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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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선포
백악관 웨스트윙 지하 남서쪽 구석에는 상황실이 존재한다. 미국 국가 안전 보장 회의가 열리는 곳으로, 흔히 백악관 지하 벙커라고 불리는 곳이다.
예고도 없이 찾아든 상황에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료들은 오늘도 잠을 설치며 회의에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일이 죽음의 천사가 벌인 일이라는 건가?”
“그렇게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자료를 보면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보통 죽음의 천사에 대한 내용은 국가 안보 보과관이나 국토 안보부 장관에 의해 보고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오늘 회의에서 죽음의 천사에 대한 보고를 하고 있는 것은 예상외로 마약 정책 국장이었다.
현재 세계는 하루 아침에 전 지구 상에서 마약이 사라진 것이라든가, 갑작스럽게 영문도 모를 신이 둘이나 출현한 것 때문에 정신이 없는 상태. 사실 죽음의 천사에 대한 소식은 일리노이에서의 사건 이후 당연히 토픽으로 다루어질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지금은 마약의 소멸과 새로운 신의 등장, 그리고 그것을 전 세계 모든 인류에게 동시에 전달한 이른바 계시라고 불리는 현상으로 인해 거의 대부분의 토픽들이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가라앉아 있는 상태였다.
“이전에 보고드렸던 대로, 금일 멕시코 접경 도시인 XX시를 장악하고 있는 XXX 카르텔에 대한 토벌 작전이 진행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작전이 시작되기 직전, 사제 장갑차에 탑승한 채 이동 중이던 XXX 카르텔의 병력들은 저희 타격대가 도착하기도 전에 누군가의 손에 전멸하고 맙니다.”
마약 정책 국장은 당시 촬영된 사진을 통해 전멸한 카르텔의 병력들을 보여주었다. 폭격이라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뒹굴고 있는 차량들의 흔적과, 그 사이에 뒹굴고 있는 시체들의 모습에 얼굴을 찌푸리던 각료들은 이후에 보여지는 사진에 등장하는 한 인물을 보고는 눈을 크게 떴다.
“어째서 저곳에…”
검은 기운으로 몸을 감싸고, 마치 불꽃과도 같은 검은 날개를 펼친 한 존재가 흘깃 카메라 쪽을 바라보는 장면은 사진임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의 가슴을 섬짓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 사진이 촬영된 후, 죽음의 천사는 그대로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저희 타격대는 일단 현장을 확인하며 흔적을 탐색했지만, 별다른 것을 찾아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뒤, 카르텔의 아지트를 살피고 있던 정보원으로부터 그곳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습격 받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곳을 습격한 것이 죽음의 천사라는 얘긴가.”
“그렇습니다. 이것은 아지트의 비밀통로로 보이는 곳에서 카르텔의 조직원들과 죽음의 천사가 전투를 벌이는 장면을 촬영한 영상입니다.”
곧바로 화면에 전투 장면 하나가 나타난다. 먼 거리라서 제대로 식별하기 어려운 면이 있긴 했지만, 조직원들이 퍼부은 포화속을 걸어 나온 죽음의 천사가 조직원들을 하나씩 불태워 죽이는 장면이 여과 없이 드러나 있었다.
“음…”
“이건…”
앞서 보여졌던 조직원들의, 어떻게 보면 상당히 깔끔하기까지 한 시체들과는 다르게 이 장면에서는 멀리서 찍힌 영상만으로도 조직원들이 얼마나 고통스럽게 죽어가고 있는지 여실하게 보여지고 있었다.
“몹시… 화가 난 것 같군.”
누군가의 중얼거림과 함께 영상이 잠시 흔들리는가 싶더니, 어느 틈엔가 죽음의 천사는 사라져 있었고 다음 순간에는 강렬한 폭음과 함께 수많은 벼락이 도시를 뒤덮는 영상이 나타난다.
“이미 눈치를 채셨겠지만, 죽음의 천사가 사라진 저 시점에 바로 계시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음…”
이런 영상까지 보고나면, 확실히 누구도 우연의 일치 같은 말을 꺼내기 힘들다. 각료들이 침묵을 지키며 생각에 빠져 들고 있는 모습을 지켜 보던 마약 정책 국장은 시간의 흐름을 할 수 있는 표 하나를 다시 화면에 나타냈다.
“이것은 해당 작전의 타임 테이블입니다. 카르텔의 전멸과 죽음의 천사를 발견한 시각으로부터 정보원이 찍은 영상을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것을 토대로 최초 전투가 벌어졌던 지역과 아지트의 거리를 가지고 죽음의 천사가 지닌 이동 속도를 추산하면, 대략 시속 100에서 250킬로미터 정도가 나옵니다.”
“차이가 크군.”
추산치라고 해도 두 배 이상 차이가 나다니.
“아지트에 도착해서 전투를 시작한 시점을 정확히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당시 주위를 초계중이던 공격 헬기의 레이더에 별다른 정황이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미루어 이것은 별다른 이동 수단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의 순수한 이동 능력이라고 봐도 좋을 듯 합니다.”
“최하로 잡아도 시속 백 킬로미터란 소린가.”
“그렇습니다.”
속도란 상대적인 것이다. 달팽이에게는 굼벵이가 일생일대의 라이벌 수준의 속도를 가진 존재지만, 하늘을 나는 새의 입장에서는 둘 다 느려터진 먹이에 불과할 뿐이다. 마찬가지로 시속 이백 킬로미터로 밟아대는 자동차도 초음속 전투기에게는 굼벵이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기준이라면, 시속 백 킬로미터로 달리는 자동차는 100미터 세계 최고 기록을 가진 선수보다 2.7배 이상 빠른 속도를 가지게 된다. 다시 말해, 죽음의 천사는 최소로 쳐도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인간보다도 세 배 가까이 빠르다는 얘기가 된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미국 정부가 밝혀낸, 죽음의 천사에 대한 의미 있는 첫 번째 데이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죽음의 천사가 어떤 존재이건 간에 일반적인 인간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더구나 마약 정책 국장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누락시켰다. 최초 전투 지역으로부터 카르텔의 아지트까지는 개활지 뿐만 아니라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도심도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탁 트인 개활지보다 도심에서의 이동이 훨씬 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속도는 문자 그대로 최소한의 데이터에 불과하다.
“다음은 문장으로 재구성한 계시의 내용입니다.”
마약 정책 국장은 다시 하나의 문서를 화면에 나타냈다.
“여기 이 문장에 주목해 주십시오.”
국장이 가리켜 보인 곳에는 이런 문장이 적혀 있었다.
-때문에 나는 이 자리에서 위대한 신인 공포와 죽음을 대신해 그 의지를 빌어 너희에게 고한다.
“과연…”
“그런 건가.”
각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국장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처음 겪는 현상으로 인해 두려움에 떨며, 난폭하기 이를 데 없는 방법으로 내려진 명령 중간에 명시된 공포와 죽음의 이름을 뇌리에 각인시켰다. 하지만 막상 그 명령의 화자가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미처 생각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 문장을 보시면, 화자는 공포와 죽음을 대신해 그 의지를 빌어 고한다고 적혀 있습니다.”
“그것이 죽음의 천사라는 얘기군.”
“그렇습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렇다면, 왜 갑자기 이런 일을 벌였는가가 문제겠군.”
“그거라면, 역시 아까 그 분노한 모습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맞겠군요.”
한 각료의 대답에 마약 정책 국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다음 화면을 봐 주십시오.”
“으음…”
“이런…”
화면에는 부서진 벽 사이로 드러난, 미이라화 되어 버린 채 매달린 남녀노소의 사진이 나타나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참혹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분노를 일으키게 만드는 모습이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각료들은 잠시 눈을 감고 희생자들에 대한 묵념을 했고, 그것이 끝나자 국장은 바로 다음 자료 화면을 보여주었다.
“이것은 타격대가 도착한 이후 파악한 아지트 내에 흩어져 있던 조직원들의 사체 위치와 상태를 표시한 것입니다.”
화면에 나타난 것은 정원이 딸린 건물의 조감도이었는데, 도면 곳곳에 사람의 시신을 뜻하는 표식이 하나씩 그려져 있었다.
특이한 것은 시신의 표식이 검은 색과 붉은 색으로 나뉘어 있다는 점이다.
“눈치 채신 분도 있으시겠지만, 붉은 색은 불에 탄 시신이고, 검은 색은 불에 타지 않은 채 죽음을 맞이한 시신들입니다. 그리고, 여기 이곳이 바로 방금 전에 보신 희생자들의 시체가 있던 장소입니다.
“과연.”
“그런건가.”
이렇게 도면으로 보니 상황이 아주 일목요연했다. 죽음의 천사는 외부로부터 침입해 담장을 지키고 있던 경비병들을 지키고 정문으로 들어가 거실에 있던 자들을 처치했다. 그리고 곧바로 문을 열고 나온 조직원 하나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트로피처럼 벽에 감추어져 있는 희생자들의 모습을 발견했고, 격하게 분노하며 남은 조직원들을 남김없이 불태워 죽였다.
그리고 카르텔들이 탈출용으로 파놓은 통로를 빠져 나와 최후의 발악을 하는 조직원들을 말끔히 처리한 뒤, 그곳에서 곧바로 계시라 불리는 행위를 발동했다.
“이거 참…”
“문자 그대로… 죽음의 천사라는 건가.”
누가 붙인 별명인지는 몰라도, 이제 보니 더 없이 정확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스스로 신은 아니지만, 공포와 죽음이라는 신을 섬기며 신이나 다름없는 힘을 드러내 보일 수 있는 존재를 달리 무엇이라 부른단 말인가.
이전에도 죽음의 천사는 최우선 정보 수집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히 위험하고 불가사의한 힘들 가진 정체불명의 정도로는 치부할 수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럴 마음만 있다면, 전 세계 모든 인류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그런 말도 안되는 힘을 지닌 존재임이 파악되었기 때문이다.
“하긴… 그 천벌을 보면 굳이 누가 한 일을 따질 필요도 없는 일이었는지도.”
“…”
각료들은 쓴웃음을 지었다. 일리노이의 살인마는 죽기 바로 직전까지 끝없이 쏟아지는 벼락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죽음을 당했다. 그것은 너무나도 유명해서 굳이 거론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미처 전 세계를 뒤덮어 버린 천벌이라는 이름의 형벌을 죽음의 천사와 쉽사리 연관 짓지 못하고 있었다. 연관지어 생각하기에는, 너무나도 스케일이 큰 일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앞으로인데…”
각료들은 물론이고 대통령 역시도 안색이 침중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다. 사실 정의라는 것은 참으로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라, 누가 어떤 가치 기준에 따라 판단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성향대로라면 죽음의 천사는 최소한 인간들이 공통으로 지닌 선악의 기준 정도는 따르고 있었지만, 단 한 명도 남김없이 가차 없는 죽음을 내린 손속으로 봐서는 무조건 선한 존재라고만 이해하기도 어려운 점이 있었다.
“만약 죽음의 천사가 미국과 적대한다면 어떻게 될 것 같소.”
대통령의 질문에 부통령은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다 죽겠죠.”
“…”
누구라고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부통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모두 이해했다.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 방 안에 존재하는 이들 가운데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으리라.
“그렇다면, 결국 방법은 한 가지군.”
죽는 것이 두렵지 않다고는 말하지 못한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과연 죽음의 천사가 행동을 멈출까 하는 점이다.
대통령은 한숨을 푸욱 내쉬며 결국 이렇게 말했다.
“문제가 될 만한 일은 하지 않는 수밖에.”
“그렇다면…”
“지금 즉시, 해외에 출병 중인 모든 병력을 국내로 불러들이는 절차를 진행하시오.”
“동맹국에 파견 중인 병력은…”
“주둔 기지에 배치된 병력은 어쩔 수 없겠지. 내 말은, 작전 중인 모든 병력을 말하는 겁니다.”
“음…”
그것은 다시 말해 해외에서의 모든 군사 작전을 지금 시점에서 종료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미국이 보여주던 해외에 대한 영향력을 거의 대부분 포기한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도 있었다. 물론 동맹국에 주둔중인 병력이 있으니 모든 영향력을 상실하지는 않겠으나,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국가들과의 대립에서 수동적인 면모를 보이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리라.
하긴 러시아나 중국도 바보가 아닌 이상, 지금 상황에서 미국이 발을 빼는 이유를 눈치 채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백이면 백, 그들도 같은 행보를 보이겠지만… 만약 강대국들이 이런 행보를 보이는 이유를 눈치 채지 못한 멍청이가 엉뚱한 일을 벌인다면, 아마도 세계는 또 한 번 죽음의 천사가 모습을 드러내는 광경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보 부서들의 책임이 중요합니다. 세계 각지의 정황을 파악해서, 죽음의 천사가 모습을 드러낸 만한 장소를 추정하십시오.”
“접촉하시려는 겁니까?”
대통령은 잠시 눈을 감고 고민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글쎄… 만나고 싶다고 만나주기는 하겠소?”
“그건…”
“우선은… 상대의 행동 패턴이나 가치관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요. 적어도 상대가 어떤 존재인지는 알아야 대화든 뭐든 시작할 수 있는 법이니까. 그런 느낌으로 부탁합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의 예상대로 러시아와 중국도 비슷한 판단을 내리고 있었다. 물론 그들은 멕시코 접경 도시에서 벌어진 일까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마약을 불태워 버린 천벌을 통해 이번 일이 죽음의 천사가 벌인 일이라고 추측하는 정도였지만, 어쨌든 전 세계의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정체 불명의 존재에게 쓸데없는 빌미를 주는 행동은 일단 피하는 것이 상책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지금 세계를 떠들썩 하게 만든 주인공이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정의구현 같은 것이 아니었다. 통칭 죽음의 천사, 형진은 지금 코앞으로 다가온 요리 대회에 출품할 요리를 준비하느라 다른 데 정신 팔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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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아침에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