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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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낭원
도시락은 곧바로 사람들을 동원해 개발부의 직원들에게 나누어졌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역시 뜬금없는 일이다. 도시락이라니. 이거나 먹고 떨어지라는 건가.
당연한 얘기지만 본사에서 사람이 나와서 새로 최고 기술 책임자로 임명이 된 프리츠를 만나고 갔다는 얘기는 순식간에 다른 직원들에게도 퍼져 나갔다. 직책이나 이름까지는 알려지지 않았어도, 얼굴에 기이한 가면을 쓴 신비한 분위기의 동양인 남자와 아리따운 금발 미녀의 조합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었던 탓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관심이 가장 집중되었던 것은 역시 구조조정에 대한 문제였다. 경영진이 교체된 시점에서 어떻게든 뭔가 변화가 있을 것이고, 실질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상황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도의적이든 뭐든 앞서의 해킹 사건에서 가장 큰 책임이 있는 개발부가 그런 변화에 가장 크게 직면할 거라는 생각은 누구든 떠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가슴을 졸이고 있는데, 난데없이 도시락을 돌린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란 말인가.
“식사 후에 팀장들 모이라고 했던 모양이던데.”
“후… 역시 최후의 만찬인건가.”
직원들은 투덜대며 단출하면서도 어쩐지 품위 있는, 아마도 나무껍질을 일일이 가공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도시락 뚜껑에 손을 가져갔다.
어쩐지 살짝 동양스러운 느낌이 드는 디자인이라 초밥 같은 건가 싶었다. 날도 더운데 괜히 식중독 걸리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떠올리며 뚜껑을 여는데,
화아악!
안에 갇혀 있던 향기가 순간 폭발하듯 퍼져 나온다.
“아…”
“으음…”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분명히 음식 냄새인 것 같기는 한데 맡는 순간 정신마저 몽롱해지는 이 기분을 과연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뭐, 뭐지? 이거?”
잠시 넋이 나갔던 직원들은 자신이 그런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 자체에 당황하고, 뚜껑 안에 감춰져 있던 호화로운 요리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랐다.
“누구… 이게 무슨 요린지 아는 사람 있어?”
“글쎄… 비프 웰링턴… 도 있는 것 같고, 여러 가지 요리가 조금씩 담긴 것 같은데…”
“이거 도시락 맞지? 데우지도 않고 그냥 건네준 거 아니었어?”
“그러게… 와… 진짜 냄새 미친다. 뭐지, 이거?”
냄새만으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던 직원들은 그렇게 말로써 자신의 당황을 감추려 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포크를 움직여 안에 든 음식을 입으로 가져갔다.
포크에 걸린 음식이 입술을 거쳐 입 안으로 들어가 혀와 접촉하는 순간 일어난 반응은 미뢰를 거쳐 시냅스를 장악하고 신경다발을 통해 두뇌를 잠식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
그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한 채 마치 경련하듯 가늘게 몸을 떨었다. 그리고 맛이라는 이름의 폭풍이 전신의 말초 신경을 하나 하나 일깨우는 듯한 느낌에 감격했다.
주르르.
누군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또 누군가는 오래 전에 떠나왔던 지구 반대편의 고향을 떠올렸고, 또 누군가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따스한 스튜의 맛을 기억해 냈다.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그리고 그 순간 느꼈던 감정들이 이 한 점의 요리 속에 담겨 있었다.
앞서 냄새를 맡았을 때의 떠들썩함은 이미 사라져 버린지 오래. 사람들은 일견 엄숙하기까지한 모습으로 말없이 상자 안에 담긴 요리를 한점씩 천천히 입 안으로 가져가고 그것으로부터 느껴지는 감동에 취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좋은 일은 너무 빨리 끝나버린다.
직원들은 어느 새인가 비어버린 상자의 모습을 알아차리고 나서야 깊은 탄식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제서야 주위를 돌아보았다. 겪었던 모든 일들이 자신의 착각이 아니었음을 확인하려는 듯이.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글쎄…”
그렇게 좀 얼빠진 말을 하는 사람도 있고,
“이거… 혹시… 정말로 마약이 들어 있는 거 아닌가?”
“에이, 벼락 맞을 소리를 하고 있어. 그런게 들어 있었으면 벌써 수십번은 내려치고도 남았을 거라고.”
“그런가?”
의심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있을 수 없어. 착각일거야.”
“그래. 이런 음식이 세상에 존재할 리가 없잖아.”
자신이 겪었던 현상에 대해 부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세상은 역시 불공평해.”
“이런 음식은 마땅히 공유되어야만 해. 어째서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던 거지?”
“브랜드도 적혀 있지 않아. 철저히 비밀스럽게 유통되고 있다는 의미야.”
“젠장…”
분노하는 사람도 나오기 시작한다.
“하아… 또 먹어 봤으면 소원이 없겠다.”
“다이어트 따위 나가 죽으라 그래.”
맛에 굴복한 사람도 있었고,
“언제 또 이런 음식을 먹어볼 수 있을까…”
“후우, 그러게…”
오히려 우울해진 사람도 있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이런 음식은 돈이 있다고 해서 경험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거겠지.”
“하아아아…”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연봉이 세다. 그건 인근의 집값이 비싸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다른 보통의 월급쟁이들이 체험하기 어려운 것도 조금 무리를 하면 가능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샐러리맨이 누려볼 수 있는 사치라고 해봐야 한정적이고, 그 중에 하나는 역시 식도락이다. 이중에는 일주일이나 한 달 정도의 텀을 두고 맛집을 순례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는 이들도 꽤 있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을 포함해, 여기 있는 자들 중 그 누구도 방금 전과 같은 맛의 향연은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녹음기로 저장해 두었다가 두고두고 재생해 보고 싶은 그런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이거… 어디서 사온 건지 알 수 없을까.”
“글쎄. 사온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음…”
다짜고짜 본사 임원에게 도시락 어디서 사왔냐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그 임원과 안면이 있는 사람이라면…
“보스라면, 가능할 지도.”
“그렇군!”
바로 그들의 보스인 프리츠 베커는 자신 몫으로 빼돌려 인벤토리에 담아둔 상자들을 보며 매우 흡족해 하고 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는 이미 진의 음식을 몇 차례나 맛본 경험이 있었고, 개발부 직원의 수보다 상자가 조금 남는다는 것을 확인하자 가족의 몫으로 재빨리 빼돌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다. 그렇게 프리츠는 어느 틈엔가 자신의 권력에 조금씩 빠져 들고 있었다.
“크흠, 모두 식사는 즐겁게 하셨습니까.”
그런데 막상 팀장들을 불러 모아 놓고 보니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왜들 그런 표정으로…”
마치 자신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팀장들의 모습에 프리츠는 흠칫 놀랐다.
설마 도시락 빼돌린 걸 들킨 건 아니겠지.
“보스!”
“네?”
화들짝 놀라며 대답했지만, 돌아온 질문은 애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
“보스께선 알고 계시죠? 그 도시락… 어디서 파는 건지.”
“아…”
아무래도 도시락 빼돌린 것을 들키진 않은 모양이다. 프리츠는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당연하다는 듯이 답했다.
“무슨 얘긴가 했더니 도시락 말씀이시군요. 그건…”
“그건?”
“저도 몰라요.”
“네? 그럴리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는 팀장들의 모습에 찔끔 식은땀을 흘린 프리츠는 급히 이렇게 덧붙였다.
“확실한 건 돈이 있다고 해서 사 먹을 수 있는 그런 도시락은 아니라는 거겠죠. 듣자 하니 완전 선주문 방식으로 한정된 수량만 만들어서 제공하는 거라던가.”
“아… 역시…”
“하긴, 그 정도 맛이라면…”
팀장들은 납득한 듯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우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프리츠는 그런 팀장들의 모습을 보며 비로소 형진이 도시락을 주고 간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건 미끼였다.
프리츠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개발부의 총괄 팀장일 뿐이었다. 물론 개발부의 업무를 총괄하는 자리는 분명 중요한 자리지만, 지금 그가 앉아 있는 최고 기술 책임자와는 아무래도 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른 직원들은 모가지가 간당간당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불안해 하고 있는 와중에 혼자만 벼락출세를 해버렸으니 반감이든 질투든 좋지 않은 감정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프리츠가 올라간 자리라면 자신도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에 딴지를 걸고 나올 수도 있다. 조직이란 것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생물과도 같아서 단순히 직급이 부여된다고 그냥 알아서 굴러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저들은 자신들의 불안한 처지라든가 그 때문에 재취업을 해야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든가, 갑자기 직급이 확 올라가 버린 프리츠에 대한 부러움이나 질투 같은 것도 전부 잊어버리고 오직 방금 전에 먹었던 도시락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형진이 주고 간 도시락은 그렇게 사람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번뇌를 한순간에 날려 버릴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프리츠에게 또 다른 하나의 커다란 권력이 쥐어짐을 의미한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구할 도리조차 없는 그 환상의 도시락을, 프리츠는 필요하다면 언제든 요청해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그것을 포상이라는 이름의 미끼로 내걸어 유혹하면 눈앞에서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팀장이라는 이름의 물고기들의 시선은 다른 모든 것을 잊고 오직 그것에만 집중하게 될 것이다.
조직을 이끌어갈 자에게 있어서 무엇이든 간에 사람들의 이목을 단숨에 주목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건 엄청난 무기가 된다. 형진이 준 도시락은 그 자체로 장악력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기였던 셈이다.
한편으로는 좀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기껏 공포와 죽음의 이름으로 마약을 없애놓고 이런 말도 안 되는 마약을 만들어 버리면 어쩌자는 겁니까, 보스.
프리츠는 속으로 그렇게 쓴웃음을 짓다가 가볍게 헛기침을 하고는 다시 말했다.
“크흠. 필요하면 다시 주문을 부탁할 수는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네. 물론 선주문이 밀려 있어서 다소 시간은 걸리겠지만요.”
“그렇겠죠. 그 정도 음식이라면 당연히 그러고도 남겠죠.”
팀장들은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눈빛을 번쩍번쩍 빛내며 일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어쩐지 좀 무섭게까지 느껴진다.
“크흠. 어쨌든 도시락 얘기는 이쯤 해두고, 슬슬 일 얘기를 해봅시다.”
“일… 얘기 말씀이십니까?”
“뭔가 문제라도?”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역시 구조조정에 대한 얘기가 먼저 나올 거라 생각했었던 모양인지 팀장들의 표정에는 다소 의외라는 기색이 드러나 있었다.
프리츠는 그런 팀장들의 표정을 즐기며 이렇게 말했다.
“실은 개발부에 새로운 프로젝트가 떨어졌습니다. 프로젝트명은 바로 비행.”
“비행이요?”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여러분은 앞서 미뤄두었던 업데이트를 완성함과 동시에, 새로운 컨텐츠인 탈 것을 구상하는 일에 전념해 주십시오.”
팀장들은 잠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컨텐츠 개발이라니, 운영권이 없는 지금 상황에서?
“저…”
“네, 말씀하십시오.”
“컨텐츠 개발은… 이전에 하던 방식대로입니까?”
프리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하던 대로 하시면 됩니다.”
당연하다는 듯한 프리츠의 대답에 팀장들은 서로를 돌아보다가 한 번 더 물었다.
“그 말씀은 구현할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단 말씀이신지.”
“일단은 그렇다고 해두죠. 구체적인 내용은 보안 사항이라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아…”
팀장들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사실 그럴 수만 있다면 재취업보다는 미라지 코어에 계속 다니고 싶은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저런 일이 있었어도 역시 현재의 게임 업계를 석권하고 있는 것이 엘리시온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프리츠는 밝아진 팀장들의 모습에 빙긋 웃더니, 화이트 보드에 하나의 단어를 적었다.
그것은 바로 앞서 말했던‘비행’이었다.
“기껏 환상 세계를 구현해 놓고 말이나 따각따각 타고 다녀서야 재미가 없겠죠. 새로운 탈 것의 컨셉은 바로 ‘비행’입니다. 호버보드, 날으는 양탄자, 뭐든 좋습니다. 여러분의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해 주십시오. 아, 일단 생물류는 제외하고요.”
팀장들은 곧바로 머릿속에서 이런 저런 탈 것들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상상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그것을 구체화시켜서 구현 가능한 무언가로 만들어내는 것이 그들이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다. 엘리시온이라는 이름의 환상향은 그런 식으로 창조되어 왔다.
“맡겨주십시오. 보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