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20
00620 141. 오디션 =========================
자신들에게 어떤 운명이 다가올지 털끝만큼도 예상하지 못한 채, 엘리시온에서 빈둥거리던 신들은 형진이 마련해둔 거대한 강당에 모여들었다. 뒤쪽으로 갈수록 높아지는 형태가, 마치 로마시대의 원형극장을 연상시킨다.
로마시대에는 현대의 3S 정책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유흥이 시민들에게 제공되었다. 이를테면 중독된 상태에서 스스로 자신을 화장해 버린 헤라클레스라든가, 술 취한 여인들에게 찢겨 죽은 오르페우스의 일 등을 노예들을 통해 무대에서 완벽하게 재현해 내는 일따위가 바로 그것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당시에 특수 효과 같은 것이 있었을 리가 없다. 즉, 이 완벽한 재현이란 말의 의미는 문자 그대로가 되는 셈이다. 과거로부터 예능이란 그렇게 목숨을 걸어야만 하는 무서운 일이었다.
지금 여기 모인 신들은 자신들이 그런 무시무시한 공간에 들어섰으리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벌써부터 희망과 생명이나 공포와 죽음 같은 강력한 힘을 지닌 신이 되었을 때의 일을 꿈꾸고 있었다.
“난 내 추종자들에게 모두 집사복을 입힐 거야.”
“집사복이 뭐야?”
“집사는 하녀처럼 주인을 모시는 역할이 주업이지만, 시대가 바뀌어서 요새는 강력한 전투 능력을 지닌 자들이 대다수라고 해. 주인이 원하는 물건과 관련 물품을 항상 준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필살기 하나 정도는 당연히 가지고 있어야 하며, 신출귀몰인 기본이지. 박학다식하고 수많은 지식은 필수이고, 비록 주인님이 영 좋지 않은 곳을 맞으시더라도 무심한 듯 시크하게 응급 수술을 해치울 수 있어야만 하는 엄청난 존재야. 그런 존재의 전투복이 바로 집사복이지.”
“대, 대단하군. 나도 그런 추종자가 있으면 좋겠다.”
아무래도 인간 세계에 대해 영 좋지 않은 출처로부터 정보를 얻은 모양이다. 추종자 가운데 최강의 전투력을 지닌 집단으로 일컬어지는 집행자들조차도 그 모든 능력을 가진 이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형진이 그나마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그나마도 스스로 신이 되어 버렸으니 무효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엘리시온에 틀어박혀 있으면서도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이상하고 왜곡된 정보를 통해 인간 세계에 대한 헛된 망상만 들어찬 상태로 신들은 이제부터 자신들이 마주할 호구스러운 존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조명이 밝혀지며 형진이 모습을 드러낸다. 신들은 그의 실물을 보고 크게 놀랐다. 아직 하나의 신격 밖에는 얻지 못한 신이라고 들었는데, 예상 외로 강력한 신위를 지닌 탓이다.
“와… 아직 완전히 신격을 다 얻은 것도 아니라고 들었는데, 은은하게 뻗어나오는 저 힘은 도대체 뭐지?”
“저 정도면 대신이라고 불리는 존재와 비슷한 수준 아닐까.”
“자기가 쓰고도 넘칠 정도로 신앙과 공헌도를 끌어 모으고 있으니 호구짓을 해도 티가 안 난다 이건가.”
“부, 부럽다.”
엘리시온에서야 신이라고 떵떵거리며 지낸다지만, 밖으로 나가면 아바타 하나 꾸릴 공헌도조차 없는 상황이라 신들은 대번에 부러움과 질투가 섞인 표정으로 형진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진이라고 합니다. 아직 신격을 완전히 갖춘 상태가 아닌 만큼, 우선은 인간으로서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문득 앞줄에 앉아 있던 신 하나가 손을 들고는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어쩐지 똘망똘망한 표정이 꽤 귀여운 소년 모습의 신이다.
“아직 완전하지는 않더라도 신들이 모인 자리이니 신격으로 소개를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됩니다. 무례가 아니라면 자신의 신격을 밝혀주십시오.”
“그렇군요. 실례했습니다. 제가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이다 보니 신들의 관습에는 익숙하지 않습니다.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신격은 밤입니다.”
“밤… 먹는 밤 말고, 낮과 밤 할 때의 그 밤 말씀이십니까?”
“그렇습니다.”
“우와…”
신들은 크게 놀랐다.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라는 말에는 그럼 그렇지 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가, 뒤이어 나온 형진의 신격을 듣자 입이 떡 벌어져 버리고 만 것이다.
신격은 그것이 얼마나 큰 의미를 내포하느냐에 따라 높고 낮음이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밤은 시간은 물론이거니와 공간이나 기타 여러 가지 은유를 내포할 수 있는 큰 의미의 단어이다. 극단적으로는 낮과 밤이라는 개념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반으로 나눌 수도 있을 정도다.
인간으로부터 신으로 승격되었다길래 기껏해야 대수롭지 않은 신격을 지니고 있으리라 생각했던 신들에게 있어 그의 소개는 그만큼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형진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조금이나 얕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 있던 시선들이 한순간에 바뀌는 것을 보며 속으로 씩 웃고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오늘 이렇게 여러분들을 모시게 된 것은 제가 지금까지 한 일을 두고 여러분께서 크게 관심을 보여주셨기 때문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을 뿐인데, 그 일이 신들에게 크게 회자 되고 있다기에 조금 놀라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자가 여러 선배님들께 심려를 끼친 것에 대해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니, 뭐… 딱히 죄송할 것 까지야.”
“호구스런… 아니, 서로서로 좋은 일을 한 걸 가지고 딱히 야단을 친다거나 그러려고 부른 건 아니니까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돼.”
언제 봤다고 따박 따박 반말인 건지. 하기야 이 신들은 당장 밖으로 나가면 요정보다도 못한 잡신들에 불과해도 신이 된 건 엄청나게 오래전의 일이다.
일단 나이로는 세상에 존재하는 누구와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는 수준이랄까. 물론 형진의 입장에서는 그 오랜 시간동안 엘리시온에서 빈둥대며 뒹굴거리기만 했다는 사실로부터 조소가 절로 새어나온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넓으신 선배님들이 가득하신 걸 보니, 역시 엘리시온은 신들과 허락된 자에게만 개방된 아름다운 낙원이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군요.”
“그렇지. 이 친구가 뭘 좀 아는군.”
“그러네. 마음에 들어.”
형진은 상대가 뭐라 떠들든 말든 그렇게 어르고 달래며 자신의 페이스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지만, 뒤에서 지켜보던 여신들은 같잖은 신들의 모습에 울화가 치밀어 오르는 중이었다.
“저 자식들이 언제 봤다고 반말질이야. 내가 저것들을 그냥 콱.”
희망과 생명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멱살이라도 잡을 듯한 모습이었고,
“어디 가서 명함도 못 내밀 잡신 나부랭이 따위가 감히…”
공포와 죽음은 조용히 그들의 이름을 적어내려 가고 있었다.
“맞아요. 내가 다 기억해 놨어. 일단 엘리시온에서 나오기만 해봐. 내가 다 혼내줄 거야.”
“참아. 진님이 어련히 알아서 하실까.”
“맞아요… 다 생각이 있으니 저렇게 얘기를 이끌어 가시는 걸 거에요.”
꼬맹이 여신들의 만류에, 희망과 생명은 씨근덕거리며 공포와 죽음에게 말했다.
“잘 적고 있지? 나중에 나한테도 한 부 부탁해.”
“알았어.”
평소에는 서로 경쟁하는 입장이지만, 이때만큼은 철저한 협력 모드다. 생명과 죽음이라는 양대 신격을 지닌 여신들에게 찍혔으니, 저 신들의 앞날도 그리 순탄치 많은 않을 것 같다.
어쨌든 그렇게 마눌들이 광분하는 와중에도 형진은 차분하게 대화를 계속 주도해 나갔다.
“여러 선배님들께 사과의 말씀을 드려야 할 점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그게 뭐죠?”
“원래는… 선배님들을 찾아뵙고 사죄의 말씀을 드림과 아울러, 원하시는 분에 한해서 이전에 저를 찾아오셨던 선배님들께 해드렸던 것처럼 함께 상생 협력하는 방안을 찾아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너무 많은 선배 신 여러분께서 찾아주신 관계로, 그 일에 차질이 생길 것 같습니다. 제 능력으로는 이렇게 많은 분들을 전부 감당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신들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그럴 법 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두 명 정도 슬슬 구경 나온 것도 아니고, 틀어박혀서 꼼짝도 않은 채 석화되어 버린 것 같은 몇몇 신들을 제외한, 실질적으로 놀고 있던 신이란 신은 죄다 몰려나온 형국이다. 이들을 전부 감당한다는 얘기는 엘리시온에 머물고 있는 신들 대부분을 형진이 전부 먹여 살린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아직 신격조차 다 갖추지 못한 자가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상황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모처럼 큰 기대를 가지고 왔던 모양인지 몇몇 신들이 크게 실망한 기색을 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형진은 사람 좋은 표정으로 웃어 보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여러분께 한 가지 제안을 하고자 합니다.”
“제안이라면?”
“모처럼 이렇게 많은 분들이 찾아주셨는데, 이대로 기회를 흘려보낼 수는 없는 법이죠. 그러니, 여러분 가운데 몇 분을 공정한 심사를 거쳐 선발해, 세상으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전부를 받아들이기는 어렵다 해도, 몇 분 정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니까요.”
“오오! 그거 괜찮은 방법이네요!
물 건너 간 줄 알고 실망스러운 기색을 보이던 신들이 일제히 환호를 보냈다. 되든 안 되든, 일단 기회가 생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들은 희망을 느낀 것이다.
하지만 또한 몇몇 신들은 불만을 표했다.
“공정한 선발이라니. 모두가 납득할 만한 방법이란 게 과연 있을까.”
“애초에 신격이란 것의 높고 낮음을 따진다는 것 자체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데.”
투덜대는 신들을 보며 형진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심사위원들을 소개했다.
“그래서 모두가 납득할 만한 심사위원 여러분을 모셨습니다.”
형진은 뒤로 돌아서며 자신이 초빙한 심사위원들을 하나씩 소개했다.
“이분이 존재하는 한, 세상의 악에게 발붙일 공간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포와 죽음!”
천천히 한쪽에 조명이 비춰지며, 칠흑 같은 밤을 연상시키는 검은 머리의 여신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른 신과 그리 교류가 많지 않다보니 이 자리에 있는 신들 대부분이 그녀와는 처음 만나는 것이지만, 그녀의 강력한 힘에 대해서는 쉬쉬하면서도 모두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녀는 말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신들은 그녀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한기가 몸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에 흠칫하며 몸을 떨어야만 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을 굽어 살피는 은혜로운 기적의 소유자, 희망과 생명이십니다.”
그의 소개가 울려 퍼지자, 희망과 생명이 도도한 표정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모여 앉은 잡신들을 주욱 둘러보았다. 이유가 뭔지는 몰라도 무척이나 심기 불편한 듯 보이는 그 모습에 신들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쳇… 내가 왜 두 번째인 거야.”
그렇지 않아도 형진을 얕보는 잡신들 때문에 감정이 상해 있었는데, 공포와 죽음 다음으로 호명되기까지 했으니 여러모로 심기가 불편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공포와 죽음, 그리고 희망과 생명이 차례로 호명되며 모습을 드러내자, 보호와 균형은 자신의 차례를 예감하고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부여잡은 채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때론 백 마디 말보다도 주먹 한 방이 더 확실할 때가 있는 법. 좋은 주먹 놔두고 왜 말로 하나! 신뢰와 헌신께서 몸소 이 자리를 빛내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엣?”
하지만 그녀의 기대와는 다르게, 세 번째 심사위원은 바로 신뢰와 헌신이었다.
“헉! 저 깡패가 왜 이 자리에?”
“조, 조용히 해. 그러다 들으면 어쩌려고.”
“헙!”
차례로 두 여신이 심사위원으로 모습을 드러낼 때도 그런가보다 하던 신들은 예고조차 없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신뢰와 헌신의 모습에 기함하고 말았다.
신뢰와 헌신은 딱 봐도 마초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강건한 근육질의 거한이었다. 허벅지 두께가 나란히 선 두 여신의 허리 사이즈를 합친 것보다도 두꺼울 정도니 말 다했다.
“이렇게 어려운 자리에 나서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약속을 했으니 지킬 뿐이다.”
“감사합니다.”
형진이 신뢰와 헌신에게 찾아갔을 때,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일단 주먹부터 내질렀다. 물론 형진은 인스턴트 킬로 공격을 무효화시킨 다음, 경직 상태에 빠진 그에게 심사 위원 자리를 부탁했다. 신뢰와 헌신은 두 말 없이 그 부탁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이렇게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다른 두 여신은 그렇다 쳐도, 신뢰와 헌신 앞에서 괜히 말 한 마디 잘못 했다가는 죽사발이 나도록 얻어터질 수밖에 없다. 건들건들하며 되도 않는 선배 대접을 받으려 했던 잡신들은 찔끔하며 목을 움츠릴 수밖에 없었다.
형진은 신뢰와 헌신의 등장으로 인해 일신된 분위기를 바라보며 다시 이렇게 말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커다란 행사에 적절한 보상이 없다면 말이 안 되는 일이겠지요. 우선 예선을 통과하여 본선에 진출하신 열 분께는 인간 세계에서의 활동에 도움이 될 아바타를 선물해 드리며, 연습생으로서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실 수 있는 자격을 드리겠습니다.”
“아, 아바타!”
고작해야 십만에 불과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신들은 그나마도 가지고 있지 못한 자들이다. 그들에게 있어 제대로 된 아바타라는 건 그 자체로 성공한 신의 증표나 다름없다.
“그리고, 치열한 본선을 거쳐 영예의 대상을 수상한 분께는!”
꿀꺽.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꿀꺽 삼키는 신들에게 형진은 은근한 말투로 이렇게 속삭였다.
“상금으로 백만의 공헌도와 함께, 저와 최우선적으로 프로모션 계약을 진행하며, 가장 빠른 시일 내에 세상에 데뷔할 수 있는 자격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배, 백만!”
그 엄청난 액수의 상금에, 신들은 순간 눈이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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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