로 데려왔고,
부잣집 며느리가 된 그녀는 재산을 더욱 불려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였다.
“며느리 대신 자식들을 시험하는 이야기로 바뀌었나 보네.”
나는 설화를 떠올리며 내 몫의 쌀을 내려다보았다.
설화의 해답이 그러하다면 아마 이 쌀을 떡으로 빚는 미션이 이어질 터였다.
비단옷을 차려입은 아버지와 어울리지 않게 집이 허름한 것도 아마 시험을 위해 마련된 별채이기 때문일 테지.
그렇다고 옷까지 허름하게 입힐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냥 그러려니 했다.
“좀팽이 자식. 쌀 한 되로 한 달을 먹고 살라네.”
호구별성이 쌀을 노려보며 독기를 뿜었다.
“이런 심보 고약한 놈들한테는 확 그냥 동티를 내려야 하는데.”
마마는 원래 상을 잘 차려줘서 돌려보내야 하는 신이었으니 심통이 날 법도 했다.
-험험! 그러면 내 한 달이 지나면 다시 오겠다!
쌀을 나누어준 양반이 대동한 하인들을 이끌며 초가집을 나섰다.
“설마 정말로 한 달이 걸리지는 않겠죠?”
“네, 아마 부엌에 가면 무언가 다른 미션이 이어질 겁니다.”
단군을 돌아보며 물었더니 그가 웃으며 설명했다.
“그 전에 우선 조왕신을 모실 물을 뜨는 게 좋겠군요.”
“아마 집 밖에 우물이 있는 것 같아요.”
이어지는 단군의 설명에 바리가 덧붙였다.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부엌의 인과가 밖으로도 이어져 있어요.”
한동안 말이 없더니 계속 집 전체의 인과를 살피던 모양이었다.
나는 바리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일행들과 함께 초가집 밖으로 나섰다.
“뭐야, 마을도 제법 넓네?”
우물을 찾아 마을 한가운데로 나서며 호구별성이 고개를 갸웃했다.
“떡을 만들면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니까 이것저것 만들어 놨나 봐요.”
그녀의 말을 받으며 주변을 살폈다.
크고 작은 집집마다 세간살이까지 야무지게 구현된 마을이었다.
한데도 어째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 게 어딘가 어색하긴 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구조를 기억해 두는 게 좋겠네요.”
나는 마을의 광경을 꼼꼼하게 훑어보며 발걸음을 옮겼다.
**
그리하여 잠시 뒤.
마을 중앙의 우물에서 물을 길은 우리는 다시 부엌에 돌아왔다.
“어휴, 여기도 영 못 쓰겠구만.”
부엌에 들어선 호구별성이 혀를 쯧쯧 찼다.
벽의 곳곳에는 금이 가 있었으며 아궁이는 차갑게 식어서 거미줄이 가득했다.
본래 조왕신은 화신(火神)인지라 아궁이에 모시는데 그게 저리되었으니 보통이라면 조왕신이 떠나고도 남았을 텐데.
“아궁이에 꽤나 고약한 인과가 숨어 있군요.”
조왕신에게 올리는 초에 불을 붙이며 단군이 말했다.
“그냥 불부터 붙였으면 액을 쫓지 못해서 화를 입었을 겁니다.”
“바탕이 된 설화를 알아서 다행이네요.”
나는 그의 말을 받으며 멋쩍게 웃었다.
만약 설화를 몰랐다면 대뜸 쌀 한 되로 한 달을 버텨야 한다는 것부터 당혹스러웠을 텐데, 그래도 무엇을 해야 할지 어느 정도 짐작하는 바가 있어 다행이었다.
화르르륵!
조왕신에게 치성을 들인 단군이 주술로 아궁이에 불을 붙였다.
“아…….”
불이 켜짐과 동시에 훅하고 밀려드는 환상에 입술을 달싹였다.
“조왕신…….”
흰옷을 입고 부뚜막에 앉아서 푸근하게 웃음 짓는 조왕신의 환상이었다.
[ (!) 조왕신이 아궁이에 축복을 내립니다. ]팝업창이 뜬 것을 보아 우리가 제대로 공략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가택신들이 모두 모여서 천궁을 지키고 있다고 했었죠?”
문득 드는 생각에 일행들을 돌아보며 말을 꺼냈다.
“천궁은 던전이 되었는데 그분들은 어떻게 되신 걸까요?”
이곳이 던전인 이상 아무래도 방금 봤던 조왕신의 환상이 실제 조왕신의 뜻은 아닐 테니까.
“그래, 천지왕의 네 충신도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이 나오지 않은 것도 이상했지.”
내 말이 신경 쓰였는지 사라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보탰다.
“뭘 복잡하게 생각해. 던전 됐으니까 더 이상 천궁을 안 지켜도 되잖아. 한동안 혹사당했으니 밖에서 쉬고 있겠지.”
듣고 있던 호구별성이 시큰둥하게 말했다.
말은 그리해도 당장은 가택신들을 걱정해 봤자 사정을 알 수 없으니 화제를 돌린다는 게 느껴졌다.
그에 나와 사라도 더 말을 이어가지 않고 쌀이 익어 가는 가마솥만 내려다보았다.
화르르륵.
화르르르륵.
가짜 조왕신의 가호를 받은 아궁이가 금세 하얀 김을 뿜었다.
“오, 이거 순식간에 익네?”
솥뚜껑을 열어본 호구별성이 휘파람을 불었다.
“제법 먹음직스럽게 쪄졌다.”
던전이라서 그런지 금방 떡을 만드는 찐 쌀이 완성되었다.
익은 쌀의 달콤한 냄새가 벌써 입맛을 돋우는 듯했다.
“이거 이제 찰지게 쳐주면 될 것 같은데?”
호구별성이 솥을 들고 서서 우리를 돌아봤다.
“안 그래도 마루에 안반이랑 떡메가 있더라고요. 그걸로 치면 될 것 같아요.”
나는 그녀에게서 솥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솥이 무거워 보여서 호구별성 대신 내가 든 것이었는데, 내가 솥을 들자 강림 형이 다시 그것을 받아들었다.
“떡메는 제가 칠 테니 대왕님께서는 그동안 쉬시지요.”
솥을 든 형이 큰 걸음으로 성큼 부엌을 나서며 말했다.
“예? 아뇨, 떡메 두 개던데. 다 같이 번갈아 치면 되죠, 형.”
“에이, 아서라. 전하가 그 젓가락 같은 팔로 열 번 치는 것보다 저놈이 고목 같은 팔로 한 번 치는 게 더 찰질걸.”
장정이 넷이나 되는데 굳이 형이 혼자 칠 이유가 없어서 말렸더니 호구별성이낄낄 웃었다.
“꼴도 머슴이나 다름없는데 그냥 저놈 시켜.”
머슴이라는 말에 형이 짙푸른 눈으로 호구별성을 흘겨보았다.
그래도 형은 달리 토를 달지 않고 마당에 솥을 내려놓고는 가볍게 손목을 돌리며 떡메를 칠 준비를 했다.
“흐음, 가만 보자니 떡이 아니라 사람이라도 칠 기세군.”
“…….”
천천히 손목을 푸는 형의 뒷모습이 묘하게 살벌했는지 지켜보던 사라가 한마디 했다.
“그러면 제가 떡메를 가져올게요.”
나는 그의 농담에 웃음을 참으며 떡메와 안반이 놓인 마루로 갔다.
“응?”
그런데 마루에 다가갔을 때였다.
겹쳐 놓은 떡메 뒤로 불쑥 보송보송한 털뭉치가 솟았다.
“토끼……?”
하얀 토끼가 쫑긋하고 귀를 세우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토끼…… 토끼라니?”
나는 토끼를 보고도 순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여기서 토끼를 마주칠 이유가 없는 터라 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토끼도 내가 낯선지 연신 고개만 갸웃거렸다.
“으음, 설마 그냥 귀여우라고 여기 있는 것은 아닐 텐데.”
토끼야 귀엽지만 이곳은 엄연히 던전이었다.
왜 갑자기 토끼가 나왔는지 몰라 살짝 긴장하며 토끼를 주시했다.
눈을 가늘게 뜨며 토끼를 노려보려니, 고개를 갸웃거리던 토끼의 뒤로 두 마리의 토끼가 더 튀어나와서 쫑긋쫑긋 귀를 세웠다.
“……한 마리가 아니었네?”
세 마리의 토끼 친구들과 서로 눈빛을 주고받는 찰나.
[ (!) 달이 그리운 옥토끼들이 떡메와 안반을 발견했습니다. ]뜻밖에도 팝업창이 떴다.
[ (!) 달이 그리운 옥토끼들이 떡메와 안반을 챙겨갑니다. ]“으응?!”
이어지는 팝업창에 놀라서 다시 토끼들을 내려다보자, 토끼들이 저마다 떡메와 안반을 챙기고는 껑충 마루 밑으로 뛰어내렸다.
그리고는 껑충껑충 마당을 가로질러 빠르게 대문 밖으로 나갔다.
“어어……?!”
나는 토끼들이 떡메와 안반을 훔쳐 가는 것을 멍청히 지켜보다가 한발 늦게 정신을 차렸다.
“설마 미션인가?!”
[ (!) 달이 그리운 옥토끼들이 달나라로 떠날 준비를 합니다. ]제한 시간 : 20분 30초
“아앗! 진짜잖아!”
뒤늦게 경악하며 일행들에게 달려갔다.
“전하? 뭐야?”
마당에서 팔짱을 끼고 섰던 호구별성이 나를 보며 어리둥절해했다.
“큰일 났어요! 토끼들이 떡메랑 안반을 훔쳐 갔어요!”
“응? 뭘 훔쳐 가?”
말하면서도 어처구니가 없는데 호구별성도 둥그렇게 눈을 뜨고 물었다.
“아까 그 토끼? 아무것도 없던데?”
“으아아! 그럼 토끼가 떡메를 인벤토리에 넣었나 봐요!”
“토끼가 인벤토리도 있어?”
“이대로 가면 달나라로 떠나버릴 거예요!”
“으응?”
어째 말할수록 나도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나는 설명을 하는 대신 일행들에게 일단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대문 밖으로 나섰다.
시간이 없으니 토끼를 잡으러 다니며 말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 마을의 토끼들이 달을 그리워하는 옥토끼들을 가엾어합니다. ]한데 우리가 대문 밖으로 나서는 순간 또다시 이상한 팝업창이 이어졌다.
[ (!) 마을의 토끼들이 달을 그리워하는 옥토끼들이 무사히 달나라에 갈 수 있도록 단결합니다. ]“아니, 이게 뭐야?!”
걸음을 멈춰선 호구별성이 경악했다.
“이게 마을이야, 토끼농장이야?!”
수백, 아니 수천은 되어 보이는 하얀 토끼들이 그새 마을 전체를 바글바글하게 채우고 있었다.
“아앗! 설마 이 많은 토끼들 중에 도둑 토끼들을 찾아야 하는 거야?!”
아무도 없는 마을을 굳이 이만큼이나 넓게 구현한 게 그런 이유였다니!
나는 두 눈을 멀뚱히 뜨고도 토끼들이 떡메와 안반을 훔쳐 가도록 내버려 둔 것을 자책하며 머리를 쥐어뜯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