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ide An Adult Game As A Former Hero RAW - Chapter (230)
“…우리가 무슨 사이지?”
씁쓸한 마음에 툭 내뱉은 말.
뒤늦게 아차 싶었지만, 그녀는 말을 되삼키지 않았다.
클라우드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다.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사이냐니? 그야 약혼-”
프릴리테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
“클라우드. 나는 바보가 아니다. 나의 억지에 네가 어울려줬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어.”
농담을 농담으로 여기지 못한 그녀의 오해로 시작된 관계.
그녀와 그의 관계의 본질이다.
한때는 인정하지 못했지만 이제는 할 수 있다.
“그러니 알려다오. 너와 나는 무슨 사이지?”
프릴리테는 클라우드를 사랑한다.
곁에 있고 싶고 애정을 나누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그에게 그것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폭력이니까.
그와 그녀, 둘 모두 상처 입을 뿐이다.
때문에 만약 그가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면 더 귀찮게 하지 않고 떠나 줄 생각이었다.
클라우드는 자신을 향한 눈빛에서 그녀의 각오를 읽었다. 그렇기에 어설프게 말로 대답하는 대신 반지를 꺼냈다.
효력을 다했지만 여전히 그 화려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은 기사왕의 반지.
그것을 그녀의 왼손 약지에 끼웠다.
프릴리테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크, 클라우드 이건…”
“반지를 주는 건 네가 처음이야.”
“뭣..? 그게 정말- 읍?!”
깜짝 놀란 프리릴테가 그게 사실이냐며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클라우드와 그녀의 입술이 맞닿았다. 갑작스러운 키스에 그녀가 움찔 떨었다. 그러나 이내 정신을 차리곤 클라우드에게 맞춰 혀를 내밀었다.
오랜만의 키스는 서로의 입술을 조금씩 핥았을 뿐 진득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프릴리테는 클라우드 쪽에서 먼저 키스를 해왔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했다.
이윽고 입술이 떨어지며 길지 않았던 키스가 끝났다. 프릴리테가 아쉬운 표정을 지을 때 그가 그녀와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프릴리테. 나와 결혼해줄래?”
“…아?”
프릴리테의 반응이 반 박자 늦었다. 그만큼 놀랐다는 뜻이었고, 상황 파악이 되기 시작하자 홍조를 띠더니 얼마 안 가 얼굴을 완전히 붉게 물들었다. 그녀는 쑥스러움을 이기지 못하고 고개를 푹 숙였다.
“응…”
평소와는 달리 위엄이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클라우드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그녀와 입을 맞췄다.
이번 키스는 전과는 달리 혀를 섞는 진득한 키스였다.
안 그래도 기분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애정이 잔뜩 담긴 키스까지 이어지자 그녀는 너무 황홀해진 나머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때 클라우드가 프릴리테의 손등을 쓰다듬더니 서서히 깍지를 끼기 시작했고, 그녀 또한 호응하듯 강하게 그의 손을 맞잡았다.
스르륵-
클라우드의 리드 아래 프릴리테의 몸이 서서히 뒤로 기울어졌다. 클라우드 또한 그녀를 따라 몸을 기울였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몸을 맞대게 되었다.
입술과 손에 이어 몸까지 겹쳐지자 그와 완전히 하나가 된 것만 같았다.
‘리드당하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
프릴리테가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는 동안 입술을 떼어낸 클라우드가 그녀와 이마를 맞대었다.
“사랑해.”
아무런 미사여구 없는 담백한 사랑 고백에 불과하건만 그녀의 가슴은 더없이 간질간질해졌다.
돌연 프릴리테는 그가 어떤 점 때문에 그녀를 사랑하는지 궁금해졌지만, 괜히 분위기 깨질까 싶어 묻지 않았다.
그 대신 다른 말을 내뱉었다.
“나도 사랑한다.”
그와 그녀의 눈빛이 서로를 열망하듯 뜨겁게 타올랐고, 서로 얼굴을 가까이하며 다시 한번 입술을 맞추려던 순간.
-클라우드 용사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신전 바깥에서 백금 기사단장의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아.”
잊고 있었다는 듯 클라우드가 눈을 크게 뜨더니 손깍지를 풀곤 그대로 몸을 일으켰다.
“밖에서 기다리라고 했던 걸 잊고 있었네. 이럴 줄 알았으면 막사로 돌아가 있으라고 할 걸.”
아쉽다는 듯 혀를 찬 클라우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돌아가자.”
클라우드는 프릴리테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프릴리테는 멍하니 손을 바라보기만 할 뿐 그 손을 잡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돌아간다고?”
“어쩔 수 없잖아. 스킨십하고 있을 때 누가 들어오는 것만큼 민망한 일도 없는 걸? 자, 어서 손 잡아.”
클라우드가 조금 더 깊이 손을 내밀었지만 프릴리테는 여전히 멍한 얼굴을 할 뿐이었다.
‘방금 분위기 엄청 좋지 않았나?’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프러포즈까지 받았다.
클라우드와 함께한 시간은 거짓말로도 많다고 할 수 없지만, 그 많지 않은 시간 중에 오늘만큼 분위기가 좋았던 적은 없었다.
그런 분위기를 고작 키스 조금 하고 날린다고?
“…정말로 가나?”
“그럼 가짜로 가? 어서 일어나.”
-클라우드 용사님?!
“곧 나갑니다! 자, 가자. 얼른!”
프릴리테가 미동도 없자 답답해진 클라우드는 그녀의 손목을 잡고 일으켰다. 그는 그대로 프릴리테를 끌고 움직였고 그녀는 힘없이 딸려갔다.
* * *
백금 기사단장, 베넷은 지금 초조했다.
클라우드가 단독으로 신전 내부로 들어간 지 어느덧 두 시간가량이 지났건만, 여전히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역시 그때 억지로라도 함께 갔어야 했나?’
베넷은 클라우드의 강한 만류에 어쩔 수 없이 신전 앞에서 대기하게 된 것을 후회했다.
‘지금이라도 돌입해?’
하지만 그랬다가 클라우드에게 폐를 끼치게 되면 어쩌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베넷은 그냥 신전 안으로 소리쳐보기로 했다. 클라우드가 무사하다면 대답할 것이요, 그렇지 않다면 반대일 테니까.
“클라우드 용사님! 들어가도 괜찮겠습니까?!”
-…
한 번으로는 부족한가?
“클라우드 용사님?!”
-곧 나갑니다!
아, 무사했구나.
다행이다.
베넷은 가슴을 쓸었다.
남은 용사라곤 프릴리테와 클라우드 둘 뿐인데 그가 실패했다면 마지막 남은 용사 둘마저 모조리 잃게 되는 것이니까.
잠시 기다리자 살짝 열려있었던 신전의 문이 완전히 열리며 클라우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갑옷이 조금 부서졌을 뿐 다른 곳은 멀쩡해 보이는 프릴리테와 함께.
‘정말 해냈군…’
솔직히 혼자 들어간다고 했을 때는 반신반의했었다. 기사단원은 몰라도 프릴리테에게서 틈을 만들어내는 일이 쉬울 리가 없을 테니까.
그런데 보란 듯이 해내다니…
“미안합니다. 본의 아니게 오래 기다리게 했군요.”
“아닙니다. 무사하셔서 다행입니다.”
베넷은 이전보다 깍듯하게 클라우드를 대했다.
“프릴리테 님도 무사하셔서 다행…”
프릴리테를 향해 고개를 돌린 베넷이 흠칫 놀랐다. 베넷을 향한 프릴리테의 눈빛이 싸늘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프, 프릴리테 님..?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프릴리테가 베넷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묘하게 차가운 태도였다.
사천왕 패러사이트를 쓰러트린 후 두 용사와 백금 기사단을 기다린 것은 전후처리였다.
백금 기사단장, 베넷은 부상자는 치료를 받게 하고 멀쩡한 기사단원들은 경계 근무를 순차적으로 세우며 휴식을 취하게 했다.
상황이 갈무리되자 베넷은 죽은 기사단원의 장례를 치르고자 했다.
아무리 이곳이 저주받은 마계라고는 하지만 그게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이유는 되지 않으니까.
그러나 클라우드는 장례를 막으며 현황 보고를 시켰다. 베넷의 항의에도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그에 베넷은 어쩔 수 없이 명령을 따랐다.
“이번 전투에서 벌어진 부상자는 12명, 사상자는 3명으로 당장 전투에 투입될 수 있는 인원은 72명입니다.”
베넷의 막사 안.
프릴리테와 클라우드를 앞에 둔 베넷이 말했다.
보고를 받은 클라우드가 물었다.
“부상자 12명은 어떻습니까. 치료가 힘든 상황입니까?”
“아닙니다. 치료 후, 어느 정도의 휴식만 취한다면 얼마든지 전선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기사단원은 모두 84명이 되는 셈이로군요. 처음 출발할 때가 100명이었으니… 생각했던 것보다 피해가 적군요.”
백금 기사단이 마계에 돌입한 지 어느덧 수개월이 흘렀다. 이들은 그 수개월을 이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에서 보냈다.
클라우드와는 달리 길잡이도 없었으니 잘 알지도 못하는 땅을 계속 나아가야 했을 것이다.
자신들이 걷고 있는 이 길이 맞는다는 확신도 없이.
그런 상황에서 이 죽음의 땅은 그들에게 수많은 고난과 역경을 주었을 텐데, 용케도 무너지지 않고 질서를 유지했구나 싶다.
“단장님께서 수고가 많으셨겠습니다.”
“아닙니다. 저 같은 것보다야 프릴리테 님께서 더 고생하셨죠. 누구보다 앞장서서 마물과 싸운 프릴리테 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무리 저라고 해도 이 정도나 되는 병력을 온존 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베넷은 그리 말하며 슬쩍 프릴리테를 힐끗 쳐다봤다. 부디 방금 치켜세워준 말로 기분이 풀렸기를 바라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어림없는 일이었다.
베넷을 향하는 프릴리테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그는 속으로 신음했다.
프릴리테의 심기를 거슬러서 좋을 것이 없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그녀를 보좌한 베넷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역겨운 일을 일삼던 악신의 사도가 분노한 프릴리테의 검에 양단되는 것을 직접 지켜보았으니까.
물론 프릴리테가 베넷, 그를 쪼개버리는 일은 없겠지만…
공포라는 것은 이성에서 기인하는 게 아니다.
베넷은 하루빨리 이 공포에서 빠져나오고 싶었지만…
‘이유를 알아야 잘못을 빌고 용서를 바라던가 하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짚이는 것이 없었다.
대체 내가 뭘 잘못했지?
베넷은 답답한 마음에 나오려던 한숨 참았다.
그때 클라우드의 목소리가 베넷의 귓구멍을 파고 들어왔다.
“단장님? 제 말 듣고 계십니까?”
“아, 예. 용사님. 듣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그럼 부상자들의 치료가 끝나는 대로 돌아갈 채비를 하세요.”
“…예?”
뜬금없는 소리에 베넷의 미간이 좁혀졌다.
떠날 준비를 하라고 하면 이해하겠다. 이 장소를 떠나 마왕성으로 향하자는 거니까.
그런데 돌아갈 채비라니?
마치 마계를 떠나 제국으로 돌아가라는 뉘앙스가 담긴 말이었다.
베넷이 갸우뚱해하고 있으니 클라우드가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제대로 안 들으셨군요.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백금 기사단은 지금 이 순간부로 원정 임무를 마치고 제국으로 복귀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베넷이 테이블을 두드리며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프릴리테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기사단장. 흥분을 가라앉혀라.”
“뜬금없이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라는데 제가 어떻게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베넷.”
베넷이 몸을 흠칫 떨었다. 프릴리테는 어지간한 상황에서는 그를 이름이 아닌 직위로 불러주었다. 그게 그를 존중해주려는 그녀 나름의 배려라나?
그런데 지금은 그를 이름으로 불렀다.
그의 직감이 말했다.
여기서 처신을 잘못했다간 그에게 아주 슬픈 일이 벌어질 것 같다고.
슬퍼지고 싶지 않았던 베넷은 헛기침을 하며 다시 의자에 앉았다.
“제가 너무 흥분했던 모양이군요. 못 볼 꼴을 보여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멀쩡히 임무를 수행하는 중인데 누가 갑자기 찾아와서 하던 거 대충 마무리 짓고 복귀하라고 하면 저라도 흥분할 테니까요.”
“넓은 아량에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저희 기사단의 복귀 사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혹시 황명이라도 내려온 겁니까?”
“황명은 아닙니다. 애초에 황명이 내려올만한 상황도 아니고.”
클라우드가 덧붙인 의미심장한 말에 프릴리테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명이 내려올 상황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뜻이지?”
“아, 내가 말을 안 했구나. 제국에 반란이 일어났고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셨어.”
“음..?”
“..예?”
프릴리테와 베넷이 돌처럼 굳어버렸다.
갑자기 이런 충격적인 소식을 들었으니 크게 놀라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조금 더 상세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생각한 클라우드는 흡혈귀들의 반란이 일어난 경위와 그로 인해 발생한 피해, 그리고 비어버린 황좌를 향한 귀족들의 탐욕 어린 눈길 등을 이야기했다.
이야기가 끝났을 때 두 사람의 표정은 심히 좋지 않았다.
“폐, 폐하께서…”
충성심 깊은 베넷은 크게 동요했고.
“기스 그놈이 기어코… 이럴 줄 알았다면 맹세를 깨는 한이 있더라도 기스 그놈을 살려두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참사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 프릴리테는 스스로를 책망했다.
클라우드는 그런 그녀를 위로했다.
“그놈이 그렇게까지 할 줄 어떻게 알았겠어. 그리고 그때 죽였으면 그냥 평범한 용사 살해범으로 기억됐을 걸.”
“명예 따위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버릴 수 있다. 아니, 진작 버렸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또, 또 시작이다. 내가 그 자책하는 버릇 좀 고치라고 했어 안 했어?”
“했지… 했었지. 하지만 이건-”
“이건?”
클라우드가 눈을 가늘게 뜨곤 그녀를 바라봤다. 그에 그녀는 입술을 몇 번 들썩이다가 이내 한숨을 쉬며 앞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니다. 미안하다. 혼란스러운 나머지 약속을 어기고 말았군.”
“미안할 것까지야.”
클라우드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며 베넷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황제 폐하께서 승하하시고 정통한 후계도 없는 지금, 황후께서 그 자리를 맡고 계십니다. 이 정도면 더 말 안 해도 현재 제국의 상황이 가늠이 가시지요?”
베넷은 궁정 귀족들을 떠올렸다.
영지가 없는 그들이 가진 탐욕은 영지 귀족의 그것을 훨씬 상회한다.
아마 황실의 권위가 약해진 지금을 기회라고 여기고 있을 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