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124
‘그 사건?’
「무엇을 보시겠습니까?」
“ 티켓 한 장 주시겠어요?”
「아- 죄송합니다만, 손님, 현재 그 영화는 상영하지 않고 있습니다.」
응? 그게 무슨 말이지? 상영하지 않는 영화가 있다고?
「네, 죄송해요. 필름에 문제가 생겨서 현재 상영 중지 상태입니다.」
“필름에 문제가 생겼다고요?”
「네. 분실된 것은 아닌데, 필름에 손상이 생겨서 현재는 관람하실 수 없습니다.」
-*-
신기하게도 볼 수 없는 ‘기억’이 있었다.
“아- 배고프다. 아우,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검사님, 어떻게? 같이 식사하러 가실까요?”
“네, 그러죠.”
“검사님, 짬뽕 어떠신가요? 제 친구가 하는 식당인데 해물짬뽕이 겁나 맛있어요.”
“저는 짜장면 파(派)이기는 하는데···.”
—*—
수원지방검찰청 근처 중식당.
같은 지검으로 발령이 난 강인찬과 김영준이 식사를 하고 있다.
“여기 음식 괜찮게 하네요. 그렇지 않습니까, 부장님?”
“응. 괜찮네.”
둘은 각각 수원지검 강력범죄 전담 형사1부 부장과 부부장으로 승진해서 이동했다.
“근데, 송 차장님이 오도경 부장도 데려간 거는 좀 의외이지 않습니까?”
2019년 2월. 으레 있는 검찰 내 인사이동이지만, 이번에는 좀 큰 변화들이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의 압박 때문인지, 나름대로 쇄신하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기수대로 올라가는 문화에서 벗어나 부서 개편 및 몇몇 파격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그중 하나가 서울중앙 제1차장으로 있던 송재현 검사가 검사장으로 승진하여 대검 감찰부장으로 발령된 것이고, 그 밑에 감찰1, 2, 3과장 중 한 명으로 같이 있던 오도경 부장을 ‘데리고’ 간 것이었다.
본디 검찰의 인사권은 법무부 장관에 있으나, 관례상 대검 과장들은 해당 부서장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게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더니만···.”
“그러니까요. 권혁 부장이야 데리고 갈 줄 알았지만, 오 부장은 좀···. 하긴 거기 사돈이 요새 좀 잘나간다고 그러기는 하던데. 그렇죠?”
“송 검사님이 그런 거에 흔들릴 분은 아니잖아.”
“그렇게는 한데···. 그래도···도무지 알 수가 없는 분이라서.”
둘은 한동안 말없이 송재현이 왜 오도경을 데리고 간 건지에 대해서 고민했으나, 답을 알 수 없는 질문이었다.
“나는 그게 더 놀라워. 기정국이가 마약청 차장으로 간 게.”
2019년 2월 법무부는 마약 수사를 전담하는 독립수사청을 창설했다. 정식 명칭은 으로 초대 청장은 부산고등검찰장이었던 윤태승 검사가 임명되었고, 그 밑으로 차장직에 전(前) 서울 대검 마약·조직범죄 과장 기정국이 임명되었다.
직책은 마약청 내 ‘2인자’인 차장이었지만, 청장직의 윤태승은 마약·조직 수사에 경험이 없는 검사였고 (정치권과 타협하여 임명한 자였기에) 사실상 실세나 다름없었다.
“기정국 부장이 마약 통 아니었나요.”
“통이기는 하지. 신입 때부터 한공휘 검사님하고 일을 많이 했지.”
“아, 그 2005년도 여수 코카인 밀수 잡으셨던 분 맞죠? 한공휘 검사님이라는 분.”
“응. 사실 거기가 진짜 통이지. 검찰에서 아무도 마약에 ‘마’ 자도 몰랐을 때, 그분이 완전 체계 잡고 수사관들 교육하시고 미국 DEA 연수도 다녀오시고. 그때야 마약 하는 부류가 깡패 새끼들이나 술집 애들 아니면 미국물 좀 먹은 재벌집 애새끼들이 대부분이었을 때였는데···. 아무튼 그분이 체계를 잡으신 거지. 어찌 보면 마약청이 생긴 것도 그분 덕이고.”
“아···. 그럼 살아계셨으면 그분이 초대 청장이 되셨겠네요.”
“그렇지. 그러고 보면 인생 덧없어. 열심히 해서 밥상 다 차려놔도 막상 먹는 사람은 따로 있는 거 보면 말이야.”
“인생이 원래 그런 거 아닌가요.”
“그래, 네 말이 맞아. 인생이 원래 그런 거지.”
강인찬은 씁쓸한 표정으로 내려놓았던 수저를 다시 들었다.
“그러니까요. 나주연이 그 자식도 혼자 잘난 척은 다 해가면서 이곳저곳 들쑤시고 다니더니만, 결국 먼 데로 발령받았잖아요. 그것 때문에 정작 서울중앙에 남게 된 거는 홍 프로고.”
삼 개월 전, 주연과 인아가 기장의 폐조선소에서 변영상과 김현준 등을 검거하면서 조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던 불법도박장 사건이 크게 보도되었다.
그로 인해 검경이 대대적인 수사를 벌였고, 특히 대검에서는 팀을 꾸려 전국적으로 성행하고 있는 불법 도박과 국내 자본 해외 유출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는데, 그 팀에 차출된 사람은 주연이 아니라 같은 형사3부의 홍세인 검사였다.
“그 팀 수장이 홍세인하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며.”
“네.”
“거기 출신들이 좀 원래 끌어주고 그런 게 있지. 나 프로는 어디로 갔지?”
“여수요.”
“멀리도 갔네.”
“깝죽대더니 잘됐죠 뭐.”
“여수가 어때서? 나도 ‘3학년 때’ 거기서 근무했어. 여수 좋아, 왜 그래.”
“아니, 여수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부장님도 아시잖아요, 그 자식 그거 송재현 차장님한테 잘 보이려고 그렇게 나댄 거. 어떻게든 잘 보여서 수도권 쪽에 있어 보려고 그런 거잖아요. 형사부 검사가 수사랍시고 쓸데없이 빨빨거리고 돌아다니고. 어린 새끼가 벌써부터 정치질이나 하고 그랬는데, 아예 그리고 간 거면, 송재현 차장님도 딱히 그 자식을 좋게 본 거나 그런 건 아니지 않을까요?”
“어이, 김 프로. 이제 검사 된 지 3년도 안 된 애야. 걔가 뭘 알겠어. 그냥 지도 살라고 그런 거겠지.”
강인찬의 말에 김영준은 얼굴이 후끈 달아올랐다. 예전 무릎을 꿇을 뻔한 일이 떠오른 것이었다.
“왜 그러십니까, 부장님? 부장님도 보셨잖아요. 그 새끼 그거 제멋대로 하고는 여차하면 차장님한테 쪼르르 달려갔던 거.”
“뭐, 그런 면이 없지는 않았지. 그런 거는 안 좋은 건데 말이야.”
“그러니까요!”
“근데 윗사람들도 다 알아. ‘아, 요놈이 나한테 잘 보이려고 요런 수를 쓰는구나!’ 하는 거. 그렇게 보고 체계 무시하고 나대면, 위에서도 안 좋게 보지. 송 검사님이라고 모르셨겠어?”
“하긴. 아니 근데, 편애하시는 것처럼 보였어요. 그 무서운 양반이 그놈이 뭐만 하기만 하면 오냐, 오냐···.”
“김 프로, 설마 나 프로를 질투했던 거야?”
“네에?! 에이- 부장님. 저를 어떻게 보시고···. 아- 섭섭합니다.”
“됐어. 농담이야.”
“아이, 진짜. 제가 그런 놈을···하···진짜···.”
“오바하지 말고 밥 먹어. 알았어, 농담이야.”
강인찬도 생각이 났다. 그날 생선구이집에서 나주연이 당돌하게 무릎을 꿇으라고 했던 일이. 붉으락푸르락 변하는 후배의 얼굴이 재미있었는지, 강인찬은 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
띠리링- 띠리링-
“여보세요.”
– 어떻게 잘 지내고 있냐? 여수는 어때?
흥식이다.
“좋다.”
– 뭐가?
“여기 음식도 다 맛있고 밤에 퇴근하고 바닷소리 들을 수 있는 것도 좋고.”
– 한 삼 개월 더 있으면 지겨울 것으로.
“그건 삼 개월 더 있어 보고 말해주마. 왜?”
– 아, 다른 거는 아니고 이번 주말에 내려가려고 하는데, 시간 되지?
“어디? 여기?”
– 응.
“왜?”
– 뭘 왜야? 친구 보러 가겠다는데.
“정혜한테는 뭐라고 하고?”
– 아- 그냥 아는 선배가 여수지청으로 발령 나서 한번 오라고 했다고 했더니, 다녀오래.
“아- 그랬구나.”
– 아무튼 이번 주말에 여수에 있는 거지? 어디 안 가고.
“응. 여기 있을 거야.”
– 그럼, 간다. 맛있는 데에 많이 예약해놔라.
“오지 마. 다음 주에 와.”
– 왜?
“이번 주에 여친 오기로 했어.”
– 여친? 은채 씨? 은채 씨 저번 주에 왔다갔다며.
“응. 이번 주에 또 온대.”
– 와- 뜨겁네.
“응. 좀 뜨거워.”
– 아- 알고 싶지 않아. 쩝, 아쉽네. 맛있는 것 좀 먹으려고 했더니만.
“다음 주에 와.”
– 다음 주에는 안 돼. 와이프랑 놀러가기로 했어. 그럼 그다음 주에나 가야겠다.
“그다음 주는 내가 서울에 올라 갈 일이 있을 것 같은데······.”
– 서울? 서울은 왜?
“그건 그때 가서 알려줄게.”
변영상을 잡은 지 삼 개월.
이제 슬슬 준비가 끝나 간다.
슬기로운 여수생활 (2)
광주산맥의 끝자락에 자리한 용인은 주변의 먼저 발달한 수원, 이천, 성남 등과 달리 구릉성 산지로 이루어진 도시이다.
21세기에 들어 급격히 발달한 이 지역에는 약 34개의 봉, 혹은 낮은 산들이 있으며, 50여 개의 고개가 있는데,
조필건 회장의 비밀스러운 요새가 바로 그 산 중 하나에 숨어있었다.
“말씀하신 대로 그룹 내 스물세 개 회사 지분 구조 모두 재조정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법무법인 해달의 파트너 변호사 정상록이 들고 있던 태블릿 PC를 조필건에게 내밀며 말했다. 화면에는 조필건 그룹의 지분 구조를 설명하는 파워포인트 파일이 실행되어 있다.
“내가 보면 뭘 아나. 정 변호사가 잘했겠지.”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변 이사가 관리하고 있던 카지노 사업 부분하고 연계되었던 국내 회사들은 모두 파산·정리했고, 기존 회사들이 지고 있던 채권, 채무들은 홍콩 SC 파이낸싱에 먼저 양도한 후, 버진 아일랜드의 지주사로 재양도했습니다. 검찰의 추적을 대비해 미국 델라웨어주에 회사를 두 개 설립해서 트랜잭션을 분산시켰습니다. 컨펌해 주시면 델라웨어의 회사들은 곧바로 해산시키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삼 개월 동안 정상록은 조필건 그룹 내 회사들 지분 구조를 전부 재편했다. 변영상이 관리하고 있던 불법 도박 사업과 관련해서 검찰 수사 중에 노출될 수 있는 다른 불법 사업들을 숨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복잡하게 얽혀있어도 그에게 있어서 어려운 임무는 아니었다. 애초에 그가 짠 그룹 조직도였다.
“알아서 해.”
“알겠습니다. 그러면 그렇게 진행하겠습니다.”
“수고했어.”
“아닙니다.”
조필건은 잔을 하나 꺼내 그가 좋아하는 위스키를 따라 정상록에게 건넸다.
“운전하고 왔습니다.”
“한잔 정도는 괜찮잖아.”
“잔만 받겠습니다. 요새 같은 시기에 사소한 일로 시끄러워지면 괜히 복잡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사업하는 사람은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아야 하지만, 리스크를 관리하는 사람은 그 반대여야 한다. 세세한 거 하나, 하나 조심해야 하고 직접 챙겨봐야 한다.
조필건은 정상록 변호사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형사소송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어.”
“김현준 실장은 문제가 없을 걸로 보입니다. 어제도 잠깐 보고 왔는데, 생각보다 말기를 잘 알아듣는 편입니다. 그런데, 변 이사는 제 접견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검찰에 협조하기로 한 모양인 듯싶습니다. 다음 달에 공판이 열려야 정확한 포지션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현준은, 정상록의 코치대로, 변영상과 금전 문제가 있었다고 항변했다. 단지 겁만 주기 위해 폐조선소에 데려간 것이었을 뿐 살해 의도는 일절 없다고 진술했으며, 조필건이나 그 외 다른 부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잡아뗐다.
반면, 변영상은 검거 당시 주인아에게 모든 걸 진술한 후 현재 묵비권을 행사하는 상태였다. 기존 진술에 대해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은 채.
“김현준 실장과 변 이사를 데리러 갔던 세 직원은 실형을 면하기 힘들 듯싶습니다. 위치추적이나 함정수사 등 위법으로 수집된 증거는 채택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해보겠지만, 어찌 됐건 현직 검사에게 칼을 들이댄 사건이라 그냥 넘어가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2년 이상 나오지 않을 겁니다. 그 외 조선소에서 검거된 나머지 직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날 겁니다.”
원칙적으로 사람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자는 살인범과 동일한 처벌인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할 수 있다. 하지만, 통상적으로 법원의 양형기준은 그것보다 현저히 낮으며, 특히 피해가 적고 범행이 우발적이었다고 판단할 시, 법원은 직권으로 최대 1년~2년까지로 감량할 수 있다.
정상록은 그렇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현준이 그놈은 아직 쓸만하지······.”
“변 이사가 문제이기는 한데···. 그래도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두었습니다.”
변영상이 아는 것을 모두 검찰에 자백한다고 해도 조필건에게 문제가 가지 않을 만큼 준비해두었다는 의미였다.
“어차피 버릴 카드였어. 이렇게 되어버린 거 제멋대로 하게 내버려 둬. 지도 살고 싶으면 할 말, 못 할 말 가려 하겠지.”
하지만, 조필건은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그래도 괜히 날파리들이 꼬이지 않도록 단속하겠습니다.”
기자들 말이었다. 검찰에 대고 입을 나불거리면야 재판에서 진술의 신뢰성을 공격해서 무마시키면 되지만, 언론에 떠들면 신뢰성하고는 다른 문제를 양산할 수 있었다.
“날파리야 죽이면 되지.”
조필건 회장이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지만, 정상록은 긴장을 풀지 않는다. 그는 잘 알고 있었다, 겉은 저래도 실수하면 자신 역시 변영상과 같은 처지가 될 거라는 걸.
“사업은 이건웅이한테 맡겼어. 잠시동안만.”
이건웅이라는 말에 정상록은 움찔했다. 조 회장은 매우 은밀하게 ‘사업’을 하는 인물이었다. 겉으로는 설렁설렁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람을 치밀하게 관리하는 자였고,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자였다.
그런 그가 전과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삼류 조폭 보스를 불러들였다는 건, 리스크를 관리하는 변호사의 관점에서 반기기 힘든 결정이었다.
“아, 그러셨습니까.”
“쓰던 놈들이 졸지에 다 들어가 버려서 말이야. 상해에 있는 기진이 들어오라고 했는데, 기진이도 일을 하려면 밑에 사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