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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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 파워업
“모두 괜찮습니까?”
“네.”
“저기… 좀 내려주시면…”
“아, 죄송합니다.”
비밀 연구실에서 빠져 나온 뒤 일단 인원 점검을 해보았다. 경황 중에도 여신들은 얼른 형진의 어깨 위에 올라탄 덕분에 큰 문제가 없었고 카트린과 수빈, 그리고 승희 역시 먼지를 좀 뒤집어쓰긴 했지만 별 탈 없이 무사했다.
“마지막에 좀 위험하긴 했지만 수빈님 덕분에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별 말씀을요. 도움이 되어서 다행입니다.”
“앞으로도 좋은 정보가 있으면 언제든 말씀해 주십시오.”
“네.”
마법총서는 물론이고 내단과 마력 심장 같은 건 정말 돈이 있다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닌지라 형진은 기분이 상당히 흡족해졌다. 지금 당장은 좀 그렇지만, 지구와도 소통할 수 있게 된 이상 시간을 내서 신입 길드원 사인방도 직접 만나서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비밀 연구실의 탐색에 시간을 좀 잡아 먹긴 했지만 넉넉히 몇 번은 더 인던 탐색이 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수빈에게 다음 인던으로 가자고 재촉할 생각이었으나, 형진이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갑자기 퀘스트 알림이 나타났다.
[새로운 임무가 시작되었습니다!] : 아크리치 베이몰드의 연구실에서 마법총서를 획득했다. 이 물품은 마법 문명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단서가 담긴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5대 마탑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해 분석을 의뢰하도록 하자.“엥.”
비밀 연구실은 단순히 아크리치를 잡았다고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일회성 던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낮은 확률로 드랍되는 열쇠가 없으면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만약 열쇠가 드랍되지 않았다면, 아크리치 베이몰드는 마력 심장의 힘으로 다시 부활을 했을 것이다.
사실, 게임 상에서 몹이 리젠 되는 건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기 때문에 사람들로서는 아크리치가 계속해서 필드에 나타나는 이유에 대해 큰 의문을 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자동으로 발동한 퀘스트의 내용을 보자면, 아크리치 베이몰드는 단순한 필드 보스가 아니라 시나리오의 분기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요소였던 모양이다. 물론 이미 운영권이 강탈당한 현재의 상황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내용인지에 대해서는 살짝 의문이지만.
“흠…”
소녀와 여신들이 서로의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 주는 동안, 형진은 잠시 마법총서의 처분을 놓고 고민했다.
단순히 게임을 즐기는 유저라면 퀘스트대로 5대 마탑 가운데 한 곳을 정해 마법총서를 전달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형진으로서는 별로 그러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업데이트 자체가 불확실한 상황에서 굳이 시나리오대로 아이템을 전달할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과, 실제로 이 마법총서라는 것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점도 걸린다.
잠시 고민하던 형진은 일단 퀘스트대로 따르지 않고, 이것을 미엘에게 보이기로 결정했다. 미엘이라면 어지간한 인간보다 훨씬 마법에 통달해 있는 상태이고, 특히 결계 마법에 있어서는 전문가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실력을 지니고 있다. 비록 현재 아이들의 양육 때문에 정신이 없다고는 하지만, 분신을 쓴다면 아이들을 돌보면서도 마법총서의 내용을 확인하는 정도는 충분히 가능할 것이다.
“저…”
몸에 묻은 먼지를 털어낸다고 부산을 떨던 수빈이 문득 조심스럽게 다시 형진에게 말을 걸어온다.
“네, 말씀하십시오.”
이미 수빈의 정보로 예상치 못한 대박이 난 터라 형진은 아주 우호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을 받았다.
“이건 사실 인던이랑은 상관없는 건데요. 혹시 모르실까 해서요.”
“어떤…”
“실은 조만간 칸트라 제국에서 요리 토너먼트가 개최되거든요. 아세요?”
“네? 요리 토너먼트요?”
“아… 역시 모르셨군요. 어쩐지.”
형진은 정신이 화들짝 들었다. 요리 토너먼트라니 그런 이벤트가 예정되어 있었단 말인가.
“진님이라면 이미 장인의 경지를 초월한 수준이시니까, 이번에 참가하시면 틀림없이 명장이 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미처 모르고 있었습니다. 말씀해 주시지 않았다면 그런 것이 열리는지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 버렸겠네요. 정말이지,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별 말씀을요. 도움이 되었다니 그저 기쁠 뿐이네요.”
사실 요리 토너먼트에 대해서는 일전에 브라드로슈 가문에 언질을 주어 준비를 시키고는 사실상 잊어버리고 있었다. 수도 라야에서 돌아온 뒤로 대미궁에 대한 일이 벌어지고, 다시 그 사건이 엘 파르드 평정으로 연결되면서 요리에 집중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타나토스에게 형진이 기반을 잡는데 가장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 바로 요리다. 현재 왕성에서 함께 지내는 식구들 역시 대부분 요리라는 매개체를 통해 가까워질 수 있었다. 지금은 비중이 다소 줄었다고 해도, 형진에게 있어 요리는 어떻게 보면 알파와 오메가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는 분야인지도 모른다.
엘리시온 상에서 얻은 명장 타이틀이 과연 현실에서도 효력이 있을까 싶은 의문이 살짝 들기는 하지만, 난이도로 보자면 라야바르트 왕국에서 열릴 요리 토너먼트보다 몇 배는 난이도가 높은 시합이 될 것이다. 뭐라 해도 엘리시온 안에서는 타나토스에 비해 요리 장인의 수가 월등히 많이 때문이다.
당장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빈과 승희조차도 요리 장인이 아니던가. 모르긴 해도 제국에서 개최하는 요리 토너먼트라면 숨어 있던 요리 장인들이 명장 타이틀을 얻기 위해 대거 참여할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보면 이건 지금까지 형진이 겪어 왔던 그 어떤 대결보다도 더 힘들고 어려운 시련이 될지도 모른다. 인스턴트 킬이나 라이언하트라는 필살기가 통하지 않는 분야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물론 이쪽에는 희망과 생명의 신녀라는 비장의 무기가 있기는 해도,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이상 이것은 절대로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시합이 될 것이다.
“이거 참. 나란 놈은 정말 쉴 틈이 주어지질 않는군요. 하하.”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엘 파르드를 평정하는 일이 끝나서 이제 좀 한숨을 돌리나 싶었더니, 다시 사념체 백 개를 모으는 일이 주어졌다. 뿐인가. 방금 전에는 마법총서와 마력 심장을 얻어 그것을 활용할 방법도 찾아 봐야 하고, 이제는 요리 토너먼트의 준비까지 하게 생겼다. 이쯤 되면 정말 일복은 타고 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요리 토너먼트는 언제 열립니까.”
“사흘 뒤부터 참가 신청을 받기 시작하고, 예선전은 보름 뒤에 시작돼요.”
“그렇군요. 시간 여유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영 애매하네요.”
“죄송해요. 진작 알려드렸어야 했는데.”
“아닙니다. 죄송하긴요.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그걸로도 충분합니다.”
그렇게 얘기를 나누며 그들은 다음 인던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한편. 그렇게 형진이 다음 단계의 준비를 차곡차곡 진행해 가고 있을 때, 허세와 망상은 새로운 파편의 소유자들을 접견하고 있었다.
“크윽…”
“성질머리 한 번 더러운 놈이군. 다짜고짜 이런 식으로 덤벼들다니.”
하지만 이 접견은 일전에 아사드라는 소년을 만났을 때와는 또 달랐다. 아직 자신의 힘을 깨우치지 못한 상태였던 아사드와는 달리, 이번에 만난 인물은 어느 정도 파편의 힘을 일깨워 사용할 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명 인간을 초월할 수 있을 정도의 강력한 파괴력을 지닌 힘이었지만, 그래봐야 어디까지나 인간의 기준일 뿐 신중에서도 특히 강한 축에 속하는 허세와 망상에 비견될 만한 것은 아니었다.
“일어나라.”
“…”
원래 파편의 소유자들은 강력한 힘을 소유한 반면 무엇인가가 결여되거나 반대로 무언가가 폭주하는 경향을 지닌 경우가 많다. 앞서 허세와 망상을 접견했던 아사드가 힘이 온전히 발현되지 않은 상태에서도 분노라는 감정에 휩싸여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건 신들이 저마다 하나씩 결함을 지니고 있는 것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름.”
허세와 망상의 물음에 깡마른 외모의 남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존 스미스.”
“…”
그냥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이름이지만, 사실 존 스미스라는 이름은 영어권에서는 아무개라는 말과 동급이다. 한국어로 치면 영희와 철수 중에 철수. 또는 공문서의 견본용 이름으로 쓰이는 홍길동 정도의 이름이라고나 할까.
“그것 말고.”
“존 도. 조 시모, 리처드 로. 필라니. 조 블로. 알리. 후안 페레즈. 이반 이바노프. 얀 노박. 장 뒤퐁. 마리오 로시. 기타등등. 기타등등.”
“…”
이것저것 이름을 나열하긴 했지만, 전부 존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각국에서 익명의 인물을 거론할 때 쓰는 이름들이다. 차라리 그냥 아무개라고 대답하는 편이 나을 정도라고나 할까.
하지만 적어도 남자가 말하고 싶은 바는 확실하게 전달되었다. 그에게는 이미 본명이라고 할 만한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는 뜻이리라.
허세와 망상은 얼굴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손을 내저으며 나가라는 의사를 전했다. 그러자 남자는 비틀거리며 밖으로 나가 버렸다.
“쯧.”
가볍게 혀를 찬 허세와 망상은 인터폰에 대고 말을 전했다.
“거처를 마련해 주고 감시하도록. 흉악한 놈이니 바로 구속해서 감금할 것. 절대로 아사드와 마주치지 않게끔 주의하고.”
“네.”
이제 고작 두 명째인데 벌써부터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당분간 힘을 쓰지 못하도록 제압은 해뒀지만, 앞으로도 저런 미친놈이 줄줄이 엮여 올 걸 생각하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기분이 절로 들 수밖에 없는 일이다. 차라리 저 놈에 비하면 반항기 다분한 아사드 녀석은 귀엽게까지 느껴질 정도다. 하긴 아사드 그 녀석도 자신의 힘을 완전히 각성하고 나면 어떻게 변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어디보자…”
허세와 망상은 보고서를 펼쳐 들었다. 그곳에는 최근 엘리시온 내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동향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보고서에는 형진이나 타나토노트10 길드의 동향에 대해서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저 양방향 퀘스트의 업데이트처럼 엘리시온 장악 후 벌어진 운영 관련 이슈들만 적혀 있을 뿐이다.
이것은 공포와 죽음이 과거 엘리시온 운영자들에게 형진에 대한 정보가 유입되는 것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만약 운영자들 가운데 조금 더 침착하게 엘리시온 내의 이슈를 탐색하려는 자가 있어서, 게임 내에 접속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 외에 유저 커뮤니티 등에서 중구난방으로 회자되는 이슈들까지 정리했다면 형진이나 타나토노트10 길드에 대한 것도 보고서에 수록이 되었겠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짤리느냐 마느냐의 기로에 선 운영자들은 그런 식으로 유저들의 동향까지 파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개중에는 짤리는 걸 기정사실로 인정하고 엘리시온이 통째로 털려버린 일이 외부로 흘러나가기 전에 재취업 자리를 알아보느라 회사 업무를 등한시 한 채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운영자들조차 있을 정도였다. 알게 모르게, 이미 엘리시온이라는 게임을 유지하던 회사는 사실상 붕괴 직전까지 내몰려 있었던 것이다.
눈과 귀가 되어야 할 회사 직원들이 이런 상황이다 보니, 허세와 망상으로서도 답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편의 소유자를 둘이나 발견한 것이 오히려 신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곤란한데…”
문제는 회사만이 아니다. 저쪽 세계의 사정을 확인해 보겠다고 넘어간 희망과 생명으로부터 연락이 끊어진지 벌써 꽤 오랜 시간이 지나 버렸다. 멍청하긴 해도 지닌 바 힘의 절대량에 있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그녀의 실종은 허세와 망상으로 하여금 더욱 조급증을 느끼도록 만들고 있었다.
총체적 난국.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걸까.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아무 문제없이 모든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허세와 망상은 일이 이렇게 꼬여버린 이유를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건 누군가에게는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만약 이 모든 사태의 발단이 유형진이라는 인물의 계정을 삭제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한국 지사의 인물들 대부분은 현실에 강림한 신의 분노라는 것이 무엇인지 여실하게 깨닫게 되었을 테니까.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허세와 망상이 여전히 문제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는 동안 형진은 마침내 공포와 죽음이 명한 백 개의 사념체를 모두 수집하는 것에 성공했다. 반절 가까운 분량을 거래소에서 사들이긴 했지만, 애초에 수집 방법에 제한이 있는 임무가 아니니 큰 문제라고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일단 인던을 도는 건 이걸로 끝을 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빈님과 승희님 덕분에 수월하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좀 아쉽네요. 구경하는 거 꽤 재미있었는데.”
실제로 전투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승희는 형진이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재미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아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거라면 우리끼리 돌아도 되잖아요.”
카트린의 말에 수빈은 난색을 표했다.
“우리끼리?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그러자 카트린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음… 할 아저씨라든가 크루그 오빠라든가, 시간 남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면 되지 않을까요.”
형진은 카트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데. 그리고 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곳을 돌기보다는 쉬운 곳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나가면 되지 않을까.”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네요.”
무엇보다도 카트린의 성물 소환 능력은 지금껏 제대로 활용된 적이 없어서 그렇지 정말 말도 안 되는 사기 능력이다. 보스 코앞에 성물을 소환해 놓으면 그 순간 아무리 강력한 보스라도 그야말로 샌드백 신세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하루의 일과를 마친 형진은 카트린과 요안나, 그리고 여신들을 데리고 다시 왕성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