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5
00735 165. 비밀 =========================
사람들의 시선은 곧바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제랄딘을 지켜보고 있는 두 명의 남녀에게로 향했다.
그렇지 않아도 아까부터 범상치 않은 존재감을 뿜어내고 있는 터라 알게 모르게 신경이 쓰이던 참이었다. 잔잔하게 웃고 있음에도 자신도 모르게 눈을 내리깔게 되는 포트니아 테론이라든가. 알게 모르게 경계심이 느껴지는 형진이라든가. 어느 쪽이든 절대로 평범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던 참이다.
“그렇다면… 저 남자가?”
누군가는 놀란 표정을 짓고,
“부, 부럽다.”
또 누군가는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던진다.
“그런데 어쩐지 눈에 좀 익은 얼굴인데.”
누군가가 그렇게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하자,
“연예인인가? 어디서 봤지? 분명히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다른 누군가가 필사적으로 기억을 헤집기 시작한다.
곧바로 남학생들은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던졌고, 제랄딘의 모습에 알게 모르게 질투 같은 감정을 품고 있던 여학생들의 시선 역시 곧바로 호의로 돌아섰다.
“언니. 저기 뒤에 있는 남자가 남편이에요?”
“응. 멋있지?”
“아하하…”
언제 봤다고 언니라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틈엔가 여학생들은 그녀를 언니라고 부르기로 마음먹은 모양이다. 차마 나이를 묻지는 못했지만, 알게 모르게 제랄딘 역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는 존재감을 뿜어내는 것은 마찬가지라 은연중에 연상으로 받아들인 모양이다.
그때, 문득 한 여학생이 손바닥을 마주치며 말했다.
“나 언니 아까 전에 봤어요. 부양 자동차 타고 왔죠!”
“맞아.”
그 말에 다른 학생들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여기 모인 학생들은 대부분 비행형 퍼스널 모빌리티를 가지고 있었고, 그런 그들에게 있어 부양형 자동차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물욕을 자극하는 아이템이다.
“그거 아직 시판 전이지 않아요? 혹시 미라지 코어 관계자?”
누군가의 그런 질문에 제랄딘은 대단치 않다는 듯이 바로 답했다.
“남편이 거기 다녀.”
“와아! 대박!”
제랄딘이 그 회사 관계자의 부인이라는 것을 밝히자, 그녀가 유부녀라는 것에 낙담하고 있던 남학생들은 물론이고, 모른 척 대화를 훔쳐 듣고 있던 교수들까지도 눈빛이 달라진다.
부양형 자동차는 아직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낸 것 사례 자체가 많지 않다. 내년이 되면 미라지 코어에서 제공한 구동 모듈을 탑재한 부양형 자동차들이 세상에 차례로 모습을 드러내겠지만, 아직은 그것을 실질적으로 운용하는 것은 미라지 코어뿐이다.
미라지 코어는 지금 시대에 누구나가 선망하는 회사라 할 수 있다. 특히나 사회에 나서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인 대학생들에게 있어서는 그 어떤 곳보다도 들어가고 싶은 회사다. 그곳의 관계자가 같은 과의 학생이 되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부양형 자동차보다도 더 커다란 토픽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신이 그곳의 실질적인 소유주라는 걸 알면 아마 다들 까무러치겠어요.] [글쎄. 대외적으로는 일단 부사장급 직위를 가진 실장일 뿐인데.] [훗.]형진과 제랄딘이 그렇게 메시지를 통해 남들 모르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동안, 여학생들의 질문 공세는 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언니. 그럼 혹시… 그 하얀 배도 타봤어요?”
하얀 배. 그것은 바로 이전에 세상을 떠들썩 하게 만들었던 하늘을 나는 하얀 빛의 범선을 뜻하는 말이다.
제랄딘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글쎄. 그건 일단 비밀.”
“에엣!”
하지만 그들의 대화를 훔쳐듣던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번쩍 빛을 발했다.
타본 적이 없다면 그냥 못 타봤다고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제랄딘은 그렇게 대답하지 않고 비밀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타보긴 했지만, 그걸 함부로 말하고 다닐 수는 없다는 얘기 아니겠는가.
일전에 세계를 일주하고, 하는 김에 달 탐사까지 진행해 버린 그 하얀 범선은 어떤 면에서는 부양형 자동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중요도를 가진 탈것이다. 지닌바 전략적 가치를 생각하면, 그것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순간 세계 각국의 정상들이 달려와 머리를 조아리며 구걸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물건이다. 단 한 척만으로도 그 나라의 군사력 순위를 뒤바꾸어 버릴 수 있는 그것은, 어쩌면 또다른 대항해시대의 서막을 상징하는 새로운 위용함일 수도 있었다.
그런 범선에 타봤다는 건 제랄딘의 남편이 미라지 코어에서 생각 이상으로 중요한 자리에 있다는 뜻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남편이랑 어떻게 만나게 됐어요?”
“가문의 사업 때문에.”
“사업이요?”
“응. 하지만 지금은 그냥 남편 일만 돕고 있어. 비서 역할이라고나 할까.”
“와아…”
이번에는 남학생들의 시선에 선망이 서린다.
학교에서는 젊고 아름다운 여대생, 직장에서는 이지적이고 냉철한 비서, 그리고 집에서는 예쁘고 귀여운 부인. 이보다 더 이상적인 여성상이 또 있을까. 물론 없다고는 말하기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풋내기 신입생들에게 이보다 더 자극적이면서도 강렬한 여성상은 찾기가 쉽지 않다.
그것만이 아니다. 가문 또한 미라지 코어와의 사업상 파트너라고 했다. 어떤 사업인지는 몰라도, 미라지 코어와 손을 잡을 정도라면 분명 대단한 곳일 터. 브라드로슈라는 가문의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반드시 알아두어야만 하는 이름인 것만은 분명한 일이다.
“완전히 혼이 쏙 빠져 나간 듯한 시선이군. 방심해서는 안 되겠어.”
제랄딘이 스스로 유부녀라고 밝힌 것 때문에 조금은 뿌듯하고 또 한 편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던 형진은 다시금 남학생들의 시선에 선망의 빛이 어리기 시작하자 다시금 긴장했다. 어떻게 보면 유부녀라는 타이틀이 오히려 다른 이들의 이목을 강하게 끌어들이는 요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 아이를 믿지 못하는 건가?”
포트니아 테론의 말에 형진은 씩 웃으며 답했다.
“물론 제랄딘은 믿습니다. 저는 그저 날파리가 꼬여서 우리들의 오붓한 시간들이 방해받는 것을 경계할 뿐입니다.”
“못 말리겠군.”
어찌 되었든 제랄딘의 등장이라든가 그녀의 발언으로 인해 다소 서먹했던 신입생들의 분위기가 하나로 합쳐진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덕분에 신입생들이 겪을 서먹함을 풀어주려고 게임이라든가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했던 선배들만 뻘쭘해지고 말았다.
모임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에도 형진과 제랄딘, 그리고 포트니아 테론은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 지닌 바 존재감은 물론이고, 순식간에 퍼져 나가기 시작한 소문이 그들의 주위에 소용돌이 치기 시작한 탓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하루만 지나도 교내에 당신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그런가요.”
제랄딘은 생긋 웃으며 형진의 팔을 감싸 안고는 그의 뺨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주위에서 작은 탄식이 일제히 터져 나온다. 미국은 애정 표현이 자유로운 곳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랄딘의 조금 부끄러운 듯한 느낌의 입맞춤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부족함이 없다.
누가 지금의 그녀를 보고 평소에는 조용하다 못해 퉁명스럽기까지 한 공포와 죽음과 동일 인물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제랄딘이 공포와 죽음의 아바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형진조차도, 이런 때는 그녀가 공포와 죽음에게서 이미 분리된 새로운 존재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평소에는 이러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어.”
“음… 허벅지를 꼬집으면서요.”
“정말?”
“글쎄요. 쿡쿡.”
어쩐지 공포와 죽음이 형진에게 애교를 부리고 싶은 걸 허벅지를 꼬집어 가며 꾹꾹 눌러참는 모습이 연상되어 버렸다.
그건 그것대로 꽤 귀여울 것 같은데. 언제 한 번 실제로 봤으면 좋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니, 반드시 보고 말겠노라고 형진은 마음 속으로 굳게 다짐했다.
“내가 옆에 있는 건 아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것 같군.”
“부러우십니까.”
“조금은.”
포트니아 테론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둘을 향해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다른 부모들이 겪는 일들을 체험해 볼 수 있게 된 건 나로서도 기쁜 일이야. 어머니라고는 불려도 지금까지 제대로 부모다운 일은 해본 적도 경험해 본 적도 없으니까.”
“지금부터라도 많이 하시면 되는 일입니다.”
“그렇게라도 말해주니 고맙군.”
주차장에 도달한 그들은 주위에서 쏟아지는 시선을 받으며 부양형 자동차에 올랐다.
형진은 부드럽게 자동차를 허공으로 띄워 올린 다음 뒷좌석에 제랄딘과 함께 앉은 포트니아 테론에게 말했다.
“우선 집으로 가시죠. 여기서 바로 균열로 가긴 어려울 테니까.”
“알았네.”
그들이 탄 차는 허공을 가로질러, 이전에 휴가를 즐겼던 별장으로 향했다. 포트니아 테론을 요안나가 있는 집으로 안내하기도 뭐하고, 처음부터 제랄딘이 학생 생활을 할 동안 머물 장소로 그 별장을 정해두기도 했다.
바람 부는 해변 한쪽에 자리한 별장에 도착하자, 다른 이들의 시선이 닿지 않도록 결계를 치는 일을 먼저 했다. 그리고 그 일이 모두 끝나자, 형진은 차에서 내려 가만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포트니아 테론에게 말했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형진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 포트니아 테론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손을.”
가만히 손을 잡자, 그것을 통해 어떤 모습 하나가 전해져 온다.
이게 뭔가 하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자, 포트니아 테론은 다시 이렇게 말했다.
“사실 지금의 이 모습은 그저 허상에 지나지 않아.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자네의 힘을 빌린 허상이지.”
“네?”
이게 무슨 소린가. 자신의 힘을 빌린 허상이라니. 지금 눈앞에 서 있는 포트니아 테론이 실체가 아니라고? 이렇게 명백하게 손을 잡은 느낌이 전해져 오고 있는 중인데?
“아무리 나라도 자네가 마음먹고 펼친 결계를 아무렇지도 않게 돌파할 수는 없다는 얘기야. 또한 자네의 힘이 주위의 다른 모든 인간들마저 속일 수 있을 정도로 강대하다는 뜻이기도 하지.”
“맙소사…”
제대로 상황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만약 포트니아 테론이 자신을 골탕 먹이려고 마음먹었다면 아주 크게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 않은가. 지금 같은 상태로 포트니아 테론이 싸움을 걸기라도 했다면, 자신은 상대가 허상이라는 것조차 모른 채 인스턴트 킬이 나지 않는 이유를 몰라 허덕이며 힘을 낭비했을 것이다.
“이것과 방금 보여준 것이 내 밑천의 전부야.”
“방금 보여준 것이라면…”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묻자, 포트니아 테론은 다시금 쓴웃음을 지었다.
“그 시커먼 구름과도 같은 무언가. 그것이 바로 내 본신이라는 뜻이지.”
“그게… 본신이라고요?”
“너무 오랫동안 언데드의 영역에 머물면서 그 힘을 받아들인 결과야. 이제는 자네도 날 원래대로 되돌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해할 수 있겠지.”
“허…”
손을 맞잡는 순간 형진이 본 것은 밤의 신인 그조차도 끝을 헤아릴 수 없는 거대한 검은 구름과도 같은 무언가였다. 혹시 그것을 통과해야 포트니아 테론이 있는 곳에 도달할 수 있다는 뜻인가 싶었지만, 당사자는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본신이라 말하고 있었다.
“어떤가. 이래도 나를 만나러 올 셈인가.”
형진은 옆에 서있는 제랄딘에게로 시선을 돌렸고, 그녀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로 밑천을 다 드러내 보였다. 사실상 스스로 무장해제를 한 것이나 다름 없는 일 아닌가.
“물론입니다. 씨암탉이나 준비해 두십시오.”
“씨암탉?”
“원래 제가 태어난 곳에서는 장모가 사위를 맞이할 때 씨암탉을 잡아서 요리를 마련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넉살 좋은 형진의 말에, 포트니아 테론은 피식 웃으며 답했다.
“씨암탉 같은 것은 없지만, 만약 나를 만나러 온다면 지금 이 모습을 드러낸 방법을 전해 주도록 하지. 이 정도면 되겠나.”
그렇지 않아도 그 부분이 찜찜하던 형진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제안이다.
허세와 망상이 만들어내는 환상이 신마저 속일 수 있는 힘이라고 칭해지긴 한다. 그러나 파편을 얻어 그 힘의 원리를 이해하게 된 형진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 그것은 함께 하고 있는 제랄딘 역시 마찬가지. 그런 둘의 이목을 속일 수 있을 정도의 힘이라면, 다른 신들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형진은 얼씨구나 하고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그럼, 바로 가도록 하죠.”
형진은 포트니아 테론이 전해준 기억을 떠올리며 황혼의 권능을 사용했고, 그의 의지에 반응한 권능은 기억이 가리키는 장소와 연결된 경계면을 활성화시켰다.
마침내 눈앞의 공간이 흔들리며 경계가 드러난다. 이 경계 저쪽에는 방금 전의 기억을 통해 전해진 포트니아 테론의 본신이 있을 것이다.
“갈까.”
“네.”
형진은 그렇게 제랄딘의 손을 잡은 채, 마침내 경계를 넘어 포트니아 테론이 머물고 있는 심연 속의 균열을 향해 걸음을 내딛었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