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7
00737 166. 균열 =========================
어떻게 보면, 이것은 포트니아 테론이 자식이라 할 수 있는 파괴와 재생을 단숨에 처리한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자식마저 신격을 보충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했던 파괴와 재생의 작태는, 그녀에게 있어 과거 맞닥뜨렸던 존재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으니까.
그것은 또한 바꿔서 말하자면 그녀가 형진에게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자식은 물론이고 아이들에 대해서는 역린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끔찍하게 여기는 그의 심성이 그녀로 하여금 형진을 자신과 동류로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그럼 그 존재는…”
“어찌 어찌 격퇴하기는 했어. 태어나기가 무섭게 자신과 함께 태어난 우주를 먹어 치웠기 때문에, 천천히 우주와 함께 성장한 나보다 오히려 힘이 약했던 탓이지.”
포트니아 테론은 작게 탄식했다.
“하지만 그 일을 통해, 나는 내가 존재하는 이 세상이 선의로만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님을 이해했지. 그리고, 내가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도.”
그녀는 아련한 먼 기억을 떠올리듯 계속 되뇌었다.
“환수를 태어나게 하고, 엘리시온을 잉태한 건 결국 그 일 때문에 생각해낸 일이었지. 나와 함께 태어난 이 우주를 지키는 방법은 결국 두 가지 뿐이었거든. 하나는 이곳을 침탈하려 했던 자와 마찬가지로 다른 우주로 나아가 그것을 먹어치우든가, 아니면 이 우주를 더욱 생명과 의지로 충만한 장소로 키워내 그것을 다시 이곳을 지키는 데 쓰는 방법이었지. 물론, 나에겐 다른 우주를 먹어치우는 일 따윈 불가능했으니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뿐이었고, 그것을 보다 효과적으로 해내기 위한 수단이 바로 환수나 엘리시온이었던 거지. 물론… 어느 것 하나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포트니아 테론은 푸념 섞어 말하고 있었지만, 이건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정확히 다른 우주의 존재와 마주친 것이 언제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균열을 수호해야 할 포트니아 테론은 지닌 바 힘을 거의 소진한 채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여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고, 그녀 대신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었어야 할 신들은 엘리시온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자신들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었다.
이대로 더 시간이 흘러버렸다면, 더 이상 힘을 키울 역량 자체가 없어진 포트니아 테론으로서는 감당할 수 없는 존재가 이 우주를 노리는 것도 시간 문제였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형진은 물론이고 이 우주에서 살아가던 존재들은 자신들이 어째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다른 우주의 존재에게 송두리째 먹히는 결말을 맞이했을 것이다.
“내가 자네에게 나의 역할을 맡기려는 것이, 단순히 이 모든 일들이 지겨워지고 안식을 원해서만이 아님을 이제는 알겠는가.”
포트니아 테론의 말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크게 심호흡을 했다.
“너무… 저를 과대평가 하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그의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웃었다.
“그럴지도 모르지.”
“…”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해. 과대평가든 뭐든 간에, 나를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엿본 것 자체가 처음이야. 그것만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네.”
“끙. 이거 참…”
형진은 머리를 북북 긁기 시작했다. 스멀스멀 피부를 타고 오르는 짜증스러움 때문이다.
“망할 신들. 도대체 얼마나 무능한 건지.”
그렇게 중얼거리던 형진은 문득 함께 하고 있는 신을 떠올리고는 화들짝 놀라 말했다.
“아, 물론 당신한테 하는 얘기는 아니야. 엘리시온에 처박혀서 시간과 공간을 낭비하고 있던 잡신들한테 하는 얘기지.”
그 말에 제랄딘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저도 제 앞에 닥친 일에만 신경 쓰느라 더 넓게 세상을 보지 못한 건 분명한 일이니까요. 제 자신의 역할에 태만했다는 말을 들어도 당연한 일이에요.”
형진은 펄쩍 뛰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당신이 태만하다니, 그건 누구도 동의하지 못할 일이라고. 당신은 어머니로서도, 아내로서도, 딸로서도, 그리고 신으로서도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왔어. 그것만은 내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고. 부끄러워 해야 할 것들은 지금 이순간에도 엘리시온에서 나올 생각을 않는 버러지 같은 잡신들이라고. 당신이 아니야!”
“진…”
자신이 함께 있다는, 아니 자신의 내부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그렇게 서로 핑크빛 분위기를 피워 올리는 둘의 모습에 포트니아 테론은 살짝 얼굴을 붉힌 채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크흠. 금슬이 좋은 건 기쁜 일이다만,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줬으면 싶은데.”
“죄, 죄송합니다. 아하하. 이거 갑자기 어디서 먼지가.”
제랄딘을 끌어당겨 입을 맞추려 하던 형진은 그 말을 듣고서야 화들짝 놀라며 갈 곳 잃은 손을 허공에 마구 휘저어 보이다가, 그나마도 금방 뻘쭘해져서 행동을 멈추었다.
“심각하게 말하긴 했지만, 아직은 여력이 있어. 그러니 자네는 앞서 말한 대로 나를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추는 데만 최선을 다하게. 무슨 말인지 알겠지?”
“알겠습니다. 부족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믿겠네.”
포트니아 테론은 조금이나마 홀가분한 표정이 되었다. 오랜 시간 혼자서 짊어지고 있던 짐을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아직은 부족한 면이 많지만,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보통의 인간과 다를 것이 없었던 것을 생각해 보면, 현재의 형진은 정말 터무니없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파괴와 재생이라는 강대한 적이 사라지면서 잠시나마 목표를 잃고 주춤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제 다시 다른 우주의 존재라는 강대한 목표가 생겼으니 뒷일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얘기는 그렇게 끝을 맺나 싶었지만, 문득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던 형진이 다른 얘기를 꺼냈다.
“저… 아까 분명 그런 말씀을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뭘 말인가.”
“언데드의 힘이 사실은 소우주의 탄생에 관여하는 중요한 힘이라고 그러셨지요?”
“그랬지.”
“그거, 장모님께서도 가능한 일입니까?”
“응?”
넉살 좋게 바로 장모님이라고 부르는 것도 당황스럽고, 이어진 질문의 내용 역시 당혹스럽다.
“글쎄. 가능할 거라고는 생각하지만… 딱히 시험해 본 적은…”
“어째서입니까.”
“무엇보다도 효율이 좋지 않아. 들어가는 힘에 비해 그리 큰 공간은 만들어내기 어렵거든. 단순히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만이라면 다른 좋은 방법이 얼마든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식의 공간 활용법이라면 다른 신들도 얼마든지 사용하고 있는 중이다. 대표적으로 인벤토리 같은 것이 바로 그 좋은 예이다.
“일반적인 공간과 소우주의 차이점은 무엇이죠?”
“그건… 간단히 말하자면 법칙의 문제라고 할 수 있지.”
“법칙이요?”
“그래. 소우주는 가장 밑바닥에 해당되는 규칙부터 완전히 새로 쓰는 것이 가능한 반면, 공간 창조는 기존의 법칙을 다소 비트는 것 정도가 고작이지.”
“그거 뭔가 엄청난 것처럼 들리는데요.”
세상을 이루는 법칙 자체를 아예 새로 만들 수 있다니. 그런 소우주를 창조할 수 있다니. 문자 그대로 창조신의 영역이 아닌가.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저었다.
“법칙을 새로 쓸 수 있다 해도 결국 소우주는 소우주일 뿐이야. 그것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본체가 되는 우주로부터 끊임없이 힘이 공급되어야만 하니까. 게다가 그것을 유지하기 위한 힘보다 강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자신에게 강제되는 법칙을 깨부수는 것도 가능해. 무슨 생각을 한 건지 이제는 좀 알 것 같지만, 그걸로는 외부로부터 넘어오는 존재를 막는 건 불가능한 일이야.”
“흠… 그렇군요.”
이를테면 이런 얘기다. 굳이 포트니아 테론이 균열을 틀어막고 있을 것이 아니라. 균열이 위치하는 장소를 독립된 소우주로 분리시키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독립적인 법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외부의 침입자에게 불리한 여러 가지 조건들을 강제할 수 있다는 뜻도 된다. 여차하면 균열이 위치한 소우주를 아예 본래의 우주로부터 떼어낼 수도 있을 테고.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그 방법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애초에 소우주는 완성된 하나의 우주가 아닌지라 스스로 그 존재를 유지할 수가 없다. 게다가 그곳에 운 좋게 외부의 존재를 가두어 둘 수 있다 하더라도 소우주를 구성하는 힘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존재라면 자력으로 깨부수고 나올 수도 있다. 또한 균열이 분리되어 버리면 모처럼 마련된 장소가 사라지게 되니 외부로의 침입 경로를 특정할 수 없게되는 문제도 생긴다. 이래저래 특별한 효용을 기대하기 어려운 방법이 되는 셈이다.
형진도 그 정도는 바로 이해했다. 하지만 의외로 그는 별로 실망스러운 기색이 아니었다.
“어쨌든 가능은 하다는 말씀이시지요?”
“일단은.”
“혹시 그 방법, 저도 쓸 수 있는 겁니까?”
“그건… 잘 모르겠군. 나로서도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이고 나서야 깨달은 방법이니까.”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언데드의 힘을 사용하려는 자가 언데드의 힘을 배척하는 상태여서야 말이 되겠는가.
“저는 밤의 신입니다. 언데드의 힘까지는 아니어도, 어둠 그 자체라면 어느 정도 다루는 것이 가능하죠.”
“그럴 듯 한 얘기긴 한데…”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물었다.
“소우주를 만들고자 하는 이유를 말해줄 수 있겠는가.”
“그거야 어렵지 않은 얘깁니다.”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리고는 바로 대답했다.
“원래는 장모님께서도 떠올리셨듯이 균열을 격리하는 수단으로서의 소우주를 생각했습니다만, 여러 가지 제약이 있는 관계로 그 방법은 일찌감치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우주의 진정한 활용법은 전혀 다른 곳에 있더군요.”
“그것이 무엇인가.”
“항성계 간의 항해입니다.”
“뭐?”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이게 뭔 소린가 싶은 기분마저 느껴야만 했다.
뜬금없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포트니아 테론은 물론이고 가만히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제랄딘조차도 어째서 갑자기 그쪽으로 생각이 튀어나간 것인지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다.
“자, 잠깐. 왜 여기서 갑자기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건가.”
당황해서 그렇게 묻자, 형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바로 대답했다.
“네? 당연하지 않습니까. 장모님께서 내주신 과제를 해결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되기 때문이죠.”
“뭐? 그게 무슨…”
과제라니. 자신을 넘어서는 존재가 되라는 그 얘기 말인가. 그것과 항성계 간의 항해가 무슨 상관이 있다는 말인가. 포트니아 테론으로서는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얘기다.
형진은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했다.
“현재 제가 가지고 있는 방법으로는, 이미 생명이 탄생해서 생명력으로 충만한 세계가 아니면 탐사조차 불가능합니다. 그나마도 은염랑이라는 환수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우주는 그보다도 훨씬 광대합니다. 마법은 물론이고 신의 권능을 총동원해서도 물리적으로는 우주의 팽창속도조차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죠. 그래서 바로 항성계 간의 효과적인 항해 방법이 필요한 겁니다. 이미 생명체가 번성하고 있는 영역을 탐사하는 것을 넘어서, 아직 생명이 탄생하지 않은 영역까지 적극적으로 뻗어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방법인 셈이죠.”
“그, 그런…”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말을 잊어 버렸다.
솔직히 말해서 지금까지 형진이 이룬 것만으로도 대단하다 말할 수 있었다. 그가 은염랑의 힘을 이용해 권역을 넓히고 그것을 통해 힘을 확장시키는 속도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무시무시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이며, 아직까지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터무니없는 녀석은 그것을 넘어 아직 생명이 발현되지 않은 장소까지 적극적으로 권역을 넓혀 나갈 방법을 찾고 있었다.
다르다. 자신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균열에 웅크린 채로 다른 우주로부터의 침공을 막는 것에만 전전긍긍하던 자신과는 발상 자체가 다르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도대체 뭐란 말인가. 이 녀석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소우주가…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단서란 말인가?”
형진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그 안의 법칙마저 뒤바꿀 수 있다니, 그야말로 아주 딱 들어맞는 조건이라 할 수 있죠.”
============================ 작품 후기 ============================
두편째.
어라. 왜 주위가 이렇게 밝은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