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82
00582 132. 파티 =========================
자신을 둘러싸고 신들이 그런 앙큼한 계략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형진은 식구들에게 달려가 자신이 드디어 신격을 얻었음을 알렸다.
“밤의 신이라… 음, 역시 그런 건가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로 그런 신격을 얻을 줄이야.”
크루그나 카트린은 듣자마자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지었고,
“그런데 신이 되셨으니 이제는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폐하…. 는 아닌 것 같고, 전하는 폐하보다 더 격이 떨어지던가. 성하도… 신을 직접 부르는 말로 쓰긴 좀 애매하고… 신하? 어째 왕보다 더 낮아진 느낌인데.”
작위를 가진 오귀스트와 할은 그런 식으로 호칭에 대한 논쟁을 이어갔다.
“빠아! 신이 된 거면 빠아도 비와 낭만님처럼 작아질 수 있는 건가요?”
“어… 그게…”
이미 신 하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다니는 다희는 눈을 빛내며 그것부터 물었다. 가능하다고 말하면 지금이라도 자신의 컬렉션을 하나 더 추가할 듯한 기세다.
뭐랄까. 막상 신이 되긴 했는데 딱히 크게 놀라는 기색이 없어 보인다. 물론 축하야 해주고 있지만, 신들이 크게 놀랐던 것에 비하면 어차피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는 식의 느낌이랄까.
“항상 신들과 함께 생활하니 만성이 되어버린 건가.”
모처럼 기대하고 식구들에게 이 놀라운 일을 얼른 보고해야지 하며 달려왔던 형진은 풀죽은 표정이 되어 버렸다.
“오히려 그게 좋지 않은가요?”
하지만 가만히 뒤에 시립하고 있던 아란이 예의 눈웃음을 치며 그렇게 말해온다.
“뭐가?”
입을 삐죽 내밀고 어린애처럼 불퉁거리는 형진의 모습에 아란은 쿡쿡거리며 웃었다.
“신이 됐다고 사람들 태도가 갑자기 막 달라지고 그러면 오히려 더 서운해 하실 것 같아서요.”
“그거야… 그렇지만.”
다른 식구들은 물론이고, 아이들이 그를 어려워해서 달라붙지 않는다든가 그러는 일이 벌어지는 건 정말 견디기 어려울 것 같다. 물론 마눌들 역시 마찬가지고.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형진은 문득 메이드복을 입은 채 자신을 조용히 따르고 있는 아란의 모습을 보고 뚱한 표정을 지었다. 모처럼 천신만고 끝에 왕성에 데려다 놨더니, 고집을 부리면서 시녀장 행세를 하고 있는 아란의 모습에 공연히 심통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저…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뭔가 불만 가득한 시선을 던지는 형진의 모습에 아란은 그렇게 물었다.
“알면서 물어?”
불퉁거리는 형진의 대답에 아란은 이내 푸근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저 나름대로 당신 곁에 머물기 위한 방법을 찾은 건데, 그렇게 싫으세요?”
“굳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되니까 하는 말이지.”
형진은 가만히 손을 뻗어 아란의 손을 마주 잡으며 말했다.
“얼마간 생활해 봤으니 이곳에서 굳이 신분이니 뭐니 따지는 것이 의미 없다는 건 당신이 더 잘 알거야.”
멀리 볼 것도 없이 첫 번째로 맞이한 형진의 부인인 유아는 요즘도 식사 시간이 되면 수행하는 사제들과 함께 식재료를 다듬는다. 미엘은 형진이 언데드의 영역에 넘어갈 때를 제외하고는 초보 엄마인 하엘과 함께 아이들을 돌보는 일에 여념이 없고, 남은 한 명의 부인인 제랄딘은 본디 가장 높은 신분에 속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신경 쓰거나 하지 않는다. 그건 왕성에 머무는 다른 식구들 역시 마찬가지. 형진이 왕위에 오르면서 작위를 나눠 받은 식구들도 외부 활동을 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걸 드러내는 일이 없다. 아란이 굳이 신경 써서 시녀장 같은 위치에 스스로 서야할 이유가 없다는 뜻이다.
아란은 말없이 자신의 손을 쓰다듬는 형진의 손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아이들도 생각을 해야지.”
어른들 입장에서는 차별을 않는다고 생각해도 아이들의 생각은 또 어떨지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미엘이나 하엘이 낳은 아이들은 물론이고. 유아 역시 조만간 출산을 하게 될 터. 그때 그 아이들은 공주니 왕자니 불리는데, 아란이 데리고 온 니샤나 니야만 시녀장의 아이로 취급 받고 그러면 은연중에 자격지심을 가지게 될 지도 모른다. 물론 형진의 아이들이 그들을 차별하고 그러지는 않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사람 일은 어찌될지 모르는 것 아닌가.
“만약 당신이 다시 내 아이를 낳게 된다면, 그때는 어쩔 셈이야.”
무엇보다도 그게 가장 큰 문제다. 어쨌든 그렇게 되면 새로 태어난 아이 역시 왕족이 되는 셈인데, 그런 경우 니샤와 니야는 자신의 동생에게 존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물론 왕실의 법도를 엄격하게 따지면야 형진의 피가 섞이지 않은 두 아이들은 그렇게 신분이 나뉘는 것이 맞겠지만, 애초에 이곳이 그런 식으로 딱딱한 규범에 묶인 곳도 아니지 않은가.
물론 이런 건 계승권 같은 걸 따지게 되면 문제가 복잡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형진에게 있어 엘 파르드의 왕권 같은 건 큰 가치가 없는 일인데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아이보다는 크루그에게 물려주는 것을 내심 염두에 두고 있는 참이다. 원래도 자신의 것이 아니었으니, 본래의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이 옳은 일 아니겠는가. 그런 점을 위해서라도 자신의 가족에게 만큼은 왕족이니 뭐니 하는 식의 법도를 따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일이라도, 안에 들어오면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엘 파르드 왕실의 문제 같은 건 바깥에서는 죽어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아란은 잠시 형진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문득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실은… 그렇지 않아도 드릴 말씀이 있던 참이에요.”
“말해 봐.”
형진은 자신의 설득이 먹혔다고 생각했는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물론 아란의 메이드복 차림은 충분히 그의 취향을 저격하는 모습이긴 했지만, 그냥 성적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해 그에 걸맞은 옷차림을 갖추는 것과 정말로 시녀장 행세를 하는 건 큰 차이가 있게 마련이다. 더구나 아란은 메이드복보다는 역시 바니걸 복장이 더 어울리는 쪽이기도 하고.
뭐든 말하라는 듯이 푸근하게 웃고 있는 형진의 눈치를 잠시 살피던 아란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저, 실은…”
“실은?”
“아이… 생겼습니다.”
“뭐?”
형진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카운터펀치를 맞고 잠시 멍한 표정이 되어 버렸다.
사실 재결합 당시 힘을 엄청 쓰긴 했어도, 유아나 제랄딘처럼 임신에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릴 거라 생각하고 있던 참이었다. 하지만 곰곰이 시간을 계산해 보니, 역시 당시 열심히 노력한 것이 바로 빛을 발한 것이라고 밖에는 생각이 되지 않는다.
“원래 그렇지 않을까 생각은 했는데… 얼마 전에야 확인이 되어서… 늦게 말씀드려서 죄송… 헛!”
조심스럽게 말을 이어가던 아란은 갑자기 자신을 와락 껴안는 형진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가, 이내 안도하는 표정을 지으며 그의 등을 가만히 감싸 안았다.
“잘 했어. 정말 잘 했어.”
“네…”
제랄딘에게는 미리 언질을 주었지만, 확인이 된 것은 정말로 최근의 일이다. 다만 보고가 늦은 것은 단순히 형진이 언데드의 영역에서 일을 하고 있는 중이라서 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애초에 언데드의 영역에 가 있었던 것은 형진이 사용하는 아바타 중에 하나일 뿐이고, 본신은 엄연히 왕성에 머무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을 못하고 있었던 것은, 역시 그의 반응이 걱정스러웠던 탓이다. 아란은 여전히 다른 그의 부인들과 자신은 처지가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었고, 그것은 이런 작은 부분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 부둥켜안은 채 체온을 나누고 있으니 그런 고민들이 모두 부질없다고 느껴진다. 역시 말하길 잘했다.
“이럴 때가 아니지. 가서 모두에게 말하자.”
“네.”
형진은 얼른 아란의 손을 잡아끌어 다시 식구들에게 이 경사스러운 일을 보고했다. 하루에 경사가 두 번이나 난 것은 둘째 치고서라도 식구들의 반응은 어째 형진이 신격을 얻었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보다도 더 격렬했다.
“이렇게 되면… 몇 번째 아이가 되는 거지?”
“음… 일곱 쌍둥이에, 다섯 쌍둥이를 합치고, 여기에 유아님의 아기와 니샤, 니야까지 더하면, 열여섯 째?”
“맙소사.”
“둘만 더 낳으면 야구팀 둘을 만들겠네.”
“하나만 만들어도 대단하다고 할 텐데, 둘이라니.”
“역시 밤의 신.”
식구들이 그렇게 떠들어 대는 와중에도 다시 하마란이 형진을 향해 기도를 드리는 모습이 보인다. 전에는 별로 효과가 없었던 것 같지만, 이번에는 신격까지 얻었으니 효과가 있을 거라 믿는지 얼핏 경건하기까지 한 모습이다.
“아이들 이름도 아직 다 못 지었는데!”
“이쯤 되면… 이름 짓는 것도 큰일이에요.”
흑요호의 이름은 나중에 성인이 되면 스스로 짓는 것이 원칙이라도 형진에게는 역시 그렇게 간단히 넘길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신격이 어떤 식의 단어로 선택될지보다 이쪽이 그에게는 더 어렵고 복잡한 문제일 수도 있었다.
“축하해요. 아란님.”
“감사합니다. 제랄딘님.”
이미 언질을 준 상태이긴 해도, 아란은 제랄딘에게 새삼 미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부인이 된 것은 그녀쪽이 먼저인데, 이렇게 경사를 먼저 차지하게 되어 버린 탓이다.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말했잖아요. 유학 문제 때문에라도 임신은 미뤄둘 생각이라고.”
“그래도…”
제랄딘은 씩 웃고는 옆에서 아이들에게 동생이 뭔지 가르쳐 주고 있는 형진에게 다가가더니 말했다.
“진. 부탁이 있어요.”
“응? 뭔데? 말해봐.”
어떻게 보면 이제 남은 건 제랄딘과 요안나 뿐이라, 형진은 이 참에 힘을 좀 내봐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참이다.
하지만 제랄딘의 말은 예상 외의 것이었다.
“아름님과 새름님의 유학이 결정되었거든요. 요안나님이 두 분의 거처를 마련해 주려고 하는데, 이 참에 저도 지구에서 지냈으면 해요. 괜찮을까요?”
“제랄딘이?”
아름과 새름은 요안나에게 초청된 상태인데, 제랄딘과는 달리 고등학교부터 편입하기로 되어 있었다. 일단은 남은 기간 동안 고등학교에서 미국의 분위기에 익숙해지기 위해 그렇게 정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 두 사람이 있었네. 편입은 잘 된 건가?”
“네. 잘 하면 저랑 같이 대학에 입학하게 될지도 모르겠어요.”
“그래? 확실히, 그것도 나쁘지 않지.”
물론 형진이 잘 살피겠지만, 그래도 남편이 매번 따라붙는 것보다는 같은 여자끼리 뭉쳐서 학창 생활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남자는 모르는 여자들만의 세계도 있게 마련이니까.
“좋아. 그렇게 해.”
“고마워요!”
왕성은 다시금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란을 위해 희망과 생명의 신전에서 다시 시중 들 사제들을 초빙해 오고, 새로 태어날 아이를 위한 거처라든가 기타 여러 가지를 준비하다 보니 어떻게 시간이 갔는지 모르고 며칠이 후딱 날아가 버렸다.
“이게 무슨 난리야.”
며칠간 마음을 다잡고 형진을 홀리겠다는 필사의 일념으로 왕성 라이언하트를 방문한 희망과 생명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그곳의 모습을 보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아란이 아이를 가졌습니다. 이것 저것 준비를 하다보니.”
“그, 그래? 축하해.”
미인계니 뭐니 헛소리를 하긴 했지만, 이 계획의 처음 시작은 허세와 망상의 발언으로부터 초래되었다. 바로 형진의 아이 운운했던 그 발언 말이다.
희망과 생명은 괜시리 그 말이 생각나서 얼굴이 확 붉어지고 말았다. 확실히, 이 남자라면 미인계가 성공하는 순간 그녀도 임신을 면키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쩐 일이십니까?”
“어? 그게… 아, 맞다. 이거.”
희망과 생명은 잠시 버벅대다가 형진에게 봉투 하나를 내밀었다.
“이건…”
그것을 받아들고 의문 어린 시선을 던지는 형진을 향해, 희망과 생명은 기다렸다는 듯이 답했다.
“희망과 생명 재단에서 주최하는 자선 파티야. 내 파트너가 되어서 같이 참석해 줬으면 해.”
“파티요? 저랑요?”
“응.”
희망과 생명 본인도 누누이 말하는 일이지만, 그녀의 파트너로서 파티에 참석할 수 있다면 개짓는 시늉이라도 할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 그런데 굳이 자신을 지목하는 이유가 뭔가.
“그런 거라면 다른 유명 인사와 함께 참석하는 편이.”
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희망과 생명은 괜히 시선을 피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저지른 일이잖아. 그러니 책임져.”
============================ 작품 후기 ============================
두편째.
후다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