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16
00616 140. 초래 =========================
안식과 동굴이 정신을 잃자, 그녀를 따르던 추종자들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언데드의 영역에 오게 되어 힘은 더 강해졌을지 몰라도, 아바타든 본신이든 항상 드러내놓고 다녀야 하니 별로 이로울 것도 없는 상황. 더욱이 누군가에게 당해 파편이라도 떨구게 되면, 달리 회복할 방법도 없이 저렇게 골골거리니 그만큼 위험도 더 커진다.
“쳇. 할 수 없군.”
형진은 혀를 차고는 주시자들을 대기시킨 다음, 어떻게든 자신들의 여신을 지켜보겠다고 인간 방패처럼 그녀를 에워싸고 있는 이들에게 말했다.
“퇴로를 열어주겠다. 그곳으로 가도록.”
“네? 하지만…”
파괴와 재생의 추종자가 되어 버린 티폰이 쏟아내는 불길을 형진이 막아 주고 있었지만, 그들에게서는 불신의 기색이 역력하다. 하긴 파괴와 재생에게 자신들의 여신이 저 꼴이 되어 버리고 말았으니 그냥 알겠습니다 하고 넙죽 받아들이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형진은 당장 그들을 설득시키고 말고 할 겨를이 없었다. 티폰은 이전에도 꽤나 고전하며 상대했던 적. 물론 그때는 신격이 없는 상태에서 싸운 것이긴 했지만, 자신이 강해진 만큼 상대도 파괴와 재생의 힘을 얻어 더 강해졌다. 우습게 여기고 방심했다가는 자칫 어떤 꼴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걸리적거리니 꺼지라고!”
티폰 녀석이 쏟아내는 불덩이와, 그 불덩이에 녹아내린 빙하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의 폭풍을 막아서고 있는 것만으로도 짜증이 나는 판에, 일일이 설득하고 말고 할 겨를이 어디 있겠는가. 형진은 소리를 버럭 지르며, 그들이 딛고 있던 지면에 황혼의 권능을 써버렸다.
“우왁!”
갑자기 발밑이 푹 꺼지는 느낌에, 그들은 저항이고 뭐고 할 틈도 없이 그대로 우르르 떨어져 내렸다.
“왔군. 일단 포박하도록. 힐리에타, 너는 여신을 맡아라.”
“네!”
안식과 동굴의 추종자들은 갑자기 주위에서 몰려든 주시자와 밤의 종족들에게 반항할 틈도 없이 모조리 포박되어 버렸다, 개중에는 발악하며 저항하려 드는 자들도 있었지만, 곧바로 밤의 권능이 펼쳐지고 모든 감각이 상실되는 상황에 직면하자 꼼짝도 못하고 두들겨 맞아야만 했다.
“가만히 좀 있어. 너희들의 여신이 다치는 꼴을 보고 싶지 않으면.”
“크윽…”
하지만 그래도 일단은 추종자들인지라, 떡이 되도록 얻어맞아도 저항을 멈추려 하지 않았다. 결국 그들은 사로잡힌 여신의 모습을 보고서야 이를 갈며 주시자들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꽤 끈질긴 놈들이군.”
“괜찮을까요? 이렇게 폭력을 써도.”
“신의 심기를 거스르고도 죽지 않은 걸 다행으로 알아야지. 게다가 첩자가 섞였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렇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문득 안식과 동굴에게서 변화가 일어났다. 갑자기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마치 고치와 같은 것으로 스스로의 몸을 감싸기 시작한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
갑작스런 변화에 어쩔 줄 모르고 있던 즈라탈은 여신의 몸을 감싸고 있는 무언가가 자신의 능력으로는 달리 손 쓸 방법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바로 형진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고치인가… 스스로의 신격을 회복시키기 위한 과정에 들어간 모양이군. 알았다. 일단 그대로 놔둬. 여기 이 놈부터 해치우고 가서 살펴보겠다.”
“알겠습니다.”
모습을 완전히 드러낸 티폰은 곧바로 녹이고 태우며 그것을 먹어치우기 시작했다. 강력한 힘을 가진 형진의 존재가 코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식욕을 우선하는 모습이 역시나 괴수답다.
형진은 안식과 동굴이 이끌고 온 일행들을 모두 안전하게 피신시키는 일이 끝나자, 방어 태세에서 공세로 돌아섰다.
“그렇지 않아도 시험을 해보고 싶었는데 잘 됐군.”
일단 해일처럼 몰아치는 불꽃으로부터 벗어난 그는 공간을 열어 그곳으로부터 거대한 병기 하나를 불러냈다. 바로 중국의 머리 위에 띄워 놓았던 무기 가운데 하나다.
전체적인 크기는 작은 호위함 정도. 형상은 잠수함의 그것과 비슷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소나가 장치되어야 할 앞머리 부분에 주무기가 장착되어 있다는 점.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물체를 보고 티폰이 즉각 반응했다. 불길에 휩싸인 촉수들이 마치 뱀처럼 구불텅거리며 날아들었으나, 형진의 공격에 그 시도들은 곧바로 무력화되어 버리고 말았다.
형진은 영혼포식자로 티폰의 방해를 저지하며 신병기의 조작을 이어갔고, 마침내 조준이 끝나자 서슴없이 그것을 발사해 버렸다.
번쩍!
한줄기 빛이 그대로 티폰을 강타한다. 하지만 그대로 티폰을 꿰뚫는다든가 하는 식의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 대신, 좀 더 과격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이 초래되었다.
콰가가가각!
갑자기 티폰이 미친 듯이 회전하며 위성을 들이받는다. 전신에 두른 불꽃은 활용할 엄두도 내지 못했고, 미친 듯이 회전하는 통에 위성을 먹어치우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쁘지 않은데.”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이 병기의 이름은 밸런스 디스테이블라이저(balace destabilizer). 물체에 작용하는 힘의 균형을 붕괴시키는 무기다.
티폰은 거대한 체구를 지니고 있고, 그 질량은 스스로 중력을 발현할 수 있을 정도다. 티폰이 두려운 것은 이 거대한 부피와 질량을 꿰뚫고 그 안에 숨어 있는 핵을 타격할 방법이 쉽지 않기 때문. 하지만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방패이기도 한 놈의 거대한 몸은 그 자체로 양날의 검이나 다름없다. 자칫 그것을 이루는 구조나 힘의 균형에 문제가 생기면 스스로의 무게에 짓눌려 붕괴해 버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밸런스 디스테이블라이저, 통칭 균형 붕괴포는 그런 식으로 티폰이 스스로의 형체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힘의 균형을 일시적으로 무너뜨리는 효과를 지닌다. 물론 이것은 놈이 파괴될 정도의 위력을 가진 무기는 아니지만, 보는 바와 같이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기에는 충분한 위력을 지니고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티폰의 먹이인 행성들은 그 자체로 거대한 질량을 가지고 있고 이것은 또한 압도적인 중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도 된다. 이런 거대한 먹이를 안전하게 먹어치우기 위해서도 티폰은 자신의 몸에 가해지는 여러 가지 힘들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런 힘의 균형이 단숨에 붕괴되면 어떻게 될까. 녀석은 스스로의 몸조차 가눌 수 없는 상황에 처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무기는 보호와 균형이 지닌 권능을 응용한 것이다. 이전에는 균형의 권능이라고 해봐야 신체의 건강을 유지시켜 주는 정도의 효능 밖에 없었으나, 여신의 힘이 강대해짐에 따라 그 신격의 활용 방법도 훨씬 다양하고 효과적으로 변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보다 힘의 소모가 너무 큰데.”
하지만 문제가 있다. 권능을 뒤틀어 사용하게 되는 만큼 일반적인 방법보다 훨씬 큰 규모의 공헌도가 소모되어 버린다는 점이다. 이래서야 양산형 병기로서는 그리 효과적인 병기라고 말하기 어렵다. 중요한 거점을 지키며 시간을 끄는 최후의 보루, 또는 티폰과의 전투를 좀 더 손쉽게 이끌어가기 위한 보조 공격 정도라면 몰라도, 아무렇게나 마구 찍어내서 주력으로 운용하기엔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무엇보다도, 이것 하나만으로는 티폰을 침묵시킬 수가 없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균형을 잃고 잠시 허우적대던 티폰은 잠시 후 균형 붕괴의 효력이 사라지자 다시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놈의 상태는 그리 좋지 않았다. 균형 붕괴의 여파로 인해 골격은 흐트러지고, 표피는 갈라져 떨어져 나간 탓에 다른 뭔가를 먹어치우기 보다는 먼저 자신의 몸을 회복시켜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하지만 형진은 놈이 느긋하게 회복하도록 지켜볼 생각이 없었다.
퍽! 퍼퍽!
영혼포식자가 작렬하며 그렇지 않아도 갈라지고 흩어진 표피들을 부숴버린다. 영혼포식자 자체가 티폰을 해치우고 얻은 무기인 점을 생각해 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동족상잔의 상황인 셈이다.
그아아아아아!
표피가 연이어 박살나고 속살이 드러나기 시작하자, 티폰은 비명과도 같은 외침을 터트리며 촉수를 뻗어 형진을 옭아매려고 했다. 하지만 미처 그 촉수들이 형진에게 닿기도 전에, 재충전을 마친 밸런스 디스테이블라이저로부터 다시금 한 줄기 빛이 쏟아져 티폰을 강타한다.
“이래서 군중제어기가 무서운 법이지.”
게임을 할 때도 마찬가지지만, 격전 중에 쏟아지는 군중제어기는 순식간에 전투의 향방을 가를 정도로 위력적이다. 어떻게 보면 티폰은 그 자체로 월드 보스나 다름없는 존재. 하지만 군중제어에 면역이 없는 월드 보스 따위, 이미 샌드백으로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는 김에 형진은 한 가지를 더 티폰에게 선사해 주었다.
그것은 바로 밤의 권능.
이전에 티폰과 맞붙었을 때는 가지고 있지 못했던, 오직 그만을 위한 권능.
그것이 발현되자 티폰은 그대로 암흑 속에 갇혀 버린 채 아무것도 보고 느낄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가뜩이나 움직임이 제한되고 신체가 삐걱거리는 상황에서 적의 위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장님 신세로 전락해 버렸으니, 이미 싸움은 끝이 난 것이나 다름없는 일.
“미엘, 하엘. 좀 도와주겠어?”
“기꺼이.”
“그말을 기다렸어요.”
형진의 말과 함께 곧바로 그의 주위에 거대한 환수 둘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가 다시금 티폰과 조우했다는 소식을 듣고 대기 중이던 미엘과 하엘이다.
그녀들은 흑요호의 모습으로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자신에게 전해지는 형진의 힘을 받아들여 그것을 강력한 브레스로 승화시켰다.
두 흑요호가 발사한 브레스는 곧바로 밧줄처럼 서로 엉키며 티폰에게 작렬했다.
그아아아아아!
그렇지 않아도 균형이 붕괴되어 헐거워져 있던 티폰의 표피와 골격은 흑요호 둘이 신의 힘까지 전해 받아 전력으로 쏘아낸 브레스를 견뎌내지 못하고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티폰은 전력으로 재생력을 발휘해 그것을 견뎌내려고 했지만, 어느 순간 드러나 버린 약점 앞에 형진의 모습이 나타났다.
티폰은 필사적으로 불꽃을 일으켜 자신의 핵을 지키려 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그건 불가능한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체크 메이트.”
형진의 입에서 그 말이 흘러나옴과 동시에. 거대한 창의 형태로 변화한 영혼 포식자가 티폰의 핵을 단숨에 꿰뚫어 버린다. 신이 직접 발한 권능도 아니고, 제대로 된 힘의 활용조차 할 줄 모르는 얼치기 추종자의 불꽃 따위로는 형진을 막아낼 수 없었던 것이다.
콰드드드드…
[인스턴트 킬! ‘티폰’이 죽었습니다.]행성을 먹어치우는 거대한 괴수의 죽음을 알리는 메시지와 함께, 티폰의 몸은 하얗게 탈색 되며 무너져 가기 시작했다. 본래부터 균형 붕괴의 여파로 인해 균열이 가있는 상황인데다, 내려앉은 위성의 중력까지 더해지자 더 이상 형체를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탓이다.
형진은 룻을 챙기고는 슬쩍 물러나 그렇게 서서히 허물어져 가는 티폰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자신에게로 다가서는 두 흑요호를 맞이했다.
“수고했어. 덕분에 수월하게 물리칠 수 있었어.”
“도움이 되어서 기뻐요.”
“저, 저도…”
형진은 흑요호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 마눌의 머리를 번갈아 가며 끌어안아 주고는 다시 말했다.
“뒤처리를 해야 하니 일단 돌아가 있도록 해. 정화 받는 거 잊지 말고.”
“조심하세요.”
“걱정마.”
두 흑요호의 모습이 사라지자, 형진은 티폰의 사체 주위에 휴대용 인공위성 몇 개를 흩어 놓아 상황을 계속 살필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는 주시자들이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돌아갔다.
“여신은?”
“이쪽입니다.”
즈라탈의 안내를 받아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자, 그 안에서 은은한 검은 빛을 뿜어내고 있는 커다란 알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기를 감싸고 있던 알도 이런 식으로 만들었던 것인가.”
가만히 껍질을 손으로 만지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안쪽에서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이… 아이는 어떻게 되었나요.
스스로의 신격을 복구하기 위한 안식의 과정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의식은 또렷하게 남아 있는 모양이다.
“아이라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희망과 생명께서 적절한 조치를 취해 엘리시온으로 무사히 들여보냈으니까.”
형진이 바로 대답하자, 안식과 동굴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엘리시온에서 성장한 아이는 엄연히 빛의 영역에 속하게 될 테니, 안식과 동굴이 아이를 만나게 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여 타락했어도 모성에는 영향이 없었던 것인지 안식과 동굴은 몇 번이나 형진에게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일단 장소를 좀 옮기는 편이 좋겠군요. 이곳은 이미 파괴와 재생에게 드러나 있는 상태라, 또다시 아까와 같은 녀석이 올 가능성이 있으니.”
-그럼… 그렇게…
안식과 동굴에게는 처음부터 거부권이 없었다. 아기가 빛의 영역으로 넘어가 보호를 받고 있는 상황인데다, 자신 또한 이런 식으로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되어 버렸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형진은 그녀를 오래된 자들이 사는 차야 메사에 있는 밤의 영역으로 옮겼다. 밤의 종족들이 살고 있는 행성 스하로 옮길까도 싶었지만, 그곳 역시 언데드의 영역에 속한 곳이라 티폰의 위협으로 자유롭지 않은 탓에 비슷한 환경이면서도 언데드의 힘으로부터 자유로운 차야 메사 쪽으로 결정이 된 것이다.
황혼의 결계와 보호의 성역으로 몇 겹이나 안전장치를 마련한 뒤에야 형진은 비로소 알의 모습으로 틀어박힌 안식과 동굴에게 말했다.
“이곳이라면 문제없을 겁니다. 파괴와 재생이 직접 오지 않는 이상은. 물론 그 녀석에게 당장 그럴 겨를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감사… 합니다.
형진은 의자 하나를 꺼내어 검게 빛나는 알 앞에 놓고 그곳에 앉았다.
“자, 그럼… 이제 대화를 시작해 볼까요.”
-대화라면….
조금 불안한 기색이 담긴 안식과 동굴을 향해 형진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선은… 파괴와 재생이 소유하고 있는 거점들에 대한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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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녹아내린 자의 얼룩이 남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