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pection RAW novel - chapter 67
“아니. 거기 큰 형이라는 사람이 너무 욕심이 많고 질도 안 좋아서 그냥 소송했어. 도저히 말로 안 되는 인간이라더라고. 젊었을 때 자기 몫을 다 받아가 놓고서는 노부모가 아플 때 찾아보지도 않더니만, 돌아가시고 나서 제일 먼저 유산에서 뭐 가져갈 것 없나, 기웃거리는 거 있지. 정말 기본도 안 된 인간들이 너무 많아.”
“동감한다. 그래서? 이겼냐?”
“졌으면 저 딸기 상자들이 내 방에 있겠냐?”
“알지-. 우리 흥식이가 어떤 변호사인데. 좋은 소식 한번 더 듣고 싶어서 그런 거지. 친구의 희소식이 나의 희소식 아니겠냐. 야, 나가자. 오랜만에 밖에서 한잔하자.”
“네가 웬일이냐? 시켜 먹자고 안 하고.”
“그러고 싶지. 근데, 문 닫잖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아, 그렇구나.”
“딸기 챙겨서 먼저 차에 가 있을 테니까, 나와라.”
—*—
마포 가든호텔 뒷골목에 오래된 가게들이 많다.
이제 거리에 취객들도 몇 남지 않은 시각, 주연은 흥식을 데리고 오래된 팝송이 흘러나오는 맥줏집으로 들어갔다.
“여기요. 기네스 두 잔 주시겠어요.”
잠시 뒤, 검은 액체 위로 아이보리 거품이 적당한 비율로 올려져 있는 음료가 나왔다.
“오오- 생맥이야? 기네스 생맥은 오랜만이네.”
“그렇지? 나도 오랜만에 마셨더니 맛있더라.”
“간단하게 마시러 가자면서 마포까지 오길래, 여기 왜 오나 했는데···.”
“안주 할래?”
“아냐. 나는 괜찮아.”
“그래, 나도 뭐 생각 없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안 거야?”
“아- 저번에 권준태 사건 같이한 검사님이 생태탕을 사주시겠다고 해서 이 근처에 왔었는데, 1차 끝나고 2차로 여기를 소개해주시더라고. 괜찮지?”
90년대 유행하던 맥줏집 인테리어를 고스란히 간직한 가게.
양은 그릇에 담겨나오는 강냉이랑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음악마저도 지난 세기말(世紀末)스럽다.
“야, 나 사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한잔하자고 했다.”
“뭐?”
“최근에 어찌어찌하다가 경찰서 비리를 알게 되었는데, 이거를 수사하려면 위에 얘기하고 해야 하냐?”
“경찰서 비리?”
“응. 아직 들여다본 기억 속 인물들이 누군지 몰라서 정확하게 파악하지는 못했는데, 비리는 확실해. 느낌상 꽤 윗선까지 연루된 것 같아.”
주연은 강남 클라우드 가라오케 사건을 수사하다가 알게 된 사실을 흥식에게 설명해주었다.
주연의 설명은 들은 흥식의 미간에 주름이 파였다.
“그거는 심각한데.”
“응.”
섣불리 접근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었다.
어느 선까지 개입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자백 몇 개만으로 해결될 사건이 아니었다.
“이 정도 급을 수사하려면 당연히 위에 보고하고 시작해야겠지? 그러면 반부패부로 가겠지?”
“그리로 가겠지. 아니면 대검에서 가져가든가. 비리가 어느 급까지 연결되어 있냐 문제겠지만.”
검찰에서 다루는 사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고소·고발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인지 사건이다.
전자는 범죄의 피해자 혹은 제삼자가 범죄사실을 신고하여 처벌을 구하는 의사표시로 시작되는 사건이고,
후자는 수사기관이 범죄 발생에 대한 정보를 얻어 스스로 수사를 진행하는 사건이다.
사기·폭력 등 일반 범죄 등이 주로 전자에 해당하고 정치인이나 고위 권력자, 기업가들이 결탁한 사건들은 후자에 해당한다.
주연이 속해있는 형사부는 고소·고발 사건을 처리하는 부서이고, 경찰 비리 같은 사건은 주로 반부패부, 즉 특별수사 부서에서 다룬다.
주연이 알아낸 사실을 오도경 부장검사에게 보고하게 되면, 사건은 분명 서울중앙지검 반부패부에서 맡게 될 것이 뻔했다.
“너 무슨 생각 하냐?”
“고민 중이다.”
“뭘?”
“······.”
“뭘 고민 중이냐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혼자 수사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 같아서.”
“당연하지. 게다가 경찰이야. 일개 검사가 수사하겠다고 집적댔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되는 수가 있어.”
흥식이 말대로 상대는 경찰이었다. 기소권 독점 이슈 등으로 검찰과 각을 세우고 있는 경찰.
당연히 그런 거시적인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부패 사건이지만, 자칫 잘못하다가는 정치적 싸움에 휘말려 본질이 흐려질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또한, 그랬다가는 주인아 경위의 사촌 오빠 폭행 사건은 묻혀버릴 가능성이 컸다.
주연이 이 모든 것을 알게 된 경위가 바로 해당 폭행 사건인데···.
고래 싸움이 새우 등 터지게 되는 꼴이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그래도 터지면, 결국 정치적 싸움으로 번지겠지?”
“그래서 초반이 중요해. 네가 지금껏 일반 사건들 해오던 것처럼 그렇게 들쑤시고 다니면 검찰이 경찰을 사찰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고, 그러면 막상 증거를 잡아냈을 때도 분위기가 안 좋을 수 있어.”
이런 사건들은 기사화하기 좋은 사건이고 기사화가 되면 정치인들이 달라붙을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그렇다면 첫인상이 중요하다.
검찰이 경찰을 견제할 목적으로 사찰하는 도중에 발견된 것과 우연히 계기로 경찰의 비리가 드러나게 된 것과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겠지? 이해는 가면서도 씁쓸하다. 솔직히 검찰이랑 경찰은 형제같이 서로 상부상조 해야 하는 같은 기관들 아니냐?”
“원래부터 권력 싸움은 형제들끼리 제일 심한 법이다.”
“그냥 썩은 부분을 도려내자는 건데······.”
모든 것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세상.
누구의 잘못일까?
“알았다. 그러니까 너도 겉으로 보이는 명목이 중요하다는 거지?”
“뭘 알았는데? 괜히 불안하다.”
사실 주연은 흥식을 만나기 전 고민을 이미 많이 한 상황이었다.
비리 사건도 비리 사건이었지만, 주성재 사건도 중요했다.
어차피 일개 평검사가 결정할 수 없는 대형 비리 사건이라면, 흥식의 말대로 첫수를 잘, 아주 잘 두어야 했다.
동시에 주성재 사건을 잘 마무리하면서······.
“흥식아, 나 부탁 하나만 하자.”
—*—
까톡.
[주연: 경위님, 시간 괜찮으시면 이따 점심에 잠깐 뵐 수 있을까요?] [인아: 네, 알겠습니다. 제가 그쪽으로 가겠습니다.]흥식을 만난 다음 날, 주연은 인아를 만났다.
“사촌 오빠는 좀 어떠신가요?”
“다른 데는 많이 나아졌는데, 다친 눈이 문제인 것 같더라고요. 다행히 실명은 면했지만, 시력이 많이 나빠졌다고 들었어요.”
“저런— 뭐라고 말씀드릴 말이 없네요.”
“괜찮습니다.”
“그럼, 많이 기다리셨을 텐데, 제가 알아낸 것들을 말씀드릴게요. 그전에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것들은 전부 경위님만 알고 계시고 동료분들에게도 극비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주연의 요청이 갑작스러웠지만, 인아는 이유를 묻지 않고 ‘네’라고 짧게 대답했다.
“안타깝게도 사촌 오빠분 폭행 사건 당일 가라오케 CCTV 영상기록은 없었습니다.”
“아- 그래요.”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고 분명 당일 현장에 출동했던 청담파출소 순경이 강남서 김신우 경장에게 전달했는데, 김신우 경장이 고의로 파기한 것 같습니다.”
“네? 왜 그런 짓을···?”
“아무래도 가게에서 뇌물을 받아오고 있었던 것 같아요.”
“뇌물이요? 강남서 김신우 경장이요?”
“김신우 경장뿐만 아니라 어쩌면 형사계장까지, 강남서 형사팀 전체가 다 연루되어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주인아의 미간에 주름이 깊게 파였다.
흥식의 보인 반응과 똑같다.
그런 부류의 사건이다. 듣는 이가 인상을 쓸 수밖에 없는.
“그게 사실인가요?”
“더 조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예, 사실일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제 사촌 오빠 사건의 CCTV를 폐기하죠?”
주연도 처음에는 이 부분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술을 파는 가게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행 사고였는데, 왜 그렇게까지 하면서 감추려고 했을까?
무엇을 감추려고 했기에 해당 사건을 쌍방폭행으로 하려고 했던 것이었을까?
그 질문의 답은 처음 주성재와 시비가 붙은, 그러니까 가라오케 복도에서 풀 엔터테인먼트 여직원을 희롱한 남자의 기억 속에 있었다.
“그날 그 남자가 있던 VIP 방에 유명 연예인이 있었어요.”
“네? 연예인이요?”
“네. 그리고 연예인 지망생인 미성년자도 있었고요.”
그날 그 남자가 있던 방에 유명인이 있었고 그와 같이 미성년자가 동석했었다.
가게에서는 이 일이 시끄럽게 번지는 것을 막고 싶었고, 그래서 뇌물을 바치고 있는 강남서 형사팀에 요청한 것이었다.
“원래는 이런 일이 발생하면, 필요한 경우 가게에서 강남서 형사에게 연락하는데, 그날은 풀 엔터테인먼트 쪽 직원이 112에 직접 연락하는 바람에 청담경찰서 순경이 현장에 출동하게 된 거였어요. 게다가 하필이면 형사를 지원하는 신참 열혈 순경이.”
그는 매뉴얼 대로 현장에서 곧바로 증인들 연락처를 얻고 CCTV 기록을 포함해서 증거가 될만한 자료를 수집했다.
운도 좋았다. 당시 임현수 실장이 가게를 비운 상황이어서 큰 저항 없이 어리바리한 웨이터로부터 CCTV 기록을 입수할 수도 있었다.
“그런 ‘실수’를 나중에 커버 업 하려다 보니까 문제가 생긴 거죠. 형사가 CCTV 기록을 폐기하고 초기 조사 내용을 고의로 누락하고.”
“······.”
사촌 오빠 사건의 기록을 확인하려고 했을 뿐인데, 자기가 몸담은 조직의 비리를 마주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제 뭘 해야 하는 걸까?
검사님은 왜 나한테 이런 것들을 알려주시는 거지?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자기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을 접한 주인아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면··· 이제 어떡하죠?”
나주연 검사는 마치 그 질문을 기다렸듯이 물었다.
“경위님이 좀 조사해주셔야 할 사람이 있어요.”
“아···네, 알겠습니다. 누군지 알려만 주시면 제가 조사하겠습니다.”
“사촌오빠분을 친 그놈한테 허위 진단서 끊어준 의사예요.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아요. 아, 그리고 혹시 사촌오빠께서 지금 변호인이 있나요?”
“있었는데, 자꾸 합의를 종용해서 다른 변호사를 찾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아, 잘됐네요. 제가 한 명 소개해 드려도 될까요?”
수술 준비 (2)
주인아 경위에게 조사를 부탁하며 주연은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제가 왜 주 경위님에게 이런 부탁을 드리는지 궁금하시지는 않나요?”
“비리 사건이 터지면 저희 사촌오빠 사건이 뒷전으로 밀릴까 봐 신경 써주시는 것 아닌가요?”
정확했다.
주연은 해당 사건 담당이 아니었다.
결국, 평검사인 주연이 할 수 있는 일은 사건 주임검사인 형사1부 조찬혁에게 귀띔해주거나 윗선에 알리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자연히 검찰 수사의 초점은 폭행 사건이 아닌 비리 사건에 맞춰지게 될 것이었다.
그리고 비리 사건에 초점이 맞춰지게 되면 폭행 사건이 어떻게 처리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일선 경찰들이 연루된 비리.
하루이틀 조사해서 결론이 날 사건이 아니다.
게다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이었기에 수사 착수를 결정하는 데에만도 몇 주가 걸릴 수 있었다.
어차피 증거라고는 일개 평검사의 말뿐인 상황이었으니까.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그런 배려심 때문만은 아닙니다.”
주인아는 조용히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증거가 없어요. 의심스러운 정황뿐이죠. 다른 기관이었다면 수사를 착수하기에 충분하지만, 상대가 경찰입니다. 형사부 평검사인 제가 아무리 떠든다고 검찰이 움직일지도 분명하지 않고, 움직인다고 해도 언제 수사를 시작할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검찰 내에 누군가 얽혀있지 말라는 법도 없고요.”
“저더러 내부고발자가 되어달라는 말씀이신가요?”
넘겨짚은 주인아가 진지하게 물었다. 주연이 그렇다고 하면 ‘네, 알겠습니다.’ 할 표정이다.
“아니요. 그런 건 아닙니다. 다만, 사촌 오빠 사건을 직접 조사해주셨으면 해요. 조사해주시고, 그 과정에서 주 경위님의 눈에도 이상한 점이 발견되시면 그때는 사촌오빠분에게 국가배상 청구를 고려해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말씀드려봐 주세요.”
“국가배상 청구요?”
국가배상 청구란 국가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