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46
00646 146. 포획 =========================
티폰의 이동이 끝나자, 형진은 놈의 움직임을 멈추고 심어놓은 황혼의 성물을 통해 움직였다.
포트니아 테론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동을 실행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혹시 목적지를 제대로 찾았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곧바로 전투에 임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막상 황혼의 성물을 통해 이동한 형진의 눈앞에 드러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종류의 것이었다.
“이건…”
사기가 짙은 구름처럼 깔린 그곳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그 중심에는 노쇠해서 가물거리는 느낌이 날 정도로 미약한 빛을 뿜어내는 태양이 자리 잡고 있었고, 그 항성을 중심으로 마치 토성의 고리처럼 몇 겹으로 형성된, 아무리 봐도 자연적인 것으로는 보기 어려운 인공적인 구조물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고리들은 서로 뒤엉킨 듯한 형상을 하고 있었는데, 본래부터 그런 모양이었던 것 같지는 않다. 원래 어떤 형상이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 강한 충격에 부서지고 녹아내리다가 그런 모습으로 뒤엉켜 버린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 한편으로는 또한 뭔가 기이한 위화감이 느껴졌으나 당장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다.
하나의 항성계를 아우르는 크기의 인공적인 구조물들이 지닌 압도적인 규모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던 형진은 뒤늦게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무인기를 꺼내 주변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문명이라면, 티폰이나 자신의 출현을 알아차리고 바로 공격을 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런 식의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이 거대한 구조물을 만든 문명은 아주 오래전에 종말을 맞이했던 모양이다. 그 중심에 있는, 이미 노쇠해서 빛조차 제대로 내뿜지 못하는 태양처럼, 최소한의 방어 태세를 유지할 에너지조차 남아 있지 않은 듯한 모습으로 이름모를 거대한 구조물은 그렇게 짙은 사기를 머금은 채 침묵하고 있었다.
“설마… 티폰의 존재 이유는…”
그 모습을 지켜보며, 형진은 비로소 티폰이라는 괴수가 이렇게 존재하고 있는 진짜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티폰은 그저 거대한 괴수에 불과한 존재가 아니었다. 티폰은, 이를테면 스캐빈저 역할을 하는 존재였던 것이다. 우주라는 거대한 생태계에서, 더 이상 스스로 살아갈 여력을 잃은 채 사멸해 버린 문명을 마지막 순간 나타나 정리해 버리는, 그런 청소부였던 것이다.
올바른 길이 아닌, 잘못된 길로 들어서서 스스로 사멸해 버린 문명의 잔재를 티끌 하나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치우는 것이 티폰의 존재 이유였던 셈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구는 참으로 아슬아슬한 경계선 상에 놓여있었던 문명인 셈이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 엄청난 양의 사기를 축적시켜 왔음은 물론이고, 자칫 한 번의 실수만으로도 문명의 대다수를 스스로 파괴하고 자멸할 뻔했던 일이 몇 번이나 있었다. 만약 그런 식의 실수가 실제로 일어나 거대한 파괴가 발생했더라면, 그 파괴로부터 살아남았더라도 스스로 티폰을 불러들여 마침내 종말을 맞이했을지도 모른다.
본래 티폰을 사로잡는 계획은 포트니아 테론을 찾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로 인해 의도치 않게 또 다른 우주의 일면을 발견하고 말았다.
형진은 금방이라도 꺼질 것처럼 가물거리는, 이 항성계의 중심으로서 남아 있는 태양의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내 부서지고 녹아내린 채 뒤엉켜 있는 고리 모양의 거대한 구조물 주위를 다시 돌아보았다.
그제서야 처음에 느꼈던 기이한 위화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항성계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그 주위를 둘러싼 채 공전하는 천체들이 존재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없었을 것 같지는 않고, 눈앞에 자리 잡은 이 거대한 구조물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임의로 부숴서 자재로 사용해 버린 것은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눈앞에 보이는 구조물은 실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기술력을 가진 문명의 마지막 잔재일 것이다.
이 정도의 기술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문명은 어째서 사멸해 버린 것일까. 핵전쟁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파괴가 일어난 것일 수도 있고, 에너지원으로 삼고 있었던 항성이 빛을 잃으면서 이 압도적인 구조물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가장 유력한 원인은 결국 이 두 가지겠지만, 둘 중 어느 한 가지 원인이 발생하자 다른 한 가지 원인 역시 촉발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고, 어쩌면 형진이 예상치 못한 전혀 다른 원인이 존재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지금까지 형진이 접촉했던 문명들은 기이하게도 지구 이상의 문명을 가진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그저 단순한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그렇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 기술력이 일정 시점으로 올라섰을 때, 문명들은 일종의 갈림길에 서는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파괴하여 티폰의 먹이로 전락하던가. 어쩌면 그런 중대한 기로에서 누군가가 원하는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던가 하는 식으로. 그리고 대부분의 문명들은 지금 눈앞에 나타난 이곳처럼 올바른 방향이 아닌 그릇된 방향을 선택했고, 스스로 사멸하는 길로 들어선 것은 아닐까.
“음…”
어쩐지 오싹한 느낌이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던, 우주라는 거대한 생태계의 일면을 본 것 뿐인데도 절로 등골을 타고 한기가 흐른다.
그렇게 잠시 부서져 버린 문명의 잔재를 지켜보고 있는데, 문득 근처의 공간에서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저건?”
짙은 사기가 뭉쳐진 공간으로부터 무언가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행성 규모의 거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이미 몇 번이나 마주쳤고 또한 사로 잡아 이곳을 찾는 용도로 쓰기까지 한 상대이니 알아보지 못할 이유가 없다.
지금 이 순간, 형진의 눈앞에 또 다른 티폰 한 마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새롭게 나타난 티폰은 완전히 모습을 드러내기가 무섭게 우선 자신을 불러들인 사기를 빨아들였다. 형진은 그 모습을 보고서야 새로운 티폰이 이렇게 나타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을 불러들인 사기를 흡수함으로서, 자신 이외에 다른 티폰이 나타나는 것을 막는 그 행위를 자신이 사로잡은 티폰은 수행하지 않았다. 일종의 영역 표시라고 할 수 있는 그 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이 거대한 문명의 잔재를 먹어치우기 위해 또다른 티폰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젠장.”
사기를 모조리 흡수한 티폰은 당연하다는 듯이 눈앞에 차려진 진수성찬을 먹어치우는 일을 시작했다.
비록 사멸해 버린 문명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지구보다 앞선 문명임은 부정할 수 없는 일. 가져다가 분석한다면 티폰의 사체를 살피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지식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멸한 문명의 잔재라는 것 때문에 잠시 그것을 확인하는 것에 대해 머뭇거렸던 형진이지만, 눈앞에서 새로운 티폰이 나타나 그것을 먹어치우는 장면을 보게 되자 일단 그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형진은 곧바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티폰으로 하여금 놈의 식사를 방해하도록 했다.
곧바로 티폰은 그 거대한 몸체를 움직여 막 식사를 시작한 또다른 티폰을 향해 부딪혀 갔다. 광선 같은 것이 나가는 것도 아니고, 거대한 굉음이나 폭발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그저 압도적으로 거대한 몸집을 움직여 상대에게 부딪혀 갈 뿐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움찔하게 만드는 박력이 있다.
곧바로 거대한 두 괴수가 격돌했다. 느닷없이 나타나 몸통 박치기를 해오는 동족의 모습에 막 식사를 시작하던 티폰은 크게 놀란 기색을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다른 동족 자체를 본 일 자체가 없는데다, 싸운 적은 더더욱 없다. 존재하게 된 이후로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태에 당황한 티폰은 자신보다 작은 체구의 상대임에도 불구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려나 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점잖은 사람이라도 밥 먹는데 누가 와서 시비를 걸고 그러면 짜증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물며 티폰은 이성보다 본능이 앞서는 존재. 또한 이런 식으로 사멸한 문명의 잔재를 먹어치우는 일은 놈에게 있어서는 존재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일을 방해 받자 놈은 처음의 당황스러움은 잊고 크게 분노하고 말았다.
곧바로 거대한 두 괴수들이 맹렬하게 싸움을 시작한다. 촉수를 뻗어 상대를 옭아매고, 겉껍질을 부숴서 그 안에 감춰진 핵을 노린다. 비록 지능 자체는 낮지만 상대의 약점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무력화시킬 수 있는지 정도는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일단 새롭게 모습을 드러낸 티폰의 주의를 멸망한 문명의 잔재로부터 떼어 놓는 일에 성공하자, 형진은 이 녀석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모처럼 새로운 티폰이 이렇게 모습을 드러냈으니, 그대로 사로잡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티폰을 사로잡는 일은 적절한 준비가 갖춰진 상황에서 오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한다. 핵을 사념체로 갈아치우는 동안 놈을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로 몰아넣어야 하는데, 지금으로서는 그와 같은 일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결국 남는 선택지는 단 하나, 놈을 죽이는 것 뿐이다.
결단이 내려지자 형진은 균형 붕괴포 2문을 불러들인 뒤 곧바로 전투에 가세했다.
갑작스럽게 날아든 균형 붕괴의 위력은 한참 버릇없는 동족을 혼내주는 일에 몰두하고 있던 티폰에게는 청천벽력이나 마찬가지였다. 맞는 순간 뼈가 어긋나고 살점이 뭉개지며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리는 듯한 그 고통은 겪어 보지 않은 이로서는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정도다.
화들짝 놀라서 물러서려고 했지만, 그 틈을 노리고 작은 덩치의 티폰이 따라 붙는다. 거대한 몸을 밀어 붙이며 촉수로 살점을 헤집어 대기 시작하자, 덩치 큰 티폰은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커다란 위기에 봉착했음을 비로소 깨달았다.
보통 이런 상황에 처하면 대부분의 생물은 일단 몸을 피하는 쪽을 선택하겠지만, 덩치 큰 티폰은 더더욱 크게 분노하며 눈앞에서 알짱거리는 작은 덩치의 티폰을 해치우기 위해 애썼다. 애초에 이 거대한 존재의 사고에는 처음부터 도망친다거나 잠시 물러선다는 식의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두 거대한 존재가 엎치락뒤치락 하자 그나마 형체를 갖추고 있던 거대한 구조물들이 거기에 휘말려 다시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젠장.”
아무리 인형술로 티폰을 조종하고 있는 상황이라도, 사람의 신체와는 다른 존재를 세세하게 조종하는 것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많이 다루어 봤다면 모를까, 티폰을 다루어 본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니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일단 물러나는 척 하며 거리를 띄우자 덩치 큰 티폰은 옳다구나 하며 다시 달려들었다. 그런 식으로 일단 구조물이 파괴되는 것을 막은 형진은 기회가 오자, 마침내 스스로 전투에 가세했다.
포문이 붉게 달아오를 정도로 균형 붕괴포를 난사한 끝에, 티폰은 마침내 놈의 살점을 헤집어 핵이 드러나도록 만들었고, 기회를 엿보고 있던 형진이 곧바로 그 곳으로 뛰어 들어 거대한 나선창의 형태로 변환시킨 영혼 포식자를 놈의 핵에 찔러 넣었다.
격렬하게 저항하던 티폰은 중심 핵이 영혼 포식자에 관통 당하는 순간 그대로 움직임이 우뚝 멈춰 버렸다. 그리고 뒤이어 살점과 뼈가 하얗게 탈색되어 가기 시작한다.
“후우…”
돌아보니 만신창이가 되어 버린 티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자신보다 큰 티폰과 그토록 격렬하게 싸웠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다. 물론 그나마도 서서히 재생되어 차츰 상처가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어쨌든 모처럼 발견한 문명의 잔재가 깨끗하게 청소되어 버릴 수도 있는 사태는 그렇게 막아냈다. 이제는 보물찾기를 시작할 차례다.
이 정도로 거대한 구조물이라면, 그것을 이루는 사소한 파편조차도 현재의 인류에게는 큰 보물이 된다. 구조물 자체에서 발생하는 기계적인 압력을 견뎌 내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압축 강도를 지녀야 하는데, 현재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소재도 그런 식의 압축 강도는 지니고 있지 않다. 즉, 이 구조물의 파편 하나만이라도 가져다 분석에 성공해도 문명 자체를 일신할 수 있는 거대한 변혁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워낙 거대한 구조물이라 일일이 탐색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시일이 소모될 수밖에 없다. 형진은 일단 죽어버린 티폰으로 인해 부서진 구조물의 파편을 몇 종류 채취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위 내용에 나온 구조물은 다이슨 스피어까지는 아니고 여러 개의 겹쳐진 링 월드 수준이라고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