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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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마주치다.
“헉… 헉…”
몸에 기운이 하나도 없다. 수도꼭지가 풀린 것처럼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리고, 그것을 닦으려고 손을 들었더니 핑 하고 현기증이 느껴진다. 물 먹은 솜처럼 축축 처지는 몸을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애쓰지만, 결국 견디지 못하고 바닥을 짚은 채 엎어지고 만다.
“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넌 아직 약하다고.”
“…”
고개를 들 힘조차 없다. 그럴 수만 있다면 그대로 엎어져 잠들어 버리고 싶은 기분. 하지만 눈앞에서 짜증 가득한 표정을 지은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인물은 그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된 놈들이 하나 같이…”
손 쓸 틈도 없이 제 멋대로 굴다가 뒈져 버린 잭 더 리퍼의 일을 반면교사로 삼아, 허세와 망상은 자신이 찾아낸 다른 파편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경우 바로 불러들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두었다. 아사드를 제 때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은 그런 조치 덕분이다.
“죄송… 합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있을 리 없다. 자신의 능력을 자만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니까. 막상 부딪혀 본 사도의 능력은 그야말로 넘어설 수 없는 벽과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허세와 망상도, 아사드도 알지 못했다. 탁스 두겐이 그러려고 마음먹었다면, 지금 벌벌 떨며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이 소년은 이미 죽은 목숨이라는 사실을.
“후… 됐다. 가서 일단 씻어라.”
“네…”
아사드는 그제서야 자신의 어깨를 짓누르던 위압감에서 해방되었다.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지만, 역시나 몇 걸음 옮기지 못하고 그대로 무너지듯 쓰러져 버렸다. 탁스 두겐과의 싸움으로 체력과 정신력이 소모된 시점에서, 분노한 신의 위압감을 정면에서 받아버렸으니 지금까지 버틴 것 자체가 기적이나 다름없다.
“쯔쯔…”
허세와 망상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허약한 추종자를 데리고 공포와 죽음이 거느린 강대한 집행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한 탓이다.
“어쩐다.”
손수 발품을 들여가며 추종자를 찾으려 애쓰고는 있었지만, 이제 고작 세 명을 찾았을 뿐이다. 이런 식이어서는 토너먼트가 가능한 인원을 모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설사 찾아냈다 할지라도 강대한 집행자들을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키워내는 것 역시 문제였다.
문제는 그것만이 아니었다. 파편이 지닌 성질 때문에 한곳에 모아놓지도 못하니 이런 식으로 관리가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나마 고분고분하게 말을 듣는 걸로 보였던 아사드마저 이 꼴이라면 다른 둘도 어떤 상황인지 대충 감이 잡힌다.
확 다 때려 치워 버릴까.
혼자서 아등바등 몸부림을 쳐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다시 사태를 반전시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 아사드 녀석이 멍청한 짓을 하는 바람에, 자신이 파편을 모으고 있다는 사실 또한 공포와 죽음에게 알려졌을 터. 이 정도로 지구에 영향력을 뻗치고 있다면 머지않아 자신이 세웠던 회사에도 손을 뻗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파편들을 찾아보라고 내렸던 업무 명령도 파악하겠지.”
젠장. 그제서야 허세와 망상은 파편들을 찾아보라고 업무 명령을 내렸던 것을 후회했지만 그렇다고 이제 와서 다시 내려 보냈던 서류들을 다시 회수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이 그것을 찾기 위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공포와 죽음은 얼씨구나 하며 집행자들을 보낼 테니까. 자칫 그 집행자들에게 발이 묶인 틈에 공포와 죽음이 강림하기라도 한다면, 자신 역시 파괴와 재생처럼 갈기갈기 찢겨 먹히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허세와 망상은 이내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지금까지처럼 혼자만 이리 저리 날뛴다고 될 일이 아니다. 세력. 세력이 필요하다. 자신을 도와 움직일 수 있는 충실한 수족이.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아직까지도 자신에 대한 신앙을 버리지 않고 있는 요정들이었다. 하지만 허세와 망상은 고개를 저었다. 집 안 일을 맡기는 것이라면 몰라도 요정들은 전투력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 없다. 게다가 입이 너무 가벼운 것도 문제다. 괜히 드러냈다가 집행자들에게 몰살이라도 당하면 그나마 공급되고 있던 쥐꼬리만한 신앙조차 끊길 가능성이 있었다. 그나마도 요즘은 양이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이대로 놔둔 채 신앙이나 빨아먹는 것이 상책이다.
필요하다. 집행자들과도 대결이 가능한 무력과 조직력을 갖춘 집단이. 그리고 지금 당장 자신의 손발이 되어 파편들을 찾아내줄 그런 자들이.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조건이다. 하지만 허세와 망상은 어렵지 않게 이러한 조건을 갖춘 집단을 떠올릴 수 있었다.
“구현자… 그 미친놈들 밖에 없는 건가.”
구현자는 수호자, 그리고 집행자와 함께 가장 강력한 무력을 갖춘 세 추종자 가운데 한 부류다. 어떻게 보면 상식과는 거리가 먼 미친 짓 때문에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따지고 보면 집행자나 수호자도 그런 면에서는 마찬가지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파괴와 재생을 따르는 자들. 자신들이 모시는 신의 부활을 이룰 방법을 제시한다면, 그것을 이루기 위해 알아서 움직일 것이 분명하다. 놈들로서도 신의 사념체 따위가 아니라, 제대로 된 신 그 자체를 모시고 싶을 것은 틀림없는 일. 최소한 지금처럼 웅크린 채 언제가 될지 모르는 부활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그쪽이 놈들로서도 구미가 당기는 일일 테니까.
하지만 역시나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이런 좋은 조건에도 지금껏 허세와 망상이 그들을 불러다 쓰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문제는… 도무지 제어가 안 되는 놈들이라는 점인데…”
누가 그 신에 그 추종자 아니랄까봐, 구현자들은 일반적인 방식으로는 제어 자체가 되지 않는 골치 아픈 집단이다. 찾아낸 파편 셋조차 제대로 제어하지 못하고 있는 허세와 망상으로서는 괜히 끌어들였다가 오히려 더 골치 아픈 사태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지금껏 불러다 쓰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다. 이번에 아사드가 대판 깨진 걸 보고서야 그것을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래. 해보자.”
허세와 망상은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일어나!”
“으…”
정신을 잃고 있던 아사드의 옆구리를 툭 걷어차자 소년은 그제서야 신음을 흘리며 정신을 차렸다.
“새로운 임무다.”
“지금… 말입니까?”
“그래. 어서 일어나지 못해!”
“…”
아사드는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몸 전체를 적시고 있는 식은땀 때문일까. 으슬으슬 몸이 떨린다. 잠시 정신을 잃고 있었던 동안에 조금이나마 체력이 돌아오긴 했지만, 역시나 물 먹은 솜처럼 몸이 무거운 건 매한가지다.
“나는 지금부터 너를 다른 세계로 보낼 것이다.”
“다른… 세계요?”
“그래. 네놈이 아까 싸웠던 그런 자들이 득시글거리는 그런 세계지.”
“…”
아사드는 앞서 자신이 상대했던 사도를 떠올리고는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런 존재가 득시글거리는 세계라니, 지금 자신보고 죽으라는 소린가.
두려움에 물드는 소년의 표정을 본 허세와 망상은 혀를 찼다.
“쯧쯧. 겁먹은 꼬라지하곤.”
“…”
“정신 차려. 그렇지 않으면 이번엔 꼼짝없이 죽어버릴지도 모르니까.”
“무슨 임무길래…”
두려움 가득한 아사드의 말에 허세와 망상은 이렇게 답했다.
“네가 지닌 힘. 그것이 일상적인 것이 아니라는 정도는 알고 있겠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강력한 신의 파편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지금 너를 보내려는 그 장소에는 그 신을 신봉하는 추종자들이 도사리고 있지.”
“그럼…”
“네 임무는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오는 것이다. 하지만 조심해라. 녀석들은 가진 힘만큼이나 제대로 미친놈들이니까. 자칫 말 한 마디 건네기도 전에 널 죽이려 들지도 모른다.”
“…”
그렇게 위험한 존재라면 자신보다는 당신이 직접 움직이는 편이 좋지 않겠느냐는 말이 목구멍가지 치밀어 올랐지만 아사드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물론 허세와 망상은 그런 소년의 속마음을 미리 알아차리고는 다시 이렇게 덧붙였다.
“걱정마라. 네 녀석이 깨달은 불의 힘이라면, 녀석들도 널 어쩌지는 못할 테니까.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네 녀석의 불이 어쨌든 보다 상위의 존재이기 때문이지.”
불 그 자체의 위력이 문제가 아니다. 아사드가 깨달은 불의 힘은 파편으로부터 발현된 파괴의 힘. 신앙을 통해 발현된 구현자들의 불보다 상위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렇게 완전히 지쳐서 흐느적거리는 녀석을 보내는 게 미덥지 못한 것도 사실이지만, 직접적으로 구현자들이 알아볼 수 있는 불의 힘을 깨달은 것이 아사드 뿐이니 어쩔 수 없다.
아사드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이렇게 물었다.
“그곳에 가면… 더 강해질 수 있습니까?”
허세와 망상은 소년의 질문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글쎄. 그 녀석들이라면 불을 좀 더 효과적으로 다루는 법 정도는 가르쳐 줄지도 모르지.”
“그렇… 군요.”
지금까지 아사드는 자신의 힘을 개발하고 단련하는 모든 과정을 스스로 이루어야만 했다. 가르치는 이 없이 무언가를 이룬다는 것은, 배우고 익히는 보통의 교육 방법과는 달리 모든 시행착오를 처음부터 스스로 되짚어가야 한다는 문제를 지닌다. 독학으로 공부한 이와 족집게 과외를 받은 이가 학습이라는 과정에서 효율 차이가 날 수 없는 것과 같은 경우다.
구현자들은 그런 아사드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집단이다. 아사드는 탁스 두겐과의 전투를 통해 그런 조력자의 존재가 절실하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고 있었다.
생각을 정리한 아사드는 굳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겠습니다. 보내주십시오.”
“흥. 잘 생각했다.”
허세와 망상이 제대로 된 신이었다면 잠시 휴식을 취하고 원기를 회복한 다음에 가라는 한 마디 정도는 해주었겠지만, 이 신은 그런 상식적인 행동조차 머리 속에 담아두지 않은 그런 신이었다.
하지만, 때로는 그렇게 몰상식한 대응이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타나토스로 연결된 통로를 여는 순간, 허세와 망상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위협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급히 아사드를 통로로 밀어 넣었다. 하지만 막상 허세와 망상이 피하기도 전에 그들이 있던 공간 전체를 어떤 빛이 뒤덮어 버렸다.
번쩍!
빛이 세상을 뒤덮었다. 적어도 인간이 시력을 통해 인지할 수 있는 공간 전체가 그렇게 빛에 휩싸였다.
그 빛의 영역 안에 존재하던 모든 것들은 막대한 힘에 밀려 그대로 증발해 버렸다. 폭발음이나 그런 것을 인지할 틈도 없이, 문자 그대로 증발되어 버린 것이다.
구구구궁…
폭발음 자체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좀 더 먼 곳에서, 그 모든 파괴현상을 초래한 이의 귀에나 허용된 사치였다.
급격하게 달아오르며 팽창한 공기는 그대로 솟아올라 그 지역에 거대한 버섯구름을 만들었고, 파괴로 인한 충격파는 폭발의 직접적인 영향권 바깥에 있던 사물들을 단숨에 휩쓸어 버린다.
그 거대한 파괴 행위의 시발점이 된 존재는 자신이 만들어낸 형상을 보며 역시나 놀란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희망과 생명의 힘을 끌어다 쓸 수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모조리 현실에서 쏟아 부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 지에 대해서는 이 현상을 초래한 당사자 역시 알지 못하는 미지의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개인의 인지 범위 밖에서 가해지는 기습이 위협적인 것은 집행자에게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아바타의 형태로 강림한 신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인 사태라 할 수 있었다.
[감히! 네놈이 감히!]분노한 신의 음성이 크게 울려 퍼지는 순간 피어올랐던 버섯구름이 확 흩어지며 그곳으로부터 여기저기 타고 그을린 몰골을 한 존재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보는 모습이고, 그나마도 엉망진창으로 그을린 상태. 하지만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만으로도 형진은 그것이 허세와 망상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딱 봐도 알거든요.
공포와 죽음의 말에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형진은 앓는 소리를 냈다.
“끙… 역시 신은 신인가. 그 무지막지한 공격으로도 숨이 끊기지 않다니.”
하지만 그런 식으로 투덜대면서도, 그는 신과 인간의 대결이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를 맞이한 것에 대한 흥분으로 전신의 힘이 끓어 넘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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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