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02
102====================
22. 소문
그 말에 자리에 앉은 이들은 모두 웃음을 지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자신이 체감하는 장인 스킬의 위력과 다른 이들이 느끼는 위력은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니까. 애초에 형진이 장인이나 명장이 되었던 것은 게임 안에서의 일이었고, 수가 적긴 해도 그때는 동등한 수준의 장인들도 꽤 있었다. 당시와는 여러 가지로 상황이 다르다는 것을 깜박한 나머지 파급 효과를 미처 정확하게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죄송해요. 제가 괜한 말을 해서.”
한 귀퉁이에 앉은 유아가 미안한 마음 가득한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따지고 보면 형진이 노점을 열었던 이유가 자신의 말 때문이라고 생각한 탓이다.
“됐어. 어차피 결정을 한 것은 나였으니까.”
어쩐지 지켜보는 사람이 쑥스러워지는 모습이라, 보다 못한 크루그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다른 얘기를 꺼냈다.
“그런데 어쩌다 이런 소문으로 번진 건지 모르겠군요. 부부 금슬이 좋아졌… 크흠, 이건 일단 치워놓고. 피부가 고와졌다. 쌍꺼풀이 생겼다. 시합에서 승리했다. 살이 빠졌다. 신경통이 나았다. 승진했다. 대머리가 나았다. 데이트에 성공했다. 어깨 결림이 사라졌다. 장사가 대박났다. 말 안 듣던 부하직원들이 빠릿해졌다. 가슴이 커졌다?”
손에 들린 종이를 크루그가 읽는 동안 문득 유아가 자신의 가슴을 내려 보다가 이내 한숨을 푸욱 내쉬는 모습을 본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 버렸다.
부부 금슬이 좋아진 거야 넘치는 힘을 주체 못해서 벌어진 일로 봐야 한다. 물론 그 상황에서 다른 엉뚱한 사람에게 힘을 쓰지 않은 것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금슬이 좋은 게 아닌가 싶긴 하지만.
피부가 고와진 것 역시 마찬가지. 피로가 해소되고 혈색이 좋아지니 화장을 해도 당연히 잘 먹을 수밖에. 다만 쌍꺼풀이 생겼다든가, 살이 빠졌다든가 하는 식의 소문은 형진으로서도 어리둥절할 뿐이다. 반대라면 오히려 납득이 갈 것 같은데.
신경통이나 어깨 결림 같은 것이 나아진 것도 역시나 피로와 관련이 있다고 보면 된다. 승진이나 데이트, 장사의 성공, 시합의 승리, 부하직원과의 소통 문제 같은 것은 넘치는 활력과 그로 인한 자신감의 회복 덕택에 얻어진 성과라고 봐야한다. 대머리가 나았다는 부분은 이해 불능. 가슴이 커졌다는 얘기는 살이 쪄서 치수가 늘어난 것을 착각한 것 아닐까.
어쨌든 이런 상황이니 형진이 소문의 내용을 듣고 무안단물을 떠올린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원인이나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뭐든 이루어지는 마법의 음식 정도로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니까. 국물을 뿌리니까 마차 바퀴가 고쳐졌다는 식의 내용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인가.
“그것들이 전부 근거 없는 소문만은 아니에요. 체력이 증진되고 활력이나 자신감이 늘어나면 같은 일을 해도 그만큼 좋은 성과를 내기 쉬워지는 건 당연한 일이고요. 고질병 같은 경우엔 만성 피로가 원인인 경우도 많으니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확실히 효과가 있겠죠.”
제랄딘의 말에 미엘이 덧붙였다.
“문제는 귀족들의 요청이 쇄도하면서 가문의 어르신들에게서도 한번 확인해 보고 싶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는 점이에요. 아, 물론 형진님의 실력에 대해서 확인해 본다 만다 그런 얘기는 아니에요. 소문과 같은 그런 효험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거에요.”
“거의 부부 금슬이 좋아졌다는 말에 혹한 분들이 대부분이지만요.”
다시 이어진 제랄딘의 말에 모두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형진의 음식을 먹어본 사람치고 사이가 나빠진 경우는 없으니 이것도 단순히 활력의 증진만 놓고 볼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솔직히 요리라는 매개체가 없었다면 여기 모인 사람들이 이 정도로 돈독하게 친밀감을 나눌 수 있었을지부터가 미지수니까.
형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어르신들을 모시고 식사 대접을 하는 건 문제가 아닙니다만, 귀족들을 초청하는 문제는 조금 그렇군요.”
“저희도 사실 그것 때문에 고민이에요.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아예 안 부를 수도 없는 일이고, 그렇다고 부르면 누구는 부르고 누구는 안 불렀다는 것 때문에 뒷얘기가 나올 테니까요.”
물론 아예 올 사람 다 오라고 해서 대연회 같은 걸 열어도 된다. 그렇게 하면 최소한 관심 있는 귀족들은 다 몰려 올 테니까.
하지만 형진은 귀족들에게만 그런 식으로 자신의 실력을 내보이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제랄딘 같은 좋은 귀족을 만나기는 했지만, 그래도 자신의 음식을 먹일 대상을 귀족으로만 한정하는 건 역시 다소 거부감이 느껴지는 일이다.
게다가 애초에 명장이란 것이 귀족들이 너 참 대단해라고 인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런 정도로 얻을 수 있는 단계라면 처음부터 고생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떠올리던 형진은 문득 명장이라는 단어에 확 꽂혔다.
그렇다.
명장이다. 그거면 아주 단순하고 명쾌하게 이 모든 상황을 해결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렇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잠시 팔짱을 끼고 고민에 잠겼던 형진이 음모를 꾸미는 악당 같은 모습으로 씨익 웃으며 말을 꺼내자, 대화에 참석하고 있던 사람들 모두는 이 남자가 또 무슨 엉뚱한 일을 꾸미는 건가 싶어 긴장했다.
“어떻게요?”
제랄딘의 물음에 형진은 손가락을 하나 들어 보이고는 그것을 까딱거리며 대답했다.
“요리 토너먼트를 여는 겁니다.”
“요리 토너먼트요?”
갑자기 이게 무슨 뜬금없는 얘기인가. 요리 토너먼트라니.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형진은 말을 이었다.
“그렇습니다. 기사단이 일 년에 한 번 전국에서 모여 최강을 가리듯, 요리사들 또한 일 년에 한 번 수도에 모여 실력의 우위를 가리는 겁니다. 기간 역시 토너먼트 기간에 맞춰서.”
“헉!”
갑자기 스케일이 확 커져 버렸다. 특히 고작해야 수도 귀족들을 모두 불러들여 대연회를 여는 정도의 일을 생각하고 있던 제랄딘이나 미엘은 갑작스런 형진의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형진은 그렇게 놀란 사람들에게 가만히 설명을 이어갔다.
“지금 제가 사람들 앞에 나타나 실력을 드러내 보인다 한들, 그렇게 해서 귀족들에게 실력을 인정받았다 한들, 분명히 저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특히나 귀족가의 요리사들이나 이미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요리사들 같은 경우엔 쉽게 납득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죠. 실력이 뛰어난 요리사들은 그 실력만큼이나 자존심도 높으니까요.”
“그러니까, 아예 전부 드러내놓고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보자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습니다. 모두가 보는 앞에서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고 정정당당하게 오직 요리 하나만으로 실력을 평가받는 겁니다. 어쩌면 이번 기회에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뛰어난 요리사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낼지도 모르죠. 그렇게 된다면 단순히 저 한 명의 실력을 검증 받는 것을 넘어서, 국가 전체에도 커다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아…”
유아나 림, 카트린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나 제랄딘과 미엘, 크루그는 요리 토너먼트가 현실화 되었을 때 어떤 파급효과가 벌어질지에 대해 순식간에 계산을 마쳤다.
라야바르트 왕국이 매년 이맘때 토너먼트를 여는 것에는 단순히 왕국에 속한 기사단 전력을 평가하고자 하는 목적만 있는 것이 아니다. 기사단은 각 지역 최강의 무력 단체이고, 이들이 상경할 때 대규모의 물자와 인력도 함께 움직인다. 추수가 끝난 뒤에 걷힌 세금 역시 이들의 손에 의해 운송이 되며, 또한 그렇게 모인 물자들은 토너먼트가 끝남과 동시에 각기 필요한 지역으로 흩어진다. 즉, 토너먼트는 그 자체로 라야바르트 왕국이라는 거대한 생명체를 움직이기 위한 대동맥의 구실을 하는 셈이다.
만약 여기에 요리 토너먼트가 추가되면 어떻게 될까.
이것은 더 이상 군사적 목적의 행사만이 아니라 문화적 요소 또한 갖추게 된다. 남자들의 땀내나는 경기가 취향인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끌어모을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외국에 대해 라야바르트라는 나라가 내세울 수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문화적 업적이 될 것이다.
또한 이것은 다른 가문들로 하여금 적극적으로 요리사들을 영입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그렇게 영입된 요리사들은 단지 귀족들의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을 넘어 소속된 기사단의 전력을 증진시키는데 일조할 터. 형진처럼 말도 안 되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도핑을 하고 안 하고의 차이는 수련에 있어서도 그 결과에서 커다란 차이를 보이게 된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형진을 영입함으로서 일어날지도 모르는 브라드로슈의 전력 강화에 각 가문이 대응하는 수단이 될 것이며, 이러한 경쟁은 또한 왕국 전체로 보아도 확실한 전력 증강의 방법이 될 수밖에 없다.
그 모든 것이 요리 토너먼트를 개최함으로서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형진 이전에 이런 구상을 한 사람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가 지금처럼 두각을 나타내기 이전에도 왕국 내에는 제법 실력 있는 요리사들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사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굳이 누군가와 경쟁해서 명성을 쌓아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기 가게를 열든 귀족가에 고용되어 일을 하든, 어느 정도 실력만 갖추고 있으면 충분히 풍요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데, 공연히 피말리는 경쟁의 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다르다. 일견 터무니없어 보일 정도의 소문을 통해 형진의 존재가 부각되면서 요리사들은 자신들의 실력과 명성을 다른 이들에게 재확인시켜줄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다른 이들과 겨루어,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실력을 판정 받을 필요성이 비로소 생긴 것이다. 또한 실력을 가지고 있어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자들에게 있어 토너먼트는 하나의 등용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것은 또한 일정 경지 이상에 도달하면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정체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던 다른 요리사들에게도 강력한 성장의 촉매제로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물론 지금 당장 열자는 건 아닙니다. 충분한 홍보와 준비가 필요할 테니, 아무리 빨리 준비한다해도 지금은 이미 늦었고, 내년에나 성사될 수 있겠죠.”
형진이 그렇게 덧붙이자 제랄딘은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님은… 항상 저를 놀라게 하시는군요.”
“별 말씀을요.”
제랄딘이나 미엘, 크루그가 보이는 감탄 섞인 반응은 형진의 진정한 속내를 모르기 때문이다. 명장이 되기 위해선 높은 명성과 다른 모든 이들이 인정할 만한 확실한 성과가 필요하고, 그것을 갖추는 가장 간단하고 명확한 방법은 이렇게 국가 규모로 진행되는 경연 대회이다. 솔직히 말해서 형진은 다른 부수적인 효과는 다 필요 없고, 토너먼트에 우승해서 명장 칭호만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다.
“알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제가 책임지고 맡아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당분간 편히 쉬기는 그른 것 같네요.”
기사단의 전투식량 문제도 이제는 거의 마무리가 되었고, 골치를 썩이던 황자 문제도 해결되어 이제는 좀 편히 쉬나 했는데, 그 모든 것을 합쳐도 비교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큰일을 떠맡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괜히 부담을 지워드린 것이 아닌지 모르겠군요.”
“괜찮아요. 밥값이라고 생각하면 되죠. 왕국 최고의 요리사에게서 매일 공짜로 식사를 대접 받는데, 이 정도야 당연하죠.”
“저런. 아직 토너먼트는 열리지도 않았는데요.”
미엘이 씩 웃으며 그 말을 받는다.
“설마 자신이 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모르는 일이죠. 어딘가에 숨어서 비밀스럽게 요리를 연구하던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 수도 있는 일이고.”
“하긴, 진님도 갑자기 튀어 나온 건 마찬가지니 방심할 수는 없겠네요.”
사실 형진의 요리 숙련도는 이미 최고치에 달해 있었다. 도핑의 위력이 엄청난 것도 있고, 워낙 단기간에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요리를 쏟아 부은 데다, 항상 맛있게 먹어주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 이런 저런 보정을 받아서 이미 최고점에 도달해 버린 것이다. 3일 만에 전설의 노점이 되어버린 게 우연히 벌어진 일이 아닌 셈이다.
“그나저나 어르신들은 언제 모시면 되겠습니까.”
그 말에 제랄딘은 씩 웃으며 답했다.
“괜찮아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네? 하지만…”
괜찮은 건가 싶은 표정의 형진에게 제랄딘은 쿨하게 한 마디 던졌다.
“징징거리면 전투식량이나 하나씩 던져 주면 되죠. 그렇게 한 번 두 번 불려 다니면 한도 끝도 없어요. 그 사람들에겐 그 정도로 충분하기도 하고.”
“하하…”
모르긴 해도 징징거린다는 사람들이 제랄딘과는 별로 사이가 안 좋은 모양이다. 형진으로서도 괜히 여기 저기 불려다니는 건 사실 별로다. 가뜩이나 의뢰 수행과 전투식량 납품으로 바쁜 마당에 가공 장인이라는 목표까지 새로 생겨버린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귀족들에게 불려다닐 시간이 어디 있겠는가.
“그나저나, 내일부터 예선전인데 참관하실 건가요? 만약 그렇다면 자리 정도는 제가 알아봐 드릴 수 있는데.”
그 말에 미엘이 씩 웃으며 한 마디 덧붙인다.
“사실은 파트너 없이 혼자 나다니면 달라붙을 파리떼 때문이시죠?”
“뭐… 그렇지.”
레이그릭 황자가 처리되자 황자 때문에 감히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하던 다른 남자들이 은근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정말이지, 미엘 말대로 파리떼라는 말이 딱 어울릴 정도다.
“파트너 역할을 해달란 말씀이신가요?”
의외의 제안에 조금 놀라 그렇게 묻자, 제랄딘과 미엘은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진님은 눈가리개만 하고 오세요. 나머지는 저희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
이 여자들이 또 무슨 일을 꾸미는 건가. 하지만 토너먼트라는 커다란 일을 맡긴 마당에 무조건 거절할 수도 없어서, 형진은 불안한 기분을 느끼면서도 일단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