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96
196====================
42. 기르카
곧바로 의뢰 상세를 전달 받았다.
[지역 탐색] -기르카의 지부장 프리이로부터 광기의 숲에 대한 탐색을 의뢰받았다.-완료조건: 광기의 숲에서 벌어지는 이상 현상의 확인.
-제한계급: 상급성도
-보수: 에데루스 은화 10개, 팩션 공헌도 40.
(주의) 진입한 자들 대부분이 정신 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대책이 필요합니다. 이상 현상을 제거할 경우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탐색 자체의 난이도 때문인지 보상이 상당한 편이다. 은화 보수는 다소 적지만 공헌도 보상은 이전에 미친놈을 처리했을 때 받은 것보다 높은 수준. 물론 그때는 미친놈이 소신공양으로 강림을 시도하리란 내용이 파악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해진 보수였고, 더구나 당시 의뢰를 함께 했던 이들과 나눠 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반씩 나눈다 쳐도 공헌도 20이라면 단일 의뢰로는 결코 적지 않은 보수다.
물론 그렇다고는 해도 지금의 형진에게는 문자 그대로 껌 값이다. 예전에는 우와 하면서 눈을 빛냈을 텐데, 이제는 겨우 20이냐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까. 역시 돈이든 뭐든 너무 쉽게 벌어들이고 그러면 괜히 눈만 높아지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여기선 껌을 구할 수가 없으니 껌 값에 비교하는 건 문제가 있지 않나. 껌을 어떻게 만드는 거였더라.
“그리고 이걸 받으세요.”
“이건…”
“‘정신 번쩍’이라고, 제가 만든 드링크입니다. 이름대로 효과는 정신에 간섭하는 부정적인 영향을 단숨에 몰아내 줍니다. 다만 사소한 문제가 있는데, 맛이 좀… 끔찍합니다. 가급적이면 그걸 사용하지 않고 임무를 완수해 내셨으면 좋겠네요.”
“…”
전혀 사소한 것 같지 않은데.
그동안 수많은 진미에 의해 단련된 소중한 혀가 이런 괴악한 물질에 의해 더럽혀 지는 건 형진도 미엘도 사절이었다. 성의가 있으니 일단 받아두기는 하지만, 가급적이면 문양의 효과로 감당할 수 있기를 기원할 뿐이다.
그러고 보면 계급 제한이 상급 성도였던 것도 그 정도 수준의 등급이 되어야 비로소 이 의뢰를 받기에 충분한 문양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뜻인 모양이다. 물론 정확한 탐색이 이루어지기 전이므로 이것도 어디까지나 추정에 불과한 것이리라.
의뢰를 수락하고 나자, 지부장에게 작별 인사를 한 형진과 미엘은 허름한 가게를 빠져 나왔다.
“내가 보기엔 지부장들 가운데 제대로 장사 수완이 있는 사람은 기젤님 뿐인 것 같아.”
“뭐… 돈이야 다른 수단으로 얼마든지 벌 수 있으니까요. 결국은 자기 만족이 아닐까요.”
“하긴.”
확실히 라야의 총괄 지부장인 탁스 두겐만 보더라도 돈을 벌기 위해 그런 일을 하는 건 아닐 테니까. 어떻게 보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마음껏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다른 신들의 추종자에 비해 집행자는 우월한 면이 많은 것 같다. 성도가 되는 것이 조금 더 자유로웠다면 지금보다 교세가 더 커지지 않을까. 물론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자들이 세상에 우글거리는 것도 뭔가 좀 맞지 않는 일인 것 같기는 해도.
“저쪽인가.”
의뢰 표식을 보며 발걸음을 옮기려고 하는데, 문득 미엘이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는 시늉을 한다. 이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가 오늘은 어리광을 컨셉으로 잡으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문제는 그게 너무 잘 어울려서 무서울 정도라는 점.
“못 말리겠군.”
“가끔은 이런 것도 좋지 않아요?”
“쿡.”
말이나 못하면.
형진은 미엘은 안아 올린 다음, 천천히 산책하듯 기르카 시내를 가로질렀다. 그렇게 걷다가 인적이 붐비는 큰 거리로 향할 즈음, 그들은 낯익은 뭔가를 발견했다.
“응?”
“저건…”
그들이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요정이었다. 그런데 뭔가 엄청나다. 편지 뭉치와 작은 소화물 몇 개를 든 요정 하나가 마치 번개처럼 쉭쉭 허공을 날아다니는 그 모습은, 형진이나 미엘처럼 특별한 감각을 지닌 이가 아니라면 알아보기조차 어려울 정도였기 때문이다.
작은 물건이 엄청난 속도로 날아가다가 문이나 창문가에 정확하게 착지한다. 편지는 표창처럼 날아가는가 싶더니 마찬가지로 문틈이나 창문 틈에 조심스럽게 끼워 넣어진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심스러운 노크 두 번.
“어? 이건…”
노크 소리에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와 봤던 아주머니 하나가 문 틈에 끼워진 편지를 발견하고는 눈이 휘둥그레진다.
“편지? 누가 어느 틈에…”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던 아주머니는 편지 겉면에 씌여진 글자를 보고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어머니! 작은 아가씨한테서 편지가 왔어요!”
“뭐? 그게 정말이야?”
편지가 제대로 목적지에 도착한 것을 확인한 요정은 다음 목적지를 확인하더니 곧바로 빠른 속도로 허공을 날아 움직인다. 기본적으로 인식 저하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집 근처에는 가까이 가지도 안고 염동력으로 배달을 완료하니 편지나 물품을 전해 받는 사람들은 누가 가져다 놓은 건지 몰라 어리둥절할 뿐이다.
“와, 쟤들 일 진짜 잘 하네요.”
“그러게. 나도 배달하는 모습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인데 제법인걸.”
예전에 림이 황자에게 사로잡혔던 일은 역시나 집행자들이 무서워서 일부러 잡힌 것이었던 모양이다. 저래서야 어지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아니면 왔다 간 것조차 모를 것 같다.
“그래도 만약의 사태에는 대비를 해둬야겠지. 필요할 때 호위를 부를 수 있도록 조치를 해야겠어.”
“어떻게요?”
“우리 멋진 신님께 부탁을 드려봐야지.”
방치되어 있었다고는 해도 두 신에게 속한 추종자들을 끌어들여 사실상의 하부조직으로 만들었으니, 아마도 들어주시지 않을까 싶다. 이참에 물자 조달 의뢰를 호구신의 사제들에게 개방한 것처럼 긴급 운송 의뢰를 요정들에게 개방하는 일도 추진해 보면 좋을 것 같다.
“후후후, 더 열심히 일해라. 그리하여 나에게 돈과 공헌도를 물어 오거라. 큭큭큭큭…”
“어휴, 그 이상한 웃음 좀 그만 두면 안 되나요?”
“왜? 나름 멋있지 않아?”
“농담이죠?”
“응, 농담이야.”
그렇게 노닥거리며 얘기를 나누던 둘은 들어왔을 때처럼 역시나 성벽을 훌쩍 뛰어넘어 기르카로부터 벗어났다.
“꽉 잡아. 달릴 테니까.”
“네.”
미엘은 형진의 목을 꽉 끌어안고는 풍성한 꼬리로 자신과 그의 몸을 감쌌다. 그러자 형진은 마치 북슬북슬한 털 인형을 품에 끌어안은 듯한 모습이 되어 버렸다. 정말 어지간한 털외투는 감히 비교할 수도 없을 것 같은 따뜻함이다.
역시 키우길 잘했어. 하기야 다들 구미호 하나쯤은 데리고 사는 거 아닌가.
미엘이 들었다면 자신을 애완동물 취급하는 거냐고 대뜸 따지고 들 만한 생각을 천연덕스럽게 떠올리며 형진은 전율의 질주를 발동했다.
곧바로 전율의 질주가 펼쳐지자 둘은 엄청난 속도로 얼어붙은 대지를 가로지르며 목적지인 광기의 숲으로 향했고, 채 몇 분 지나지도 않아서 거대한 숲의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처음에 이동 스킬조차 없어서 발발 기던 때를 생각하면 정말 장족의 발전이다.
“이건… 정말 대단하군.”
“그러게요.”
햇빛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숲이라고 사전에 설명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 대단한 곳인 줄은 미처 몰랐다.
숲의 초입은 마치 눈으로 뒤덮인 것 같은 새하얀 나무 껍질을 가진 자작나무 군락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잎이 떨어진 자작나무들 뒤로는 울창한 침엽수림이 마치 검은 안개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무들의 높이도 대단해서 본격적인 침엽수림의 시작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임에도 불구하고 목이 아플 정도로 고개를 들어야 겨우 가장 높은 곳을 볼 수 있을 정도다.
“멀리서 봤을 땐 좀 높은 언덕이다 싶었는데, 그게 숲이었어.”
그 압도적인 광경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형진은 문득 자작나무들 사이에 검게 맺혀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고는 눈빛이 번쩍 하고 빛났다.
“오오! 이것은!”
“네? 뭔가 발견 했나요?”
갑작스런 반응에 미엘이 어리둥절해 할 틈도 없이 형진은 몇 번 나무를 툭툭 차고 허공으로 뛰어오르는가 싶더니, 갈라진 자작나무 가지에 멈춰 서서 얼른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고는 그곳에 맺혀 있는 검은 무언가를 캐내기 시작했다.
“그게 뭐에요?”
“차가버섯.”
“먹는 거에요?”
“아니. 연금술 재료.”
“흐음.”
먹을 것도 아닌데 이렇게 광분해서 캐는 것이 이상한지 미엘은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사실 형진에게 있어 중요한 것은 연금술 재료라는 용도보다는 높은 채집 경험치를 얻기 위한 채집물이라는 것이라는 점이었다.
“겨울이라 이 정도로 만족하는 수밖에 없겠군. 나중에 시간 날 때 종종 들려야겠어.”
“…”
사실 냉대 기후의 침엽수림은 채집물의 보고다. 흔히 생각하기에는 열대 지역의 정글 같은 곳이 더 먹을 것이 풍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로 바로 따먹을 수 있는 베리 종류의 열매나 허브, 식용 버섯 등이 가장 잘 자라는 곳이 바로 이런 냉대 기후의 숲이다. 오히려 열대 기후의 숲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동물들에게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아서 그냥 먹으면 큰 일 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 생산시기가 아주 짧다는 결정적인 문제가 있기는 해도.
먹지도 못할 시커먼 무언가를 잔뜩 캐고는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형진의 모습에 미엘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역시 이 남자는 도무지 속을 모르겠다. 정말 어디로 튈지 모르겠다고 해야 하나.
뜻밖에 좋은 채집 장소를 발견한 것만으로도 이번 여정은 성공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아직 숲은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형진은 캐낸 차가버섯을 조심스럽게 인벤토리에 담아 놓고는 나무 위에서 훌쩍 떨어져 내렸다.
“역시 무게와 인벤토리를 더 사야할 것 같아.”
“이미 꽤 많지 않아요?”
“그렇긴 한데, 앞으로를 생각하면 역시 충분히 확장해 두는 것이 좋겠어.”
“그거 꽤 비쌀텐데.”
공헌도 상점에서 살 수 있는 것들 중에는 인벤토리와 무게도 있었다. 현재 형진이 보유한 무게는 사백이 좀 넘는 정도. 물론 이것으로도 도핑에 사용할 요리라든가 일상적으로 필요한 물품들을 담아가지고 다니는 데는 부족함이 없지만, 그래도 종종 무게가 부족해서 미엘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가 있다.
“미엘은 공헌도 상점에서 무게 안 샀어?”
“전 그냥 보상으로 받은 게 그렇게 모인 거라서요.”
“헐.”
따로 무게를 사지도 않았는데 천이 넘다니. 이렇게 보면 그냥 동물의 귀와 꼬리가 달린 귀여운 소녀일 뿐인데.
“그 시선의 의미는 뭘까요.”
“음. 새삼스럽게 꼬리 아홉 달린 구미호의 연륜에 감탄했다고 해야 하나.”
“뭐에욧?”
“아냐, 아냐. 그냥 귀엽다고.”
그렇게 투닥거리며 둘은 숲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 와중에도 형진은 장비 토글 기능을 사용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자 사냥개의 코장식을 통해 냄새 하나가 바로 감지된다.
“어라?”
“왜요?”
“어디서 많이 맡아본 냄새가.”
“…”
형진은 다시 킁킁거리며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이래가지고 언제 숲의 탐색을 마치려는 건가 싶어 한 소리 하려는 찰나, 형진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이렇게 말했다.
“동굴곰… 인가. 아닌데. 비슷한 것 같아도 냄새가 영 다른데.”
“네?”
“이 발자국, 아무래도 곰 같거든. 근데 냄새가 틀려. 좀 더 어둡고 침침한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말을 듣는 순간 미엘은 하나의 이름이 머릿속에 확 하고 떠올랐다.
“설마! 그림자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