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66
75장. 신목 개화(6)
키이잉!
스스로 적을 베는 마검, 프라가라흐가 서슬 퍼렇게 달려들었다.
채애애앵!
손에 쥔 검으로 그것을 받아 쳐냈다.
프라가라흐가 내 검에 튕겨 나가면서 어깻죽지에서 빨갛게 피가 터졌다.
반격하지 않고 단지 받아쳤을 뿐인데 타격을 입은 것이다.
[ (!) 영웅담(E) ‘흘린 피는 흐르는 피로’의 효과로 공격력이 ‘200%’ 상승합니다. ]상처가 제법 깊었는지 곧바로 영웅담이 효력을 발휘했다.
몸이 다칠 때마다 최대 2,000%까지 공격력이 상승하는 영웅담이었다.
어깨가 욱신거렸지만 검을 쥔 손에 강맹한 기운이 맺히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하아…….”
길게 숨을 내쉬며 프라가라흐와 루 라와더를 노려보았다.
주인에게 돌아간 프라가라흐는 퍼렇게 날을 빛낼 뿐 허공에 떠 있었다.
벼락장군의 벼락처럼 다시 휘두르는 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한 듯했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검이니 그 정도의 제약은 붙어야 할 터였다.
“이야, 똑같이 당할 거라는 설명을 듣고도 대왕님이 먼저 나서준 거예요?”
지켜보던 주몽이 눈을 휘며 웃었다.
“조금 감동인데?”
“무슨 착각을 한 건지 모르겠지만, 공격당하면 역으로 공격력을 높여주는 영웅담이 있어서 약간의 상처는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흐응.”
일부러 심드렁하게 대답했는데도 주몽은 눈썹만 으쓱였다.
“보기보다 호전적이네요. 아니, 지옥의 대왕님이시니 당연한가?”
자기 좋게 해석하지 말랬더니 되레 더 흥미를 보였다.
뻔뻔한 태도에 약간의 피로를 느끼는 순간이었다.
키이잉!
우리와 대치하던 루 라와더가 기다란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채애애앵!
창을 받아치며 나는 루 라와더를 살폈다.
프라가라흐는 호위하듯이 그의 곁을 지킬 뿐 공격을 해 오지는 않았다.
이대로 창을 든 루 라와더를 상대하다 보면 프라가라흐가 재차 작동하는 모양이었다.
“이런, 그냥 육박전도 까다롭기는 마찬가지겠는데요?”
주몽이 다시 문자를 흘리며 인과를 읽었다.
“루의 창, 무엇이든 꿰뚫을 수 있는 창인 거 알아요?”
채앵!
채애앵!
챙!
쉴 새 없이 검과 창을 섞는 사이 그의 조언이 이어졌다.
“문제는 창이랑 세트인 갑옷 쪽인데. 얘는 또 어떤 무기든 막아낸다는 갑옷이거든요. 아마 대왕님 검도 안 먹힐 것 같아.”
채애애앵!
창을 받아치며 나는 그에게 물었다.
“프라가라흐는 공격을 그대로 받아치고 루의 갑옷은 아예 공격은 안 먹힌단 말입니까?”
“응, 뭐 대충 그렇네.”
자기가 말하고도 어처구니가 없는지 주몽이 조금 더 많은 문자를 흘렸다.
“기다려 봐요, 제약이 뭔지 읽어볼 테니까. 저 정도 능력이면 반대급부가 당연히 있을 거거든.”
“제약…….”
그의 말에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어쨌든 무적일 리는 없다는 거죠?”
채애애애앵!
다시 한번 루의 창을 쳐내며 물었다.
되받아치는 내 손목까지 얼얼하게 아파 오는 일격이었지만, 힘을 이겨내지 못한 루의 창이 허공을 돌더니 볼품없이 바닥을 굴렀다.
“파훼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습니다.”
루 라와더가 창을 다시 쥐기 전에 먼저 그의 창을 가로채며 말했다.
“음? 대왕님이 그거 쓰려고?”
내 행동에 주몽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나는 그에게 설명하는 대신 창을 쥐고는 힘껏 루 라와더에게 달려들었다.
콰지지직!
창에 꿰뚫린 루 라와더의 황금 갑옷에서 피처럼 붉은 신성을 터져 나왔다.
금이 가서 갈라진 틈으로 루 라와더가 품은 강맹한 기운이 느껴졌다.
그의 기가 가시덤불처럼 창을 타고 올라왔지만 멈추지 않고 더욱 힘주어 창을 박아 넣었다.
파장창창!
갑옷이 깨지면서 루 라와더의 몸이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무엇이든 막아낸다는 갑옷도 무엇이든 꿰뚫는 창은 버티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핵심은 루 라와더에게서 창을 빼앗을 만큼의 무력이었고, 다행히 내게는 그것이 충분했다.
“히야, 하긴 나도 늘 궁금했어요.”
사라져가는 루 라와더를 훑으며 주몽이 낄낄거렸다.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갑옷이 부딪치면 어느 쪽이 이길지.”
창과 갑옷을 서로 부딪치게 만드는 것이 파훼법이라는 게 사뭇 재미있는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번에는 창의 승리네요. 승리와 동시에 패배했지만.”
그가 나를 돌아보며 한쪽 눈을 찡긋하는 찰나였다.
[ (!) 수베렁냘흐장자의 태양과 달이 기울벨뇟땍귀룔흐흐흐니다. ]오류가 섞인 팝업창이 떴다.
“던전이었던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네요. 이제 필드 최대의 법칙인 수명장자와의 결전이 시작되는 거죠.”
주몽이 내게서 팝업창으로 시선을 돌리며 턱을 매만졌다.
“아마 수명장자를 처리하면 뿌리와 목각인형들이 살기를 흡수하는 것도 멈추고 청탑주의 승리 조건인 신목 개화도 저지할 수 있을 거예요.”
쿠우웅!
쿠우우웅!
사방이 지진이라도 난 것처럼 요동쳤다.
“지형이 재구성되는 건가.”
주위를 둘러보며 긴장을 곤두세웠다.
땅 위로 산재했던 가시덤불과 뿌리가 꿈틀거렸다.
솟아오른 뿌리들은 마치 반죽이라도 하는 것처럼 흙바닥까지 움직이기 시작했다.
“위험하니까 나한테 돌아와요.”
발군을 돌아보며 말하자 커다란 옥토끼가 귀를 쫑긋하며 내 가슴으로 복귀했다.
“음, 좀 이상한데?”
울퉁불퉁 파도치는 땅 위에서 주몽도 내 쪽으로 바짝 몸을 붙이며 말했다.
“대왕님, 저거 이리로 오면 안 되지 않아요?”
그가 가리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커먼 기가 보였다.
막대한 기가 모래폭풍처럼 휘몰아치며 사방에서 죄어오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그 기운을 직시했다.
“태초의 기?”
무슨 작용을 할지 몰라 천신들도 성벽으로 막아두었다던 태초의 기.
그 불길한 기운이 먹구름을 그리듯이 한데로 뭉쳐 이 땅을 덮쳐 오고 있었다.
“저건…….”
한데 업경이 그것에 집중할수록 그 기운이 이미 내가 아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우주퇴적물……?”
비어 있되 가득 찬 것.
우주의 역사가 하나로 녹아서 엮인 집합체.
태초의 기는 분명 내가 아는 우주퇴적물과 같았다.
촤르르륵!
그 사실에 미처 반응하기 전.
꿈틀거리던 뿌리가 높은 언덕만큼 부풀어 올랐다.
“우와, 갈수록 가지가지 하는데?”
벽처럼 치솟은 뿌리를 올려다보며 주몽이 헛웃음을 흘렸다.
“이제 보니 살기가 아니라 태초의 기까지 흡수하고 있었구나?”
그의 말에 흠칫 몸을 떨며 뿌리를 올려다보았다.
내 느낌이 틀리지 않았다면 태초의 기는 결국 우주퇴적물이었다.
청탑주의 목적이 우주퇴적물을 흡수해서 신목을 개화시키는 것이라니 아찔해졌다.
우주퇴적물은 그 자체로 마법과 주술을 비약적으로 극대화시킨다.
한데 그런 우주퇴적물로 천계의 신목을 키워낸다고?
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 (!) 수베렁냘흐장자가 강림합니다. ]요동치며 재구성되던 땅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쿠우웅!
쿠우우웅!
태초의 기를 흡수하던 뿌리들이 둥글게 돔을 이루었다.
필드의 구성이 완성되면서 어느새 나는 뿌리와 가시덤불이 벽을 이룬 공간에 서있었다.
아득하게 높은 천장에서 희미한 빛줄기만 겨우 떨어지는 것이 흡사 깊은 굴에 들어온 듯했다.
“대왕님!”
낯선 공간에서 불쑥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하!”
“대왕!”
천궁 던전에서 헤어졌던 차사들과 바리가 다급한 얼굴로 내게 달려오고 있었다.
“아…….”
한데 그들의 뒤로 보이는 또 다른 인영에 살짝 몸을 떨었다.
“삼신……?”
어찌 된 영문인지 일행들은 삼신과 함께였다.
하얀 백발을 비녀로 꽂은 그녀가 내게서 받아갔던 검수엽을 손에 든 채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이런, 이제 우리 대왕님을 보내드릴 때가 됐네요.”
그때 문득 주몽이 빙글거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멈칫하며 그를 돌아봤더니 그는 어느새 변검 가면을 쓰고 있었다.
천신들의 연회에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썼던 가면이었다.
“이랑진군.”
가면을 쓴 그가 속삭이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사들에게는 자신이 주몽임을 알리지 않고 싶다는 뜻이었다.
나는 그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다가오는 일행들과 삼신을 마주했다.
“괜찮으신 겁니까, 대왕님.”
제일 먼저 달려온 강림 형이 몸을 낮추어 내 팔뚝을 감싸 쥐었다.
내게는 한나절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형에게는 긴 시간이었을 터였다.
나를 바라보는 짙푸른 눈동자가 금이 간 유리처럼 불안했다.
“네, 저는 괜찮아요. 형.”
형과 눈을 맞추며 대답했다.
형의 팔을 살살 토닥이자 형은 입을 꾹 다물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감정을 참아내는 것 같은 모습에 나도 괜히 더 마음이 아파졌다.
“생각지 못한 조력자도 함께해서, 무사히 태양을 없애고 합류할 수 있게 됐네요.”
형을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잇다가, 문득 일행들은 어디까지 알고 있을지에 대해 새삼 생각이 미쳤다.
그들도 필드의 규칙에 따라 태양과 달을 없앴다면 벽하원군처럼 신화전에 참전 중인 것일까.
“어깨에 상처를 입으셨군요.”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강림 형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아, 이거요.”
좀 전에 루 라와더를 상대하면서 생긴 상처였다.
조금 당황해서 형에게서 조금 몸을 물렸다.
영웅담이 발동될 정도의 상처긴 했지만 그보다는 우주퇴적물을 흡수하는 뿌리가 더 문제였던지라 신경 쓰지 못하고 있었다.
하나 가뜩이나 나와 오랫동안 떨어져 있어야 했던 형에게는 그렇지 않을 터였다.
“별거 아니에요, 그냥 태양이랑 싸우다가 좀…….”
“그리 쓸 만한 조력자가 아니었군요.”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형이 결국 주몽에게 경멸을 내비칠 때였다.
파아앙!
새하얀 서천의 신성이 어깨를 감싸면서 상처가 치료되었다.
“미안하다. 보자마자 바로 고쳤어야 했는데.”
꽃을 피운 사라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사과를 건넸다.
괜히 조금 멋쩍어진 나는 대신 옆에 선 호구별성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다들 무슨 일이 있었어요?”
“염병, 그건 우리가 전하한테 해야 하는 질문 아니야?”
팔짱을 낀 호구별성이 눈썹을 굽히며 되물으면서도, 이내 차분하게 자초지종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전하가 갑자기 사라져서 놀랬는데, 단군 그놈이 처음부터 던전에 이동 주술이 숨겨져 있었다고 하더라고.”
이어지는 말에 살짝 얼굴을 굳혔다.
아무래도 그는 그가 일부러 나를 그 주술로 유도했다고는 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나를 둘러싼 차사들과 바리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런데…… 그 사람은 없군요?”
“아, 그게 이동 주술이 그게 끝이 아니었어.”
내 물음에 호구별성이 혀를 찼다.
“바리랑 단군이 인과를 읽기도 전에 다시 한번 이동 주술이 발동되는 바람에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
“…….”
그녀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며 사라진 단군의 속내를 가늠해 보았다.
그가 다른 이동 주술까지 알고 있었다면, 어쩌면 그는 목적했던 일을 마치고 일행을 떠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다가 나는 할망을 만나서…… 할망이 신기하게도 이렇게 다 찾아낸 덕에 같이 태양과 달을 없애고 전하를 만나게 된 거야.”
설명을 마친 호구별성이 흘끗 삼신을 돌아보았다.
차사들 뒤에 선 삼신은 그저 코웃음만 한 번 칠 뿐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함에도 나는 불쑥 삼신은 단군이 무슨 짓을 했는지 이미 알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업경의 촉인지, 아니면 내가 은연중에 아직도 그를 믿고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하는 어떻게 된 거야?”
호구별성이 다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
그녀의 물음에 살짝 주먹을 쥐었다.
어느 정도 사실을 말할 필요는 있었으나 아무래도 필요 이상으로 그들을 걱정시키고 싶지도 않았다.
“그게…… 사실 청탑주 앞으로 이동됐었거든요.”
말을 꺼내자마자 형의 얼굴이 특히 무섭게 굳는 것이 보였다.
나는 그런 형의 팔뚝을 달래듯이 문지르며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당장 이길 상대는 아니라서 도망쳤고, 마침 청탑주를 상대하던 이랑진군과 마주쳐서 잠깐 동맹을 맺었어요. 태양을 없앨 때까지.”
가짜 몸에 갇혔다는 말은 제외하고 그럭저럭 사실을 말했을 때였다.
“그만하면 됐다. 언제까지 수다나 떨고 있을 테냐.”
삼신이 시큰둥한 얼굴로 끼어들었다.
“기운이 사납게 변하고 있다. 곧 수명장자가 나타날 게야.”
차가운 핀잔에 무언가 말을 더 하려던 강림 형이 결국 허리를 폈다.
몸을 낮추어 나를 살피던 그가 검푸른 신성을 발하며 내 앞을 가로막고 섰다.
나는 삼신이 일부러 그리 나섰다는 것을 알고 조금 어색하게 웃었다.
“생불왕께서는 혼자 오신 건가요?”
대동했던 운명신들이 보이지 않아서 물었더니 삼신이 미간을 찌푸렸다.
“안 그래도 짐짝이 다섯인데 내가 그놈들까지 달고 다녀야겠느냐?”
“어…… 죄송해요.”
괜히 인사를 건넸다가 다른 일행들까지 짐짝이라고 욕을 먹게 만들었다.
나는 어째 평소보다 더 퉁명스러운 그녀의 대꾸에 쪼그라져서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하긴 생불왕이라면 다른 신들이 오히려 거추장스러울 수도 있겠지.
크르르릉!
모두가 긴장을 곤두세우는 와중 불현듯 맹수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크르릉!
크르르릉!
공간 전체를 가득 메울 만큼 우렁찬 울음소리였다.
벽처럼 주변을 감싼 뿌리와 덤불들이 모래알처럼 새까만 기운을 뿌렸다.
흩뿌려진 기운은 그림자처럼 검은 형태를 이루어 우리를 둘러쌌다.
수는 모두 아홉.
털을 곤두세운 짐승과 비슷한 것들이었다.
먹물을 뿌린 듯 온몸이 검은데 머리에는 기묘한 금테를 두르고 있었다.
“수명장자의 귀수들이에요.”
바리가 긴장한 목소리로 말했을 때였다.
촤아아아악!
땅에서 검은 뿌리들이 솟구치더니 촉수처럼 꿈틀거리며 인간의 형태를 이루었다.
아홉 마리의 짐승을 부리며 천지왕에게 도전했다던 악인 수명장자였다.
새까만 전차에 올라탄 그가 하늘을 찌를 듯 거대한 창을 들고 귀수들 사이에 섰다.
“흐음, 바로는 쓰러트릴 수 없겠네요.”
수명장자를 마주하며 주몽이 말했다.
“이번에도 천궁 던전의 공략과 같아요. 귀수들 머리의 금테, 저걸 모두 모아서 수명장자에게 씌워야 합니다. 그래야 제압할 수 있을 거예요.”
그가 인과를 읽어냄과 동시에 수명장자와 귀수들이 우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신목의 개화를 위한 필드 최대의 법칙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