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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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신고식
카트린이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재잘재잘 쌍둥이를 홀리고 있는 동안, 형진은 화덕의 불을 지피더니 유아가 정성껏 준비해 둔 재료로 화려한 불쇼를 시작했다.
화르륵!
옆에 달라붙은 귀여운 카트린과 그 옆에 마치 호위 기사처럼 자리를 잡은 채 말없이 동생의 접시를 채워주고 있는 크루그의 모습에 반쯤 넋이 나가 있던 쌍둥이들은, 갑자기 화덕에서 불이 확 피어오르며 맛있는 냄새가 폭풍처럼 밀려들기 시작하자 정신이 번쩍 들고 말았다.
“우왓!”
“?”
“킥킥.”
갑자기 열기가 확 치밀어 오르며 밀려드는 향기에 쌍둥이들이 화들짝 놀라자 카트린이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린다. 살짝 황망하기도 하고 밀려드는 향기에 놀라기도 한 채로 바라보니 불그스름한 무늬가 들어간 노릇한 살코기 덩어리가 팬 위에서 불길에 휩싸인 채 익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놀라셨나 보군요. 죄송합니다.”
“아뇨. 죄송하실 것 까지야…”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 녀석은 오븐에 다시 넣어줘야 해서…”
형진은 팬 위에 붙은 불이 꺼질 때까지 잠시 더 굽다가 팬 째로 오븐에 넣어두고는 다른 팬을 꺼내 버터를 녹이고 각종 향신료를 넣어서 끓여서 소스를 만들었다. 그렇게 소스를 만들면서 다른 팬을 하나 더 꺼내어 이번엔 저쪽 세계의 주먹만한 조개 관자를 넣고 익히다가 다시 한 번 술을 끼얹어 불쇼를 보여준다.
“와아아…”
“세상에…”
여신에게서 형진이 요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기는 했다. 그러나 막상 이런 현란한 퍼포먼스까지 곁들여지니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정도다.
관자 굽는 일이 끝나자, 형진은 오븐에 넣어놨던 팬을 다시 꺼내 그 안에 담겨져 있는 살코기와 주먹만한 조개 관자, 그리고 미리 구어진 야채를 함께 접시에 담고는 소스를 뿌려 쌍둥이 앞에 내놓았다.
“변변치 않습니다만 두 분의 길드 가입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특별히 만들어 봤습니다. 부담없이 즐겨 주십시오.”
“가, 감사합니다.”
운동선수, 특히 프로를 노리는 운동선수라면 식단 관리는 필수다. 물론 우리나라 여자 농구는 명칭만 프로리그지 실제로는 실업팀들의 리그라서 여러모로 다른 프로리그와는 구분되는 점이 많다 해도 말이다.
어릴 적부터 유망주로 불리어지며 관리를 받아온 쌍둥이들에게 있어 식단 관리는 이제 당연한 일이 되어 버렸다. 당연히 이렇게 호화로운 음식 같은 건 본 적도 없다. 그래서일까. 이렇게 시각과 후각을 동시에 미친 듯이 자극하는 일품 요리가 눈앞에 놓이자 어찌해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해산물, 별로 안 좋아하십니까?”
“아, 아뇨! 그럴 리가요.”
“좋아해요. 엄청 좋아해요!”
뒤늦게서야 형진의 말에 정신을 차린 쌍둥이들은 그제서야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들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게임이다. 여기서 아무리 과식한다 한들 현실에는 아무런 지장도 없다. 설령 영향이 있더라도 여신님의 권능이 지켜줄 거다. 그러니 한 번 믿어보자!
눈으로 그렇게 대화를 마친 쌍둥이는 조심스럽게 눈앞에 놓인 두툼한 살덩이를 나이프로 썰기 시작한다.
“으, 으으…”
“냄새가… 냄새가…”
“킥킥.”
아직 먹기도 전이다. 그저 눈앞에 놓인 살코기를 포크로 고정시키고 나이프로 썰어냈을 뿐이다. 고작 그런 일을 했을 뿐인데도 거기서 풍겨 나오는 향기 때문에 정신이 다 혼미해지는 느낌이다.
카트린이 옆에서 키득거리는 소리에 얼굴이 조금 달아올랐지만, 그런 와중에도 쌍둥이는 잘라진 살덩어리를 천천히 입안에 넣었다.
“후와아아아아…”
“하우으으으으…”
막 요리한 살코기의 열기 때문에 뜨거워서 어쩔 줄 모르면서도 또 한 편으로는 혀끝에서 사르르 녹는 느낌마저 전해지는 깊은 풍미에 발을 동동 구른다. 세상에. 도대체 이게 뭐람.
뜨거워서 그런지 맛있어서 그런지 구분도 가지 않는 모습으로 발을 동동 구르는 쌍둥이의 모습에 웃으며 형진이 간단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아주 살이 잘 오른 랍스터가 있길래 꼬리살만 발라서 스테이크 식으로 구워봤습니다. 어떻습니까.”
“마시써요오…”
“이게 랍스터에요? 우와아아아…”
사실 쌍둥이는 랍스터를 먹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먹어본 랍스터는 이런 맛이 아니었다. 도대체 이게 정말 그때 먹었던 그것과 같은 재료로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의 깊고 풍부한 맛의 폭풍.
게임이라서 그런 건가. 그래. 게임이라서 이런 거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압도적인 차이가 날 수는 없는 일이다.
형진이 들었다면 섭섭해할 생각이었지만, 그녀들은 그렇게 납득해 버리고는 자신의 앞에 놓여진 접시를 열심히 비워가기 시작한다. 식단 관리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마음껏 맛있는 요리를 먹어치울 수 있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란 걸 그녀들은 오늘 처음 알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만찬이 이어졌다. 형진은 쌍둥이의 접시가 비워질 때마다 계속해서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 냈고, 쌍둥이들은 그 모든 음식들을 마치 걸신이라도 들릴 것처럼 허겁지겁 먹어 치웠다.
“어떻습니까. 만족스러우셨는지요.”
“대단해요.”
“여신님이 칭찬할 만 해요. 짱!”
“하하.”
폭풍 같은 만찬이 끝나고 나자 그들은 이층의 테라스로 올라가서 간단하게 티타임을 가졌다. 쌍둥이들은 여신에게서 얻은 토끼와 방금 전의 만찬 만으로도 이미 이 길드에 들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었지만, 형진의 물량 공세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전에 팬클럽에 가입하시면서 스킬에 대한 걸 말씀 드린 적이 있지요?”
“네? 그러셨죠.”
“실은 그 문제가 얼마 전에 해결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참에 두 분께 스킬들을 가르쳐 드릴까 합니다.”
“네? 어떤…”
“직접 골라보시겠습니까? 일단 목록을 보여드리지요.”
“헉!”
“이, 이건…”
형진이 스킬 목록을 보여준다기에 그런가보다 했던 쌍둥이들은 갑자기 눈앞에서 주르륵 올라가는 스킬들의 목록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길드 스킬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얘기는 들어봤지만, 이건 도대체 몇 개나 되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목록을 보여준다더니, 무슨 슬롯머신 돌아가듯이 계속해서 목록이 넘어가고 있을 뿐이다.
너무나 목록이 길다보니 처음에는 그래도 대충 보인다 싶었든 스크롤바가 어느 사이엔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어디를 찾아 클릭해야 목록을 위로 넘길 수 있을지조차 감이 안 잡힐 정도다.
“좀 많은가요?”
그렇게 말하며 빙그레 웃는 형진의 모습에 쌍둥이는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 그러네요…”
“설마… 이걸 다 가르쳐 주시겠다는 말씀이신가요?”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지만 이걸 다 배우는 건 역시 무리일 테고… 어디보자. 크루그.”
“네.”
“네 전투 스타일이 이 두분과 비슷할 것 같은데, 적당히 조언을 해주렴.”
“…”
크루그는 진이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보고는 눈을 가늘게 떴다. 하지만 카트린은 이미 이 둘을 친구로 생각하는 듯한 모습. 솔직히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구분 안가는 이런 쌍둥이 따위 별로 신경을 쓰고 싶진 않지만 카트린과 친하게 지내는 이들이라면 그가 옆에서 살펴보는 것도 나쁘진 않다.
게다가 어차피 라이언하트 외의 다른 스킬들은 사실 별로 중요한 것도 아니다. 어차피 스킬 마스터가 있으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 것들이니까.
“알았어요. 그렇게 하죠. 바로 시작할까요?”
“급하긴. 소화는 시켜야 하지 않겠냐.”
“그렇군요.”
어차피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쌍둥이들은 게임 캐릭터에 깃든 상태라서 딱히 소화를 시킬 필요가 없다. 하지만 크루그는 자신과 쌍둥이의 이런 본질적인 차이에 대해서 아직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지도 못하는 상태라 그런가보다 하고 넘길 뿐이다.
“그럼 스킬 문제는 되었고. 다음은 아이템이군요.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을 잠시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네? 그건…”
“꺼려지신다면 대충 어떤 장비들을 사용중이신지 그냥 말로 설명해 주셔도 됩니다.”
“…”
쌍둥이들은 잠시 서로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착용중인 아이템을 벗어서 형진에게 보여주었다.
아직 한창 키우는 도중이라 그런지 그닥 좋은 건 아니다. 대부분 마법 등급이고 한두개씩 착용한 희귀 등급 아이템은 사교도 인던에서 나오는 방어구 정도. 그나마도 가장 높게 강화된게 +3 정도이니 엘리시온 안에서는 별로 장비가 좋은 편은 아니다.
“흠.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크루그. 카트린이랑 함께 스킬을 좀 가르쳐 드리도록 해.”
“그럴게요.”
형진은 크루그와 카트린에게 쌍둥이들을 맡기고는 어디론가 모습을 감추었다. 여신은 잠시 형진을 따라가야 할지 스킬 배우는 모습을 봐야할지 우왕좌왕하다가 쌍둥이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는 급히 형진의 뒤를 따른다.
“일단, 기본적인 이동기부터 가르쳐 드릴게요. 저희들이랑 같이 다니시려면 다른 건 몰라도 이동기는 필수일테니까요. 자, 손을 내밀어 보세요.”
“네…”
“여기…”
본래 집행자들에게 전해지는 스킬은 집행자끼리만 서로 배우고 가르쳐주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러나 사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드시 그렇게 하라고 공포와 죽음이 정해 놓은 것이 아니었고, 그나마도 엘리시온에서의 일을 위해 제한이 풀린 상태였다.
쌍둥이들은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분명히 작은 소년에 불과하지만 이 남자 아이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나이답지 않은 진중함이라고 해야 하나, 은은하게 몸에 배인 고귀함이라고 해야 하나. 과연 그 카트린의 오빠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축하합니다! 스킬 ‘그림자도약’ lv.0을 습득했습니다!] [축하합니다! 스킬 ‘그림자질주’ lv.0을 습득했습니다!]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데, 문득 쌍둥이들의 눈앞에 이런 메시지들이 나타난다. 순식간에 스킬 전수가 끝나버린 것이다.
크루그는 쌍둥이들의 손을 놓고는 다시 말했다.
“아직 완전히 전수가 끝난 것이 아닙니다. 적어도 연습을 통해 레벨 10까지는 단련을 해야 완전히 자신의 스킬이라고 할 수 있죠. 마침 형이 이것저것 준비를 해주고 갔으니 바로 단련을 시작해 봅시다.”
“준비요?”
“무슨…”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문득 카트린이 토끼들과 함께 작은 손수레를 끌고 오는 것이 보인다. 크루그는 얼른 다가가 카트린에게 그것을 받아서 쌍둥이들 앞으로 가져왔다. 그곳에는 작은 액세서리와 함께 간식거리들이 하나가득 들어차 있었다.
“부스터와 도핑용 음식들입니다. 각자 이걸 착용하시고 난뒤 도핑을 하신 다음 바로 단련을 시작해 주십시오. 아마 그리 오래 걸리진 않을 겁니다.”
“헉!”
“그런…”
간혹 템귀들이 이런 식으로 스킬을 빠르게 익힌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자신들이 그와 같은 경험을 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놀란 나머지 손을 뻗을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데, 문득 카트린이 다시 말했다.
“오빠가 가르쳐 준거 다 배우고 나면 토끼들한테도 배울 거 있어요. 그러니까 얼른 준비하세요.”
“토끼가요?”
“네.”
쌍둥이들은 다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부스터와 도핑용 음식은 그렇다 쳐도 토끼들이 가르쳐준다는 스킬에는 당연히 호기심이 생긴다. 서로의 눈빛을 통해 의사를 확인한 쌍둥이들이 액새서리로 손을 뻗자, 크루그가 깜빡 했다는 듯이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인다.
“아, 그리고 그 액세서리. 두 분께 드리는 거라고 형이 전해 달래요.”
“이걸요?”
“그럴 수가…”
“왜요? 뭔가 문제라도?”
“그게…”
혹시 싸구려인가 하고 봤더니 죄다 +2 이상 강화된 액세서리다. 무기나 방어구와는 달리 액세서리 종류는 강화를 시도하다가 실패하면 그대로 박살나 버리기 때문에 +2만 되도 엄청나게 고가에 팔린다. 게다가 이 아이템들은 모두 스킬 부스터로 쓸 수 있는 아이템들. 당연히 일반적인 액세서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고가품들이다.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쌍둥이들이었지만, 크루그는 조금 엄한 표정으로 그녀들에게 다시 말했다.
“시간 없어요. 오늘 할 일이 많습니다. 어서 시작하지 않고 뭐합니까.”
“죄, 죄송합니다.”
“바로 시작할게요.”
쌍둥이들은 허겁지겁 액세서리를 착용하고 도핑을 한 뒤 바로 연습을 시작했다. 눈앞의 소년이 자신보다 네다섯 살은 어리다는 사실 따위 이미 그녀들의 머리 속에는 남아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