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24
죽음 (2)
이준성 씨의 장례식은 시신이 발견된 지 이레가 넘어서 치러졌다. 사건과 관련해서 두 검사의 수사지휘가 달라 혼선을 일으킨 것도 하나의 이유였으나, 장례가 이렇게까지 지연된 데에는 무엇보다도 적당한 상조회사를 찾을 수가 없어서였다.
초록색 검색창에 ‘장례’라고만 쳐도 수십 개의 상조회사 광고가 제일 먼저 뜰만큼 흔한 서비스지만, 대부분의 업체는 장례지도사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다는 이유로 변사자 시체 받기를 꺼린다.
장례 지도를 업(業)으로 사람들이 시체를 가린다는 게 언뜻 이해가 안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도 결국 회사에 소속되어 돈을 받고 일하는 사람에 불과했다. 경험이 많은 자라고 할지언정 훼손이 심하고 부패가 많이 진행된 시체를 닦고, 치장하여, 관에 넣는 일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익사자 이준성 씨의 장례는 주인아 경위가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상조회사에 웃돈을 좀 더 얹어주기로 하고 겨우 치러질 수 있었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검사님. 감사합니다.”
삼일장은 강남신성병원의 장례식장 8호실에서 진행되었다. 검정색 정장에 같은 색 넥타이를 맨 주연이 빈소 안으로 들어오자, 박효순 할머니는 대뜸 달려와 그의 손을 붙잡았다.
“우리 아들 장례를 치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정아, 너도 어여 와서 인사드려. 아주 고마우신 분이니까.”
유가족에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는데. 아무래도 서초서 주인아 경위가 귀띔한 모양이었다.
조용히 조문하고 돌아가려던 주연은 그럴 수 없게 되었다.
박효순 할머니의 거듭된 요청에 분향을 마치고 접객실 한쪽에 놓인 테이블에 앉자, 도우미 아주머니 한 분이 묻지도 않고 육개장과 쌀밥을 놓고는 휙 제자리로 돌아가신다.
텅 비었을 거라고 예상과 달리 접객실에는 제법 많은 조문객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먹고 왔는데······.’
먹고 싶지 않았다. 육개장이 싫어서나 음식의 질 때문은 아니었다. 몇 년 전 치른 어머니 장례식 때 밥을 먹고 심하게 체해 발인하는 모습도 제대로 보지 못한 그였다. 붉은 국과 흰 밥을 보고 있자니 그때 생각이 난다.
“오셨네요?”
테이블의 음식을 멍하니 보고 있는 주연 앞으로 아는 얼굴이 앉았다.
“아, 주 경위님.”
어깨쯤 오는 머리카락을 뒤로 가지런히 묶은 그녀는 하얀 반소매 티셔츠 위로 검정색 블레이저를 입고 있었다. 걷어 올린 블레이저 소매 아래로 까무잡잡하고 단단한 그녀의 손목이 드러났다.
주인아 경위는 가냘픈 몸매에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여배우가 연기하는 드라마 속 여형사가 아니었다. 키 168cm에 몸무게 60kg의 다부진 신체를 가졌고 허스키한 목소리가 인상적인 진짜 여자 경찰이었다.
“아, 괜찮아요. 먹고 왔어요.”
주연과 달리 인아는 성미 급한 도우미 아주머니가 밥과 국을 그녀 앞에 내려놓기 전에 먼저 제지했다.
“재빠르시네요.”
“네?”
“저도 먹고 왔는데, 저는 아주머니가 너무 빨리 놓고 가시는 바람에 미처 거절할 타이밍을 놓쳤거든요.”
“그러셨어요? 제가 장례식장 음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아, 그러세요?”
“네. 이상하게 어렸을 때부터 장례식 갈 기회가 많았는데, 어느 때부터인지 장례식에서 주는 음식이 별로더라고요. 육개장을 싫어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다 보니, 저렇게 성미가 급한 아주머니들을 종종 경험했고 그래서 장례식 접객실에 앉을 때는 아주머니들부터 확인한다는 의미였다.
“아, 네.”
자신도 장례식장에서 주는 음식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주연은 대신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대꾸하면 이유를 말해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럴 수 없는 처지였다. 물론, 대충 얼버무릴 수야 있겠지만, 그러느니 그냥 대꾸를 하지 않는 편이 나았다.
다만, 그의 짧은 대답이 대화를 끊어버렸고 좋아하지 않는 음식 사이로 앉아있는 둘 사이에 잠깐동안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
“·········.”
“그 몸 좋으신 분은 안 오셨네요?”
자기 때문에 분위기가 어색해진 것 같아, 주연은 주제를 바꿔 대화를 이어봤다.
“동석이요?”
“네, 차동석 경장님. 그러고 보니 그분하고 이름도 비슷하네요. 몸도 비슷하지만. 하하.”
“퇴근했습니다.”
“아-.”
“변사자 장례식까지 참석하는 게 저희 임무는 아니니까요.”
목소리가 거칠어서 그렇지 까칠한 대답은 아니었다. 그저 사실을 말했을 뿐.
“그렇죠. 그런데, 주 경위님은 오셨네요?”
“저는 검사님이 부탁하셔서······.”
변사자 검시 직후 검안실 앞에서 주연이 도움을 요청했기에, 인아는 이준상 씨의 장례 절차에 관여하게 된 것이었고, 유가족이 늙으신 할머니에 어린 손녀딸이기밖에 없었기에 진행 확인차 조문을 온 것이었다.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수고 끼쳐드려서.”
“아닙니다. 근데요, 검사님. 뭐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요?”
“네.”
“이준상 씨 장례비용을 왜 내시는 거죠? 그냥 동정심이신가요?”
왜 낸다고 했을까······?
대답하기 전, 주연은 빈소 쪽에 있는 박효순 할머니를 다시 한번 바라봤다.
특별한 경험이었다. 들키고 싶지 않은 범죄자들의 기억과는 달리 자신의 원통한 심정을 알아달라고 하는 할머니와의 ‘소통’은 좀 더 전지적이었다.
박효순 할머니의 손을 잡는 순간, 주연은 그녀의 인생이 저장된 장소에 ‘입장’할 수 있었고 그곳에서 상영하고 있는 ‘영화’들은 그녀의 회한이 담긴 순간들이었다.
할머니가 느낀 후회, 미안함, 죄책감들이 생생하게 전해졌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서요. 주 경위님은 죽고 싶은 적 없으신가요?”
“···.”
“없으셨나 보네요. 저는 있었어요. 돌이켜보면 내가 왜 그때 그런 생각을 했을까가 나 자신도 의문스럽기는 한데, 그 순간은 정말 죽음이라는 버튼 위에 손가락 하나 얹어놓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이 세상에서 내 맘대로 되는 건 내 죽음밖에 없는 그런 기분. 이준성 씨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해요. 차이점은 저는 운이 좋아 그 순간을 잘 넘길 수 있었으나 그분은 아니었다는 정도? 동정심이 나쁜 단어는 아니지만, 동질감이라고 해두죠.”
심각한 이야기에 주인아는 주연의 두 눈을 바라봤다. 자기보다 두 살이나 어린 검사의 눈빛이라고 하기에는 왠지 모르게 연륜이 느껴졌다.
“그런 사연이 있으셨네요.”
어쩌다 보니 속내가 나왔다. 주연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왕 물어본 거, 한 가지만 더 물어봐도 될까요?”
“네, 물론입니다.”
“검사님은 왜 최성원을 자살교사·방조죄로 기소하려고 하시는 거죠? 검사님이 훨씬 더 잘 아시니까 그러시는 것이겠지만, 궁금해서요. 자살교사·방조죄를 증명하는 게 어렵지 않나요? 제 경험상, 검사님들께서는 그런 것들을 좋아하지 않으시던데, 증명하기 어려운 죄목을 공소장에 넣는 것.”
공소장은 검찰의 얼굴과 같다. 하나만 걸리라 하고 아무 혐의나 다 집어넣는 문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녀 말대로, 검사들은, 전략적이거나 정치적인 이유가 없는 한, 증명할 수 없는 것들, 즉 법원에서 판사에게 ‘까일’만한 것을 공소장에 넣지 않는다.
주연은 검찰의 그런 세세한 생리까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 하나, 파악했다고 한들 그의 답이 달라졌을까?
“누군가 자살했다고 하면 사람들은 그 사람이 나약해서, 심지어는 비겁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하잖아요.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아보려고 노력하지’, ‘차라리 그 각오로 더 치열하게 살지’라고. 근데 솔직히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 사람이 어떤 노력을 했는지, 죽는 순간까지 그의 인생이 얼마나 치열했는지. 저 아이도 커가면서 그런 말을 들을 텐데, 그때마다 자신의 아빠가 나약해서, 비겁해서 죽었다고 생각하면 큰 상처가 되지 않을까요?”
주연이 바라보고 있는 빈소 쪽에는 아빠의 죽음을 아직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한 소녀가 서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알려주고 싶어요. 저 아이에게. 아빠가 절대 비겁해서 혹은 나약해서 그런 선택을 한 게 아니라는 거를.”
그러려면 최성원이 자살교사·방조죄를 증명해야 했다.
인아는 대답을 마친 주연의 두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상대가 거짓말하는지 아닌지 탐색하기 위한 일종의 직업병이었다.
주연이 안 미더웠다기보다는 드라마 속의 열혈 검사 캐릭터가 읊을만한 대사가 어린 검사의 입에서 나왔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심오하네요.”
“그 정도는 아니고요.”
“아무튼 저는 검사님 덕에 좋은 일 했습니다. 하마터면 놓칠 뻔한 사기꾼도 잡을 수 있었고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면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아니요. 제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법적으로 궁금한 게 있으면 기탄없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래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죽음은 끝이다. 그 죽음에 억울함이 있다면 풀어주어야 하는 것도 검사의 일이다. 안타깝게도, 간혹, 그것을 모르는 사람이 그 자리에 있기도 하다.
비록 ‘야매’일지언정 송정의는 검사로써 자신의 의무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
서울중앙지검, 425호실.
“좋은 아침입니다.”
감색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주연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검사님도 좋은 아침입니다.”
이미 출근해있던 공인철 수사관이 그를 반갑게 맞이했다.
“수연 씨는요?”
“아, 사건과에서 받아올 서류가 있어서 거기 갔습니다.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늘 좋으시기는 하지만.”
“네, 오늘 느낌이 좋네요. 늘 좋지만 오늘은 더? 하하. 아 참, 계장님, 혹시 저번에 제가 드린 로또 체크해보셨어요? 당첨되셨나요?”
“에이, 검사님도 참 그게 벌써 언제 주신 건데요. 당연히 체크해봤죠.”
“안 됐나요?”
“안 됐어요. 왜요? 검사님은 되셨어요?”
“네!”
“진짜요?”
“하하하. 저는 까먹고 있다가 오늘 아침 출근길에 편의점에 잠깐 들렀을 때, 지갑에 있는 걸 보고 이제 확인했는데, 글쎄 4등에 당첨되었더라고요.”
“4등이면 상금이 오만 원이죠?”
“네.”
“축하드려요. 오늘 검사님 운수가 좋은 날이시네.”
“하하하, 그래서 제가 또 그 상금으로 이렇게 샀지요.”
주연이 주머니에서 로또 두 장을 꺼내 인철에게 건넸다.
“검사님도 참···. 그렇다고 또 로또를 사셨어요? 허허허.”
“다음번에는 조심스럽게 3등 기대해봅니다. 한 장은 계장님이 가지고 계시다 수연 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당첨되면 바로 자수하겠습니다.”
“저도 그러겠습니다. 아, 남은 상금으로는 이따가 점심 쏠게요. 계장님, 오후에 이준성 씨 사건 관련해서 양인준 증인 오기로 되어있죠? 그게 몇 시죠?”
“오후 2시에요.”
“아, 알겠습니다. 그거 말고는······.”
“아, 맞다. 내 정신 좀 봐. 방금 전에 부장님이 전화하셨어요. 이준성 씨 사건 관련해서 공소장 결재 올리기 전에 회의 좀 하자고 하셨어요.”
“아, 그래요? 알겠습니다. 왜 그러시지···? 그러면 지금 올라가······.”
징징- 징징-
바로 그때, 주연의 주머니 속에 전화기가 여느 때보다 더 심하게 진동했다.
“아침부터 누구지···?”
핸드폰 창에 뜬 ‘매제’라는 두 글자.
주연은 공인철 계장에게 다녀오겠다고 손짓하고는 통화 버튼을 누르며 사무실을 나섰다.
“여보세요? 아침부터 웬일이야?”
그렇게 활기차게 나서던 주연은 두 걸음도 채 걷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추어 설 수밖에 없었다.
“정의야.”
“왜? 점심 같이 먹자고? 이걸 어쩌냐, 나 오늘 약속···.”
“너······죽었어.”
내가 죽었다.
병원에 누워있던 나의 육신이 숨을 멈췄다.
마지막 연극
삼십팔 년 동안 살아온 얼굴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부터 나이 들어 생긴 주름까지 다 기억이 난다.
배우로서 나름 소중히 하며 살아왔는데······.
눈앞에 핏기없이 말라비틀어진 자신의 얼굴은 너무나도 낯설다.
이게 정말 나의 얼굴인가?
나주연의 눈으로 보고 있는 시체는 며칠 전 변사자의 시체와 별다르지 않았다. 양쪽 눈꺼풀이 올곧이 붙어있고 부패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외형적인 차이 외에 죽은 몸뚱어리가 발산하는 싸늘한 느낌은 똑같았다.
나주연은 영안실 침상 위에 뉘어있는 시체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괜찮냐?”
괜찮지 않다. 아직 정신이 살아있으니, 인간 ‘송정의’의 기억과 의식이 아직 이 땅에 남아있으니 괜찮다고 할 수 없다.
근거 없는 믿음이었어도 언젠가는 ‘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는데, 정말 믿었었는데······.
이제는 돌아갈 몸이 없어졌다.
앞으로 ‘나’는 ‘송정의’로 살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전개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는데······.”
주연은 혼잣말처럼 대답했다.
오래된 친구의 시체를 보고 있는 흥식도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비록 친구의 의식이 다른 몸에 남아있다고 하나, 지난 몇십 년 동안 함께 자라온 친구의 육체가 그런 모습으로 누워있으니 그 역시 비슷한 기분이었다.
송정의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손을 잡아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억지로 눈꺼풀을 뒤집어 초점 없는 시선을 맞춰본다 한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펼쳤던 하얀 천을 검푸른 얼굴 위로 다시 덮어주고 영안실을 나왔다.
—*—
먼발치에서 검은 한복을 입은 동생 정혜가 연제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퉁퉁 부은 두 눈이 그녀가 감내하고 있는 슬픔을 모두 말해준다.
“정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