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50
72장. 천궁(1)
여우골 던전을 클리어했다.
그러나 우리는 곧장 던전을 나서지 못하고 멈춰 섰다.
백탑주가 사라진 자리에는 종이로 접은 여우 인형만이 우릴 놀리듯 남아 있었는데, 그마저도 내 손이 닿은 순간 재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그러니까 방금 걔가 백탑의 탑주라고?”
이야기를 들은 호구별성이 인상을 썼다.
“한반도에서 땅따먹기 하던 것들이 하늘은 또 언제 왔대?”
“꽤 오래전부터 천계에 도사가 숨어들었다고 했어요.”
나는 그녀의 말을 받으며 옆에 선 남자를 돌아보았다.
“그렇죠, 단군?”
내 물음에 단군이 여느 때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다만 백탑주가 이곳에 직접 올 줄은 몰랐군요.”
“…….”
그 대답에 나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대나무숲의 남자 외에 백탑주의 존재도 알고 있었을까 궁금하여 일부러 물은 것이었다.
하나 방금의 대답만으로는 단군이 백탑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지 파악할 수 없었다.
“정말로 몰랐나?”
그때 강림 형이 서늘한 눈으로 단군을 노려보았다.
“숨어 있던 그자와 대왕님께서 검을 부딪치게 될 것을, 정말로 모르고 있었나?”
형은 내가 백탑주와 충돌한 것이 못마땅한 모양이었다.
그 화를 이런 식으로 곧장 단군에게 풀어낼 만큼.
“그녀가 이곳에 올 줄은 정말로 몰랐습니다.”
형의 추궁에 단군이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삼신의 도움을 받아 최대한 자세히 미래를 살폈습니다만, 상대도 제법 오래전부터 준비했기에 변수가 많았습니다.”
굳이 삼신의 이름을 입에 올린 것은 형이 그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터였다.
자신은 믿지 못하더라도 생불왕은 믿어야 한다는 뜻이겠지.
또한 그것은 그가 내 신뢰를 시험하려 했을 때 내가 그에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것이기도 했다.
“다만 백탑주가 어떻게 삼신과 제 눈을 피했는지는 어느 정도 짐작이 됩니다.”
그가 차분히 말을 이었다.
“삼신과 제가 설계한 미래를 건드리지 않는 대가로 여우골에 온 것이겠지요.”
나는 그의 말에 백탑주가 남긴 말을 떠올렸다.
-서로 목적을 달성했으니 지금은 이쯤 하도록 하지요.
삼신과 단군이 설계한 미래라면 내가 여우골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었을 테니, 백탑주는 그것과 상관없이 뜻한 바를 이루었다는 뜻일 터였다.
“백탑주가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했을까요?”
백탑주의 말을 곱씹다가 형과 단군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여우 인형을 소환해서 매구를 조종했지만 결론적으로 그녀가 얻은 것은 없어 보이는데요.”
“매구를 조종하는 것 자체가 목적일 수도 있습니다.”
내 물음에 단군이 나지막하게 설명했다.
“규모가 큰 주술을 실현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요. 그중에는 목표로 하는 주술보다 규모가 작은 주술부터 시전해서 점차 늘려가는 수도 있습니다.”
만물의 인과를 읽는 깊고 검은 눈이 차분히 나를 보았다.
“중요한 건 인간의 의지가 개입된 결과가 우주의 시공간에 편입된다는 사실이지요.”
그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이해할 수 없었으나, 매구를 조종하는 것이 그보다 더 강력한 존재를 조종하기 위한 중간 과정이라는 것만큼은 알아들었다.
“…….”
단군의 설명에 형은 더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럼에도 그는 무언가 탐탁지 않은지 서늘한 눈으로 단군을 주시하다가 천천히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대왕님, 매구가 남긴 아이템입니다.”
형이 인벤토리에서 주먹만 한 보주와 작은 열쇠를 꺼내서 내밀었다.
“아…….”
나는 형이 건넨 보주를 내려다보았다.
여우불처럼 푸르스름한 구슬에서 제법 신묘한 기운이 느껴졌다.
단군이 그의 신수 폭군에게 주고 싶다던 여우구슬이었다.
……지금 이걸 바로 단군에게 주면 형이 싫어하겠지.
손안에서 구슬을 굴리며 조금 머쓱하게 단군과 형을 살폈다.
여우구슬을 폭군에게 주고 싶다는 말은 모두 함께 들었으니 형은 일부러 내게 구슬을 넘긴 것일 터였다.
나한테는 딱히 쓸모가 없는데도 그냥 단군에게 내어주기 싫어서.
단군을 노려보던 짙푸른 눈이 이제는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내게서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시선에 결국 작게 한숨을 내쉬며 구슬을 인벤토리에 넣었다.
역시 나중에 형의 기분이 조금 풀리거나 단군과 둘만 남게 되었을 때 주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 열쇠가 천궁을 여는 열쇠인가요?”
여우구슬은 집어넣고 열쇠만 들어 보이며 단군에게 물었다.
자그마한 열쇠에는 여우 꼬리 모양의 털 장식이 달려 있었다.
단군은 내가 구슬을 챙기는 것을 보고서도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처럼 그저 사람 좋게 웃는 얼굴이었다.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으니 바로 천궁으로 가면 되겠습니다.”
그가 공략이 완료된 여우골 던전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여전히 꽤 많은 던전이 남아 있습니다만, 결국 핵심은 필요한 열쇠를 얻는 것이니까요. 지금쯤이면 아마 다른 도전자들도 천궁으로 향할 겁니다.”
다른 도전자들.
그리 말하는 것을 보건대 역시 벽하원군 외에 정체불명의 네 번째 도전자까지 염두에 두는 듯했다.
***
천궁.
일곱별의 중심이 되는 하늘의 궁전.
단군의 말에 따라 우리는 곧장 중앙의 천궁으로 향했다.
“오…… 그새 문을 걸어 잠갔네?”
호구별성이 목을 쭉 펴며 천궁의 성문을 올려다봤다.
평소 성문을 지키던 천지왕의 병사들 없이 굳게 잠긴 문에는 대나무숲이나 여우골 던전이 그랬던 것처럼 금줄이 걸려 있었다.
“흐음, 던전이 되어서인지 확실히 기운이 다르구나.”
사라가 천궁의 주변을 훑으며 한마디 했다.
“천계를 지탱하던 천지왕의 기가 느껴지지 않아.”
“진짜네. 이렇게 보니 천궁도 크기만 엄청 컸지 그냥 낡은 성이구만.”
호구별성이 동의를 표하며 팔짱을 꼈다.
던전이 되었어도 천궁의 성채는 여전히 화려하고 고풍스러웠다.
하나 성문을 지키던 병사도, 궁궐을 드나들던 천신들도 없으니 성이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자리를 지켜온 자연물 같은 인상을 풍겼다.
“여우골에서 얻은 열쇠로 문을 여시면 됩니다.”
문 앞에 선 단군이 내게 말했다.
고개를 끄덕이고는 천천히 열쇠를 밀어 넣었다.
파아아앙!
열쇠를 돌리자 하얀빛이 산개하며 순식간에 주위의 풍경이 바뀌었다.
[ (!) 공간의 지배베멋뇬깬뚜흐흐흐이 바뀝니다. ]던전의 입장을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 ‘천궁’에 입장하벨곽땍귀룔흐흐흐니다! ]– (!) 해당 던전벨덮됩흐 등급은 ‘영웅담’입베깩됩흐다.
– 클리어 조건 : 하베깆땍긍똴흐흐흐 옥좌를 수호벴녀땍귁뜁흐흐흐오.
“이건 또 뭐야.”
팝업창을 확인한 호구별성이 인상을 썼다.
“옥좌를 지키라는 건가?”
“네, 최종적으로 열리는 던전에서 하늘의 옥좌를 수호해야 합니다.”
단군이 오류창을 해석해 주었다.
“마지막 던전이 열리기 전에 천궁의 비밀 던전을 클리어하는 것이 유리하지요.”
“흐응, 거기서 뭔가 좋은 게 나오나 보지?”
“네, 유해교반 때와 비슷합니다. 비밀 던전을 클리어하면 하늘의 옥좌를 지킬 때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천궁의 내부를 살폈다.
“전에 왔을 때와 딱히 다르지는 않네요.”
던전이 되었으니 무언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했는데 궁궐의 구조는 이전과 같았다.
넓은 터에 궁궐의 여러 건물들이 흩어져 있어 당장 어느 곳으로 가야 할지 다소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흠, 이거 재수 없으면 다른 도전자들이랑 마주칠 수도 있겠는데?”
내 말에 호구별성이 눈을 가늘게 뜨며 주위를 살폈다.
“그것도 어느 정도 의도되었을 겁니다. 다른 도전자들보다 빨리 필요한 던전을 클리어하든지, 아니면 던전 안에서 도전자들끼리 싸움을 벌이라는 뜻일 테지요.”
단군이 그녀의 말을 받았다.
“우리는 주방으로 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가 성큼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그 편이 제일 효율적일 것 같군요.”
천궁의 주방이라면 궁궐의 내조 침전 영역에 있었다.
천지왕을 비롯한 천궁의 신하들이 머무는 침소와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단군을 따라 천지왕의 수라와 잔치 음식을 차리는 주방으로 향했다.
“어휴, 주방인데 어째 화기가 하나도 없네?”
외주방 앞에 선 호구별성이 눈을 끔뻑이며 입구를 살폈다.
외주방의 문도 다른 던전의 자물쇠로 잠긴 상태였는데 두꺼운 쇠문 너머로 사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수라를 차리는 내주방이야 천지왕이 오랫동안 부재중이니 그렇다 치지만.
바로 어제도 연회의 음식을 차리느라 아궁이의 불이 꺼지지 않았을 외주방이 기척 없이 사늘한 것은 조금 묘하게 다가왔다.
“이제 이 열쇠를 쓰면 될까요?”
외주방의 앞에 서서 단군에게 물었다.
“문곡성에서 얻은 열쇠예요.”
인벤토리에서 대나무잎이 달린 열쇠를 꺼내 그에게 보여주었다.
“네, 이것들과 합쳐서 쓰시면 됩니다.”
단군이 인벤토리에서 다른 열쇠 두 개를 꺼내며 내게 내밀었다.
“거문성과 녹존성에서 얻은 열쇠입니다.”
생각지 못한 말에 순간 당황해서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은 곧 다른 두 개의 핵심 던전에서 얻은 열쇠도 내게 넘기겠다는 뜻이었다.
“세 열쇠를 한 번에 사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단군이 먼저 내 손에 다른 열쇠를 쥐여주었다.
파아앙!
그가 열쇠를 쥐여준 순간 세 열쇠가 하얀빛을 발하더니 그대로 단 하나의 열쇠가 되었다.
“이제 문을 여시면 됩니다.”
그는 내가 당황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면서 문을 가리켰다.
“…….”
나는 결국 다른 말은 하지 못하고 열쇠를 꼭 쥐었다.
핵심 던전에서 얻을 수 있는 일곱 개의 열쇠 중 세 개가 내 손에 들어와 있었다.
[ (!) 공간의 지배베멋뇬깬뚜흐흐흐이 바뀝니다. ]열쇠를 돌리자 또다시 새로운 공간이 펼쳐졌다.
[ ‘천궁-주방’에 입장하벨곽땍귀룔흐흐흐니다! ]– (!) 해당 던전벨덮됩흐 등급은 ‘영웅담’입베깩됩흐다.
– 클리어 조건 : (……)
클리어 조건이 해금되지 않은 것을 보아 무언가 선행해야 할 퀘스트가 있는 듯했다.
“오, 뭐야.”
호구별성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옷이 또 바뀌었네?”
여우골에서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새 또 옷차림이 바뀌어 있었다.
또한 어째 다 쓰러져 가는 초가집에 서있었는데, 배경과 의상이 변한 것을 보아 또다시 무언가 던전의 바탕이 된 설화를 따라가야 하는 모양이었다.
“흐음, 이번에는 성별이 그대로인가 보구나.”
사라가 일행들을 두루 가리키며 말했다.
바리와 호구별성은 여자 한복이었고 나머지는 남자 한복 차림이었다.
다만 고풍스러운 도포 차림이었던 여우골 때와 달리 모두 하인들이 입을 법한 하얀 무명옷이었다.
“완전 노비 신세잖아, 이거! 하나도 안 예뻐!”
바뀐 옷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지 호구별성이 툴툴거렸다.
늘 화려한 비단옷만 입었으니 거친 무명옷은 성에 안 찰 법도 했다.
“흐음.”
다른 이들의 차림새를 죽 훑던 그녀의 시선이 문득 나에게 고정되었다.
“그래도 전하는 좀 귀엽다. 특히 머리띠가. 흰색이 잘 받네.”
하인 차림이 되어서인지 이번에는 갓 대신 이마에 하얀 머리띠를 두르게 되었는데, 나는 좀 어색한 기분이었다.
“그런가요?”
왠지 민망해서 뺨을 긁으려니 그녀가 씨익 웃으면서 손을 뻗어 왔다.
“리본을 위로 올려서 묶어 볼까?”
“아앗, 아뇨, 괜찮아요, 누나.”
“왜? 그쪽이 더 귀여울 것 같은데.”
짓궂은 손을 피해 뒷걸음질을 칠 때였다.
-어험!
기와집의 안쪽에서 근엄한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다들 모였느냐!
졸부처럼 화려한 비단옷을 차려입은 배불뚝이 중년 남성이 거드름을 피우며 걸어 나왔다.
주위로는 우리처럼 무명옷을 입은 하인들이 공손하게 손을 모으고 선 게 이런 허름한 초가집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내 누누이 말했던 대로 이 아비의 시험을 통과하는 자식에게만 재산을 물려주겠다!
위엄 있는 선언과 함께 팝업창이 떴다.
[ (!) ‘천궁-주방’의 클리어 조건이 해금되었습니다. ]-아버지의 신뢰를 얻어 재산을 물려받으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