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34
00734 165. 비밀 =========================
자신만만한 형진의 모습에 포트니아 테론은 잠시 갈등했다. 하지만 그녀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자네 말대로… 가능하다 치더라도, 당장 언데드의 힘을 포기하는 건 힘들어.”
“어째서입니까.”
포트니아 테론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비록 내가 일반적인 신들과는 다른 존재라 하더라도, 결국 신인건 마찬가지야. 신의 힘이 무한하지 않다는 건 자네도 잘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신의 힘은 신앙과 공헌도에 의해 좌우된다. 엘리시온에 처박혀 있는 수많은 신들이 밖으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도, 설령 나오는 경우에도 당장은 요정보다도 못한 존재가 될 수밖에 없는 것도 결국은 급하게 신앙과 공헌도를 구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형진이 인턴이니 정직원이니 하는 것으로 신들을 끌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들이 당장 필요로 하는 공헌도를 주기 때문이다.
“환수를 만들고 엘리시온을 만들면서 나는 많은 힘을 소모해야만 했어. 환수는 그렇다 쳐도 엘리시온이 원래의 목적대로 활용되었다면 그렇게 소모된 힘 정도는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었겠지만, 그 아이들은 불행히도 그렇지가 못했지. 더구나… 균열을 막기 위해서 내가 어둠 깊숙한 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 신들은 물론이고 환수를 비롯한 다른 모든 존재들마저도 나를 잊어가게 되었고, 그것은 곧 내 존재감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되었지. 내가 언데드의 힘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런 상황에서라도 균열을 막아내는 책임을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야. 지금 내가 언데드의 힘을 버리게 된다면, 더 이상 균열을 막아낼 수 없게 될 것이 틀림없어.”
“균열이요? 그것이 무엇입니까.”
이제야 비로소 포트니아 테론이 언데드의 영역에 머물고 있는 이유가 언급되었다. 형진은 그것을 바로 짚어내 질문을 던졌지만, 포트니아 테론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당장은 말해주기가 곤란하군.”
“당장 어렵다면, 언젠가는 가능하다는 말씀이십니까?”
“글쎄…”
잠시 형진과 제랄딘을 번갈아 바라보던 포트니아 테론은 작게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사실 흑요호들을 다시 거두어 들여 보호한 것은 그들을 다시 추종자로 받아들여 언데드의 힘을 버리더라도 균열을 막아낼 수 있는 힘을 되찾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어.”
역시나 단순히 보호의 의도만 있었던 것은 아닌 모양이다. 짐승의 어머니라는 의미를 지닌 그녀가 가장 확실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추종자라면 역시 환수이다. 형진이 이미 거두어들인 은염랑 같은 존재를 제외한다면 아이를 기르기 위해 모여있는 흑요호들은 좋은 목표일 수밖에 없다.
“물론 그건 어차피 하루 이틀 안에 될 일이 아니지. 하지만 엘리시온이 본래의 의미를 잃어가는 것을 보고 사실상 이쪽 세계에 대해 자포자기 하고 있던 나라도 자네가 세상을 바꾸어 가는 모습을 보니 자극받지 않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해보자 했던 거지만… 생각해보면 이런 일은 역시 자네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군.”
“무슨…”
포트니아 테론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새로운 과제를 내주도록 하지. 나를 넘어설 수 있을 정도의 힘을 갖추도록 하게. 나를 넘어서고 결국은 내가 맡고 있는 모든 책임과 의무를 떠안을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갖추게. 할 수 있겠는가?”
“당신을… 말입니까?”
“그래. 어차피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계속 이어나가면 되는 일이야. 살아있는 존재들의 영역을 넓혀가고, 신들이 그 영역 안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며, 그 모든 힘들을 원활하게 운용하여 마침내 세상이 조화로운 번영을 맞이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지. 그리하여 그 모든 살아있는 존재들의 힘을 하나로 합친다면, 잊혀져서 언데드의 힘 따위에 의지해야 하는 나를 넘어서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거야.”
“…”
뭔가… 엄청난 얘기다.
포트니아 테론은 엘리시온을 잉태한 장본인이다. 그건 바꿔 말하자면, 신들의 창조주나 다름 없는 존재라는 의미. 그런 존재를 넘어선 존재가 되라니. 그게 과연 가능한 일이기는 할까.
“만약 그리한다면, 나는 자네에게 내가 지닌 모든 것들을 넘겨주고 그저 엘리시온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고 싶네. 나는 너무 오래 존재해왔고, 너무 오랫동안 지쳐 있었어. 의지를 지닌 다른 모든 존재들처럼, 나도 안식을 누릴 권리 정도는 있다고 생각하네. 그렇지 않은가?”
“그건… 그렇습니다만.”
포트니아 테론이 지닌 모든 것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녀가 관장하는 권능 같은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힘이 있다면 거기에는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일. 이를테면 당장은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균열 같은 것을 막아내는 일 같은 것도 전부 형진의 몫이 될 것이다.
이것은 엘리시온의 운영권을 받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문자 그대로 존재하는 모든 세계를 통할하는, 그리하여 신조차 넘어서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너무… 과한 것 아닙니까. 아직 반쪽짜리 신인 저에겐.”
조금 불만 섞인 목소리로 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포트니아 테론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
“완전하지 않다는 것은 가능성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지. 게다가 자네는 지금의 상태에서도 엘리시온에 틀어박혀 있던 얼치기 신들을 넘어선지 오래야. 아마도 내가 지닌 여러 가지는 그런 자네를 더욱 완벽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걸세. 어찌 보면, 완전하지 않은 자네이기에 이런 부탁이 가능한 것일지도 모르지.”
“후… 신격이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한계 또한 정해지지 않았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런 셈이지.”
자신에게 남은 한 가지 신격이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은 형진도 꽤 많이 해봤다. 사실 밤이라는 신격의 경우는 생각보다 수월하게 얻은 편이다. 어쩌면 처음에 얻은 신격이 너무 광범위하고 포괄적이라서 다음 신격이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못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게다가 자네가 타락한 신을 정화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나에게 그 능력을 발휘하려면 어지간한 힘으로는 무리일게야.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일반적인 신과는 다른 존재니까.”
형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그건 틀림없는 말이다. 엘리시온을 만들어낸 존재가 다른 신들과 같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일테니까. 그런 존재를 정화하려면 당연히 안식과 동굴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이 필요할테고, 그 조건을 맞추기 위해서라도 좀 더 힘을 확장시킬 필요가 있다.
“알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알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당신이 있는 장소입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당신이 있는 장소 정도는 알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가.”
사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르는 위급한 상황 같은 건 그냥 아무렇게나 가져다 붙인 이유에 지나지 않는다. 형진이 포트니아 테론의 위치를 물은 진짜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상대는 자신에게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데, 자신은 상대에게 갈 수 없는 상황은 정상적이지 않다. 만약 거래를 하는 입장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는 사기를 당해도 어디 가서 하소연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니까.
포트니아 테론도 형진의 그런 내심을 어느 정도 이해했는지, 어렵지 않게 그의 뜻에 수긍했다.
“알겠네. 하지만 지금은 우선 입학식이 먼저일 것 같군. 끝나고 같이 가도록 하지.”
“아차차. 그러고 보니 벌써 시간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상당한 시간이 흘러가 버리고 말았다. 형진은 화들짝 놀라며 얼른 제랄딘을 데리고 차에서 내렸다.
그들이 내리자 조심스럽게 차 사진을 찍고 있던 사람들이 화들짝 놀라며 얼른 딴청을 부리다가 다시 눈이 휘둥그레졌다. 제랄딘과 포트니아 테론의 외모는 물론이고, 차에서 내리는 순간 형진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 때문이었다.
“마치 성난 고슴도치 같군.”
“당신의 딸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훗.”
교문에 도착하자,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모습이 보인다. 간단하게 이름과 과를 확인하자 티셔츠와 텀블러 등을 받았다.
“식장은 풋볼 경기장입니다. 이쪽 방향으로 가세요.”
“감사합니다.”
제랄딘의 미모 때문인지, 아니면 뒤에서 살벌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형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바짝 얼어붙은 학생의 안내에 따라 그들은 풋볼 경기장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 학교는 입학식을 꽤 성대하게 하는 모양이네.”
“원래는 안 그런가요?”
“글쎄. 이런건 학교마다 다르게 마련이니까.”
그런 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며 안쪽으로 향하자, 풋볼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학생들 몇이 안내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식전 행사에 참가할 학생은 이쪽으로! 이쪽으로 와주세요!”
“가족여러분은 이쪽입니다! 이쪽으로 가시면 돼요!”
형진이 제랄딘을 바라보자, 그녀는 씩 웃더니 형진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가요.”
“나도? 난 신입생이 아닌데.”
“괜찮아요. 일일이 확인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요.”
“그런가.”
확실히 입구에서 신입생인지 일일이 확인하고 그러는 것 같지는 않다.
“난 가서 자리를 맡아 두도록 하지. 함께 다녀와.”
“같이 가시지 그러세요.”
“괜찮아. 자네라면 몰라도 난 역시 신입생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은가.”
“하하…”
그냥 조금 늦게 입학한 학생이라고 우기면 어떻게 될 것도 같은데.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렸지만, 얼른 가자고 손을 잡아 끄는 제랄딘을 따라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달려! 달려!”
“가자! 가자! 아자자자!”
옆에서 소리를 지르는 선배들의 외침에 따라 입구 안으로 달려 들어가자 통로 양쪽에 늘어서 있던 선배들이 제랄딘과 형진을 보고는 환호를 터트리며 열렬한 하이파이브로 맞이했다.
그곳을 통과하자 넓은 풋볼 경기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 이걸 받으세요.”
“이것도. 바로 머리에 쓰세요.”
출구에 서있던 선배들이 모자와 장갑을 나누어 준다. 그것을 받아서 착용하자, 다시 한 쪽으로 달려가 줄지어 선 다음 즉석에서 간단한 매스 게임을 펼치기 시작한다.
“정신없네.”
“좋지 않아요? 이런 식으로 누군가와 어울려 본 적 자체가 없어서인지 전 재미있는데.”
“하하…”
제랄딘은 밝게 웃으며 매스 게임에 열심히 참여했지만, 정작 형진은 주위에서 쏟아지는 그녀를 향한 시선들을 경계하느라 식전 행사를 즐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말할 것도 없는 일이지만, 제랄딘은 너무 매력적이다. 이런 곳에 혼자 놔두는 것이 걱정될 정도로.
“안 되겠어. 이러다 의처증 걸릴 것 같아.”
“어쩌려고요?”
“편입이라도 해야지.”
“이제 와서요? 힘들 텐데.”
“돈과 권력의 힘을 얕보지 말라고.”
어지간하면 이런 식으로 갑질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제랄딘을 노리는 늑대들의 시선을 보니 역시 안 되겠다.
시끌벅적하고 정신없는 식전 행사가 마무리 되자, 둘은 비로소 포트니아 테론이 있는 관중석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자, 음료수.”
“감사합니다.”
상당히 넓은 경기장이었지만, 포트니아 테론이 있는 장소는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수많은 인파들이 모인 관중석 안에서 마치 구멍이 뚫린 것처럼 그녀가 있는 자리 근처에만 좌석이 둥글게 비어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신들의 어머니라 불릴 만한 존재. 가만히 앉아서 미소를 짓고 있는 것 뿐인데도, 사람들은 감히 그녀 근처에 올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자리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자니 이런 저런 사람들이 단상에 나와 본격적인 입학식이 진행되기 시작한다.
맹견 같은 느낌으로 제랄딘을 지키는 일에만 열중하다보니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를 정도다. 결국 풋볼 경기장에서의 입학식이 끝나고 과별 모임이 진행되었다. 교수들이 나와 소개를 하고 신입생들이 서로 얼굴을 익히는 과정이 연이어 벌어진다.
“제랄딘 라스미어 브라드로슈입니다. 함께 하게 되어 기쁘네요.”
보통은 출신지라든가 출신 학교 같은 것을 함께 말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제랄딘은 이름을 말했을 뿐인데도 커다란 환호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뒤이어 나온 그녀의 말에 학생들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해지고 말았다.
“참고로, 전 유부녀입니다. 그러니 데이트 신청은 사절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아침… 이군요.
늦어서 죄송합니다; 삐질;