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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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낭원
사실 공중부양형의 킥보드 같은 물건은 이미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상상했고, 영화나 애니메이션 같은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꿈이 기술이라는 이름으로 현실화되기 시작한 지구에서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그것을 구현하고자 했고, 나름의 성과도 꽤 있었다.
현재 이른바 호버 보드라고 불리는 물건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자기 부상형, 또 하나는 드론의 확장형. 자기 부상형은 보드 자체의 구조가 단순하지만 막대한 규모의 기반 시설이 필요하다는 단점이 있다. 반대로 드론에서 확장된 형태의 호버 보드는 기반 시설은 필요로 하지 않지만 보드 자체의 구조가 복잡해지고 그런 복잡한 구조만큼이나 안전사고의 위험이 커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 형진이 내보인 보드는 그런 두 가지 방식의 단점을 모두 없애고, 장점만을 합친 듯한 느낌의 물건이다. 아마도 이것이 시판된다면 각국 정부는 이 물건에 항공법을 적용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부터 고민하게 될 것이며, 기타 부속의 유지비용이 들지 않는 점 때문에라도 드론의 자리를 빠른 속도로 차지하게 될 것이다.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프리츠는 다소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그렇게 물었다. 이미 완제품이 나온 뒤이고, 생산 또한 저쪽에서 한다면 기술 책임자로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갈피를 잡기 어려웠다.
형진은 공중에 떠 있는 길쭉한 널빤지를 이리저리 돌려 보이며 대답했다.
“하던 걸 하시면 됩니다.”
“네?”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그렇게 되묻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했다.
“이 물건은 이미 기능적으로 완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상품으로서 완성되어 있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누군가는 단순한 것이 최고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지금으로서는 다리미판이랑 다를 것이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개발부의 힘이 필요한 겁니다.”
“아… 디자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개발부에서 하던 대로 이 물품이 다른 유저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할 수 있도록 세련된 디자인으로 만들어 주시면 됩니다. 아, 물론 굳이 보드라는 형태에 얽매일 필요도 없죠. 게임 상에서 구현될 만한 탈 것들, 날아다니는 검이라든가 양탄자라든가, 그런 식으로 이미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다른 창의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를 만들어 보십시오. 일단은 그것을 게임에 적용시켜 유저들을 통해 테스트를 하고 난 뒤,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그것의 감각이 익숙해지면 현실에서도 판매를 시작할 겁니다.”
프리츠는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럼 보스께서는 좀 더 큰 탈 것도 염두에 두고 계시는 겁니까?”
“당연한 일 아니겠습니까?”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것이 현실에 출시되면 당연히 사람들은 여러 가지 활용방안을 생각하게 될 겁니다. 여러 개를 이어 붙여 자동차를 띄워 올린다든지… 물론 그런 식의 활용에 대해서는 저희 쪽에서 프로텍트를 걸어놓을 생각입니다만.”
프리츠는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엘리시온은 더 이상 게임으로 국한된 무언가가 아니게 되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간단하게 그 게임을 가상현실이라고 부릅니다만, 정확히는 현실에 기술을 적용하기 전 실증 시험을 진행하는 인큐베이터이자, 시뮬레이터가 되는 겁니다.”
“허…”
세계를 시뮬레이션 하는 게임이라니. 만약 지금 두 사람의 대화를 다른 사람이 듣게 되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 모르긴 해도 일단 미라지 코어의 주식부터 사고자 하게 될 것이다. 게임 자체로도 엘리시온은 강대한 영향력을 지닌 상품이지만, 게임 안의 물품이 현실에서 구현된다면 그 영향력은 지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증폭될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츠는 잠시 얼떨떨하기까지 한 기분으로 형진을 바라보다가 다시 물었다.
“보스. 한 가지만 더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말씀하십시오.”
“제가 알기로… 보스께서는 이미 인간으로서 이루고자 하는 바는 거의 다 이루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부와 명예 같은 것이 바로 그런 부분이겠지요.”
돈이야 썩어 넘칠 만큼 있고, 한 나라의 왕을 넘어 두 세계에 이름을 떨치고 있으니 그 명성 또한 부족하지 않다. 처음 맨 몸으로 다른 세계로 건너갔을 때를 떠올리면 참으로 많은 것이 변했다는 생각이 절로 느껴질 정도다.
“일단은요.”
형진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답하자, 프리츠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궁금합니다. 보스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세상에 내놓음으로서 무엇을 이루고자 하시는 겁니까?”
이것은 단순한 호기심의 차원을 넘어 미라지 코어라는 기업의 앞날이나, 프리츠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에 대한 질문이기도 했다.
형진은 마치 책받침을 돌리듯 손가락으로 보드를 돌려 보이며 답했다.
“간단한 얘깁니다. 이 보드를 현실에서 판매하게 된다면 사람들은 더 이상 게임을 게임만으로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될 겁니다. 그것이 세계 그 자체를 시뮬레이션 하는 시스템임을 인식한다면, 어째서 서버를 함부로 리셋하지 못하는지도 어느 정도는 이해하게 되겠지요.”
엘리시온이 해커에게 점유된 시점에서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했던 부분은 바로 서버를 임의로 차단하거나 리셋하지 못하는 이유다. 하지만 반대로 그것은 사람들의 머리속에 한 가지 고정 관념을 안착시키는데 성공했다는 의미도 된다. 바로 게임 자체의 영속성이라는 개념이다.
“회사의 사정과는 상관없이 언제까지나 종료되지 않고 이어지는 영원한 게임. 어떻게 보면 미라지 코어라는 회사의 신뢰성을 잃은 대신, 엘리시온이라는 게임은 영속성이라는 가치를 얻은 것일 수도 있습니다.”
프리츠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쳐 가는 것을 깨달았다.
“자, 잠깐만요. 그럼… 설마?”
형진은 씩 웃으며 답했다.
“그렇습니다. 전 앞으로 엘리시온에서 현실로 파생된 모든 상품을 게임 내에서 유통되는 캐시로 판매할 것입니다.”
“허…”
“궁극적으로는 엘리시온의 캐시를 현실 세계에서도 통용되는 가상 화폐를 넘어 기축 통화 정도로 발전시키고 싶습니다만, 그건 단시간에 해결될 일은 아니겠지요.”
“그, 그거야…”
어떻게 보면 지금도 엘리시온의 캐시는 게임 내의 재화나 현실의 재화와 대응되는 형태로 교환이 가능한 상태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일단 캐시를 구매하고 나면 그것을 다시 현실의 재화로 환전하는 것은 일반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게임 내에서 캐시를 벌어 그것을 현실의 재화로 판매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공식적으로 캐시는 단방향의 거래만 가능한 재화였던 셈이다.
그런데 이 보드의 판매가 캐시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면, 그것은 다시 말해 양방향 거래의 통로가 완성된다는 얘기다. 극단적으로는 게임을 하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어 현실에서의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시스템이 완성될 수도 있다. 그리고 이것은 일전에 형진이 말했던 가수면 상태에서의 게임 플레이가 경제 활동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의미도 된다.
“맙소사…”
프리츠는 공헌도가 캐시로 변환 가능하다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이것의 판매가 이루어지는 순간 공포와 죽음께서 그만큼의 공헌도를 얻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 물품의 판매가 이루어지게 되면 베커씨에게도 일정 수준의 인센티브가 제공될 겁니다.”
“그, 그건…”
“전에도 말씀드렸죠? 어찌 보면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공헌도라고.”
“하… 하하…”
프리츠가 그렇게 웃는 건지조차 애매한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자니, 문득 탁자 위에 옹기종기 앉아서 티타임을 즐기고 있던 보호와 균형이 형진을 향해 말했다.
“저희들에 대한 얘기도 해주셔야죠.”
“아, 그랬죠.”
형진은 다시 여신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이렇게 말했다.
“엘리시온에서 내보일 제품 중에는 여기 계신 여신님들의 음반도 포함됩니다.”
“네? 으, 음반입니까?”
프리츠로서는 좀 뜬금없는 소리처럼 느껴지기도 했지만, 엘리시온 내에서 문화 컨텐츠를 판매하는 행위는 이미 어느 정도 정착이 되어 있는 상황이다. 게임 내에 마련된 영화관을 비롯해서 서적이나 기타 음원 같은 것도 어느 정도 유통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 마련된 문화 컨텐츠의 경우는 실질적인 수익보다는 홍보라는 개념에 맞춰져 있지만, 형진이 제시한 비전대로라면 이런 분야 역시 기존의 미디어를 앞지르는 거대한 시장으로 변모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형진은 가만히 찻잔을 들어 입술을 적신 뒤 말을 이었다.
“베커씨.”
“네, 보스.”
“이런 내용들은 새로 선임된 경영진들도 모르는 부분입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이해하시겠습니까?”
프리츠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무, 물론입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무리한다고 건강을 해치거나 하시면 곤란합니다.”
“신경 쓰도록 하겠습니다.”
“전에 드린 물약은 아직 가지고 계시죠?”
“네.”
“비밀을 지킨다고 아끼거나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아시겠지만, 포션 같은 건 게임 안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으니까 가족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아끼지 말고 팍팍 쓰십시오.”
“하지만… 그러면 보안이…”
“빨간 약 정도는 누구나 다 쓰는 거 아니었습니까? 하하하.”
“그거야… 하하… 하하하…”
설마, 이거 농담인건가. 근데 어디서부터가 농담인거지.
어쩐지 사단장에게서 최불암시리즈를 들은 이등병의 기분을 느끼며 프리츠가 어색하게 웃자, 형진은 공중에 떠있던 보드를 다시 챙겨 넣고는 품에서 다른 물품을 꺼냈다.
탁자 한쪽에 상자들이 척척 쌓여 올라간다. 처음에는 한두 개쯤 되는 줄 알았는데, 계속 쌓여 올라가 어느새 사무실 한켠을 완전히 장악해 버린다.
“이, 이건…”
“별건 아니고 도시락입니다. 개발부 직원들에게 나눠 주세요.”
“…”
갑자기 이런 물품들이 사무실 한켠을 점령하게 된 걸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좋을지 암담해진다. 분명 이 두 사람이 빈손으로 들어오는 걸 비서를 비롯한 여러 사람들이 봤을텐데.
“뭔가 문제라도?”
“아, 아닙니다. 하하하…”
“좋습니다. 그럼 나중에 다시 뵙도록 하죠.”
형진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여 앉아서 티타임을 즐기던 여신들이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후다닥 그의 품으로 숨어들었고, 요안나는 테이블 위에 늘어놓았던 찻잔 같은 것을 정리해서 갈무리했다.
“아… 마지막으로.”
“네.”
“오귀스트님이 베커씨의 진전이 아주 빠르다며 칭찬하시더군요.”
“그렇습니까. 하하…”
“그렇다고 갑자기 임무 같은 걸 맡기지는 않을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우선은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지킬 힘을 기른다는 생각으로 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아도 활발해진 집행자들의 활동을 보며 조금 마음을 졸이고 있던 것이 사실이라 프리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뵙도록 하죠. 아, 마중은 나오지 않으셔도 됩니다.”
“멀리 나가지 않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형진과 요안나가 나가는 것을 배웅한 프리츠는 조금 지친 표정으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런 저런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머릿속이 복잡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 회사 안에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이해하게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제이미.”
-말씀하십시오. 보스.
“잠깐 들어와 봐요.”
-알겠습니다.
프리츠의 비서 제이미는 그의 부름을 받고 방 안으로 들어오다가 한켠에 쌓여있는 상자들을 보고는 놀란 표정이 되어 버렸다. 분명히 아까까지만 해도 아무것도 없었던 장소에 상자가 하나 가득 쌓여있으니 어찌 놀라지 않겠는가.
그런 제이미의 모습에 프리츠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지시를 내렸다.
“개발부 직원들에게 나눠 주세요. 도시락입니다.”
“아, 알겠습니다.”
다소 딱딱하기까지 한 제이미의 얼굴이 당혹감에 물드는 모습에, 프리츠는 형진이 자신의 놀라는 모습을 볼 때도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즐점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