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65
75장. 신목 개화(5)
주몽이 내 몸을 고쳐준 직후 우리는 태양을 찾아 나섰다.
지금도 시시각각 천신들을 위협하는 수명장자를 쓰러트리기 위해선 필드의 법칙이 된 2개의 태양과 2개의 달을 없애야 했다.
우리가 헤매는 곳은 일곱 별 중 염정성의 어딘가였다.
수명장자의 습격을 당한 염정성은 곳곳에 부서진 건물의 잔해가 나뒹굴었다.
헤집어진 길 위로는 귀수에 잡아먹힌 천신의 흔적마저 산재했다.
-이 필드는 천궁 던전을 바탕으로 전개된 필드니까요.
태양을 찾아 발걸음을 내디디며 주몽은 말했다.
-태양과 달을 전부 없애면 천궁 던전처럼 수명장자와의 대결로 돌입할 거예요. 그럼 흩어져서 신화전을 벌이던 자들도 한데 모이겠죠.
그는 내가 헤어진 일행들을 신경 쓰는 것을 알고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때는 뭐, 내 가슴이 찢어져도 대왕님을 보내드릴 수밖에 없지.
나는 그의 능청에 한숨을 쉬고 물었다.
-벽하원군은 어디 가고 당신만 태양을 없애러 온 겁니까.
일행과 떨어진 것은 벽하원군의 조력자인 그도 마찬가지였다.
벽하원군의 필드에서 신화전을 벌이는 와중에도 그는 줄곧 혼자서 행동한 듯했다.
그에게 태양을 없애라고 지시한 걸 보아 그녀가 상황에 아예 관여하지 않는 것은 아닐 텐데도.
-글쎄요, 인간들 일은 인간들끼리 알아서 하라던데?
내 물음에 그는 남의 일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어쩐지 나보고 뜬금없이 하늘의 신화 계승전에 끼라더니. 어쩌면 이렇게 될 걸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손이 심심한지 그는 작은 큐브를 꺼내 쥐락펴락했다.
필드를 전개한 카르마 포인트를 소모해서 만든 법칙의 핵이었다.
-그래도 자기네 카르마 포인트는 마음대로 써도 된다더라고. 덕분에 시험 삼아 여럿 만들어 보고 있죠.
이번 신화전에서 주몽은 그의 길드 고구려의 자원은 소진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는 공기놀이하듯이 큐브를 손등에 얹는 묘기를 부리며 말을 이었다.
-그냥 도혁이가 하늘을 갖는 게 싫은 줄 알았는데. 청탑주의 존재까지 꿰뚫어 봤으려나.
그 말에 문득 벽하원군이 북유럽에서부터 단군에게 적대감을 보이던 것이 떠올랐다.
그녀는 그 남자에게서 무엇을 봤던 것일까.
-내가 청탑주를 막지 못하면 직접 나서겠다고 하긴 했어요. 한반도 하늘에 딱히 관심은 없지만 인간한테 넘어가는 꼴은 못 본다나?
설명을 이으며 주몽은 불쑥 흥미가 깃든 눈으로 나를 훑었다.
-이제 보니 내가 아니라 우리 대왕님의 활약을 기대한 것 같지만.
은근한 시선에 새삼 그가 나와 벽하원군의 얼굴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
하나 그 기이한 조화에 대해서는 나도 달리 아는 게 없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입을 다물었다.
그저 그녀가 자신과 닮은 얼굴에 처지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내게 호의를 보였다는 것만을 한 번 되새길 뿐.
그 대화를 끝으로 나는 더 이상 벽하원군에 대해 묻지 않았고, 주몽 또한 시답잖은 농이나 걸며 계속해서 염정성을 수색했다.
펄럭!
한편 나무 감옥에서 탈출할 수 있게 도와준 공군도 여전히 내 곁을 지켰다.
공군은 내 발걸음에 맞추다가도 간혹 높이 날아서 훌쩍 앞까지 다녀오곤 했는데, 아마 우리가 가는 길을 먼저 가서 살피는 것 같았다.
펄럭!
펄럭!
그러다가 공군은 가끔씩 갈퀴처럼 뻗은 발톱을 뽐내며 주몽의 머리 위에 바짝 붙어서 날기도 했다.
-악! 대왕님, 얘가 또 나 괴롭혀요!
딱히 공군이 위협을 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몽은 그럴 때마다 일부러 죽는 소리를 내며 엄살을 부렸다.
공군은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몇 번이나 아슬아슬하게 주몽의 긴 머리카락을 스쳤고, 주몽은 우는 시늉을 하며 장단을 맞췄다.
단군의 신수인 것을 한눈에 알아보더니 친분이 있어서 서로 잘 놀아주는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태양을 찾아 염정성 일대를 헤매기를 한참.
펄럭!
앞에서 날던 공군이 우뚝 멈추었다.
“뭔가 있는 건가?”
나는 공군의 반응에 긴장하며 앞을 주시했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아무도 없는 망가진 거리뿐이었다.
그런데 시각보다 앞서 업경을 타고 어둡고 불쾌한 그림자가 덮쳐 왔다.
“가시…… 덤불?”
살아서 움직이는 듯한 굵은 나무뿌리.
그것을 휘감은 검고 날카로운 가시를 인식하는 찰나.
촤르르륵!
물의 벽이 치솟으면서 내 시야를 가렸다.
“이런, 조심해야겠어요, 대왕님.”
나긋한 목소리에 되레 흠칫 놀라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투명하게 일렁이는 물의 벽 너머로 촉수처럼 꿈틀거리는 검은 줄기가 눈에 들어왔다.
주몽이 재빨리 둥글게 벽을 치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포위되었을 것이다.
펄럭!
전방을 살피던 공군이 반원을 그리며 내 옆으로 돌아왔다.
“저것들의 기운을 먼저 느꼈나 보네요.”
공군을 돌아본 주몽이 물의 벽을 향해 가볍게 손짓했다.
파장창!
우리를 둘러싼 물의 벽이 순식간에 하얗게 얼어붙었다.
파장창창!
주몽이 한 번 더 손짓하자 얼음벽은 날카로운 얼음 파편으로 폭발했다.
“아……!”
파편이 흩뿌려진 주변을 돌아보며 작게 탄식했다.
“언제 이렇게 많이…….”
사방은 어느새 괴물의 촉수처럼 굵은 나무뿌리로 가득했다.
끝이 땅에 박힌 나무뿌리들은 청탑주의 목각인형들이 그러했듯이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필드를 전개할 때부터 심어져 있던 법칙이네요.”
주몽이 뿌리의 인과를 읽으며 팔짱을 꼈다.
“원래도 땅속에서 살기를 흡수하고 있긴 했는데, 이렇게 갑자기 뚫고 나오는 건 침입자를 견제하려는 장치였을 거예요.”
나는 그의 설명에 한숨을 쉬며 말을 받았다.
“그럼 제법 태양에 가까워졌나 보군요. 경계를 강화한다는 거니까.”
“오, 오히려 반기는 얼굴이네?”
뿌리의 등장은 결국 우리가 목표에 가까워졌다는 뜻이었다.
그것을 짚어내자 주몽이 마음에 든다며 웃었다.
“근데 저 뿌리들 그냥은 지나치기 힘들겠어요. 일부는 저주가 담겨 있네.”
그가 길을 가로막은 뿌리들을 다시 살폈다.
“뿌리 자체는 쉽게 치울 수 있는데 그게 함정이에요. 뿌리를 치우다가 저주에 걸려서 힘이 빠지라는 거지.”
“당신 눈으로도 알아보기 힘듭니까?”
“조금? 상대도 도사의 눈을 감안하고 짠 법칙이니까.”
그가 새침하게 눈썹을 들썩였다.
“찾을 순 있는데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요.”
시간이 걸릴 뿐, 안전한 뿌리를 찾을 수는 있다는 뜻이었다.
하나 신목이 언제 개화할지 모르는 상황에 무작정 시간을 들일 수도 없었다.
나는 잠깐의 생각 끝에 그에게 물었다.
“저주를 알아보는 길잡이가 있으면 됩니까?”
“음, 그러면 딱이긴 한데. 혹시 누구 있어요?”
주몽이 관심을 보이며 나를 바라볼 때였다.
우리의 대화를 들었는지 가슴팍에서 은빛이 번쩍였다.
파아앙!
달빛이 담긴 신성이 커다란 신수의 형태를 빚었다.
손모아장갑을 낀 커다란 앞발에 하얀 털이 보송보송한 옥토끼 발군이었다.
나는 곧바로 나와 준 발군의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며 주몽에게 말했다.
“저주를 감지하는 신수입니다. 이 친구가 앞장을 서면 되겠네요.”
“우와, 그런 애가 있었어요?”
주몽이 둥그렇게 뜬 눈으로 발군을 바라보았다.
“얘는 이름이 뭐예요?”
“…….”
그의 물음에 발군을 쓰다듬던 손을 멈칫하다가 인상을 썼다.
“그런 건 왜 궁금합니까. 남의 신수에 괜히 관심 갖지 마시죠.”
“와, 쌀쌀맞아.”
주몽이 어이가 없다며 턱을 감쌌다.
“발이 커서 발군, 뭐 그런 것도 아닐 텐데 이름도 안 가르쳐주고!”
“…….”
나는 그가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의심하며 그의 투정을 무시했다.
“저주가 없는 뿌리를 찾아주세요.”
뿌리를 가리키며 부탁하자 발군이 듬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속 깊은 발군은 내가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는데도 흔쾌히 앞장섰다.
발군이 안전한 뿌리를 찾아준 덕에 나와 주몽은 번갈아 물과 검으로 뿌리를 해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펄럭!
여태 내 곁을 지키던 공군은 길을 찾는 것은 발군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지 내 가슴으로 복귀했다.
나는 고마운 마음을 담아 가슴을 한 번 쓰다듬고는 계속해서 전진했다.
그렇게 태양을 찾아 뿌리를 뚫기를 한참이었다.
쫑긋!
묵묵히 앞장선 발군이 안테나처럼 귀를 세웠다.
“드디어 찾았네요.”
발군이 걸음을 멈추자 주몽이 보호막처럼 푸른 신성을 둘렀다.
“필드의 태양.”
그의 말과 동시에 시야 가득히 태양처럼 강렬한 황금빛이 번쩍였다.
파아아앙!
사방으로 산개하던 빛이 물이 고이듯 거대한 형태를 이루었다.
주위를 가로막던 뿌리들이 예라도 갖추듯이 그것의 자리를 만들어내었다.
이윽고 우리 앞에 나타난 낯선 존재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이게 태양이라고요?”
“음, 그러게?”
내 반응에 주몽도 재미있다는 듯이 콧소리를 내었다.
“어째 딱 봐도 국산은 아닌 것 같죠?”
농담처럼 이어지는 지적을 흘려들으며 상대를 주시했다.
황금빛으로 번쩍이는 갑주를 걸치고 하얀 갈기를 늘어뜨린 말에 탄 장수였다.
만물을 내려다볼 만큼 굉대한 풍채는 그 자체로 위압적이었다.
허리에는 검집을 차고 있었는데 묘하게도 검을 손에 들고 있지 않았다.
검집에서 빠져나온 검은 스스로 서슬 퍼렇게 빛을 발하며 허공에 떠서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루 라와더…….”
나는 신이한 검으로 무장한 전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켈트 신화에 나오는 태양의 신 맞죠?”
태양을 없애야 한다고 했으니, 그 태양이 신화적 존재로 나타나는 것은 그럴 법도 했다.
한데 한반도의 신화가 아닌 다른 신화의 형태를 빌리는 것은 역시 이상했다.
“그 양반이 마법에도 눈을 돌렸었거든요. 특히 서유럽 쪽으로.”
내 물음에 주몽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진짜 루 라와더는 아니에요. 그걸 본뜬 마법을 필드에 더한 거지.”
그의 설명에 앞장을 섰던 발군에게로 시선이 미쳤다.
한반도의 하늘에서 왜 서유럽의 신수가 나오나 했더니, 그쪽 마법을 익힌 청탑주가 버그를 일으키면서 무언가 작용을 했던 것일까.
“어쩐지 차림새가 좀 이국적이더군요.”
“옷은 그냥 컨셉이죠, 뭐.”
보기 드문 외알 안경에 로브 차림이었던 청탑주를 떠올리며 말했더니 주몽이 낄낄거렸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빈정거림에 불쑥 그러는 본인도 ‘고구려의 주몽’이랍시고 물로 두꺼운 갑옷까지 만들어 입지 않느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냥 집안 내력이겠거니 입을 다물었다.
키이잉!
우리와 대치한 루 라와더가 황금 투구 아래로 눈을 빛냈다.
그의 옆에 선 검도 금방이라도 달려들 듯이 새파랗게 칼날을 번쩍였다.
사나운 기세에 나 또한 검을 겨누며 물었다.
“주술에 마법까지 익혔다면 만만치 않은 상대겠군요.”
“음, 글쎄.”
내 물음에 불현듯 주몽에게서 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힘을 위해 마법까지 손을 대든, 모든 감각을 포기하든, 결국 우주가 부여한 만큼 누릴 뿐이지.”
백탑주를 조롱하던 때와 똑같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감정이.
하나 이번에도 그는 아주 찰나만 그것을 내비칠 뿐, 무수한 문자를 쏟아내며 루 라와더의 인과를 마저 읽었다.
“조금 까다롭긴 하겠어요, 대왕님. 마법의 핵심이 저 칼이거든.”
분명 오랜 세월 축적된 것처럼 지독한 밀도를 갖춘 감정이었다.
그는 그것을 순식간에 없는 것처럼 갈무리했다.
마치 항상 그래왔다는 태도에 나는 나 또한 그 기묘한 감정의 잔상을 떨쳐내며 물었다.
“마법의 핵심이 칼이라면 저 칼이 진짜 프라가라흐처럼 작용한다는 겁니까?”
프라가라흐는 뽑으려고 마음만 먹어도 스스로 검집에서 빠져나와 적을 공격한다는 마검이었다.
그 자체로 적의 사기를 떨어뜨려 프라가라흐를 본 자는 저항조차 못 하고 홀린 듯이 베여 쓰러지고 만다.
“오, 우리 대왕님은 남의 신화도 잘 아는구나?”
내 물음에 주몽이 재밌다는 듯이 눈을 휘었다.
“맞아요, 저 칼. ‘복수하는 자’라는 이름답게 저걸 공격하면 똑같이 당하게 될 거예요.”
그의 말을 신호처럼 프라가라흐가 새파란 날을 빛내며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