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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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출발
조금 시간이 지나자 오귀스트가 작은 말 한 마리에 짐을 싣고 도착했다.
“2층의 손님방 중에 아무데나 편한 곳을 쓰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하루 신세 지도록 하겠습니다.”
“림, 도와드려라.”
-네, 스승님!
림에게 짐을 푸는 일을 돕도록 시킨 다음 형진은 주방으로 향했다. 오귀스트를 잡아두는 가장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실행하기 위해서다.
“맥주는 말한 대로 준비해 놨겠지?”
손을 씻으며 묻자 유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얼음을 가져다 통에 담고 소금을 뿌린 다음, 맥주통을 넣어뒀어요.”
“잘했어.”
냉장고가 없긴 하지만, 마침 눈이 제법 많이 내렸으니 그것을 대신 이용한 것이다. 원래 얼음에 소금을 뿌리고 그 안에 무언가를 넣어두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만들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흡열 반응이 일어나면서 주위의 열을 흡수하게 되는데, 영하 이십 도까지 내려가므로 지금처럼 무언가를 급히 식힐 필요가 있을 때 사용하면 꽤 효과적이다.
술이 준비되었으니 이제는 안주를 준비할 차례. 안주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맥주에 어울리는 안주라면 이미 정해져 있다.
시장에서 사온 생닭은 우선 물에 씻어 남아 있는 피나 잡스런 찌꺼기를 씻어낸다. 그 과정이 끝나면 물기를 뺀 뒤 바로 후추와 소금 등을 넣어 밑간을 하고 그대로 숙성시킨다.
닭에 밑간이 배어들 동안 형진은 곁들여 먹을 무 초절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피클이나 초절임 같은 음식은 기본적으로 만드는 방법이 거의 비슷한데, 그 중에서도 흔히 치킨무라고 불리는 녀석은 가장 만들기 쉬운 편에 속한다.
우선 식초와 설탕을 동일한 비율로 냄비에 넣고, 이 두 가지를 합친 분량만큼 물을 부은 다음, 소금을 약간 집어넣는다. 그리고 그대로 팔팔 끓여서 깍둑썰기한 무에 부어 놓으면 끝. 독특한 향미를 원한다면 촛물을 끓일 때 월계수 잎이나 통후추, 겨자씨 같은 걸 같이 넣어주면 되는데 이걸 흔히 피클 스파이스라고 부른다. 물론 오늘 만들 치킨무에는 굳이 넣을 필요가 없다.
무 초절임을 만들어 자연스럽게 식으라고 밖에 내놓은 다음, 밑간을 해둔 닭을 꺼내어 다시 우유에 담가둔다. 그리고 잡내가 빠질 동안 스윗 칠리 소스를 만든다. 고추장이 있으면 정통 양념치킨 소스를 만들겠지만, 아쉽게도 이전에 담궈둔 장이 숙성되려면 아직 한참은 더 시간이 걸려야만 하니, 지금은 그냥 찍어 먹는 소스 정도로 만족할 수밖에 없다.
먼저 마늘과 빨간 고추를 잘게 다진다. 이렇게 다져진 것을 팬에 넣은 다음, 물과 설탕, 식초를 넣고 잘 섞어 준다. 재료가 모두 잘 섞였다면, 중불에서 살살 끓이다가 보글보글 기포가 올라올 즈음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약한 불에서 몇분 정도 졸인다. 적당히 졸여지며 마늘과 고추의 향이 어느 정도 배어 나왔다 싶을 즈음, 전분 약간과 물을 섞어 붓고 삼십 초 정도 저어가며 잠깐 졸여주면 탕수육 소스처럼 끈기가 생긴다. 마찬가지로 그대로 그릇에 담아 바깥에 내놓고 식혀주면 준비 끝.
소스를 만드는 동안 우유에 재워뒀던 닭을 꺼낼 즈음이 되자 짐을 푼 오귀스트와 함께 식구들이 주방으로 몰려온다.
“그렇지 않아도 막 요리를 시작하려던 참입니다. 모두 자리에 앉으시지요.”
“허허, 이거 오자마자 입이 호강하겠군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우선 튀김용의 큰 냄비를 꺼내 화덕에 걸고는 튀김옷을 반죽한다. 우유에 담가 잡내를 뺀 닭은 꺼내어 밀가루를 묻힌 다음 튀김옷을 입힌다. 구석구석 튀김옷이 잘 입혀졌다면, 마지막으로 빵가루를 듬뿍 묻혀 예열된 기름에 넣는다.
치이솨아아아…
“와아아아…”
“오오…”
튀김옷을 예쁘게 입은 닭들이 기름 속에 퐁당퐁당 들어가서 헤엄을 치기 시작하자 테이블에 둘러앉은 이들이 코를 벌름거리며 그 모습을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기름이 튈 수 있으니까 조금 떨어지세요.”
“네에!”
어서 먹이를 달라고 보채는 병아리들처럼 입을 모아 말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오귀스트는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잠시 기다리자 튀김옷을 입은 닭고기들이 고소한 냄새를 풍기기 시작한다. 형진이 그것을 건져 내어 채반에 받쳐 기름을 빼내기 시작하자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처럼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한다.
“아직입니다. 한 번 더 튀겨야 해요.”
“아…”
튀김 요리의 비법은 사실 별것 없다. 반죽은 차가울수록 바삭해지고, 고기 종류는 겉이 노릇해질 정도로 튀긴 후 건져내서 온도를 높인 후 빠르게 한 번 더 튀겨내는 것이 포인트다. 문제는 그 날 그 날의 온도와 습도에 따라 튀겨지는 정도가 다르고, 재료마다 적정 온도가 있다는 점. 그래서 튀김은 다른 어떤 요리보다도 경험에 많이 좌우되는 경향이 있다.
한 번 튀겨낸 치킨을 빠르게 한 번 더 튀겨내자 고소한 냄새가 주방에 가득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맥주 가져와.”
“네.”
형진은 완성된 프라이드 치킨을 냅킨을 깐 소쿠리에 내려놓고는 미리 만들어 식혀둔 치킨무와 칠리 소스, 그리고 후추를 섞은 소금과 함께 내놓았다.
“원하는 소스에 찍어 드시면 됩니다. 오귀스트님, 한 잔 받으시죠.”
“허허. 이거 참. 감사합니다.”
오귀스트는 고소하게 튀겨낸 치킨에 차가운 맥주까지 곁들여지자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형진이 커다란 잔에 맥주를 가득 채워주자 단숨에 꿀떡꿀떡 들이키고는 탄성을 터뜨린다.
“크하…”
“자, 안주입니다.”
“하하하. 정말 냄새가 끝내주는군요. 흐뜨뜨…”
바삭한 튀김옷을 깨물자 뜨끈하게 익은 닭고기로부터 촉촉한 육즙이 배어나오며 혀를 농락한다. 한입 베어 물고 그 맛을 음미하다가 어느 틈엔가 다시 채워진 잔을 들고 차가운 맥주를 들이키면 그야말로 극락이 따로 없다.
“하우우우우…”
닭날개 하나를 잡고 뜯다가 자신도 모르게 미묘한 소리를 내던 하마란은 형진의 시선을 받자 얼른 고개를 돌린다. 그래봐야 귀까지 빨개진 것이 뻔히 다 보이지만.
그런 식으로 소쿠리 하나에 담긴 닭 한 마리가 사라지는 데는 채 몇 분이 걸리지도 않았다. 하지만 바닥이 드러나기 전에 재빨리 튀겨낸 새로운 닭 한 마리가 대신 그 자리에 입주했고, 오귀스트는 연신 탄성을 터뜨리며 맥주잔을 비우느라 여념이 없었다.
“허허, 혹시 이렇게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역시나로군요. 큰일입니다. 이 집에만 오면 절제의 미덕을 잊어버리게 되니.”
“만족하셨습니까?”
“네. 아마도 근 몇 년 동안 마신 술중에 오늘이 가장 맛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거 다행이군요.”
아이들은 먼저 윗층으로 올라가고, 오귀스트와 형진은 테라스에 마주 앉아 술잔을 좀 더 기울였다.
“그나저나, 파티원 분들의 문제는 잘 해결이 되었습니까?”
“네, 뭐…”
형진이 잔을 채워주며 그렇게 묻자, 오귀스트는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여러 가지로 잡음이 좀 나오고 있던 참입니다. 이번에 제랄딘님에게 폐를 끼치게 된 것도 그런 일들의 연장선이죠.”
“저런.”
“아시다시피 모험가라는 건 꽤 고달픈 일입니다. 목숨을 걸고 싸워도 때로는 동전 하나 얻지 못할 때도 있으니까요. 그래서 전부터 저희 파티에서도 그런 얘기가 나오고 있었습니다. 적당한 작은 던전 하나에 자리를 잡고 리스폰 되는 놈들을 잡는 방식으로 바꿔 보는 것이 어떤가 하고 말이죠.”
그러고 보니 어젠가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소규모 던전을 발견하면 일부러 코어를 제거하지 않고 놔두었다가 리스폰 되는 괴물들을 잡아 수익을 올리는 경우도 있다고.
“특히 이번 대미궁의 탐사는 여러모로 힘들었습니다. 전부터 함께 하던 트래커가 다른 파티로 옮겨가버렸기 때문이죠. 그래서 보조를 하던 파티원이 그 역할을 맡았는데… 다른 평범한 던전이었다면 몰라도 대미궁에서는 역시 역부족이었고, 결국 꽤 위험한 상황을 많이 겪어야만 했습니다.”
“그럼… 이번 오찬이 그렇게 엉망이 되었던 것도.”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저에 대한 일종의 반항이었던 셈이죠. 한번 잘 나가는 귀족 영애 앞에서 창피 좀 당해보라는 식으로.”
“허…”
오귀스트는 쓴웃음을 짓다가 다시 맥주를 단숨에 들이켰고, 형진은 통을 기울여 그의 잔을 다시 채워 주었다.
“솔직히 말하면 미엘님이 파티원에 대해 말씀하셨을 때, 속으로 안도했습니다. 핑계거리가 생겼다는 생각에 말이죠. 한심한 일입니다.”
“한심하긴요. 애초에 뜻이 달랐을 뿐입니다. 오귀스트님의 책임이 아니에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조금 위안이 되는군요. 허허.”
두 사람은 그런 식으로 늦게까지 술잔을 기울이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맥주가 떨어지자 그제서야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후아…”
“아우… 술을 얼마나 마신 거에요.”
“있는 거 저언부!”
“헉… 그걸 다요?”
“응. 전부 다.”
“못 말려. 일단 앉아 보세요. 아우, 술 냄새.”
유아는 술 냄새 난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형진의 옷을 벗기고 몸을 씻겨주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평소엔 유아가 뻗어버리고 형진이 씻겨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오늘만큼은 반대가 된 셈이다.
그렇게 조금 번잡스러웠던 하루가 지나고 다시 날이 밝았다.
“우웅…”
유아는 이상한 느낌에 눈을 뜨다가 자신의 몸 위에 올라와 씩 웃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기겁했다.
“까, 깜짝이야.”
“놀랐어?”
“조금요. 그런데 왜…”
“일어나서 생각해 보니 어제 가슴 키우기를 못 했던 것이 생각나서. 이런 건 하루라도 빼먹으면 안 되지. 안 그래? 걱정마. 일어나자마자 양치부터 하고 왔으니까.”
“자, 잠깐… 하윽!”
결국 유아는 아침 댓바람부터 가슴 키우기를 당하고 나서야 던전 탐험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희가 너무 일찍 왔나요?”
대충 씻고 아래로 내려가자 두건을 깊게 눌러쓴 차림의 제랄딘과 미엘이 저택을 찾아왔다.
“두 분만 오신 겁니까?”
“네. 던전 탐색을 하는데 호위기사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갈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그거야 그렇지만…”
괜히 가신들이 제랄딘 찾는다고 그리칸 시내를 뒤집어 놓고 다니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형진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난처한 표정을 짓자, 제랄딘과 미엘은 까르르 웃으며 걱정 말라는 듯이 이렇게 덧붙였다.
“괜찮아요. 대역을 세워뒀으니까요. 수시로 연락도 할 거니까 큰 문제는 없을 거에요.”
이 말괄량이들을 어쩌나 싶어 형진은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러다 괜히 나쁜 소문이라도 나면 어쩌시려고”
“그럼 진님 집에서 머물렀다고 그러면 되죠.”
“잘 됐네요. 아가씨가 진님한테 시집가면 평생 맛있는 요리를 먹을 수 있잖아요.”
“그럴까요. 에이, 유아님. 농담이에요. 그러니까 그렇게 울상 짓지 마세요.”
거창한 드레스를 벗고 모험가 차림을 한 탓인지 오늘따라 제랄딘은 아주 기분이 좋아 보였다. 하기야 왕국 최고 가문의 영애라는 짐을 훨훨 벗어 버렸으니 얼마나 홀가분할까 싶기는 하다만.
“오, 벌써 오셨군요.”
어제 형진과 술을 진탕 마셨음에도 불구하고 오귀스트는 아주 말짱한 모습이었다. 일어나자마자 유아와 가슴 키우기를 한 형진과는 달리, 아침 일찍 일어나 뒤뜰에서 크루그와 대련까지 마친 뒤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일단 좀 씻고 오겠습니다.”
“천천히 하세요. 아침까지 먹고 가려고 일찍 온 거니까요.”
“아하, 그렇군요.”
결국 형진은 아침 수련은 하지도 못하고 말괄량이 아가씨들에게 맛있는 아침 식사를 헌납하고 나서야 출발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럼 내가 없는 동안 집을 부탁한다.”
“네, 다녀오세요.”
“다녀오세요, 기사님.”
-무사히 다녀오세요. 스승님!
크루그와 카트린, 그리고 림의 배웅을 받으며 그들은 마침내 대미궁을 향해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