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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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시동
형진은 며칠 더 푹 쉬면서 휴식을 취했다. 유아는 물론이고 사건의 원흉이었던 미엘마저도 혹시나 탈이 나지 않을까 조심하며 그를 아주 극진히 모셨고, 덕분에 잠시 동안이지만 꽤 안락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그렇게 마음 편히 푹 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벌여 놓은 일 중에는 형진이 직접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일도 꽤 많았기 때문이다.
“이제는 미엘도 알아야 할 것 같네.”
“무슨…”
신전으로 향하는 도중에 형진이 그렇게 운을 떼자, 목도리처럼 가만히 그의 목에 웅크리고 있던 미엘이 의아한 기색을 보인다.
휴식을 취하면서 형진은 이왕 이렇게 된 마당이니 앞으로 말을 편하게 하자고 제안했다. 미엘은 난색을 표했지만, 서로의 관계를 확실하게 정립하는 의미에서도 호칭이나 말투를 정할 필요가 있다는 말에 허락했다.
그 결과 형진은 유아와 미엘에게 말을 놓기로 정해졌다. 유아는 비록 먼저 형진과 맺어졌지만, 나이를 따지면 한참 어린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에 미엘을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미엘은 둘에게 말을 놓는 대신, 유아를 동생님이라는 존칭으로 부르기로 정했다. 그렇게라도 먼저 형진과 맺어진 유아를 대우하는 모양새를 취하기로 한 것이다. 너무 딱딱하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격식을 갖추고자 노력한 셈이다.
하지만 그렇게 정했다 한들 말투가 하루 아침에 바뀌는 건 아니다. 그래서 미엘은 여전히 형진과 미엘에게 이전과 같은 말투를 사용하고 있는 참이다. 물론 형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대번에 말을 낮춰 버렸지만 말이다.
“이건 비밀인데 말이지.”
“…”
형진이 주위를 살피고는 그렇게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자, 미엘은 이 남자가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 사실은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야.”
“네?”
미엘은 잠시 이게 무슨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없다. 난데없이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라니? 아니 희망과 생명은 그렇다 쳐도, 대리자라는 건 도대체 뭐란 말인가.
“그게 무슨 소리에요? 진은 집행자잖아요.”
이미 공포와 죽음에 속해 있으면서 다시 희망과 생명이라는 다른 신에게 뭔가 직책을 받았단 말인가. 그게 말이나 되는 얘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을 보이며 미엘이 반문하자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 난 공포와 죽음의 뜻을 따르는 집행자가 맞아. 하지만 또 한 편으로는 희망과 생명이라는 여신을 대신해 그 교단 전체를 관리하는 대리자이기도 해.”
“…”
미엘은 이제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꽤 오랜 세월을 살아온 그녀였지만, 이런 식의 양다리가 가능하다는 얘기는 들은 적조차 없다. 게다가 여신을 대신해 교단 전체를 관리하다니, 사실상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가 아닌가. 아니, 여신은 인간이 아니니까 일신지하 만인지상이 맞는 건가.
농담인가 싶었지만, 옆에서 함께 걷고 있는 유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유아는 좀 맹한 느낌의 메이드 모습을 하고 있긴 해도 실제로는 희망과 생명의 신녀이다. 그녀가 긍정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방금 형진이 한 말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로 확정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게다가 공포와 죽음께서 아시는 날에는…”
미엘이 두려운 기색으로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걱정마. 내가 대리자가 된 것은 처음부터 공포와 죽음께서 배려하신 일이었고, 따로 허락도 받았으니까.”
“헉!”
“여러 가지 일이 좀 많았어. 지부장이신 기젤님도 이미 알고 있는 일이야.”
“하… 하하…”
미엘은 씩 웃어 보이는 형진의 모습에 얼이 빠지고 말았다.
비록 희망과 생명이 호구신으로 불리기는 하지만 엄연히 여러 신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신 가운데 하나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게다가 신전의 수라든가 그곳에 속한 자들, 그리고 일반 신도까지 합치면 그 수는 감히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그런데, 그 교단의 모든 것을 관리하는 대리자라니.
“어흠. 어때. 당신들 남자가 이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멋지지 않아?”
“풋!”
“킥!”
괜히 잘난척하는 형진의 모습에 유아와 미엘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럼, 지금 신전에 가는 게…”
“맞아. 대리자로서 할 일 때문이지. 보통은 집에서도 일을 보는 게 가능한데, 이번엔 아무래도 직접 신전에 가야 할 것 같아서. 게다가 미엘 당신에게도 보여 줄 게 있고.”
“나한테요?”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정도는 봐둬야 하지 않겠어? 잘 지켜보라고.”
“네. 기대할게요.”
미엘은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그래서였구나 하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다.
이전에는 형진이 희망과 생명의 신전과 왕래가 많은 것이 단순히 유아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유아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그 반려인 형진에게 있어 신전은 처가나 마찬가지니까. 일 있을 때 처가에 들러 문제를 살피고 도와주는 정도는 다른 남자들도 하는 일이니까.
하지만 이제 보니 단순히 그런 일만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보면 단순히 좀 도와준다는 식으로 생각하고 넘어가기엔 여러 가지로 큰일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그 도시락용기라든가. 물론 도시락용기의 일은 형진이 대리자가 되기 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미엘은 그런 일의 선후관계까지 알지는 못했고, 때문에 그냥 그래서였구나 하고 납득해 버렸다.
어쨌든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신전에 들어선 그들은 곧바로 사제들의 안내를 받으며 최고 사제의 방으로 향했다.
“항상 수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말씀드린 대로 준비는 끝났습니까?”
“네. 전에 말씀드린 이들은 현재 기도실에서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저런. 거기 춥지 않아요?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쩌려고.”
“예전엔 그랬지만 지금은 괜찮습니다. 오히려 너무 따뜻해서 기도하다 잠들까봐 걱정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니까요.”
“다행이군요. 차라리 기도하다 잠이 드는 것이 낫습니다. 난방비가 부족하다면 언제든 말씀하십시오.”
“괜찮습니다. 의뢰 덕분에 재정에 여유가 많이 생겨서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다행이지만요.”
최고 사제와 그렇게 잠시 얘기를 나누던 형진은 마치 목도리처럼 자신의 목에 감겨 있던 미엘을 가리켜 보이며 말했다.
“이번에 저와 함께 하기로 한 미엘입니다. 미엘, 잠시 모습을 보여드려.”
“네.”
미엘은 희망과 생명의 사제에게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 보여도 괜찮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지만 뭔가 생각이 있는 것이겠거니 하며 형진의 말에 따랐다.
“어머나.”
최고 사제는 형진이 목도리를 향해 뭐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그 목도리가 귀여운 소녀의 모습으로 변화하자 크게 놀라고 말았다.
“이전에 몇 번 이곳을 오가는 걸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나는군요.”
“오늘은 미엘도 참관하기로 했습니다. 앞으로 종종 함께 하게 될테니 알아두십시오.”
“알겠습니다. 대리자께서 그리 정하셨다면 따라야지요.”
미엘은 형진의 손을 잡은 채 최고 사제가 대리자를 언급하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갑자기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호구신으로부터 ‘손님’ 자격이 부여되었습니다.]“엣?”
희망과 생명도 아니고 호구신이다. 게다가 손님이라니?
“메시지 제대로 갔어?”
“네. 그런데… 손님이라면?”
“지금부터 갈 곳에 들어가기 위한 임시 자격이야.”
“아하… 그런데, 어딜 간다는 거죠?”
“회합장. 자, 그럼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테니 들어가 볼까? 자, 모두 기도합시다.”
형진의 말에 따라 유아와 최고 사제는 경건한 모습으로 고개를 숙이며 기도를 시작했다.
“나도요?”
“옆에 보면 회합장 입장이라는 게 새로 생겼을 거야. 눈을 감고 그걸 선택하면 돼. 단, 신전에서만 활성화되니까 기억해 두고.”
“알았어요. 해볼게요.”
입장 장소를 신전으로 한정한 것은, 이후 다른 누군가에게 손님의 자격이 부여되었을 때 그것이 악용될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였다. 음흉한 자들에게 있어 희망과 사제들이 모이는 회합장은 자칫 양떼들이 한가로이 노니는 목장처럼 보일 수도 있는 일이다. 그들은 모두 형진의 먹이. 다른 늑대들에게 무방비상태로 내어주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다.
형진의 말대로 눈을 감고 회합장 입장을 선택하자 일순 어두웠던 시야가 확 하고 밝아지면서 하나의 풍경이 나타났다.
“와아…”
그것은 마치 천국을 형상화한 듯한 공간이었다. 미엘은 눈앞에 드러난 그 아름다운 풍경에 잠시 감탄하다가, 향기로운 꽃들이 만개한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은 성소를 보는 순간 그것이 매우 낯익은 형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럼 그 성소도…”
그렇다. 그것은 던전 안에 위치한 온천에 만들어진 성소와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정도.
미엘은 처음 던전 안에 성소가 구현되었을 때 그것이 신녀인 유아가 가진 능력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것 또한 형진이 지닌 대리자로서의 능력 가운데 하나임이 분명했다.
“어때? 뭔가 불편하거나 그렇지는 않고?”
“네. 아, 손을…”
미엘은 그제서야 자신이 형진과 떨어져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화들짝 놀라 얼른 그의 손을 잡았다.
“괜찮아. 이건 현실이 아니니까. 일종의 환상이라고 해야 하나. 물론 신의 권능을 통해 만들어진 장소라 일반적인 환상과는 확연하게 구분될 테지만.”
“아하.”
확실히 이렇게 현실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의 환상을 만들어내는 건 신의 손길이 닿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더구나 그녀는 공포와 죽음의 집행자. 어지간한 환상 따위는 낙인의 힘에 의해 범접조차 하기 힘들다.
그들이 성소로 다가서자,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던 많은 이들이 일제히 일어나 형진을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인다.
“…”
미엘은 다시 한 번 놀랐다. 비로소 회합장이라는 말의 의미와 그 가치를 여실히 깨달은 탓이다.
“설마… 이 분들은…”
“그래. 대륙 각지에 흩어져 있는 희망과 생명의 사제들이지.”
“세상에.”
이럴 수가. 이런 식으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회합이 가능하다면, 그것은 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의 사회를 획기적으로 뒤바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설마… 이것도 진이?”
“응. 대단하지? 어때, 막 존경스러워지지 않아? 반해도 돼. 윽!”
“하… 하하…”
형진은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다가 보다 못한 유아가 옆구리를 살짝 꼬집자, 그제서야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태연을 가장한 채 자신을 지켜보는 다른 사제들을 돌아보며 성소 중앙에 자리 잡은 단상을 향해 나아갔다. 미엘은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시선들 때문에 조금 쭈뼛거리며 유아와 함께 그 옆에 자리 잡았다.
“자,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시간이 없으니 곧바로 교습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설마 오늘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모이라고 했는지 모르시는 분은 없겠죠?”
“없습니다!”
“좋아요. 좋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형진이 그렇게 말하며 허공에 손을 한 번 휘저어 보이자, 그의 앞은 물론이고 기다리고 있던 사제들의 눈앞에도 간소한 형태의 조리대가 모습을 드러내 보였다.
“에?”
뭔가 중대한 종교 의식이라도 거행하려는 건가 싶어 긴장된 표정으로 바라보던 미엘은 눈앞에 드러난 뭔가 익숙한 모습의 도구들에 얼빠진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렇다. 지금 그녀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주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방용품들이었다. 도마부터 시작해서 식칼, 화덕, 그 외에 수많은 다른 도구들까지. 조리대나 화덕의 규모는 작았지만 꽤 오랫동안 형진이 요리하는 장면을 지켜봤던 미엘은 단숨에 알아볼 수 있었다.
형진은 뒤에서 미엘이 그렇게 얼빠진 표정을 짓고 있자 흘깃 바라보며 씩 웃어 보이더니, 이내 자신을 향해 열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제들을 향해 말했다.
“오늘 여러분들이 만들어 볼 요리는 바로 김밥입니다. 이름이 어쩐지 친숙하죠?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야 말로 김밥천국의 간판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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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겠습니다.
하루 정도 멀쩡한가 싶었더니, 또 컴퓨터가 뻑나서 피시방 신세를 지고 있습니다.
돌아가시겠네요. 진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