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6
00736 166. 균열 =========================
그곳에 발을 딛은 순간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새카만 어둠이었다. 밤의 권능을 몇겹으로 중첩해서 뒤덮어 버린 것 같은, 빛이라는 것의 작은 파편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 그런 공간 안에 무언가가 소용돌이치고 있다.
“읏…”
형진은 급히 결계로 자신과 제랄딘의 몸을 보호했다. 이전에 언데드의 영역을 탐사했을 때의 느낌과는 다르게, 이곳에 충만해 있는 어둠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그들의 몸과 영혼을 탐하려는 습성이 있었다. 그대로 있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탐욕스러운 언데드의 힘에 그대로 먹혀 버릴 것 같은 그런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었다.
신의 반열에 오르고 난 뒤, 형진은 스스로 누군가에게 고개를 숙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자신의 존재감으로 누군가의 고개를 숙이게 만들면 만들었지, 그 반대 되는 입장에는 처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는 어둠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무언가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있었다. 스스로 고개를 숙여 경배를 해야만 할 것 같은, 보통 이런 상황이 되면 느껴야 할 반발심조차도 느껴지지 않는 그런 압도적인 존재감을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포트니아 테론.”
소용돌이 안에 무언가가 있는 것인가 싶었지만, 형진은 이내 그것이 아님을 이해했다. 포트니아 테론은 소용돌이 그 자체였다. 어찌보면 태풍과도 같았고, 또 어찌 보면 거대한 은하계와도 같은 형상. 단지 그 모든 것이 암흑으로 뒤덮여 있다는 것이 다를 뿐이다.
[예상했던 모습과 달라서 실망일지도 모르겠군.]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중심부의 힘을 조금 흩어서 그들이 좀 더 편안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태풍의 눈 같은 원리인가.”
바다를 뒤흔들고, 대지를 떨게 만드는 거대한 태풍도 그 중심부는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것처럼, 포트니아 테론의 중심부도 외부의 그 강대한 힘은 상상되지 않을 정도로 고요했다.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자니, 입학식 때 보았던 완숙한 중년 여인의 모습이 다시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역시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이 모습이 가장 편하겠지.”
“네, 뭐…”
막상 직접 접하고 나니, 단숨에 그녀를 정화하겠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알맞은 비교일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그녀를 정화하겠다는 건 항성계를 넘어 은하계 정도의 규모를 가진 천체를 전부 밤의 권능으로 뒤덮어 버리는 것 같은 느낌의 일이 될 것이다. 은하계는커녕 항성계조차도 자신의 뜻대로 하지 못하는 형진에게 있어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 실제로 내 모습을 보니 어떤가.”
엘리시온에서 보았던 신들의 본신 역시 인간의 형상이었음을 생각하면 포트니아 테론의 본래 모습은 여러모로 예상을 벗어난 것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반대로 흑요호나 은염랑 같은 존재들을 생각하면 이런 형상을 지닌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특히나 흑요호 같은 경우는 특히나 포트니아 테론과 닮아 있는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따지고 보면 흑요호의 본신 역시 여러 개의 털 뭉치로 이루어진 불가사리 같은 모습이니까.
“음… 뭐라고 해야 할지.”
형진은 잠시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엄지손가락을 척 내밀어 보이며 말했다.
“한 마디로 말해 멋집니다. 이제야 왜 은하계가 그런 모습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요. 척 보기에도 강대한 힘이 피부를 저릿하게 만들고, 보는 이로 하여금 절로 고개를 숙이도록 만드는 존재감도 나무랄 것이 없습니다. 우주 전체를 아우르는, 신조차 그 손길 아래 탄생될 정도의 신이라면 역시 이래야 하는 거 아닌가 싶은 느낌? 아니면 태초의 신이란 역시 이런 모습이 어울린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그런 느낌이군요. 미인이십니다.”
“뭐?”
포트니아 테론은 황당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이내 천역덕스러운 형진의 표정을 보고는 풉 하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그래. 자네가 둘이나 되는 흑요호를 아내로 맞이하고 그녀들로부터 열둘이나 되는 아이를 얻었다는 사실을 내가 깜빡했군. 쿡쿡.”
지성체들은 의외로 편협한 구석이 있어서 다름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속성이 있다. 그것은 단순히 인간들만이 아니라 신이나 환수들 역시 마찬가지. 만약 부인이 너무 많다는 자각이 없었다면, 형진의 왕궁에는 더 많은 종족들로 이루어진 하렘이 구성되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 직접 낳지는 못했더라도, 다른 존재를 포용하는 것은 내 뒤를 이을 자가 반드시 가져야할 덕목 가운데 하나겠지.”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 여자한테나 다 집적거려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네만.”
“크흠. 크험험.”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제랄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제랄딘이 조심스럽게 그 손을 맞잡자, 푸근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잇는다.
“참으로 여러 가지 일들이 많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짝을 만나 행복해졌으니 실로 다행이다. 모처럼 손에 넣은 행복이니, 앞으로도 서로 돕고 존중하며 살아가도록 해라.”
“네…”
지금껏 어머니라는 존재를 가져본 적이 없는 제랄딘으로서는 뭔가 어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나마 비슷한 존재가 미엘이었지만, 그녀는 어머니라기 보다는 언니 같은 느낌이 더 강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도 제랄딘이 아닌 공포와 죽음으로서는 그런 식의 감정이나 경험조차 없을 정도다.
포트니아 테론도 제랄딘의 그런 어색한 기분을 알아보았는지,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의 손을 놓고는 다시 형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말한 대로, 여기까지 왔으니 씨암탉 대신 앞서 말했던 것을…”
하지만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작은 진동이 그들이 있는 곳을 뒤흔든다.
“이건…”
지진이라고 하기도 뭐한 아주 작은 진동. 하지만 이곳이 딛을 땅조차 없는 공간임을 생각하면 절대로 가볍게 여길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그냥 비어있는 공간도 아니고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존재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이다. 은하계를 연상시키는 거대한 존재의 중심부에서 진동이 느껴질 정도라면 단순한 현상은 아니라고 봐야한다.
“대단한 일은 아니야. 앞서도 말했던 균열로부터 오는 진동이니까.”
“균열… 입니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모르겠군. 음…”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다시 이렇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타나토스에도 그런 곳이 있었지. 망자의 대지라고 했던가.”
망자의 대지. 그것은 타나토스 전역에서 발생하는 사기들을 모아 처리하는 일종의 집하장과 같은 곳이다. 할의 여동생이며 헤르타의 지부장인 힐 데 마그가 그곳에서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페스타 현상을 처리하고 있다.
“망자의 대지와 비슷한 현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고 있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그것과 같아. 이 우주는 너무나 넓고 광대한 곳이라, 그것으로부터 발생하는 사기의 양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지. 흔히 언데드의 영역이라 부르는 이 거대한 어둠은 그런 식으로 전 우주로부터 모인 사기들을 모아둔 장소라 할 수 있네. 균열은 그러한 어둠 속에서도 가장 깊은 어둠이며, 그 모든 것의 핵이나 다름없는 곳이지.”
“그럼 티폰은…”
“자연적으로 언데드의 영역으로 흘러들지 못할 정도로 사기들이 뭉쳐진 곳을 처리하기 위한 수단인 셈이야. 이를테면 우주라는 거대한 신체가 스스로 자정할 수 없을 정도로 자라나 버린 사기라는 이름의 암세포를 잘라내 없애기 위한 수단이라고나 할까. 이를테면, 그러한 것들이 또 다른 균열로 자라나는 것을 막기 위한 극약 처방인 셈이지.”
“그렇군요.”
형진은 가만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사기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원천적으로 차단할 방법은 없는 겁니까.”
“원천적인 차단이라…”
포트니아 테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흔히 사기라 일컬어지는 힘 역시 따지고 보면 우주의 한 부분이라 할 수 있어.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법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다만, 적당한 수준으로 존재한다면 그것 또한 우주 전체의 순환이나 섭리에 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네. 특히 새로운 소우주의 탄생에 있어서 음의 에너지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니까.”
사실 형진은 지금까지 언데드의 힘이 반드시 척결해야 할 요소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의 말이 사실이라면 단순히 배척해야만 할 일이 아닌지도 모른다. 하기야 스하족을 비롯해서 어둠의 영역에서 살아가는 자들도 있는 것을 생각해 보면, 이건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하지만 뭐든 지나치면 문제가 생기게 마련이지. 사실 엘리시온을 만들었던 것도, 신들로 하여금 이 거대한 우주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게끔 하려는 의도였어. 하지만 그런 의도는 실패로 돌아갔고, 이 모든 것을 나 혼자 책임져야만 하는 상태가 되어 버린 것이지. 균열은 그런 모든 인과의 결과물인 셈이야.”
자식들에게 기대를 걸었지만, 불행히도 그 자식들은 엘리시온의 안락함에만 기대어 밖으로 나서려 하지 않았고, 결국 모든 것은 포트니아 테론이 짊어져야만 했다는 얘기다.
최근 들어 여러 신과 마주치면서 그들의 생활이나 생각 등이 인간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던 형진이지만, 이런 부분까지 인간과 판박이라고 생각하니 절로 쓴웃음이 지어진다. 인간이 신을 닮은 것인지 신이 인간을 닮은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결국 인격체라는 것의 행동 패턴은 지닌 바 힘이 어찌 되었든 비슷하기 마련인가 싶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고 있던 형진은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생겼다.
“균열이 망자의 대지와 비슷하다고 하셨습니까?”
“그랬지.”
“그렇다면, 균열로부터도 뭔가가 올라오는 겁니까? 망자의 대지로부터 언데드가 불려나오는 것처럼.”
“그 말대로야.”
형진은 물론이고 제랄딘마저도 얼굴을 찌푸렸다.
일반적인 언데드라면 굳이 포트니아 테론이 이렇게 지키고 있을 필요조차 없다. 티폰 몇 마리만 대기시켜 둬도 충분할 테니까. 항성계 규모의 천체들을 먹어치우는 티폰들은 그 자체로 생물이라는 개념을 넘어선 존재들. 그런 존재들을 몇 정도만 가져다 놓아도 어지간한 언데드는 간식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훌륭한 청소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트니아 테론이 직접 지키고 있다. 게다가 부족한 힘을 보충하기 위해 언데드의 힘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일까지 마다하지 않은 채로.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과연 무엇일까.
“균열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겁니까.”
무거운 어조로 형진이 묻자,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다가 이내 작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본래대로라면 이것은 누구에게도 언급되어서는 안 될 일이겠지만, 자네는 내 뒤를 잇기로 예정되어 있으니 알아두는 것이 좋겠지.”
포트니아 테론은 아련한 옛 기억을 더듬는 듯한 표정으로 먼 곳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우주와 함께 나라는 존재가 탄생했다는 사실이야. 시간이라는 개념조차 모호할 정도로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나는 우주가 변천하는 모습을 그저 멍하니 지켜보는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어. 그리고 그렇게 또다시 얼마나 오래 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비로소 내가 이 우주를 보살피는 신임을 이해할 수 있었지.”
“우주를 보살피는… 수호신.”
너무나 거대한 스케일의 얘기라 형진은 잠시 말문을 잃었다. 이건 다시 말해 포트니아 테론은 이 우주와 함께 태어난 존재라는 말이 되는 셈이다.
“우주가 태어나는 섭리에 대한 것도 당시의 나로서는 알지 못했어. 그저 먼지에 불과했던 것들이 빛이 되고, 그것을 받으며 생명체가 태어나는 모습을 즐겁게 바라보는 것이 나의 일상일 뿐이었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나와 같은 존재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
포트니아 테론은 몸을 돌려 균열이 있는 쪽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간단한 얘기야. 이 세상은 단 하나의 우주만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던 거지. 내가 이 우주와 함께 태어났던 것처럼, 또 다른 곳에서 또 다른 우주와 함께 태어난 존재가 있었던 거야.”
“또 다른 우주의 수호신… 인 겁니까?”
포트니아 테론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지.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가 않았어.”
“네? 그게 무슨…”
“나는 이 우주를 보살피고 가꿔야 하는 대상으로 인지했지만, 다른 존재들도 그럴 거라는 보장이 어디있지?”
“…”
그제서야 형진은 깨달았다.
당장 엘리시온에만 가도 수많은 신들이 저마다의 신격과 개성을 가지고 존재한다. 이것을 그대로 포트니아 테론의 경우에 대입해 보면, 다른 우주의 존재들 역시 포트니아 테론과는 다른 존재일 가능성이 도출된다.
“내가 이 우주를 나와 함께 태어난 형제이며, 수호해야 할 존재로 인식했던 것과는 달리… 저 균열 너머의 존재들 가운데는 자신과 함께 태어난 우주를 포식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었던 거야. 내가 가장 먼저 마주했던, 이를테면 나의 또다른 형제라고 할 만한 존재는 바로 그런 자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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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늦어서 죄송합니다. 데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