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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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요리 대회
반죽을 밀대로 미는 순간 만들어졌던 글루텐의 그물 구조는 차갑게 식혀지며 휴지되는 동안 다시 본래대로 끊어졌다. 강력분을 쓰면 반죽을 밀기 쉬워지고 구울 때 부피가 불어나는 것을 견딜 수 있지만, 반대로 수축력이 발생하기도 쉬우며 구웠을 때 지나치게 딱딱해질 수도 있다. 낮은 온도에서 휴지시키는 과정이 필수적인 것은 바로 이런 결과를 차단하기 위해서이다.
이런 식으로 여섯 번을 반복하고 나면 무려 729겹의 층을 가진 퍼프 페이스트리 반죽이 완성된다.
“휴우…”
이제 겨우 첫 번째 단계가 끝났다.
이제는 본격적인 요리를 시작할 차례다.
“실례합니다.”
진행요원은 공손하게 형진의 말에 응대했다.
“네. 말씀하십시오.”
“제가 가지고 온 식재료를 쓰고 싶은데, 괜찮을지.”
“보여주십시오.”
형진은 두 가지 식재료를 보여 주었다.
하나는 엘리트 몬스터인 거대 흰 사슴의 안심이다. 등심의 안쪽에 위치한 이 부위는 근섬유의 결이 고와서 부드럽고 연하며, 지방이 적고 담백한 것이 특징이다.
두 번째는 직접 만든 멧돼지 베이컨이다. 이것 역시 엘리트 몬스터의 고기로 만든 것이 특징.
진행 요원은 재료들을 확인해 보고는 별 문제가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문제가 있고 없고의 기준은 이미 완성된 요리를 재료로 우겨서 넣는 식의 경우를 방지하기 위함이며, 또한 두 가지 재료 모두 게임 내에서 채취한 것이므로 문제 삼을 여지가 별로 없었다.
진행요원으로부터 허락이 떨어지자, 형진은 가장 먼저 사슴 고기의 시어링에 들어갔다.
먼저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난 뒤 기름을 둘러 달군 팬에 올려 시어링을 한다.
시어링이란 쉽게 말하면 고기 누룽지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겉면을 익혀 주면 고기 특유의 감칠맛과 풍미가 비교할 수 없이 풍부해진다. 이 과정을 전문 용어로는 마이야르 반응이라고 부르는데, 보통 겉면을 이런 식으로 굽는 것이 육즙을 가두기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는 오히려 육즙의 손실이 강해진다. 스테이크든 삼겹살이든 고기를 구울 때 자주 뒤집으면 안 되는 이유가 사실은 바로 이 때문이다.
시어링이 끝나자 형진은 그것을 접시에 올린 후 서양 고추냉이를 고기 표면에 살짝 발라 그대로 레스팅을 시킨다.
이번에는 버섯 차례다. 모렐을 주로 하고 여기에 파슬리, 양파 반개와 마늘 한 알, 그리고 송로 약간을 넣은 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그대로 다진다. 그렇게 재료를 다지는 일이 끝나면, 뜨거운 팬에 올려 수분을 날려준다.
버섯가루의 수분을 날리는 일이 끝나면 역시 접시로 옮겨 식도록 놔두고, 다음에는 푸아그라의 손질에 들어간다.
“후읍…”
가볍게 기합을 넣으며 불의 속성력을 끌어올리자, 형진의 손에서 불꽃이 피어오른다. 그렇게 만들어진 불꽃으로 푸아그라를 마사지하듯 가볍게 쓰다듬자, 겉면이 살짝 갈색으로 변하면서 거품이 올라온다. 그렇게 간단하게 준비가 끝난 푸아그라는 접시에 올려 아이스박스에 넣어두면 끝.
이제 준비가 모두 끝났으므로 이 재료들을 모두 합쳐야 한다.
먼저 깨끗한 면수건을 바닥에 깐다. 그 위에 햄을 펼치고는 수분을 날린 버섯 가루를 덮고 얇게 썬 푸아그라를 깐다. 그리고 마지막에 시어링된 흰 사슴의 안심을 올려서 김밥 말듯이 둘둘 말아주고는 겉을 싼 면수건을 조여 그대로 굳어지도록 만든다.
이대로 아이스박스에 잠시 두어 굳어지게 만든 다음, 다시 꺼내 앞서 만들어 두었던 퍼프 페이스트리로 다시 감싼다. 역시 마찬가지로 면수건으로 감싸 빈틈이 없도록 꽉 조여 주어야 한다. 랩이 있으면 랩을 쓰겠지만, 게임 안이니 어쩔 수 없다.
역시 잠시 아이스박스에 넣어 굳힌 다음, 남은 페이스트리 반죽으로 장식을 한다. 길고 얇은 삼각형 모양으로 퍼프 페이스트리를 잘라 마치 소용돌이가 올라가는 듯한 형상으로 겉면을 감싼 뒤, 살짝 칼집을 넣어 빗살무늬 토기 같은 느낌을 만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겉면에 계란 물을 살짝 입히고 소금을 뿌려 오븐에 굽는다.
하지만 아직 끝난게 아니다.
이번에는 설탕과 물엿 등을 팬에 넣어 끓이기 시작한다. 타지 않도록 온도를 맞추는 것이 중요한데, 끓이는 온도에 따라 시럽의 성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나는 아무것도 넣지 않은 그냥 시럽, 또 하나는 붉은 색으로 착색한 시럽. 이렇게 두 가지다.
이렇게 끓여진 설탕을 잠시 식힌 다음, 손에 붙지 않도록 깨끗하고 매끄러운 장갑을 끼고는 죽죽 당겨서 다시 겹치는 작업을 반복한다. 본래 시럽을 끓이고 난 뒤에는 살짝 갈색 빛을 띄게 되지만 이렇게 늘리고 겹치는 작업을 반복하면 공기가 들어가 점차 유백색의 광택을 띄게 된다.
이렇게 당겨서 늘리고 겹치는 과정을 반복하는 일이 끝난 설탕 반죽을 가지고 형진은 모양을 만들기 시작했다.
“아…”
“와아…”
형진의 손끝에서 설탕 반죽은 그대로 친숙한 형태의 인형으로 변모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형에 빨간색 설탕 반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히자, 옆에서 지켜보던 유아와 꼬맹이 여신은 그가 무엇을 만들고자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마침내 오븐에서 요리가 완성되어 나왔다. 그가 만든 요리는 비프 웰링턴. 하지만 뭔가 모양이 다르다. 겉면에 소용돌이치는 문양이 기이할 정도로 또렷하게 만들어진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유아는 물론이고 여신마저도 이것이 무엇을 형상화한 것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형진은 그것을 잠시 레스팅시키면서 접시를 꾸미기 시작했다.
설탕 공예로 만들어진 인형들이 놓여지고, 구운 야채들을 가니쉬로 사용해 숲의 정경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오븐에서 구워진 비프 웰링턴을 놓고 다시 매쉬드 포테이토로 언덕을 쌓고는 트뤼프로 그루터기 모양을 만든다. 마지막으로 하얀색 빵가루를 솔솔 뿌려 눈이 온 것처럼 꾸미면 비로소 완성.
“세상에…”
“이건…”
유아는 그것을 보는 순간 며칠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히코리 고목 주위에 가족이 모두 모여 베이컨을 굽던 광경. 지금 접시 안에 펼쳐진 것은 바로 그 모습이었다.
퍼프 페이스트리가 부풀어 오르며 소용돌이치듯 하는 형상을 지니게 된 비프 웰링턴은 기괴할 정도로 특이한 히코리 고목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고, 설탕 공예로 만들어진 인형들은 베이컨을 구울 때의 형진과 아이들,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던 식구들이었다.
눈 내린 추운 겨울날 고목으로 만들어진 화덕을 지피는 식구들의 모습이 접시 안에 그대로 재현된 것이다.
앞서의 기사단 특식은 심사위원 수만큼 만들어서 출품했지만, 이것은 하나를 완성하는 것만으로도 진이 쏙 빠질 정도라 그런 짓은 꿈도 꾸지 못한다. 유아가 마치 축복을 내리듯 신성력을 한 번 더 부어주고, 그것을 본 보호와 균형 역시 괜히 그녀처럼 균형의 권능을 요리에 뿌렸다. 사실 요리가 완성된 시점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지만, 형진의 요리가 좀 더 맛있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둘은 성심성의껏 마음을 담아 힘을 사용했다.
그렇게 완성된 요리가 출품되자 심사위원들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건… 비프 웰링턴인가요.”
“멋지군요. 먹기가 아까울 정도로 예뻐요.”
“폐하, 저 인형들은 저 주세요!”
“그럴까?”
요리 장인이면서도 세공 장인이기도 한 형진의 실력은 유감없이 발휘되어 심사위원들은 먹기도 전에 아기자기한 그 모습에 쏙 빠져 버리고 말았다.
특히나 주제를 뽑는 역할을 했던 어린 공주는 설탕 공예로 만들어진 인형들에 완전히 넋이 나간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크흠… 하지만 역시 요리는 맛이겠지요.”
“겉모습에만 신경을 쓰다가 정작 중요한 맛을 놓쳐 버리는 경우도 의외로 많으니까요.”
“그럼… 한 번 시식을 해볼까요.”
비프 웰링턴의 겉면을 감싼 페이스트리가 만들어낸 형상이 너무나 훌륭해서 감히 칼로 썰어내기가 미안할 정도였지만, 시식을 해야 심사를 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결국 황송해 하는 표정으로 경험많은 시종이 앞으로 나서서 비프 웰링턴에 칼을 댔다.
화아악!
“아…”
“이건…”
겉면을 감싼 페이스트리가 칼에 잘리며 그 안에 감추어진 속살이 드러나는 순간 퍼져 나오는 황홀한 향기에 심사위원들은 절로 꿈속을 노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거친 산속을 마음대로 휘젓고 다니는 거대한 사슴, 그리고 그런 사슴을 멀리서 지켜보는 거대한 멧돼지. 뿐인가. 그 멧돼지가 파먹고 있던 주먹만 한 송로 버섯의 향기와 은은하게 퍼지는 푸아그라의 향까지. 저마다 강렬한 자기주장을 가진 재료들이 서로 다투지 않고 조화롭게 하모니를 이루는 듯한 그 느낌에 심사위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가만히 눈을 감고 저마다의 생각에 빠져 들었다.
“크흠…”
“이거 참… 냄새가…”
“허허, 저도 모르게 잠시 넋을 놔 버렸습니다.”
“어, 어서… 시식을…”
모양에 반하고, 향기에 취해 버렸다. 오감 가운데 두 가지가 이미 함락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서 그들의 자기 몫으로 주어진 요리에 손을 가져갔다.
순간, 그들의 머리속에 노래가 울려 퍼진다.
얼핏 음정 박자를 무시한 듯한, 하지만 귀여운 아이들이 열심히 부르는 듯한 그런 노래.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지켜보고 있던 어른들이 가세하자 합창은 따뜻하고 부드러운 분위기를 가득 머금은 채 사람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만든다. 썰어내는 순간 주위 공간을 모두 장악했던 향기가 입안에서 뛰노는 그 느낌이 너무나 황홀하다. 여기에 먹기 전에 보았던 요리의 모습이 떠오르자,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어린 시절 가족들과 함께 눈을 치우다 말고 눈싸움을 벌이던 기억을 떠올렸다.
“허어…”
“이건…”
누군가는 그 시절을 떠올리며 회한의 눈물을 흘렸고, 또 누군가는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미소를 짓는다. 이 한 접시의 멋진 요리는 각각의 마음에 새겨진 가족이라는 이름의 단상을 자신도 모르게 끌어내는 마법과도 같은 힘을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심사위원들은 아무 말 없이 자신의 몫으로 주어진 요리를 마치 성찬을 대하는 느낌으로 조심스럽게 음미하며 씹어 삼켰다. 방금 전까지 산만하게 주위를 살피던 이도,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이도, 잠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던 귀여운 공주도 이 요리를 시식할 때만큼은 가만히 입을 다문 채 음식을 섭취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다.
“후…”
“이건… 이견의 여지가 없을지도 모르겠군요.”
“다른 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모양이네요.”
“그렇습니다.”
“허허, 이거 참. 설마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심사위원들은 그렇게 눈으로 서로의 의견을 전달하더니 마침내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위에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요리에 대한 심사가 이루어지는 동안, 형진은 조금은 진이 빠진 표정으로 의자에 늘어지듯 앉아 있었다.
“힘들어요?”
“그러게. 좀 지치네.”
“의외네요. 당신의 그런 모습.”
“하하. 보약 먹을 때가 되었나.”
“그, 그건 참아줘요. 지금도 감당하기 어렵단 말이에요.”
“음? 뭘 감당하기 어렵다는 걸까. 우리 예쁜 마눌님은.”
“…”
둘이서 그렇게 꽁냥거리는 모습에 보호와 균형은 뭐라 하지도 못하고 얼굴만 붉힌 채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어쨌든 그렇게 조금 휴식을 취하고 나자 마침내 발표 시간이 다가왔다.
“금일, 이렇게 훌륭한 요리사 여러분이 참여해 주신 것에 대해 먼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시종은 그렇게 운을 떼고는 가볍게 목소리를 가다듬더니 심사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먼저, 장려상입니다.”
기본적으로 본선에 진출한 팀들은 모두 상을 받게 된다. 장려상 다섯 명, 우수상 세 명, 최우수상 한 명,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이 바로 대상과 함께 명장 칭호를 얻게 되는 식이다.
말이 장려상이지 본선 진출자 가운데 꼴찌란 소리나 다름없기 때문에, 먼저 이름이 불린 팀들은 실망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휴우… 다행이네요.”
“정말 조마조마해요.”
유아와 꼬맹이 여신이 그렇게 종알거리는 모습에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도 조금 긴장하고 있는 중이다. 최선을 다했다 싶기는 하지만, 비프 웰링턴은 사실 그의 주특기가 아닌 탓에 더욱 그랬다. 히코리 나무에서 베이컨을 만들던 때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고기의 겉면에 페이스트리를 입힌 비프 웰링턴을 선택하긴 했지만, 사실 그의 주종목은 스테이크 쪽이다. 차라리 스테이크를 만들고 그곳에 가니쉬를 입혀 히코리 고목을 꾸며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싶었지만, 이미 대회는 끝났고 결과 발표가 진행되는 중이다.
안 되면 뭐… 운이 없었다 생각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형진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순간, 다시 우수상 발표가 이어졌다.
“우수상!”
시종은 뒤이어 다시 세 팀의 번호를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형진은 들어있지 않았다.
“후아아…”
“시, 심장이 주저앉을 것 같아요.”
남은 것은 형진을 포함한 두 팀 뿐. 적어도 최우수상까지는 맡아 놓은 셈이다.
“그럼 남은 두 팀은 단상으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
형진은 마치 파티에서 춤을 청하는 듯한 느낌으로 유아에게 손을 내밀었고, 유아는 살짝 얼구을 붉힌 채 남편의 손을 잡고 단상 위로 걸음을 옮겼다.
마침내 두 팀이 단상 위에 자리 잡자, 시종은 그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고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럼 대상을 발표하겠습니다. 대상이 아닌 나머지 한 팀은 자동으로 최우수상이 됩니다.”
시종은 그렇게 말하고는 봉투에서 카드를 꺼내더니,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 대상은…”
어째서일까.
당황한 그 모습에 참가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 것도 잠시, 시종의 입에서 마침내 이번 요리 대회의 우승자가 발표되었다.
“참가번호 79번. 심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진님께서 이번 요리 대회의 대상을 수상하시게 되었습니다!”
형진은 물론이고 유아마저도 순간 주먹을 불끈 쥐었고, 참가자들은 그들에게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발표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본래 이번 요리 대회의 우승자에게는 상금과 트로피, 그리고 명장의 칭호가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만, 심사위원 전원일치라는 놀라운 결과를 이끌어낸 진님께는 특별히 그 위의 단계인 달인의 칭호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모두 축하해 주십시오!”
============================ 작품 후기 ============================
두 편째.
나머지는 밥먹고 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