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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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요리 대회
시종은 조심스럽게 형진이 제출한 요리를 접수받았다. 각 심사위원에게 일인분씩, 총 이십인분이나 되니 양이 만만치 않다. 만약 현실이었다면 이걸 접수해서 심사위원에게 전달하는 것만으로도 큰일이었겠지만, 게임 안이다 보니 접수는 거래 한 번으로 간단하게 끝나 버린다.
“접수가 끝났습니다. 심사가 끝날 때까지 조리대에서 대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형진은 살짝 목례를 하고 난 뒤 유아와 함께 조리대로 돌아갔다. 그런 그의 모습에 다른 참가자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말도 안 돼. 번갯불에 콩을 볶아 먹어도 이것보다는 느리겠다.”
“도대체 뭘 어떻게 한 거야?”
“혹시… 주제가 미리 유출된 거 아닐까?”
“바보냐. 유출됐으면 들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당히 다른 팀들 눈치 보다가 제출했겠지.”
“하긴.”
사람들이 쑥덕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형진과 유아는 그러거나 말거나 자신들의 조리대로 돌아와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이제 뭐하죠?”
“글쎄.”
너무 빨리 끝내도 문제다. 보아하니 다른 팀들이 전부 요리를 마칠 때까지 대기해야 할 것 같다.
“흠… 잠깐만.”
“네.”
형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행요원에게 다가가 물었다.
“혹시 남는 시간에 다른 요리를 해도 됩니까?”
진행요원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네? 하지만 이미 제출하지 않으셨는지.”
“그렇긴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지루한 일이라서.”
“아하… 알겠습니다. 잠시 윗전에 여쭈어 보고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진행요원은 그렇게 말하고는 급히 어디론가 달려갔다. 아마도 테라스에서 대회를 지켜보고 있는 귀빈들에게로 향하는 모양이다.
사실 현실의 요리 대회라면 단순히 요리를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를 살피게 된다. 기본 작업 준비 및 청결, 조리 과정의 전문성, 배열 및 표현성, 창작성, 요리의 맛, 조리의 과학성, 상품화 가능성 같은 여러 가지 분야로 나누어 배점이 이루어진다.
사실 요리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맛이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실제로 배점 기준을 보면 맛의 배점은 백점 만점에 20점 밖에 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일반인들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국제 요리 대회 규정안에 명시되어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렇다고 게임 안에서까지 그러한 규정을 들이대긴 어려운 일이다. 애초에 참가자들 대부분이 그냥 게임 안에서 요리라는 컨텐츠를 즐기는 사람들일 뿐, 전문적인 요리사인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렇게 잠시 기다리고 있자 진행요원이 다가와 말했다.
“괜찮다는 허락이 내려졌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진행요원이 물러가자 형진은 유아에게 말했다.
“혹시 먹고 싶은 거 있어? 말해봐. 뭐든지 만들어 줄게.”
“정말요?”
“물론.”
모처럼 단둘이 보내는 시간. 기왕이면 좀 더 그럴 듯한 데이트를 해보고 싶지만, 대회 중에는 밖에 나갈 수가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유아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음… 우동이요.”
“우동? 겨우?”
“전에 라야에서 노점 한 적 있잖아요. 그때 만들었던 우동이 그렇게 맛있었다고 시녀들이 말하는 얘길 들었던게 갑자기 떠올라 버렸어요.”
“너무 식성이 저렴한 거 아니야?”
“당신이 만들어 주는 요리는 세상에서 제일 고급스러운 걸요.”
“훗. 알았어.”
형진은 바로 재료를 챙겨 와서 준비를 시작했다. 물론 이번에도 재료 손질의 마무리는 유아의 몫이다.
곧바로 육수를 내고 면을 뽑는다. 유아는 한쪽에 가만히 턱을 괴고 앉아서 남편이 오직 자신만을 위해 요리를 만드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물론 언제나 그가 만들어 주는 요리를 먹고 있지만, 지금 만드는 요리는 오직 자신만을 위한 것이다. 유아에게는 그게 가장 중요했다.
곧바로 뜨끈한 육수가 만들어지고, 형형색색의 고명을 얹은 예쁜 우동 한 그릇이 만들어졌다. 간단하게 초절임을 만들어서 쟁반에 담아내자, 유아는 냄새만으로도 절로 입 안에 침이 고이는 걸 느꼈다.
“마, 맛있겠… 헙!”
하지만 바로 그때, 유아의 어깨로부터 작은 목소리가 들려온다. 아뿔싸. 유아가 다치지 않도록 보호를 부탁했던 보호와 균형이 그곳에 있음을 지금껏 두 사람 모두 잊고 있었던 것이다.
형진과 유아는 두 사람만의 오붓한 분위기를 자신도 모르게 깨버린 것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여신을 향해 빙긋 웃었다.
“같이 드실래요?”
“네? 하지만…”
“괜찮아요. 자…”
유아가 렝게에 면을 담아 국물과 함께 내밀자, 여신은 잠시 어쩔 줄 몰라하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고는 면을 호로록 빨아 먹었다. 참고로 렝게는 우동 먹을 때 쓰는 넓적한 스푼을 말한다. 원래는 중식을 먹을 때 쓰는 스푼인데, 스푼의 오목한 부분이 연꽃의 꽃잎과 닮았다고 해서 그런 이름으로 현지화 되었다.
“우으으으…”
고작 면발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도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 모습에 형진과 유아는 절로 푸근한 미소를 지을 수 밖에 없었다.
“제, 젠장…”
“부럽지 않아.”
“크윽…”
형진과 유아의 그런 모습에 그들 양옆에 자리 잡은 참가자들은 죽을 맛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옆 자리의 경쟁자가 눈으로 따라가기도 힘들 정도의 엄청난 솜씨를 보이며 출품을 끝낸 걸 보고 강렬한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인데, 이제는 자기들 할 일 다 끝났다고 서로 노닥거린다. 남자끼리 팀을 이룬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미묘한 사이에 불과한 혼성팀으로서도 민폐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다. 요리에 집중해도 부족할 마당에 자꾸만 파트너가 신경 쓰이니 손은 손대로 머리는 머리대로 따로 움직이는 형국이다.
원래부터 좀 맹한 유아나, 역시나 맹하기로는 천하에 둘째가라면 서러운 보호와 균형은 그런 주위의 상황을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형진은 자꾸만 손발이 엇나가는 주위 참가자들의 모습을 흐뭇한 모습으로 지켜보았다.
그는 그저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준 것뿐이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도 없다 이 말이다.
[그럼 그렇지. 에효.]어디선가 한숨을 포옥 내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형진은 모르는 척 유아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을 만들어 진상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렇게 몇 가지 음식을 더 만들고 나자, 그제서야 다른 참가자들의 요리가 모두 끝을 맺었다. 어쩐지 형진 주위의 참가자들의 안색이 매우 침울하고 어두워 보이긴 했지만, 그건 형진이 알 바 아니다. 원래 승부의 세계는 냉혹한 법. 고작 그 정도의 정신 공격에도 휘둘릴 정도로 명장을 넘보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잠시 시간이 지나자 마침내 예선 심사 결과가 발표 되었다. 모두가 예상했던 대로, 형진과 유아는 당당히 본선에 진출할 열 팀 중 하나로 선택되었다.
“아쉽네요. 저희도 본선에 나가보고 싶었는데.”
“축하해요. 진님이라면 분명 명장이 되실 거에요. 파이팅!”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수빈과 승희는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실력 자체는 부족하지 않다 싶었지만, 아무래도 메뉴 선택에 문제가 있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만큼 본선 진출자들의 실력이 출중했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아쉬운 표정으로 다른 참가자들이 물러가자, 본선 진출이 확정된 열 팀은 시종들의 안내를 받으며 접견실에 마련된 경연장으로 입장했다.
장소는 바뀌었지만,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앞서와는 달리 심사위원들이 참가자들의 요리 장면을 가까운 곳에서 직접 볼 수 있고, 참가자들 역시 심사위원들이 평가하면서 보이는 반응을 직접 볼 수 있는 것이 다르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아나 여신도 이번만큼은 다른 참가자들이 신경 쓰이는지 살짝 흘깃거리며 주위를 살피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형진은 가만히 눈을 감은 채 본선이 시작되기를 기다릴 뿐이었다.
잠시 기다리자, 귀빈들이 나와 단상에 자리하고 뒤이어 시종이 앞으로 나와 다시 한 번 주의사항과 심사방법을 설명했다.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자, 이번에도 어김없이 꼬마 공주가 앞으로 나와 상자 안에서 단어 하나를 꺼내 들었다.
“본선의 주제는 ‘가족’입니다.”
“아…”
사람들은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예선처럼, 어찌 보면 괴악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그런 주제가 아니라 의외로 평이한 주제였기 때문이다.
식사를 같이 하는 이를 가리켜 식구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요리란 본래 가정의 구성원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매개체 가운데 하나이다. 물론 이런 주제이기 때문에 더욱더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질 수도 있지만, 적어도 생각을 떠올리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중요한 장점이었다.
참가자들은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바로 식재료가 놓여져 있는 곳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의외로 형진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계속해서 생각을 이어가고 있었다.
본선은 예선과는 다르다. 예선은 그 참가자가 가장 주특기로 삼는 것이 무엇인지, 실력을 엿볼 수 있는 요리면 충분했지만, 본선은 말 그대로 자신이 명장의 자격을 갖춘 요리사라는 걸 증명해 보이는 자리이다.
때문에 형진은 깊게 깊게 생각하며 자신이 만들 요리에 대한 심상을 다져 나갔고 다시 상상 속에서 그것을 완성하기까지의 과정을 몇 번이나 복기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눈을 떴다.
“갈까.”
“네.”
형진은 유아를 데리고 식재료가 놓여진 곳으로 간 다음 가장 먼저 밀가루를 골랐다. 그것도 강력분과 박력분을 하나씩. 뒤이어 고른 것은 저염 버터와 소금. 그리고 나머지는 야채들. 재료만으로 봐서는 빵과 과자를 만들어서 곁들이려는 건가 싶은 느낌. 하지만 뒤이어 버섯과 푸아그라까지 챙기니 유아로서는 뭘 하려는 건지 어리둥절할 뿐이다.
재료를 가지고 조리대로 돌아온 형진은 일단 유아에게 손질을 맡긴 다음 자신은 다른 재료의 준비를 시작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도마에 가지고 온 버터를 얹더니 기름종이를 얹고는 밀대로 밀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물기가 없는 저염버터를 밀대로 밀어 납작하게 만드는 일은 엄청난 고역이다. 힘이 센 남자도 하다 보면 땀이 뻘뻘 나올 정도니 말 다했다. 하지만 형진은 워낙 영약을 많이 먹은 탓인지 별로 어렵지 않게 쓱쓱 밀어내더니 이내 납작한 사각형 모양의 판 버터 모양을 만들어 버린다.
“저, 이 식기를 써도 되겠습니까?”
“이건…”
진행요원은 형진이 내민 몇 가지 식기를 확인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겉으로 봐서는 별로 특별할 것이 없는 식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식기들은 오늘을 위해 제작한 매우 특별한 식기들이다. 식기 안쪽에 일그러진 시간의 돌이 박혀 있어서 휴지나 숙성 작업을 빠르게 만들어주는 아주 유용한 도구들이기 때문이다.
형진은 판모양으로 만든 버터를 식기 위에 얹고 아이스박스에 넣어 차갑게 식혔다.
버터의 밑작업이 끝나자 이번에는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을 시작한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강력분과 박력분을 따로 쓰지 않고 둘을 칠대 삼 비율로 섞어서 계란과 소금과 차가운 물을 섞어 반죽을 시작한다.
이번에 쓸 반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최대한 반죽에 열이 가지 않도록 하는 것. 그 때문에 차가운 물에 담근 보울에 반죽 재료를 넣고 주걱등으로 휘저어 가며 반죽을 만든다. 손으로 치대는 것보다 힘이 드는 건 당연한 일. 기계 반죽이 가능하면 그걸 쓰면 되는 일이지만 그렇지가 못하니 일일이 다 힘을 써서 해야 한다.
그렇게 반죽이 만들어지면 다시 일그러진 시간의 돌이 박혀 있는 식기에 잠시 동안 올려 휴지. 그리고 그 과정이 끝나면 본격적인 진짜 반죽이 시작된다.
동그랗게 만든 반죽에 십자로 칼집을 넣은 다음 대각선 방향으로 쭉 편다. 그리고 밀대로 밀어내면 십자가 모양이 되는데 최대한 납작하게 밀어내고는 그곳에 앞서 만들었던 판 버터를 얹고는 반죽으로 보자기 u듯 감싼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죽과 밀가루의 온도가 비슷해야 한다는 점.
“미쳤어. 지금 여기서 페이스트리 반죽을 한다고?”
“저거 하다가 시간 다 가겠다.”
주위에서 그렇게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형진은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감싼 페이스트리 반죽을 다시 밀대로 밀어냈다.
주위 사람들이 말한 것처럼 페이스트리 반죽은 굉장히 고난도의 작업이다. 내부에 버터를 넣은 반죽을, 그것도 최대한 차가운 온도를 유지해서 글루텐 형성을 막은 반죽을 몇 번이나 접어서 밀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이가 갈리는 중노동이 아닐 수 없다.
뿐인가. 한 번 그렇게 접은 다음에는 삼십분씩 휴지를 시켜야만 한다. 이 과정이 무려 여섯 번이나 반복이 되는데, 휴지 시간만 따져서 3시간이 넘어가고 밀대로 미는 시간까지 합치면 문자 그대로 한 나절이 걸려버린다. 괜히 페이스트리 반죽하다가 시간 다 간다는 얘기가 나오는 게 아니다.
“글렀네.”
“그러게…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면서 제대로 휴지도 시키지 않다니.”
본래대로라면 그들의 말이 맞다. 하지만 과연 그들의 말대로 이건 실패가 예정된 요리일까.
아니다.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드는 데 있어서 휴지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것이 그 시간을 단축시켜주는 일그러진 시간의 돌이 되는 셈이다. 만약 진행요원이 그것을 사용하지 못하게 막았다면, 평소 하는 대로 그냥 돌을 반죽 위에 올려놓는 식으로 했을테니 상관은 없다. 다만 전용의 식기를 사용하지 못하면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린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휴지 시간이 단축되니 형진은 금방금방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있었다. 지켜보는 사람들은 페이스트리 반죽을 만들면서 제대로 휴지시키지도 않는 걸 보고는 역시 글렀다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들의 요리를 이어가기 시작했다.
자신의 요리에 열중하기도 바쁜 와중에 다른 사람들의 요리에 신경 쓴다는 것 자체가 앞서 형진이 보여주었던 놀라운 속도와 실력을 염두에 둔 행동이다. 어쩌면 그 시점에서 이미 그들은 형진의 페이스에 휘둘리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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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