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ed the throne of the underworld RAW novel - Chapter 270
76장. 고목(4)
신목이 개화하면서 청탑주의 승리를 알리는 팝업창이 떴다.
[ (!) ‘천궁 – 천지왕 신화’ 던벨둡냈긍똴흐흐흐 클리어 조건이 해금되벨뜹흐흐 않벨녀땍귀룔흐흐흐니다. ] [ (!) ‘천궁 – 천지왕 신화’ 던벨둡냈긍똴흐흐흐 클리어 조건이 해금되벨뜹흐흐 않벨녀땍귀룔흐흐흐니다. ]……
그런데 불쑥 알 수 없는 오류창이 뒤따라 뜨기 시작했다.
무수히 떠오른 오류창은 삽시간에 사방을 뒤덮어버렸다.
목각인형들로부터 보호해주던 화염벽조차 오류창에 가려져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신화전의 필드와 천궁 던전의 인과를 한데 묶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피눈물을 닦아낸 단군이 말했다.
“인과를 되돌릴 수 있는 당신이 신목을 베어내면 신화전의 승리 판정도 되돌아가겠지요.”
그의 몸은 여전히 주술이 남긴 상처가 가득했다.
“그리되면 아마 천궁 던전도 마무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천궁을 다시 클리어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경쟁자는 벽하원군밖에 남지 않겠군요.”
뜻밖의 말에 물었더니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도 그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짓는 웃음이 나를 거북게 했다.
“이기셔야 합니다. 한반도의 하늘을 다른 신화에 빼앗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화르르륵!
그 순간 오류창이 사라지고 주위의 화염벽마저 녹아내리듯이 꺼졌다.
벽이 사라지자 사방에 빽빽하게 늘어선 목각인형들이 드러났다.
가각!
가가각!
인형의 주의를 흐트러트리던 벽이 사라졌기 때문일까.
그것들이 일제히 이쪽을 돌아보았다.
【언제까지 꾸물거릴 게냐.】
목각인형들을 향해 검을 빼 들며 삼신이 말했다.
【인형은 내가 맡을 테니 신목의 숙주를 쳐라.】
매섭게 재촉하는 목소리에 결국 단군에게서 등을 질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보여준 곳, 땅으로 돌아가면 들르도록 할게요.”
“마음 편히 쉬고 있겠습니다.”
그 대답을 끝으로 나는 삼신의 옆으로 달려 나갔다.
가가각!
삼신의 검이 거침없이 목각인형들의 몸통을 쳐냈다.
막대한 힘이 담긴 검은 베는 것이 아니라 흡사 몽둥이로 박살 내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형들이 산산조각 날 때마다 끊임없이 새로운 인형들이 몸을 일으켰다.
“신목과 일체화되면서 신성이 마르지 않게 되었나 보군.”
삼신이 쉴 새 없이 목각인형들을 상대하며 말했다.
“시간이 없다. 놈이 신목을 부리는 법을 익히면 더욱 귀찮아진다.”
그녀의 말마따나 청탑주가 부리는 인형이 빠른 속도로 강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지금은 인형이 몇이 달려들어도 손쉽게 부수고 있지만 얼마 가지 않을 터였다.
청탑주가 더 강한 인형을 더 많이 불러내기 전에 처리해야 했다.
“내 공격은 더 이상 놈에게 통하지 않아.”
삼신이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놈을 벨 수 있는 건 이제 그것뿐이다.”
그녀가 눈짓으로 손에 쥔 검을 가리켰다.
단군이 주술로 발생시킨 연계 영웅담이 깃든 검이었다.
곧게 뻗은 검신에는 전에 없던 기묘한 붉은 문자들이 선연히 박혀 있었다.
파아앙!
삼신이 검을 치켜들며 신성을 번쩍였다.
슈우욱!
슈우우욱!
인형들에게서 필름 뭉치 같은 무언가가 흘러나오며 삼신에게로 모였다.
“인형을 부리는 인과를 잠시 내게 집중시켰다.”
삼신이 다시금 인형에게 달려들며 말했다.
“네게는 덤비지 않을 테니 너는 서둘러 숙주를 쳐라. 업경이라면 놈을 쉽게 찾아낼 수 있을 테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업경에 집중했다.
인형들이 시시각각 불어나는 와중에도 곧게 신 인간의 형태가 느껴졌다.
인간이면서 동시에 거대한 나무의 형상으로 이루어진 존재였다.
나무가 인식된 순간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그가 품은 신목은 지금도 매 순간 견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공격력을 증폭시켜서 재빨리 승부를 내야 했다.
촤아아악!
검을 휘두르면서 영웅담이 깃든 검에 지옥의 신성을 폭발시켰다.
[ 검수지옥(L) ]촤아악!
촤아아악!
은빛의 칼날나무들이 눈앞의 남자를 꿰뚫었다.
그가 휘몰아치는 칼날의 잎들에 찢겨 나감과 동시에 업경은 거대한 신목이 칼날에 꿰뚫리는 순간을 읽어냈다.
“큭……!”
불시의 공격에 청탑주가 몸을 비틀었다.
목각인형에만 집중하는 와중 불시에 큰 데미지를 입어 당황한 듯했다.
단군이 불러온 연계 영웅담은 상상 이상으로 효과적이었다.
“이 정도면…….”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깊이 들어가는 데미지에 검을 쥔 손에 힘을 더했다.
“확실히 끝낼 수 있겠어…….”
예민하게 곤두선 업경이 상대의 역량과 나의 최대 화력을 명확히 저울질했다.
어떻게 하면 저것을 벨 수 있을지 최적의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촤아아악!
상황을 직시하며 다시 한번 검을 휘둘렀을 때였다.
촤르르륵!
굵은 나무뿌리들이 치솟으면서 나를 덮쳐 왔다.
재빨리 몸을 뒤로 물려 피했으나 청탑주가 재차 권능을 부리는 것이 더 빨랐다.
촤르르륵!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는 뿌리들이 억세게 몸을 휘감았다.
“윽……!”
속절없이 잡혀 끌려가는데 주위로 기둥처럼 굵은 뿌리들이 솟구쳤다.
신성을 잔뜩 머금은 뿌리들은 마치 돔처럼 공간을 이루어 나와 청탑주를 한데 가두어버렸다.
삼신의 도움에서 나를 고립시키려는 의도일 터였다.
“어딜 쥐새끼처럼 숨었나 했더니.”
청탑주가 내 몸을 묶은 뿌리에 힘을 더하며 다가왔다.
“이런 허접한 기습을 노린 거였나.”
그의 로브는 군데군데 찢겨 붉게 얼룩져 있었다.
우주퇴적물을 되돌리는 연계 영웅담이 증폭시킨 검수지옥의 흔적이었다.
그와 연결된 신목에게서도 지옥의 칼날에 패인 손상이 뚜렷이 읽혔다.
일부러 허접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는 분명 신목을 흡수한 자신이 그 정도의 타격을 받은 것에 동요했고 나아가 분노하고 있었다.
그 감정을 숨기기 위해 되레 아무렇지 않은 척할 뿐이었다.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훤히 읽히는 청탑주의 감정에 새삼 되새겼다.
신목과 일체화되어 막대한 신성을 얻었지만 그는 여전히 충동적이며 쉽게 패배감에 사로잡히는 인간이었다.
그것이 내가 최선의 힘을 낼 수 있는 틈을 만들 터였다.
“안타깝게 됐군, 회심의 일격이 별 효용이 없어서.”
다가온 청탑주가 나를 묶은 뿌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몸을 묶었던 뿌리가 목까지 올라오면서 숨이 막혀 왔다.
목을 조르는 힘이 거세질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다.
“크큭…… 그래, 제대로 느껴져.”
뿌리에 신성을 더하며 청탑주가 웃음을 흘렸다.
“막대한 힘이 내 손에 들어왔음이.”
자신과 연결된 신목을 실감하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이었다.
새로 얻은 힘으로 나를 압도함으로써 방금 전의 일격에서 받은 굴욕감을 억누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권선과 징악의 이름도 내 손에 들어오겠군.”
“큿……!”
한참 목을 조르던 뿌리가 매듭이 풀리듯 스르륵 풀어졌다.
언제든 죽일 수 있다고 겁만 주었을 뿐, 살려놓겠다는 뜻이었다.
“그래도 숨어 있던 덕에 몸은 멀쩡하군.”
그가 손에 못을 들어 보이며 속삭였다.
“다행이야. 사지가 망가진 인형은 역시 별로 보기 안 좋거든.”
그는 여전히 나를 철상지옥의 못으로 조종할 생각이었다.
“크윽…….”
뿌리에 묶인 채로는 그의 못을 피할 수 없다.
발군이 한 번 더 못을 막아준다 한들 이번에는 뿌리를 벗어날 수 없을 터였다.
청탑주도 그것을 알고 벌써 희열에 잠겨 있었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군.”
그가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가장 이상적인 세계의 옥쇄를 쥐여주겠다는데 왜 그걸 마다하는지.”
안타깝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새어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기야, 결국 당신마저도 나를 위한 우주의 선물일지도.”
“…….”
그는 여전히 모든 것을 우주의 뜻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정작 우주가 그에게 능력을 부여한 끝에 몰아넣은 진정한 결말은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채로.
나는 그에 헛웃음을 띠며 생각했던 수를 꺼내 들었다.
[ (!) 공간의 지배법칙이 바뀝니다. ]이 싸움의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는 방법.
[ 염라 ‘이제연’이 자신의 업으로 필드를 전개합니다. ]– (!) 해당 필드의 등급은 ‘카르마(K)’입니다.
– 해체 조건 : 시전자의 카르마 완전 해체
“이런…….”
내 속내를 알아챈 청탑주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 알량한 몸뚱이로 한번 버텨보겠다는 건가?”
카르마 등급 필드를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
시전자가 스스로의 의지로 필드를 해제하거나 시전자를 죽이는 것뿐.
나를 못으로 조종하면 내 의지로 필드를 해제할 수 없게 된다.
“그래도 날 죽일 수 없겠죠?”
나는 청탑주를 향해 입술을 뒤틀었다.
“날 죽이면 당신을 이 하늘로 보내버릴 사람이 없어지잖아.”
원인과 결과가 뒤엉켜버린 이 엉망진창의 우주에서, 그는 이미 내가 살아서 이 필드를 나갔다는 확증이었다.
“하……!”
내 말에 청탑주가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뭐 어떻다는 것이지?!”
촤아아악!
내 몸을 조르던 뿌리 위로 날카로운 가시덤불이 휘감았다.
“으윽!”
살갗을 찌르는 가시에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그래, 어디 한번 해보시지!”
청탑주가 태연을 가장한 얼굴로 덤불에 힘을 더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 있었으나 그는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에 이미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신목을 흡수할 힘은 있을지언정 신목처럼 굳건한 정신력은 갖추지 못한 자였다.
그런 자였기에 나는 그를 벨 수 있을 것이다.
“극한의 고통에서도 계속 목숨만 붙들고 있을지, 아니면 그만하라고 애원하며 스스로 필드를 거두게 될지!”
분노를 억누르며 그가 여유를 가장한 얼굴을 했다.
“필드를 거둔 순간 내 인형으로 전락하겠지만.”
여유로운 척하고 있으나 그의 속내는 이미 뒤집힌 채였다.
그가 부리는 뿌리와 가시덤불이 점점 더 치명적으로 몸을 죄어오면서 그것을 방증했다.
더해지는 힘에 내 몸은 금방이라도 터져나갈 듯이 망가지고 있었다.
“아으윽…….”
나는 육체의 손상이 극심해지는 것을 실감하며 그를 노려보았다.
“대왕이시여, 저는 인내심이 없어서 말입니다. 천천히, 느릿하게 고통을 주는 방법은 모릅니다.”
내 몸이 완전히 망가져 가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그가 이죽거렸다.
“대신 포션을 준비해 두었으니 그 몸이 기능을 다하기 직전에 얼마든지 고쳐드리지요.”
이렇게 망가트리다가 다시금 고쳐서 또 같은 짓을 반복하겠다는 뜻이었다.
“으, 크읏.”
나는 그의 말대로 육체가 한계에 달해가는 것을 느끼며 그에게 말했다.
“그, 거 알아요?”
업경이 감지한 대로 그는 성급했고 그만큼 뜻대로 움직이기 쉬웠다.
그렇기 때문에 그를 필요한 만큼 도발할 수 있었다.
“아까, 그, 공격…… 나는 신성을 아주 조금밖에 안 썼어요.”
내 말에 그의 눈동자가 눈에 띄게 흔들렸다.
“무슨 헛소리를…….”
이미 나를 제압했다고 여기면서도 동시에 아까 입었던 데미지에 혹시나 하고 다시 동요하고 있었다.
나는 업경으로 그런 그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며 웃었다.
“그리고, 나는, 몸을 다칠수록 공격력이 더 강해집니다.”
[ (!) 영웅담(E) ‘흘린 피는 흐르는 피로’의 효과로 공격력이 ‘2,000%’ 상승합니다. ]의도했던 대로 내가 품은 힘이 최대치에 달한 순간.
[ 검수지옥(L) ]나는 눈앞의 거목을 베어내기 위한 칼날을 불러왔다.
촤아아악!
촤아아아악!
이전의 일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솟아오른 칼날의 나무가 청탑주와 나무뿌리를 덮쳤다.
한껏 곤두선 업경은 청탑주 너머로 그와 연결된 신목이 산산이 찢겨 나가는 것을 읽어내었다.
“아…….”
내가 불러낸 칼날이 신목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나는 지금 고스란히 느껴지는 그 감각이 일전에 느껴봤던 것임을 의식했다.
그래, 우주퇴적물을 되돌릴 때의 감각이었다.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당신의 전설에 공명벴녁띄받듬흐흐흐다! ]신목이 품은 태초의 기가 본래의 형태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정베몄냈긍똴흐흐흐 베뭘흐흐식을 되베뭘흐흐니다. ] [ (!) 당신의 영벨닯냘흐담(XX)이 정베몄냈긍똴흐흐흐 베뭘흐흐식을 되베뭘흐흐니다. ]“이런, 말도 안 되…… 는.”
그러한 감각 속에서 청탑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우주의.”
끝내는 목소리마저 바스러지는 그에게서, 나는 문득 청탑주가 그리는 나무의 형상을 선명하게 의식했다.
처음 청탑주와 마주쳤을 때 맞닥뜨렸던 수백 년의 세월.
하여 고목(古木)처럼 느껴졌던 나무가, 사실은 이미 썩어서 비어버렸던 고목(枯木)과 다르지 않았음을.
***
북극점.
우주질서보존회 지구 본부.
지구청장 조옥희는 책상 앞에 선 여성을 마주했다.
거울을 맞댄 것처럼 그녀와 똑같이 생긴 여성이 하얀 정장에 검은 선글라스를 쓰고 서있었다.
새롭게 물질화된 우주질서보존회 안보팀의 안보팀장이었다.
“정말 놀랍군요.”
이름은 전임자의 것을 따와 조은희.
그녀가 화면에 비친 한반도의 하늘을 훑으며 말했다.
“버그를 되돌리는 버그라니.”
천계 전역에 산재했던 태초의 기.
그것은 최초의 버그로 인해 지구 전체의 시공간이 뒤틀리면서 발생한 왜곡된 인과의 집합체였다.
그리하여 존재 자체만으로도 주변의 시공간을 왜곡시키는 거대한 버그였다.
한데 지금, 긴 세월 한반도의 하늘을 부식시켜 왔던 버그가 어느 한 개체의 손에 평범한 인과로 되돌아가고 있었다.
“애초에 저 왜곡된 인과를 발생시킨 것은 이 별의 시공간을 뒤틀어버린 저 최초의 버그일진대.”
안보팀장이 검은 선글라스 너머로 눈을 빛냈다.
“그는 결국 자신이 발생시킨 버그를 스스로 되돌리는 셈이군요.”
그녀가 흥미를 감추지 않는 얼굴 신목을 베는 염라를 주시했다.
“마치 꼬리를 문 뱀 같습니다.”
팀장의 반응에 조옥희도 흥미를 보였다.
“인간의 신화를 잘 아시는군요.”
그녀의 말에 팀장이 느릿하게 눈을 끔뻑였다.
“네, 생각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러셨습니까.”
조옥희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의 전임자도 인간에게 흥미가 많으셨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뚜렷하게 화면에 비치는 장면처럼, 최초의 버그에서 비롯되어 그의 손에 사라졌던 한 오래된 버그를 떠올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