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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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요리 대회
그리고 마침내 요리대회 당일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대회가 열리는 칸트라 제국의 수도 이슬라는 평소와 별로 다를 것이 없는 분위기다. 나름 수도에서 왕실이 주관하는 거대한 대회가 열리는 것 치고는 뭔가 분위기가 가라앉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대회에 맞는 분위기를 연출할 기획팀이나 개발팀의 개입이 불가능한 상태에서는 인위적으로 마을을 더 꾸민다거나 엔피시를 더 투입한다거나 하는 식의 작업이 이루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엔피시들이 그 정도로 능동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힘든 일이고, 공포와 죽음 역시 인위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유저들이라도 많이 모여들면 좋으련만, 생산직에 투자한 생활러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유저들은 이벤트 던전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있어서 요리 대회 같은 것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참가자들이나 그들의 관계자들 외에는 딱히 구경꾼들도 없는 상황. 그야말로 딱 아는 사람만 아는 동네잔치 같은 모습이다. 바꿔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름 현실 반영인가 싶기도 하고.
그나마 다행이라면 명장 타이틀을 따기 위해 제법 많은 참가자들이 모여들었다는 점. 이 게임에 요리 장인을 달성한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이 바글거리고 있었다.
“준비 많이 하셨어요?”
“네. 그럭저럭. 두 분도 많이 하셨나요?”
“물론이죠.”
“그래도 진님을 이길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하하.”
오랜만에 유아가 형진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임신이 확인된 시점으로부터 혹시라도 탈이 날까 싶어 애지중지 하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명장 타이틀이 걸린 오늘 대회만큼은 반드시 자신이 옆을 지키겠다고 며칠부터 고집을 부리더니 결코 자기주장을 관철시켜 버렸다. 결국 형진은 불안한 마음에 보호와 균형에게 유아를 보살펴 달라고 부탁하는 조건으로 그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과정은 좀 복잡했지만, 오랜만에 형진과 외출을 나온 것이 기쁜 모양인지 유아는 그의 팔을 꼭 끌어안은 채 한껏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동안 두문불출하다 보니 살짝 살이 올라 있긴 했지만, 덕분에 귀엽고 복스러운 느낌을 한껏 풍기고 있어서 요즘 한창 미모에 물이 오른 승희나 수빈보다도 더 눈에 띌 정도다.
어쨌든 그렇게 함께 경기가 열리는 왕궁으로 향했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자 역시나 수많은 참가자와 관계자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은 서 있었다.
“늦지는 않은 것 같군요.”
“그러게요.”
“와아… 이 사람들이 전부 다 요리 장인이에요?”
“다는 아니겠지만, 이렇게 보니 정말 많네.”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이윽고 입장 시간이 다 되어 감을 알리는 전령의 목소리가 몇 번 울려 퍼지더니, 나팔 소리와 함께 성문이 닫혔다.
드디어 시작인가.
나름 긴장하며 내성 쪽을 바라보자, 다시금 잘 차려 입은 시종 하나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모여 있는 사람들에게 안내 사항을 전달했다.
“이번에 왕실에서 주최한 요리 대회에 참가하신 여러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일단 내성 입구에서 참가자 확인을 마친 다음, 본격적으로 요리대회가 펼쳐질 중정으로 이동하겠습니다. 모두 진행에 차질이 없도록 질서 정연하게 지시에 따라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시종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마치 공항 출국 심사대 같은 느낌의 설비가 갖춰지고, 그곳을 통해 참가자들이 요리 대회가 펼쳐지게 될 중정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진.”
“진… 확인되었습니다. 보조는 한 분이십니까?”
“그렇다.”
“보조를 맡으실 분의 성함을 기재해 주십시오.”
형진이 유아의 이름을 적어주자, 시종은 몇 가지 사항을 확인하더니 이내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번호표입니다. 받으십시오.”
“…”
“그 번호가 적힌 조리대로 바로 가시면 됩니다.”
“알았다.”
“좋은 결과 있으시길 빕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어차피 엔피시에 불과한 존재라 형진은 그 말을 듣고 안으로 곧장 향했지만, 유아는 품위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지으며 엔피시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얼른 형진의 팔에 다시 달라붙으며 걸음을 옮겼다.
내성의 중정에는 요리 대회를 위해 조리대와 화덕 등이 줄지어 늘어서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요리 만화처럼 리그전이나 토너먼트 같은 건 아닌 모양이다. 저런 식으로 요리 설비를 중정에 가득 늘어놓을 수 있는 것 자체도 어찌 보면 게임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리대야 그렇다 쳐도 화덕이나 오븐 같은 걸 참가자 전원에게 하나씩 설치해 주는 건 일반적으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니까.
“그럼 저희도 이만 가볼게요. 좋은 결과 얻으시길 빌어요.”
“두 분도 좋은 결과 얻으시길 빕니다.”
수빈과 승희가 자신들의 자리로 향하자, 형진은 유아와 함께 번호표대로 자신들의 자리를 찾아 움직였다.
그런 식으로 참가자들의 입장이 끝나자, 다시금 나팔 소리와 함께 입구가 닫히고, 뒤이어 시종들의 알림과 함께 중정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테라스에 황족과 귀빈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마도 오늘 요리 대회의 심사는 저들이 맡게 될 모양이다.
“그럼 오늘 요리 대회의 규칙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먼저 참가자 주의 사항입니다.”
“참가자격은 장인 이상의 등급을 가진 요리사로 정한다.”
“모든 요리는 성심성의껏 준비된 작품이어야 하며, 대회장 안에서 직접 조리된 것으로 한정한다.”
“개인적으로 준비된 식재료의 사용은 두 가지로 한정하며, 사용 전에 진행 요원의 확인을 받아야만 한다.”
“개인적으로 준비된 식기의 사용에 특별한 제한은 없지만, 사용 전에 진행 요원의 확인을 받아야만 한다.”
“지정된 시간 안에 요리를 완성하여 제출하지 못하면 심사에서 제외된다.”
“대회가 진행하는 중에 대회장을 벗어나면 실격 처리…”
그런 식으로 주의 사항을 한참 읊어대던 시종은 평가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각각의 요리는 참석하신 귀빈들에 의해 평가됩니다. 심사의원으로 배석하신 스무 명의 귀빈께서 평가한 점수를 종합하는데, 가장 높은 점수를 부여한 두 분의 점수와 가장 낮은 점수를 부여한 두 분의 점수를 제외한 총 열여섯 분의 평균 점수를 통해 본선에 참가할 열 팀의 요리사들을 선발하며, 이후 본선에서 추첨을 통해 선별된 공통 주제로 최후의 한 팀을 우승자가 결정됩니다.”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예선을 치러 본선 진출자 열 팀을 뽑고, 그들에게 다시 주제를 부여하여 승자를 뽑는다. 현실에서의 왕실 요리 대회라면 토너먼트로 몇날 며칠 동안 이어지며 흡사 파티를 연상케 하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겠지만, 저마다 일정이 다른 유저들을 상대로 하는 게임 상에서의 요리 대회를 그렇게 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간단하게 규칙의 설명을 마친 시종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 왕실 요리 대회 예선을 위한 주제 추첨이 있겠습니다.”
시종의 말과 함께 자리에서 귀여운 꼬마 공주 하나가 자리에서 발딱 일어나더니 추첨함에 손을 넣어 종이를 하나 꺼냈다. 시종은 공주가 뽑은 종이를 공손하게 받아서 펴들고는 그 안에 적혀 있는 내용을 읽었다.
“예선전의 주제는 ‘군인’입니다.”
“뭐?”
“군인이라고?”
참가자들은 뜻밖의 주제에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사전에 전혀 예상치 못한 주제가 튀어 나와 버렸기 때문이다.
“이래서였나.”
자신이 내부자 정보를 요구했을 때 공포와 죽음이 대답하지 않은 건, 당사자로서도 어떤 주제가 나올지 미처 알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수를 발생시키는 느낌으로 무작위로 단어를 추출해 그것에 걸맞은 요리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라니.
하지만 문제는 과연 엔피시들이 이런 주제의 요리들을 어떻게 심사할까 하는 점. 평가 기준이야 있겠지만, 이런 식으로 대규모 요리 대회일수록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쉽게 승부를 가르기가 어려울 텐데.
유아 역시 걱정스러운지 형진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실 건가요.”
“글쎄.”
형진은 잠시 고민을 하더니 피식 웃었다. 사실 깊이 생각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그에게는 이미 군인을 주제로한 특별한 요리, 사실상 시그니처 요리라고 해도 좋을 만한 메뉴가 갖춰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군인을 위한 요리라면 우리가 전문이잖아?”
유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이내 손바닥을 짝 하고 부딪히며 대답했다.
“아… 설마 전투 식량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맞아.”
얼핏 난감해 보이는 주제지만, 형진과 유아에게는 사실 그리 어려운 주제가 아니었다. 뭐라 해도 그들은 이미 다른 세계에서 기사단의 전투식량이라는 이름으로 메뉴를 만들어 군에 납품한 전력이 있다. 말이 쉬워서 수천 수만번이지, 그 정도로 한 요리를 반복해서 만드는 것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시그니처 요리가 별건가. 어떤 요리사를 떠올렸을 때 바로 연상되는 요리가 바로 시그니처 요리다.
“그럼 어떤 걸로…”
전투식량이라고는 해도 여러가지 유형이 있다. 전투라는 것은 여러가지 상황에서 벌어지게 마련이고, 거기에 맞는 버프 효과를 부여하기 위해서는 메뉴에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든든한 1형으로 갈까.”
“그럼 재료부터 챙겨와야겠네요.”
“그래야겠지. 가자.”
중정에 한켠에는 다양한 식재료들이 풍성하게 장만되어 있었다. 사실상 엘리시온이라는 게임 상에 존재하는 거의 대부분의 자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물론, 엘리트 몬스터의 고기 같은 아주 특별한 재료들까지 전부 갖춰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형진와 유아는 능숙하게 필요한 재료들을 척척 집어서 바구니에 담은 다음, 자신들의 조리대로 돌아왔다. 다른 이들이 어떤 음식을 조리할지 고민하느라 시간을 끄는 모습과 여러모로 비교되는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조리대에 와서도 둘의 모습은 다른 이들과 확 차이가 났다.
“후우… 시작해 볼까.”
“네!”
형진과 유아는 인벤토리에서 무언가를 꺼내 먹더니, 이내 폭풍과도 같은 손놀림으로 식재료 준비를 시작했다.
콰콰콰콰콱!
솨아아아아!
형진과 유아는 마치 한 몸이라도 된 것처럼 유기적인 동작으로 식재료를 다듬고 거기에 신성력 샤워를 퍼붓는 일을 계속했다. 형진의 손놀림도 대단하지만, 그렇게 다듬어진 식재료들을 한곳에 정리하는 듯한 모습으로 딱 필요한 만큼의 신성력만 밀어 넣는 유아의 동작도 실로 대단하다는 말이 절로 들 정도였다.
채 몇 분 지나지도 않아 식재료의 준비를 모두 마친 두 사람은 곧바로 조리에 들어갔다.
여러 개의 메뉴가 함께 포함될 경우, 각각의 요리가 완성되는 시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빨리 만들어져서 다른 요리가 완성되기를 기다리다가 식어버리면 그만큼 맛이나 식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일. 구성되는 모든 요리가 가장 맛있어지는 순간에 손님에게 요리는 내놓는 것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셈이다.
벌써 몇 개월동안 수천 수만명 분의 요리를 함께 만들어 왔던 두 사람의 호흡은 실로 놀라웠다. 다른 요리사들이 어떤 요리를 만들지 고민하고 거기에 맞는 식재료를 선택하느라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하기는커녕 식재료의 손질조차 다 끝나지 않은 시점에서, 이미 그들은 출품하고자 하는 요리를 완성해 버렸다.
“괜찮을까요? 그래도 뭔가 특별한 요리를 만들어서 내놔야 하는 거 아닐까 싶은데.”
“글쎄. 내 생각은 좀 다른데.”
“어떻게요?”
“특별한 요리도 좋지만, 우리가 가장 잘 하는 요리를 만드는 것이 실력을 드러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아닐까 싶더라고.”
“아하.”
확실히 그건 형진의 말이 옳았다. 예선의 목적은 이렇게 모인 요리사 가운데 본선에 올라갈 요리사를 뽑는 것.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각각의 요리사가 어떤 것에 능숙하고 어떤 요리를 만들 때 가장 뛰어난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형진의 선택은 탁월한 면이 있었다.
“이 요리의 이름과, 간단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요리를 제출하자 그것을 접수하며 시종이 물어왔고, 형진은 이렇게 대답했다.
“요리의 이름은 그리칸풍 기사단 특식. 전투를 앞둔 기사단의 사기와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요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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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