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77
00577 130. 대결 =========================
“나, 나를 어떻게 할 셈이냐!”
형진은 망상 필드의 범위를 축소시켰다. 다른 언데드들은 이미 다 깨끗하게 청소한 상황이기 때문에 굳이 힘을 낭비할 이유가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애써 만든 요리들을 맛조차 제대로 모르는 이런 녀석에서 먹이는 행위 자체가 너무 아깝다. 당장 지금 그의 손에 쥐어진 이 크림소보로만 하더라도 일곱째인 일화가 얼마나 좋아하는 음식이던가. 크림소보로랑 살짝 김이 올라올 정도로 덥힌 우유 한 잔이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다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일 정도다.
“쳇. 스하. 이리 와서 이 녀석 좀 잡고 있어.”
형진의 말이 떨어지자 스하가 다가와 사지가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도 이리저리 몸을 뒤채고 있는 데카스의 몸을 붙잡아 들어올린다.
“큭! 뭐냐! 놔! 놓으란 말이다!”
감각이 환상에 의해 교란 당하는 상태인지라 데카스는 자신이 누구에게 들어 올려지는 것인지 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거 되게 시끄럽네. 그런데 이 놈 입이 어디야?”
나불나불 떠들어 대고 있긴 한데 막상 또 입이 어딘지 확인하는 것조차 쉽지 않다. 하지만 마침 그의 곁에는 망령과 비슷하면서도 미묘하게 다른 존재가 버티고 서서 도움을 주고 있었다.
스하는 형진의 말이 떨어지자 자신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했는지, 놀고 있는 나머지 두 개의 팔을 이용해 데카스가 입고 있는 갑주의 일부를 벗겨 내더니 놈의 입을 강제로 벌렸다.
스하의 팔이 넷이라는 것에 대해 별 느낌이 없었던 형진이지만, 막상 이런 상황이 되고 보니 꽤 편리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형술을 응용해서 인조 팔을 달아볼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크윽.. 에가 이어거더… 크?!”
“응, 알았으니까 닥치고 먹어.”
강제로 입이 벌려진 상황에서도 뭐라고 떠들고자 했던 데카스였지만, 순간 형진이 입에 크림소보로를 밀어 넣자 그대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우급… 으굽!”
“쳇. 정말 아까워 죽겠네.”
맛조차 모르는 이런 놈에게 내 피 같은 크림소보로를. 여기에 들어간 크림이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 줄 아는가. 공해라고는 털끝만큼도 없는 타나토스의 푸른 언덕에서 방목한 풍미 깊은 양젖의 유지방만을 걷어내 달인의 손길로 세심하게 휘핑하여 만든 명품 생크림이란 말이다.
빵 겉면에 발라진 토핑 역시 마찬가지. 손수 땅콩을 갈아 만든 땅콩버터를 기반으로 만든 물건이라 작은 부스러기 하나만 먹어도 절로 행복한 표정이 지어지는 그런 물건이다.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자신의 딸을 위해, 들어가는 재료 가운데 어느 것 하나 특별하게 신경 쓰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의 그런 말도 안 되는 정성이 들어간 음식이 바로 이 크림소보로 빵이다.
하지만 하필 가장 먼저 눈에 띄어 손에 집힌 것이 이 물건이니 어쩔 수 없다. 이미 이 땅에 충만한 언데드의 힘에 노출된 상황이니 다시 인벤토리로 되돌릴 수도 없다. 아무리 만드는데 정성을 들였어도, 이미 한 번 오염되어 버린 빵을 딸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그런 형진의 심정을 아는지 모르는지, 데카스는 입안으로 밀려 들어온 이물질을 뱉어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쳤다. 물론 그래봐야 사지가 다 날아가 버린 상황에서는 고개를 내저어 보이는 것이 고작이지만 그나마도 스하가 완강한 힘으로 턱과 입을 붙잡고 있는 상태라 별 효과가 없다.
결국 놈은 모래알을 씹는 듯한 심정으로 입 안에 밀려든 크림소보로를 그대로 다 삼켜야만 했다.
“크윽…”
하지만 아직 멀었다. 형진은 이번에는 방금 전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선택을 마친 채 대기 중이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아직 음식으로 만들어지지 않은 재료 가운데 하나인 양배추였다.
“뭘 먹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완성된 음식을 네놈에게 먹이는 건 역시 너무 아까운 기분이 들어서 말이야. 네놈이 맛이라도 느낄 수 있으면 그나마 보람이라도 있겠지만, 그런 것도 아니니 그냥 조리되지 않은 재료를 먹이는 것이 낫겠다 싶더라고.”
물론 그 말은 데카스에게 전달되지 않았지만, 형진은 어깨를 으쓱이며 설명을 마치고는 손에 들린 양배추를 뜯어 놈의 입에 집어넣었다.
“그후!”
조리가 되지는 않았더라도, 유아가 정성을 다해 손질한 재료이다보니 생명력 하나는 정말 빵빵하게 잘 스며들어 있었다. 어찌나 싱싱하고 생명력이 넘치는지 단지 꺼내놓은 것뿐인데도 주변에 흐르는 어둠의 힘과 스파크 같은 것이 파직 파직 일어날 정도다. 어떻게 보면 생명력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조리된 음식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을까. 아무리 달인의 경지에 든 형진이라도 재료 자체에 스며들어 있는 생명력을 백퍼센트 완전히 보존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니까.
스하아아…
오죽하면 데카스를 붙잡고 있던 스하마저 형진의 손에 들린 양배추를 보고 흠칫 놀라 자신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칠 정도다. 하지만 형진은 그러거나 말거나 과도할 정도로 신선한 양배추의 잎사귀를 뜯어 데카스의 입에 밀어 넣는 일을 반복했다.
데카스는 미칠 것만 같았다. 처음에 먹은 무언가는 그나마 나았다. 맛은 어찌 되었든 간에 식감만큼은 상당히 부드러웠으니까. 하지만 지금 입에 밀어 넣어지고 있는 무언가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제대로 씹지 않으면 삼키기도 어려울 정도의, 아마도 식물 종류가 아닐까 싶은 그런 것이 마구 입 속으로 밀려들어 오고 있는 것이다.
억지로 씹어 삼키자 다시 그만큼의 새로운 무언가가 밀려든다. 여전히 맛은 알 수 없었지만 한 번 씹을 때마다 입 안에서 뭔가 펑펑 터지는 듯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그냥 느낌만 그런게 아니고, 실제로 타격이 될만한 폭발이다.
어떻게 그것을 견디고 씹어 삼키자 이제는 뱃속에서 난리가 나기 시작했다. 입 안에서와 같은 폭발이 뱃속에서 잘게 이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흔히 배탈이 났을 때, 뱃속에서 천둥이 친다는 식의 표현을 한다. 하지만 지금 데카스의 뱃속에서는 천둥은커녕 산사태가 나고 있었다.
“크흐윽…”
데카스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감각이 혼란스러운 상태라도 그는 명백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지금 삼키고 있는 무언가로 인해, 자신에게 뭔가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뱉을 수도 없다. 무언가 우악스런 힘이 입과 턱을 잡은 채였고, 씹어 삼키지 않아도 상관없다는 듯이 그 알 수 없는 무언가가 계속 밀려들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씹지도 않고 그냥 삼키는 건 더 안 될 일이다. 그나마 씹어서 삼키니 산사태 정도로 그치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도 뱃속에서 거대한 해일이 터져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니까.
“어이구, 잘 먹네. 이게 입맛에 딱 맞는가봐.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줄 걸. 입안에서 톡톡 튀는게 정말 맛있지?”
그때 어디선가 그런 소리가 들려온다. 일부러 형진이 자신의 말을 들으라고 청각을 해방시킨 것이다.
순간 발끈해서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데카스의 입은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꾸역꾸역 밀려들고 있었다.
눈앞이 캄캄해진다.
데카스는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공포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이런 식으로 계속 그에게 처음이라는 것이 쌓여가기 시작한다면, 뭔가 오늘은 굉장히 특별한 날이 될 것 같다. 그것이 좋은 의미일지, 나쁜 의미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겠지만.
아니나 다를까.
데카스의 신체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이미 죽어 버린 그루터기로부터 새싹이 나오는 것과 비슷했다. 뱃속에서 충돌을 일으키던 생명력이 어느 순간 데카스의 근원을 이루고 있는 언데드의 힘을 밀어내며 조금씩 우위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먼저 그것을 깨달은 것은 당사자인 데카스였다. 그렇지 않아도 공포라는 감정에 절여져 가던 그의 정신은 이제 완전히 하얗게 탈색 되어 패닉 상태로 접어들고 있었다. 차라리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 알기라도 하면 다행이겠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강제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니 더욱더 극심한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안 돼. 더 이상은 안 돼.
억지로라도 삼키고 있었던 무언가를 뱉어내려 애쓰며 사력을 다해 몸부림을 쳤다. 하지만 그럴수록 본래 데카스가 지니고 있던 힘은 더욱 빠르게 고갈되어 가기 시작했고, 그 자리를 생명력이 채워가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이 되자 데카스는 더 이상 항거할 기력조차 남지 않은 채 마치 죽어버린 것처럼 그대로 축 늘어져 버렸다. 그제서야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낀 형진이 양배추 잎사귀를 뜯어 밀어 넣는 행위를 멈추었지만, 먹는 것을 멈추고 나서도 데카스는 축 늘어진 채 넋이 나간 것 같은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뭐야? 왜 이래?”
역시 뭔가 잘못 된 것인가 싶어서 살펴보고 있자니, 그제서야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데카스의 말이 흘러나온다.
“그만… 제발 그만… 뭐든지 다 할 테니까… 제발 그만…”
파괴와 재생이 일부러 장군으로 세울 정도면 언데드 가운데서도 그만큼의 능력과 의지를 갖춘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집행자와 굳이 비교를 하자면 한 지역을 담당한 지부장급은 되는 존재라고 해야 하나.
그런 존재가 결국 음식에 의한, 정확히 말하자면 조리가 되지 않은 음식 재료지만, 아무튼 그런 것을 이용한 고문을 견뎌내지 못하고 마침내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어떻게 보면 어이가 없는 얘기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이들에게 그만큼 치명적이고 두려운 일임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뭐든지 다 한다.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다. 형진은 일단 양배추 잎사귀를 밀어 넣는 것을 멈추고 질문을 해보기로 했다.
“좋아. 그럼 차근차근 하나씩 시작해 볼까. 우선 이름부터.”
“데카스.”
“직위는?”
“특무대 수색병단장.”
“장군이라고 불리던데?”
“병단장 이상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다.”
“하잘도 그런가?”
“하잘은 제 327 통합파견대 부대장이다.”
“327? 그 정도 숫자의 부대가 있다는 말인가?”
“부대 편제에 대한 것은 기밀 사항이라도 나도 정확히는 모른다.”
“흠…”
하긴 지구에서도 군의 규모를 감추고 제대를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통상명칭이라는 것을 사용한다. 몇 사단 몇 연대 몇 대대 하는 식의 고유명칭은 그 자체로 현재 소속된 부대의 편제와 규모를 예측하고 확인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때문에 제1235부대 같은 명칭을 사용해서 정보를 감추는 것이다. 특히 중요한 기밀 사항을 다루는 부대는 아예 고유명칭 없이 통상명칭만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
사실 고유명칭도 일부러 숫자를 부풀리거나 하는 식으로 붙이는 경우가 있다. 정말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3백 번대의 부대들은 하잘이 그랬던 것처럼 노예나 병력을 수급하기 위해 다른 세계에 파견되는 식일지도 모른다. 정확한 건 더 구체적으로 파괴와 재생이 거느린 병력의 편제를 확인해야겠지만.
분명한 건, 파괴와 재생이 꽤 체계화된 조직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본래 그가 지니고 있던 지식인지, 아니면 그가 흡수한 파편으로부터 비롯된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그의 휘하나 연합중인 누군가의 생각인지는 아직 확실하게 알 수 없는 일이다.
잠시 턱을 쓰다듬으며 그렇게 생각에 잠겼던 형진은 다시 질문했다.
“네가 이곳에 오기 전에 있던 곳은 어디지?”
“트라야. 수해의 땅 트라야.”
“수해의 땅?”
“나무들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는 곳. 걸핏하면 벼락이 떨어져 격렬한 산불이 일어나는 푸른 지옥.”
“…”
흔히 정글을 가리켜 녹색 사막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아마도 그와 비슷한 의미가 아닐까 싶다.
“그럼 파괴와 재생의 근거지는? 아까와 같은 방식으로 이동이 가능한가?”
“가능하기는 하지만, 안식과 동굴의 통제를 받는다.”
“안식과 동굴?”
“파괴와 재생의 신부. 끝없는 잠의 여왕. 동굴에 숨은 자.”
드디어 앞서의 통로가 누구의 작품인지 알 수 있게 되었다. 딱 봐도 타락한 신의 이름이 아닌가. 아마도 이들이 사용했던 통로는 동굴의 이름을 사용하는 권능의 종류일 것이다.
“임의로 통과할 수는 없고?”
“불가능. 출구가 없는 동굴의 끝은 오직 안식만이 남아 있을 뿐이니.”
어렵게 얘기하긴 했지만, 통로를 열고자 해도 출구 쪽에서 호응하지 않으면 죽음이 기다릴 뿐이라는 뜻인 모양이다.
“그럼…”
형진은 다른 질문을 하려 했지만, 순간 데카스의 상태가 이상해졌다.
“크흑! 죄, 죄송합니다! 저는 당신을 저버리려던 것이… 크하아악!”
그렇게 몸을 떨며 소리치던 데카스는 갑자기 전신이 검은 불꽃에 휩싸이며 그대로 불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스하는 갑자기 타오르는 데카스의 모습에 기겁하며 놈에게서 손을 떼었지만 이미 늦었다. 팔 하나에 이글거리는 검은 불꽃이 옮겨 붙은 뒤였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