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661
00661 149. 강림 =========================
티폰을 불러내기 위한 의식을 치르던 이들 가운데 살아남은 세 명에게 벌을 내린 형진은 현장에 남아있는 시체들에 불의 속성력을 쏟아 부어 불태우고는 산비탈을 무너뜨려 의식이 벌어진 제단의 흔적마저 깔끔하게 지워버렸다. 만에 하나라도 누군가가 이 흔적을 보고 같은 일을 벌이려는 생각을 떠올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후우우우…”
그렇게 사건이 벌어진 현장을 정리하고 있자니, 옷깃으로부터 작은 사이즈의 여신들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이내 큰 모습으로 변화해서 그를 말없이 안아주었다. 공포와 죽음, 희망과 생명, 그리고 보호와 균형이 그를 감싸듯 부드럽게 감싸 안자 그제서야 끓어오르는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는다.
“미안해. 나도 모르게 그만.”
“괜찮아.”
형진이 분노를 누그러뜨리자, 공포와 죽음은 산사태로 인해 지워져 버린 제단의 흔적을 바라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어떻게 할래?”
“글쎄…”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일이 이곳에 모여 있던 몇 명만으로 가능할 리가 없다. 죄의 공포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얼마간 실마리를 찾긴 했지만, 이들이 속한 비밀 결사는 상상하는 것 이상 뿌리가 깊었다.
타나토스였다면 그런 비밀 결사 따위 공포와 죽음의 이목에서 벗어날 수 없었겠지만, 아직 이름조차 모르는 이 세계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일단 어떤 곳인지부터 확인을 해봐야겠군.”
형진은 지니고 있던 차량 가운데 이전에 아름과 새름 자매를 마중하러 갈 때 탔던 부양형 캠핑카를 꺼냈다. 겉으로 보기엔 관광버스를 닮았지만, 내부는 호텔 스위트룸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듯한 바로 그 차량이다.
허공에 모습을 부양형 자동차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들은 일단 안으로 들어가 탑승했다. 형진은 아바타를 하나 더 꺼내서 운전석에 앉혀 놓은 다음, 내부의 거실에 세 여신들과 자리를 잡았다.
“드세요.”
“고마워.”
아무래도 셋 가운데 막내나 다름없는 보호와 균형이 얼른 음료수를 테이블에 늘어놓는다. 나름대로 다른 두 여신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는 그녀의 모습에, 희망과 생명은 뭐라 하지도 못하고 투덜거리며 차가운 이슬이 맺힌 잔을 집어 들었다.
쳇. 이래서 호구는 싫다니까.
신들이 탑승을 끝내자 거대한 부양형 자동차는 스르르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얼핏 보기에는 황혼의 권능을 이용해 어딘가로 이동한 것 같은 모습이지만, 실제로 지금 발동된 것은 거울의 권능이다. 마치 거울 뒤에 숨듯이 빛이나 전파 같은 탐지 수단으로부터 모습을 숨긴 것이다.
형진은 음료수를 내놓고서는 어정쩡하게 서 있는 보호와 균형의 손을 끌어당겨 무릎 위에 앉히고는 손가락을 튕겨 거실 벽면에 장치된 모니터를 활성화시켰다. 그러자 곧바로 궤도에 자리를 잡은 위성들로부터 들어온 정보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흠…”
전체적인 지형은 거대한 바다와 육지가 존재하는 전형적인 지구형 행성이다. 하지만 지구와는 명백하게 다른 점이 있었는데, 바다의 크기가 훨씬 크다는 점과 해안선의 대부분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남쪽에는 아주 복잡한 형상의 거대한 내해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내해는 남극을 통해 다른 바다와 연결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지구의 대륙이 대부분 북반구에 위치한 것과는 달리, 이 행성의 대륙은 남반구에 치우쳐진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지금 그들이 있는 장소는 적도 부근에 위치한, 호주 크기의 섬에서도 동쪽에 자리 잡은 산맥 근처이다. 지형이 복잡하기는 해도 대부분 하나의 커다란 대륙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곳과는 다르게, 이 섬은 대륙과 분리되어 있는 곳이다.
지형 정보의 수집이 끝나자 위성들은 좀 더 구체적인 정보의 수집에 들어갔다. 그 과정에서 촬영된 지상의 모습을 살피던 형진은 문득 사진 하나를 보고는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철갑선?”
그렇다. 현재 그들이 있는 곳을 향해 일단의 함대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그 구성이 참 기막히다. 흡사 19세기 중반의 서양 열강들이 지니고 있던 것과 같은 여러 가지 형식의 철갑선들이 티폰이 출현했던 장소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철갑선이라고 한 마디로 표현했지만, 한 가지 종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범선의 외부를 철갑으로 두른 기범선 형태의 철갑선은 물론이고, 돛이 달리지 않은 채 스텔스 디자인을 연상시키는 부유 포대 형식의 철갑선과 포탑의 초기 형태인 포곽을 하나 내지 둘 정도 달고 있는 납작한 모양의 철갑선까지 다양한 형태의 배들이 무리 지어 다가오고 있었다.
거대한 티폰의 모습을 멀리서나마 관측하고 동원할 수 있는 가장 빠르고 가장 강력한 전력을 전개시킨 모양이다. 물론 아무리 강력한 전력이라도 형진이 티폰을 돌려보내고 보호와 균형이 혼란을 안정시키지 않았다면 밀어닥친 해일 만으로도 모두 훌러덩 뒤집혀서 바다에 가라앉아 버렸겠지만.
제대로 된 함대를 만들고 운용하기 위해서는 매우 많은 자원과 인력이 필요하다. 어지간한 국가는 감히 육성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비록 지금 모습을 드러낸 함대는 그들이 맞이한 새로운 시대를 의미하듯 아직 제대로 통일된 함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저런 시험적인 함선을 대량으로 건조하고 운용할 수 있다는 자체가 이미 해당 국가의 국력을 증명하는 일이다.
형진은 흥미로운 시선으로 함대의 모습을 살피다가 문득 특이한 점 하나를 깨달았다. 19세기 중반의 철갑선이라면 당연히 있어야 할 굴뚝이나 그것으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보이지 않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설마 싶은 표정으로 무인기를 근처로 이동시켜서 확인을 해보았다. 그 결과, 놀랍게도 이 모든 함선들이 마력을 이용해 운항중임을 확인했다.
놀라운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미약하긴 하지만, 모든 함선이 마력으로 보호 받고 있었다. 물론 그 효과는 보호의 권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하지만 일단은 모두 마법 함선으로 분류되기에 충분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 셈이다.
“이곳은 마법 문명이었던 건가.”
그렇다면 저 함대는 마법을 기반으로 한 산업 혁명의 부산물들인 셈이다.
타나토스에도 마법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저런 식으로 산업의 기틀을 마법으로 대체할 정도는 아니다. 마법이라는 능력 자체가 여전히 개인적인 재능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만약 이 세계의 존재들이 그런 한계를 극복한 것이라면, 막 발전 도상에 자리 잡은 타나토스의 훌륭한 성장모델이 될 수 있다. 물론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어떤 과정을 거쳐 이런 식의 발전이 일어나게 된 것인지 확인하는 것이 먼저겠지만.
세 여신들이 겨우 분노를 가라앉혀 놓기는 했지만, 그건 잠시 억눌러 놓은 것일 뿐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이 아니다. 하지만 모처럼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형진의 모습에 공포와 죽음은 조용히 물었다.
“놈들의 조직을 완전히 파악하려면 시간이 좀 걸려. 어떻게 할래?”
“…”
천벌은 분명히 내려져야만 한다. 자신들의 야욕을 위해 수없이 많은 희생자들을 만들어낸 비밀 결사 따위 반드시 사라져야만 하는 존재들이니까. 하지만 그들을 완전히 뿌리 뽑기 위해서는 정보가 필요하다. 공포와 죽음이 죄로부터 움트는 공포를 통해 탐색을 시작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녀가 강대한 대신 가운데 하나라도 처음 와본 행성에서 그런 일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포와 죽음은 묻고 있는 것이다. 잠시 머리를 식히는 편이 어떻겠느냐고.
“이곳의 문명을 먼저 살펴보자는 건가.”
“네가 원한다면.”
사실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비밀 결사의 탐색이 끝나더라도, 그 모두를 형진이 처리할 필요도 없다. 그에게는 이미 주시자라는 훌륭한 추종자들이 존재하고, 그들만으로 부족하다면 집행자나 수호자의 도움 또한 받을 수 있다. 만약 그래도 숫자가 모자르다면 거짓된 천국에서 유저들을 불러와도 되는 일이고.
“나쁘지 않은 얘기 같아. 애초에 그런 잡스런 녀석들까지 신이 직접 나서서 상대할 필요는 없지 않아?”
“그거야 그렇지만.”
희망과 생명의 말에 이번에는 보호와 균형도 한 마디 거든다.
“그, 그래요. 저도 이곳이 어떤 세상인지 궁금해요. 저들을 좀 더 잘 알기 위해서도 직접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조금은 필사적인 느낌마저 전해지는 보호와 균형의 말에 형진은 피식 웃어버리고 말았다. 자신들에게 화를 낸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달래려고 애쓰는 걸 보니 더 이상 고집을 부리기도 어렵다.
“알았어. 그럼… 일단 가장 가까운 도시로 한 번 가보자.”
웃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보호와 균형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혹시라도 괜히 신경을 건드리거나 하면 어쩌나 싶었던 모양이다. 형진은 그런 보호와 균형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가만히 이마에 입을 맞춰 주었다.
“나도.”
“…”
그 모습을 본 희망과 생명이 얼른 한쪽 뺨을 내민다. 형진이 웃으며 입을 맞춰주자, 이번엔 말없이 공포와 죽음이 눈을 감고 자신에게 얼굴을 내민다. 이쯤 되면 화를 내고 싶어도 낼 수가 없다.
그들이 탄 커다란 부양형 자동차는 열심히 달려오는 함대를 슬쩍 지나치며 선박들이 출발한 것으로 보이는 거대한 항구 도시로 향했다.
“뭔가… 대단하군.”
상공에서 확인한 도시의 모습은 거대한 메트로폴리스가 즐비한 지구 출신인 형진에게도 매우 색다르게 다가왔다. 현대 지구의 도시와는 다른 뭔가 무질서해 보이는 번잡함이 특색 있게 느껴진다.
산업 혁명을 상징하듯, 말이 끄는 마차와 그렇지 않은 초기 형태의 차량이 마구 뒤엉켜 도시를 가로 지르고 있었다. 색색의 옷감으로 지은 옷을 입고 바쁘게 어디론가 향하는 수많은 인파들은 이 도시가 얼마나 역동적으로 발전해 가고 있는지를 상징하고 있었다.
마법을 기반으로 한 문명이므로 산업 혁명 시기의 상징과도 같은 스모그 등의 현상은 없으리라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형진의 생각은 틀리고 말았다. 아무리 마법을 기반으로 한 문명이라도, 그 혜택이 도시의 모든 이들에게 돌아가기는 어려웠던 걸까. 수많은 인구가 몰려 사는 대부분의 주택에서는 장작인지 석탄인지 모를 것을 때는 연기들이 줄지어 뿜어져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의외군. 저위도 지방인데도 의외로 연료 소비가 많은 것 같아.”
“식사 시간인거 아닐까. 어쨌든 요리를 하려면 불이 필요할 테니.”
“그런 걸지도.”
적도와 가까운 곳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의 옷차림은 형진이 보기에 무척이나 바람직했다. 길을 지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얇고 하늘거리는 옷을 입은 채였고,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해안가에서는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러하듯,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게 마련.
그런 화려한 도시의 모습 뒤에는 넓게 펼쳐진 빈민가 역시 자리 잡고 있었다. 도심의 활기찬 모습과는 달리 그곳은 더럽고 궁핍하며 피로감이 역력했다. 어떻게 보면 급격한 산업화의 일면이라고나 할까.
“이곳에도 거점을 마련할 생각이야?”
희망과 생명의 말에 형진은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모처럼 발견한 곳인데 그냥 지나치긴 아쉽지.”
“그래? 하지만 새로운 곳에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 그리 간단하지는 않을 텐데.”
이제야 말이지만, 희망과 생명이 처음 지구로 와서 지금처럼 헐리웃의 여신으로 불리기까지는 여러 가지 난관이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자신의 그런 경험들을 떠올린 것이겠지만, 형진은 굳이 일을 어렵게 몰고 갈 생각이 없었다.
“처음부터 시작할 생각이라면 그렇겠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이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할 기반만 있으면 되는 일인데.”
“그럼 어쩌려고?”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모니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 하나를 비췄다. 그것은 이 나라의 왕성이었다.
“빼앗으려고?”
희망과 생명이 얼굴을 찌푸리고 그렇게 말하자, 형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없잖아.”
“그럼?”
“거래의 기본은 주고받는 것. 다만 무엇을 주고받느냐가 문제일 뿐이지. 그리고 나는 저들이 절실하게 원할만한 것을 아주 많이 가지고 있어.”
물론 그것이 반드시 공정한 거래라고 할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지금까지 형진이 했던 많은 계약처럼 그 내막은 비록 불공정하더라도 서로가 만족할 만한 거래는 얼마든지 이끌어 낼 수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
자, 나쁜 어른이들.
설문 참가자가 아직 219명 밖에 안되는군요.
얼른 얼른 참여하세요.
날이면 날마다 오는 설문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