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68
76장. 고목(2)
주몽이 법칙을 완성한 직후.
나는 큐브를 부수고 신목의 안으로 발을 내디뎠다.
화강암처럼 단단한 나무껍질이 장막처럼 걷히며 나를 안으로 들였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던전의 포탈을 넘을 때처럼 일그러졌다.
“이게…… 신목의 내부라고.”
긴장을 곤두세우며 주변을 살폈다.
신목의 안은 잘 꾸며진 온실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나무는 풍성했고 화려하게 핀 꽃들 사이로 나비마저 날아다녔다.
유리로 이루어진 천장과 벽 너머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빛이 흘러들었다.
가각!
뜻밖의 광경에 놀라는 와중 불쑥 무언가가 튀어나왔다.
정원사처럼 커다란 밀짚모자를 쓰고 가위를 든 목각인형이었다.
날카로운 가위 날이 금방이라도 찌를 듯 나를 위협하더니 온실의 안쪽을 가리켰다.
금테로 치장한 지붕 아래로 하얀 테이블이 놓인 정자가 보였다.
로브 차림의 남자가 고상하게 다리를 꼬고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나무를 다루는 청룡의 힘으로 신목을 개화시키겠다는 청탑주였다.
“외출은 즐거우셨습니까.”
찻잔을 내려놓은 청탑주가 입꼬리를 당기며 말을 걸었다.
가각!
가가각!
나무들 사이로 정원사 차림의 목각인형이 둘 더 나와 나를 포위했다.
거칠게 몸을 잡아끄는 인형들의 손길에 인상을 쓰며 청탑주의 앞으로 걸어 나갔다.
인형들은 기어이 나를 청탑주 앞에 앉혀 놓고는 감시라도 하는 것처럼 내 뒤에 섰다.
“자리가 불편하셨나 봅니다. 이리 밖으로 나오신 것을 보면.”
“…….”
청탑주가 찻잔에 새로이 차를 따르며 말했다.
내가 신화전을 치른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 척 넘어가 주겠다는 태도였다.
뻔뻔한 태도에 그저 입을 다물고 상황을 살폈다.
삼신은 내게 신목이 흡수한 기를 정화할 것을 명했다.
하나 지금 상태로는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습게 꾸며진 온실뿐, 정작 신목에 흡수된 태초의 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
그런데 온실에 집중한 순간 대상의 본질을 꿰뚫는 업경이 이상을 감지했다.
나는 평온한 얼굴로 내게 찻잔을 내미는 청탑주에게 물었다.
“환각으로 공간을 꾸며놨군요.”
꽃과 나무는 그저 눈속임일 뿐, 우리가 앉은 공간은 새카만 태초의 기로 가득했다.
마치 화재로 거멓게 연기가 피어오르는 공간에서 마주한 것과 같았다.
검은 기에 집중할수록 우주퇴적물처럼 뒤섞인 인과의 덩어리가 느껴졌다.
“마음에 들지 않으십니까? 제법 신경을 썼는데.”
청탑주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이며 자기 몫의 찻잔을 다시 채웠다.
그가 따라준 차를 노려보다가 다시금 업경에 집중했다.
안개처럼 산재한 태초의 기에서 불쑥 작은 묘목의 형태가 느껴졌다.
분명 팔뚝만 한 정도의 묘목이었으나 동시에 세상 전체를 덮을 만큼 거대한 뿌리를 품고 있었다.
“맞습니다. 신목의 기가 작은 묘목의 형태로 현신한 것입니다.”
내가 묘목을 인식한 것을 알아본 듯 청탑주가 말했다.
“일종의 그림자라고 할 수 있지요. 묘목에 꽃이 피면 신목이 흡수한 태초의 기도 완전히 개화할 겁니다.”
그의 말에 작게 주먹을 쥐었다.
묘목에 집중하자 선명한 꽃봉오리가 느껴졌다.
그가 목적한 개화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삼신은 내게 버티라고 말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당장 청탑주에게 달려들어서 그를 멈추게 만들어야 할까.
그리하여 그녀가 올 때까지 청탑주를 붙잡아 두면 될까.
“차에는 눈길도 주시지 않는군요.”
상황을 파악하려는 와중 청탑주가 말을 이었다.
“나무를 기르는 권능이 깃든 찻잎입니다. 맛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가각!
가가각!
그 순간 목각인형들이 내가 앉은 의자를 테이블 앞으로 바짝 밀었다.
정중을 가장한 말투였지만 나를 제 맘대로 움직이겠다는 뜻이었다.
바로 옆의 목각인형은 급기야 내 손을 쥐고 억지로 찻잔을 쥐게 했다.
“윽…….”
기괴한 행동에 신음하는데 불쑥 곤두세운 업경을 타고 불쾌한 감각이 밀려들었다.
목각인형에 깃든 무언가가 여섯 번째 감각을 타고 선연히 전해져 왔다.
“혼…….”
나는 목각인형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텅 빈 것 같았던 인형에서 생전의 이지를 잃고 흐트러진 영혼이 읽혔다.
인형의 관절이 움직일 때마다 부서진 혼도 삐걱거렸다.
“설마 이 인형들의 재료가 인간의 혼입니까?”
“후후후.”
내 물음에 청탑주가 대답 대신 낮게 웃음을 흘렸다.
따악!
그의 손가락이 맞부딪치면서 유리온실에 한순간 검붉은 장막이 씌었다.
만발하던 꽃나무는 사라지고 연극무대처럼 온갖 차림새의 목각인형들이 주위를 가득 메웠다.
“제 첫 기억은 생에 처음으로 인형극을 보던 순간입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청탑주가 입을 열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전까지의 기억은 무의미하다는 뜻과 같지요.”
찻잔을 내려놓은 그가 선연히 미소 지었다.
“한 사람의 인형사가 풀어 놓은 이야기의 끝을 본 순간 어린 저는 비로소 깨달은 겁니다. 나 또한 저렇게 만물을 움직여 나의 이야기를 만들 수 있음을, 그것이 내가 타고난 능력의 본질임을.”
미래를 설계해서 실현할 수 있는 도사의 능력을 그는 인형극에 빗대고 있었다.
“하나 돌이켜 보면 그때는 결국 반쪽짜리 깨달음이었습니다. 내가 나서야 할 무대는 고작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 우주 전체였음이니.”
결국 그는 처음 마주쳤을 때처럼 자신이 우주의 역사를 움직일 것이라 말하는 것이다.
나무감옥에서도 한 차례 겪었던 기분 나쁜 확신에 인상을 찌푸렸다.
“하여 도사의 다섯 가지 길 중에서 나무의 길을 선택했을 때 이 권능을 드높이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심했지요.”
그는 내 반응에 아랑곳 않고 말을 이었다.
“다른 오행들과 달리 살아 숨 쉬는 생명을 움직일 수 있는 권능. 그 이치를 깨닫자 모든 것이 새로이 보였습니다.”
가각!
가가각!
주변의 목각인형들이 그의 목소리를 따라 삐걱거리며 몰려들었다.
“내게는 이미 산 것을 움직이는 권능이 있으니, 나무에 남은 생기의 흔적을 이용하면 살아 있는 인형을 만들 수 있겠구나.”
내 어깨며 허벅지를 움켜쥐는 인형들의 손길에 몸을 움찔했다.
“인형을 가짜 몸처럼 써서 생령을 깃들게 했군요.”
생령화는 본디 육체의 기능이 정지하기 전에 육과 혼을 분리해서 죽음을 피하는 방법이다.
그렇게 분리한 혼을 다시 새로운 육체에 깃들게 하면 이론적으로는 예정된 죽음을 피할 수 있게 된다.
하나 실제로 그런 짓을 저지르면 혼은 이지를 잃고 붕괴된 욕망덩어리가 되기에 도사들 사이에서도 기피되는 주술이었다.
한데 청탑주의 인형에 깃든 생령은 본인들의 의지로 깃든 것이 아니었다.
청탑주가 살아 있는 인간을 일부러 생령으로 만들어 자신의 인형에 집어넣었다.
말 그대로 살아 있는 인형으로 만든 것이었다.
“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겁니까.”
인형들의 손을 뿌리치며 물었다.
“목(木)의 권능은 다른 오행과 달리 생기를 함께 움직여야 하니까요.”
내 물음에 청탑주가 단조로운 어조로 대답했다.
“한데 나무를 인형으로 만들면 생기가 옅어지니 다른 방법을 찾았을 뿐입니다.”
단지 자신의 힘을 더욱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라니.
뻔뻔한 대답에 나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도대체가 당신들은…….”
눈앞의 청탑주만이 아니었다.
지금껏 내가 상대했던 다른 도사들의 만행까지 함께 곱씹혔다.
수많은 사람들을 우주퇴적물로 만들었던 흑탑주와 살아 있는 인간들의 탯줄을 녹여서 귀물로 만들었던 수로왕이 다시금 생생히 되씹혔다.
“당신들은 어찌 그리 아무렇지 않게 당신들 욕망에 다른 사람들을 희생시키는 겁니까?”
“우주가 제게 그런 능력을 주었으니까요.”
“우주가 당신들에게 능력을 주었다고요?”
짜내듯이 내뱉은 책망에 아무렇지 않은 대꾸가 돌아왔다.
기가 막혀서 말꼬리를 잡았더니 청탑주가 되레 입매를 휘었다.
“당신이 인간들 사이에서 얻은 명성도 결국 우주가 부여한 것이 아닙니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꺼내 드는 말에 순간 숨을 삼켰다.
이해 못 할 반문에 담긴 거북한 확신이 업경을 타고 밀려들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하나의 벽처럼 쌓여온 광적인 확신이었다.
“당신은 우주가 당신에게 부여한 권능으로 세 번째 천벌을 막고 인간들 사이에 새로이 군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나 또한 우주가 내게 부여한 권능으로 인간을 움직일 뿐입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쏟아지는 궤변에 가늘게 몸을 떨었다.
“나는 천벌에게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나섰던 겁니다.”
“저 역시 종래 더 많은 사람들을 구하게 될 겁니다.”
그가 기다렸다는 듯이 말을 받아쳤다.
“가장 이상적인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 그리고 그 설계를 선(善)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자.”
투명한 외알 안경 너머로 그의 눈이 번뜩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충분한 인과율을 쥐여줄 수 있는 자.”
업경이 감지하는 신목의 꽃봉오리도 금방이라도 활짝 피어날 듯이 꿈틀거렸다.
“그것이 우주의 뜻입니다.”
“…….”
광적인 확신에 나도 모르게 몸을 뒤로 물렸다.
그는 자신의 뜻이 곧 우주의 뜻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 기묘한 믿음을 처음 마주하는 것은 아니었다.
앞서 보았던 주몽에게서도 분명 그런 묘한 믿음을 느낀 바 있었다.
하나 청탑주의 믿음은 주몽의 믿음과도 달랐다.
두 도사 모두 제 뜻이 곧 우주의 뜻임을 확신하는데도, 그들은 무언가 달랐다.
“……왜 우주가 당신을 위해 움직일 것이라 믿는 거죠?”
그러한 실감 끝에 나는 물었다.
“당신은 우주가 선택한 미래가 반드시 당신에게 이상적일 거라고 믿는군요.”
말을 꺼내면서 나는 두 도사가 무엇이 다른지 확실히 깨달았다
주몽은 자신의 뜻이 우주의 뜻이라고 여기면서도 자신의 끝이 비극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다.
자신의 뜻이 곧 우주의 뜻이니, 무엇이든 자기 뜻대로 살다가 어떤 최후를 맞이하더라도 달게 받겠다는 마음가짐이었다.
하나 청탑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의 뜻이 곧 우주의 뜻이니, 그는 반드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맞이할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아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
또한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면서 나는 청탑주가 애써 억눌러 왔던 마음을 완전히 읽을 수 있었다.
“그래야만 단군에게 패배했던 과거를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
그 마음을 읽고 그대로 들이밀었다.
“패배는 그저 우주가 뜻을 이루려는 과정이었을 뿐, 자신은 여전히 우주가 선택한 인간임을 주장할 수 있을 테니까……!”
그렇게 청탑주의 속내를 들추었을 때였다.
가각!
가가각!
나를 둘러쌌던 목각인형들이 힘을 주어 나를 붙잡았다.
“큿……!”
이때까지와는 달리 확실하게 신성이 깃들어 쉬이 뿌리칠 수 없는 힘이었다.
낭패감에 몸을 비틀어 빠져나오려는데 청탑주가 먼저 신경질적으로 찻잔을 내려놓았다.
“이럴 줄 알았어.”
몸을 일으킨 청탑주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아무리 미래를 뒤져 봐도 당신은 우주의 뜻을 거부하더라고.”
손을 한 번 휘저은 그가 손가락 사이로 굵은 대못을 꺼내 보였다.
“하지만 내게는 당신을 뜻대로 움직일 힘이 있지.”
“무슨……!”
나는 그가 무슨 짓을 저지르려는지 깨닫고 더욱 세게 힘을 주었다.
촤아아악!
하나 미처 인형들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기도 전.
땅에서 치솟은 가시덤불이 나를 의자에 더욱 단단히 묶어버렸다.
가시덤불의 형태를 띤 청탑주의 신성이었다.
“과거의 나를 막아섰던 게 사실은 나 자신이었다는 걸 알았을 때 참 재밌었지.”
손에 들린 못이 느릿하게 내 가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이제는 과거의 나를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보낸 것마저 사실은 나였다는 걸 깨닫게 되는군.”
그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제법 감격스러워. 신을 인형으로 삼다니.”
그는 결국 더 이상 나를 회유하지 않고 철상지옥의 권능으로 나를 조종할 셈이었다.
“으윽……!”
잇새를 물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쳤다.
어떻게든 빠져나오려 했지만 그럴수록 나를 묶은 청탑주의 신성이 더욱 강하게 죄어 왔다.
몸을 숙인 청탑주가 비웃음을 흘리며 높이 망치를 치켜들었다.
카앙!
그의 망치가 내 가슴 위의 못을 강타하는 찰나.
뜻밖에도 철상지옥의 못이 저주로 판정되면서 튕겨 나갔다.
“……!”
예상치 못한 효과에 청탑주가 내뿜던 신성마저도 흔들리는 게 느껴졌다.
[ 흑암지옥(L)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흑암지옥의 권능으로 그의 눈을 가렸다.
그러고는 순간적으로 눈이 멀어 당황한 청탑주를 있는 힘껏 걷어차 버렸다.
“크으윽……!”
불시에 공격당한 청탑주가 바닥을 구르는 때였다.
시전자의 영향을 받는지 나를 죄던 덤불까지 일순 느슨하게 풀어졌다.
그 틈에 몸을 묶었던 덤불을 끊어내고는 의자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런다고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나……!”
상황을 파악한 청탑주가 눈이 가려진 채로 으르렁거렸다.
가각!
가가각!
각!
그의 외침에 공간에 가득했던 목각인형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었다.
촤아아악!
당황하지 않고 그대로 검을 빼 들어 인형들을 겨누었다.
가가각!
가각!
무수히 많은 인형들이 위협적으로 관절을 휘두르며 공격해 왔다.
촤아악!
촤아아악!
닥치는 대로 베어도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상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업경을 곤두세워도 느껴지는 것은 그저 적이 무수히 많다는 실감뿐이었다.
어쩌면 청탑주가 지금도 시시각각 새로운 인형을 불러내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래도 여기서 버티면 머지않아 삼신이 지원군으로 온다.
나는 곧 신목의 안으로 들어오게 될 삼신을 되새기며 신목의 그림자에 집중했다.
신목을 개화시키려던 청탑주가 전투를 벌이기 시작해서였을까?
금방이라도 만개할 것 같았던 꽃은 다행히 그새 성장을 멈춘 상태였다.
내가 멈추지 않고 인형들을 상대하면 적어도 삼신이 올 때까지는 개화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 계산하며 쉴 새 없이 인형들을 베어낼 때였다.
화르르륵!
불시에 눈에 익은 화염벽이 시야를 가렸다.
“불……?”
생각지 못한 불의 권능에 깜짝 몸을 떠는 찰나.
“읍……!”
다소 억센 손길이 입을 막으면서 나를 잡아당겼다.
“미안합니다, 염라.”
그 손에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울렸다.
“인형들에게서는 확실하게 보호해 드릴 테니 잠시 가만히 계셨으면 합니다.”
화르르륵!
화염벽이 장막처럼 주변을 감싸며 입을 막았던 손이 천천히 내려왔다.
“그가 신목을 완전히 개화시킬 때까지.”
돌아보자 검은 머리칼 아래로 부드럽게 휘는 눈과 마주쳤다.
나를 청탑주에게 보내버린 뒤로 여태 모습을 감추었던 남자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미소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