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64
75장. 신목 개화(4)
“정말로 아무것도 모르나 보네요?”
무슨 일로 청탑주와 신화전을 치르게 되었냐는 물음에 주몽이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의문보다는 흥미가 담긴 눈으로 나를 훑으며 말했다.
“천궁의 마지막 던전에서 버그 생긴 건 알아요?”
천궁의 마지막이라면 수명장자의 신화가 바탕이 된 던전이었다.
마고할미가 세상을 열었던 직후 하늘에는 해와 달이 둘이었다.
때문에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너무 추웠으며,
두 개의 해가 부딪치기라도 하면 그 열기가 땅을 불태워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고,
두 개의 달이 부딪치기라도 하면 얼음장 같은 한기가 홍수를 불러왔다.
혼란한 시기에 지상에는 수명장자라는 폭군마저 존재했다.
인간임에도 오랜 세월 도력을 쌓아 살아온 그에게는 여러 재주가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짐승을 부리는 재주로 아홉 마리의 개와 아홉 마리의 소, 그리고 아홉 마리의 말을 부리며 인간을 착취했다.
그리하여 자만이 극에 달한 그는 기어이 하늘을 다스리는 천지왕에게마저 도전하고 만다.
-누가 이 수명장자에게 대적할 수 있으랴. 하늘의 천지왕도 내 적수가 되지 못하리.
천지왕은 그의 오만에 진노했고 다섯 마리의 용이 끄는 전차를 타고 그의 앞에 강림했다.
수명장자는 짐승을 부리는 힘으로 천지왕에게 맞섰으나,
천지왕은 단숨에 그의 짐승들을 지붕 위로 넘겨버리고는 그의 머리에 쇠테를 던져 씌웠다.
천지왕의 조화가 담긴 쇠테는 수명장자의 머리를 사정없이 죄었으나,
그는 천지왕에게 굴복하는 대신 도끼로 자신의 머리를 쪼개어 속박에서 풀려났다.
스스로 머리를 쪼개면서까지 덤벼오는 수명장자의 기세에 하늘의 천지왕도 끝내는 한발 물러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천지왕의 두 아들까지 전장에 불러들이고서야 마침내 수명장자를 오랏줄에 묶었으니.
대별왕과 소별왕의 손에 사지가 찢겨나가면서도 수명장자는 빈대와 벼룩, 모기 따위의 해충이 되어 인간을 괴롭힌다는 이야기였다.
“천궁의 비밀 던전들이 클리어되고 마침내 천궁의 보스 수명장자가 모습을 드러냈거든요.”
주몽이 설명을 이었다.
“근데 그게 던전 밖으로 나가버렸어요.”
“던전 밖으로 나갔다고요?”
“음, 뭐라고 해야 할까.”
얼핏 무슨 소리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더니 주몽이 턱을 매만졌다.
“애초에 하늘의 신화 던전을 열 때부터 오류가 났었잖아요?”
“던전이 새로이 공간을 열지 않고 천계 전체에 덧씌워진 것 말입니까.”
“응, 그거요. 대체 왜 그런 버그를 일으켰나 했더니 수명장자를 천궁 밖으로 꺼내서 날뛰게 만들더라고.”
설명을 잇던 주몽이 불쑥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하늘에 도전했던 수명장자의 신화가 정말로 실현된 거지.”
천계를 노리는 청탑주와의 신화전을 치르는 것치고 하늘에서 벌어지는 일 자체에는 사뭇 관조적인 태도였다.
“근데 수명장자한테는 짐승을 부리는 능력이 있잖아요? 그 능력으로 성 밖의 귀수들까지 움직이는 거야.”
귀수라면 태초의 기로 더럽혀진 신수를 말했다.
신수다운 지성을 잃고 그저 신성에 대한 탐욕만 남아 신을 잡아먹으려 든다는 괴물들.
천신들마저 성을 쌓아 막을 수밖에 없었다는 하늘의 재앙이었다.
“그래서 수명장자가 부리는 귀수들이 천신들을 잡아먹기 시작했죠.”
이어지는 말에는 작게 침음했다.
잠깐 눈을 감았다 떴을 뿐인데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심각했다.
“뭐, 다들 금방 성안으로 대피하긴 했어요. 아직은 피해가 그렇게 크진 않아.”
내가 표정을 감추지 못하자 주몽이 덧붙였다.
어쨌든 잡아먹힌 천신들이 있으니 피해가 크지 않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으나 지적하지 않고 한숨만 내쉬었다.
“아까 마주쳤던 목각인형들.”
설명을 듣다가 말을 꺼냈다.
“그 인형들이 땅에서 살기를 흡수하던데요. 어떻게 된 조화인지 압니까.”
“흐응, 안 그래도 그게 청탑주 필드의 승리 조건과 관계가 있거든요.”
마침 잘 물어봤다는 듯 주몽이 곧바로 대답했다.
“천상의 화원에 신목 있는 건 알죠?”
화원의 신목이라면 하늘 전체를 지탱한다는 거목이었다.
신목의 뿌리가 상하면서 천계의 기(氣)도 눈에 띄게 위태로워졌다고 들었다.
“천계 전체에 흩어진 살기로 신목에 꽃을 피우는 게 청탑주의 목적이에요. 그럼 신목이 청탑주한테 완전히 넘어가는 거지.”
그 말에 하늘의 기를 손에 넣을 거라던 청탑주가 떠올랐다.
청탑주의 전설은 나무의 오행을 다루는 청룡이니 그는 자신의 힘으로 충분히 신목을 장악할 수 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청룡의 전설뿐만이 아니라…… 어쩌면 신단수의 전설까지 손을 보탤지도 모르고.
“수명장자는 지금도 일곱성을 날뛰며 천신들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어요. 천신의 신성과 살기를 모아서 신목을 개화시키는 게 목표니까.”
주몽이 마저 설명했다.
“근데 모든 것에는 반동이 따르기 마련이거든. 천궁 던전의 보스 수명장자를 필드의 법칙으로 끌고 왔으니 대신 수명장자를 쓰러트리는 것도 던전의 공략과 같아요.”
“던전의 공략과 같다면…….”
“우선은 2개의 태양과 2개의 달부터 없애야 하는 거죠.”
설명하다가 조금 심심하다고 느꼈는지 주몽이 손끝에서 물을 피워 해와 달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나도 우리 보스가 시키는 대로 해님 하나를 없애러 가는 중이고.”
“그럼 다른 신들도 해와 달을 없애고 있겠군요.”
“글쎄, 대부분은 자기들 몸만 사리는 것 같던데. 그 사이에 삼신할머니가 달 하나를 물리치긴 했지만.”
주몽이 눈썹을 으쓱이며 새침한 얼굴을 했다.
수명장자가 이리저리 날뛰는 상황이니 겁이 많은 천신들은 삼신을 비롯한 다른 이들이 사태를 해결할 때까지 나오지 않겠다고 한 모양이었다.
“결국 청탑주는 하늘의 신화 던전을 바탕으로 신화전의 필드를 설계했다는 거군요. 승리 조건이 완성되면 천계를 이루는 기까지 흡수하게 되는 거고.”
이야기를 들은 끝에 한숨을 내쉬었다.
“……도사들은 원래 이런 게 가능한 겁니까?”
도사들이 던전을 조작해서 이용하는 것은 줄곧 봐 오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하늘의 신화 던전 같은 특수한 던전까지 자기들 뜻대로 움직일 수 있다니 역시 믿기지 않았다.
“아무나 가능하진 않죠.”
내 물음에 주몽이 어깨를 으쓱였다.
“내 생각에 한반도에서 이런 게 가능한 도사는 딱 한 명뿐인데 말이야.”
“…….”
더 묻지 않아도 누구를 말하는지 알았다.
나는 굳이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일단 내 몸에 걸린 주술을 풀어주시죠.”
내가 말을 돌리자 주몽은 장난처럼 눈꼬리를 휠 뿐이었다.
“그럼 당신이 태양을 없애는 걸 도와드리겠습니다.”
“그거야 뭐, 안 도와준대도 풀어드릴 생각이긴 했지만.”
그가 콧소리를 내며 내 몸을 훑어보았다.
“대왕님은 제가 최대한 서두르길 바라겠죠?”
“그야…… 당연히 그렇습니다만.”
나는 그가 왜 굳이 그런 것을 묻는지 몰라 조금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주몽은 그런 내 반응에 아랑곳 않고 피식 웃더니 불쑥 자기 입에 엄지손가락을 가져갔다.
우득.
그가 물어뜯은 엄지에서 붉은 피가 선명하게 떨어져 내렸다.
“뭐 하는 겁니까……!”
깜짝 놀라서 손을 뻗었더니 주몽이 웃는 얼굴 그대로 고개를 갸웃했다.
“빨리 끝내달라면서요?”
피가 흐르는 엄지가 내 몸에 붙은 부적 위로 빨간 실선을 덧그렸다.
“……!”
갑작스러운 행동에 멈칫하는데 주몽이 능숙하게 손을 움직였다.
“주술은 결국 약속과 제약이니까요. 대충 피를 봐서라도 빨리 풀겠다는 뜻이죠.”
엄지에서 흐르는 피가 새로운 문자열을 써냈다.
그러자 불쑥 그의 두 눈에서도 선명하게 피가 맺혔다.
놀라서 입술을 달싹이는데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손으로 그것을 훔쳤다.
“음. 이것도 신경 쓰지 말고. 전에 말했듯이 다 감당할 수 있다는 계산 하에 하는 거니까.”
피눈물을 훔친 그가 다른 부적 위로 똑같이 문자를 썼다.
“……이것 때문에 빨리 끝내고 싶냐고 물었군요.”
나는 그가 문자를 쓰는 것을 지켜보다가 말했다.
“피를 흘려야 한다고 미리 알려줬으면 좀 더 시간이 걸려도 된다고 했을 텐데…….”
“아니, 안 그랬을걸?”
문자를 쓰던 그가 나와 눈을 맞추며 대꾸했다.
“대가 안 치렀으면 꼬박 한나절은 걸렸을걸요.”
“한나절이요?”
“거봐요, 그냥 피 흘리라고 했을 거잖아.”
나도 모르게 목소리를 높였더니 주몽이 입을 삐쭉였다.
“내 피 몇 방울보다 대왕님 한나절이 더 귀하다고 했겠지.”
“…….”
차마 아니라고 대답을 하지는 못해서 괜히 내 몸의 부적들만 훑었다.
“전에 봤을 때는 아무런 조치 없이 가볍게 떼어내던데요.”
“그건 도혁이나 가능한 거고요!”
그렇게 어려운 작업인 줄 몰랐다는 뜻에서 말한 것이었는데, 말을 잘못해버렸는지 주몽이 더욱 볼멘소리로 종알거렸다.
“참나! 그렇게 도혁이가 좋으면 도혁이한테나 가든가!”
“알았어요. 내가 잘못했습니다.”
어쨌든 나를 돕겠다고 피까지 흘린 사람인데 속상하게 해버린 꼴이었다.
내가 재빨리 사과하며 달래자, 툴툴거리던 주몽이 다시 능청스럽게 웃으며 농을 걸었다.
“미안하면 내 다음 생은 재벌 2세로 부탁해요. 얼굴은 마음에 드니까 여기서 몸만 좀 더 가늘고 예쁘게.”
……이런 데서 그 남자와 형제라는 걸 실감할 줄은 몰랐는데.
뻔뻔한 요구에 입을 다물었다가 돌연 스치는 생각에 그를 바라보았다.
“다음 생을 생각하는군요?”
불로장생을 얻은 도사가 죽음을 염두에 둔다는 게 새삼 묘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한반도를 두고 다른 전설급 각성자들과 겨루는 입장이니 언제든 그들 손에 죽게 될 수도 있다고 여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만.
“그야 우린 인간이니까요.”
내 물음에 주몽이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였다.
우리라고 하는 것을 보아 내가 주몽 본인뿐만 아니라 도사 자체에 의문을 느꼈다고 간주한 듯했다.
“백 살을 넘기는 것도 은근히 힘들답니다.”
주몽이 마지막 부적에 엄지를 올리며 말했다.
“우주가 부여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하나같이 부나방처럼 달려들어서 죽게 되거든.”
그 말에 문득 사라가 도사들에 대해 이야기하던 것이 떠올랐다.
-모든 도사는 신의 경지를 좇던 끝에 결국 우주가 부여한 한계와 맞닥뜨리게 된다.
-온 힘으로 지나온 세월마저도 사실은 우주가 부여한 운명에 따랐을 뿐이라는 걸 깨닫는 게지.
-그때가 오면 거의 모든 도사들은 우주를 저주하며 비참하게 죽는다.
신의 자리에서 여상하게 도사를 말하던 얼굴.
나는 사라의 말을 곱씹으며 물었다.
“당신들은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데도요?”
“글쎄, 그렇기는 한데.”
내 물음에 주몽이 낄낄 웃었다.
“근데 대왕님, 우주의 시공간은 하나잖아요.”
낭랑하게까지 느껴지는 목소리가 오히려 묘하게 들려왔다.
“우주는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사건의 집합체라서 우리는 늘 우리가 설계한 미래를 선택해달라고 우주한테 청해 왔는데, 동시에 우주의 시공간은 하나라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리 말하는 순간 그의 두 눈에서 다시금 붉은 피가 선명하게 흘렀다.
“그 모순을 받아들이면 내 뜻이야말로 곧 우주의 뜻이 되는데.”
하나 그는 그것에 괘념치 않고 말을 이었다.
“거의 모든 도사들은 끝내 그 모순을 부정하곤 하지.”
팔랑, 마침내 그가 마지막 부적에까지 문자를 완성하면서 내 몸에 붙은 부적들이 떨어져 나갔다.
“자, 됐어요.”
부적을 떼어낸 그가 더 할 일을 다 했다는 듯이 양손을 펼쳤다.
“확인해 봐요, 스탯 다 돌아왔죠?”
능청스러운 태도에 나는 대답 대신 상태창을 살폈다.
그의 말대로 1이 되었던 스탯들이 한순간에 100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되었어야 할 것이 그렇게 되었다는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